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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어주는 변호사]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이 터무니 없는 주장일까?

    자연의 권리(데이비드 보이드 지음, 이지원 옮김, 교유서가 펴냄)

    김소리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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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파괴에 따른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렇다면 자연에 법적인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환경변호사 데이비드 보이드가 쓴 《자연의 권리》는 자연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인도, 뉴질랜드,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세계 곳곳의 노력과 실제 법원에서 혹은 제도적으로 자연의 권리가 인정된 사례들을 보여줌으로써 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알게 해준다.

     
    동물의 권리와 관련하여서는 동물권 옹호를 위해 활동하는 미국의 스티븐 와이즈 변호사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스티븐 와이즈는 로스쿨에서 동물권 법학을 강의하고 30년 이상 동물을 위한 소송을 해왔다. 책은 와이즈가 동물을 위한 소송을 하는 과정을 비교적 생생하게 들려준다. 와이즈는 1991년 돌고래를 대신해 수족관을 상대로 수족관측이 카마를 해군해양시스템센터에서 훈련받도록 한 것은 해양포유류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으나, 돌고래의 당사자능력이 인정되지 않아 패소하자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법적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와이즈는 오랜 연구를 계속했고 2013년에 드디어 뉴욕주에 억류되어 있던 침팬지 네 마리를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침팬지들을 플로리다에 있는 넓은 보호시설로 보내라는 명령을 얻어내고자 한 인신보호 청구 소송이었다. 이 사건에서 와이즈는 침팬지들이 학대당한다는 사실보다는 침팬지가 법인격체이고 억류는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했다. 와이즈는 학자들로부터 침팬지의 인지능력과 그들이 사육 상태에서 겪는 고통을 요약한 선서진술서를 받아내 법원에 제출했다.


    "때로 사람들은 우리가 침팬지에게 인권을 주려 든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침팬지에게 침팬지의 권리를 주고자 한다."
    - 스티븐 와이즈가 기자들에게 한 말 (《자연의 권리》 80쪽)


    결론적으로 뉴욕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의미 있었다. 와이즈는 치열하게 다투었고, 판사 역시 와이즈의 변론이 빼어나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고 다만, 그러한 결단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며 입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 나아가 뉴욕주 대법원의 바버라 제피 판사는 침팬지에게 법적 권리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이해할 만하고, 언젠가는 그러한 노력이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고 밝혔으며,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직 재산을 소유한 백인 남성 시민만이 미국 헌법에 보장된 법적 권리 전체를 누릴 수 있었다. 비극적이게도, 수정헌법 제13조가 통과되기 전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 권리가 (설령 있더라도) 거의 없는 재산으로 취급되었다. 여성은 결혼 후에는 남편의 재산으로, 결혼 전에는 가족의 재산으로 여겨졌고, 그들의 아버지, 형제, 삼촌, 남자 사촌들이 누리던 권리를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 제피 판사의 말(《자연의 권리》 83, 83쪽)


    미국 외 다른 나라의 사례도 있다. 2013년 아르헨티나동물권변호사협회는 동물원에서 20년을 갇혀 지낸 수마트라 오랑우탄 '샌드라'를 대신해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했는데, 2014년 재판관 전원은 샌드라가 비인간 인격체로서 일정한 기본권을 가진다고 보고 보호구역으로 이송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2016년에도 동물원에 갇혀 있는 세실리아라는 침팬지를 보호구역으로 옮겨달라는 인신보호 청구 소송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당사자능력이 문제되었으나, 해당 사건의 판사는 유엔의 세계동물권선언과 아르헨티나 헌법을 인용하며, 마찬가지로 이들 동물이 각자의 종에 적합한 환경에서 나고 살고 자라고 죽을 기본적인 권리를 가진다며, 세실리아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인도에서도 황소를 학대하여 길들이는 인도 전통행사의 위법성을 묻는 소송이 제기됐는데, 대법원은 황소가 '건강하고 청결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인간에게 매 맞고 차이고 물리고 극심한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고 억지로 술을 마시거나 군중의 고함과 야유에 둘러싸인 채 좁은 구획 안에 서 있도록 강요받지 아니할' 헌법상의 권리를 가진다고 판시한 사례가 있다. 참고로 인도 헌법에서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한 연민'을 시민의 기본적 의무로 규정한다.

     
    또 책은 미국에서 절멸위기종법이 제정된 경위와 그 의미, 그리고 그에 기반하여 절멸위기종이 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소개한다. 1973년 제정된 절멸위기종법은 만약 인간이 계획하는 어떤 활동이 절멸위기종의 생존을 위협한다면 그 계획은 진행될 수 없고, 어떤 계획된 활동이 절멸위기종의 중요한 서식지를 파괴하거나 훼손한다면 그 땅의 소유주가 누구든지 관계없이 그 계획은 진행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환경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이 법에 근거하여 개발회사의 댐 건설 공사를 막는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연방대법원은 위 법의 취지가 '어떠한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멸종의 추세를 멈추어 되돌리자는 것이라며 댐 건설에 제동을 거는 판단을 하기도 했다. 절멸 위기에 처한 종의 이름으로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와이 꿀먹이새과에 속하는 새인 팔릴라는 스스로 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절멸위기종법에 따라 지정된 위기종으로서 법적 지위를 가진다며 원고로서의 자격을 인정했고, 원시림에 둥지를 트는 바닷새 알락쇠오리 역시 법원에서 원고적격을 인정받았다. 절멸위기종법이 제정되면서 실제 위기종들이 상당수 개체수를 회복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이나 숲은 어떨까. '자연의 권리' 장에서는 생태계 자체에 권리를 인정한 조례를 소개한다. 2006년 펜실베니아에서 관련 조례가 처음으로 통과됐다고 한다. 이 조례는 자연 공동체와 생태계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자연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그 지역 및 그 지역에 속한 시민 누구나 자연을 대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펜실베니아를 시작으로 피츠버그,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 등 미국의 곳곳의 지역사회는 이와 같은 조례를 통과시켰다.

     
    또 책에서는 자연의 권리와 관련해서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이 뉴질랜드 정부와 논의하여 강이 스스로 법적 주체라는 점을 인정한 협정을 체결한 사안을 소개한다. 주인공인 강의 이름은 팡아누이강인데 위 협정에 따라 팡아누이강은 더는 인간의 소유가 아니며 그 자신의 소유이다. 원주민들이 자연, 강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반영된 것인데, 그야말로 획기적이다. 강은 공식적인 후견인을 둠으로써 그 이익을 보호하게 된다고 한다.

     
    뉴질랜드 녹색당 공동 대표 메타리아 투레이는 강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법체계가 오랫동안 기업에는 사람과 똑같은 여러 권리를 부여해왔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실제 그렇다. 기업은 법에 의해 인격체로 의제될 뿐이지 실제 지능이나 인식이 있지 않다. 미국의 물권법 교수인 크리스토퍼 스톤은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은 기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과 숲이 말을 할 수 없기에 당사자적격을 가질 수 없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기업체 역시 말을 하지 못한다. 주, 부동산, 영유아, 무능력자, 지자체, 대학도 마찬가지다. 보통 시민들에게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흔히 그러하듯, 변호인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말한다."
    - 크리스토퍼 스톤(《자연의 권리》 147쪽)


    우리나라 환경소송의 경우, 원고적격을 조금씩 넓혀가려는 추세라고는 하나 여전히 범위가 좁은 듯하다. 행정소송법상 처분 등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인정되어야 하고, 대법원은 환경영향평가 범위 내에 있는 주민이라면 법률상 이익을 인정하나, 그렇지 않은 주민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수인한도를 넘는 환경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는 점을 입증해야만 법률상 이익을 인정한다(대법원 2010. 4. 15., 선고, 2007두16127, 판결 외 다수). 이렇다보니 환경단체 이름으로도 자연을 위한 소송이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도롱뇽이 2003년 스스로 당사자가 되어 고속철도 공사를 중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한 사안이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우리 법체계에서 자연은 권리가 없다…(중략)…원심이…(중략)…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하여 자연은 권리가 없다고 못박았다. 당시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의 권리》를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미국의 절멸위기종법과 같은 법을 제정하고 이에 기반하여 다양한 환경소송이 제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법정에서 자연이 말할 길이 차단돼있는데, 자연을 위한 판단이 법원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지금과 같이 기업에 의한 막개발도 이러한 법적 구조하에서는 당연한 귀결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아가 똑같이 말할 수도 없고, 인지능력이 없는 기업은 이렇게 자유롭게 많은 것을 하는데, 왜 자연만은 이 세계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더욱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기반인 자연이 처한 현실, 보다 정확하게는 법적 현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김소리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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