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 극장가를 강타한 <탑건: 매버릭>은 정말 매력적인 영화다. 매버릭(톰 크루즈)은 36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멋있고, 슈퍼호넷 같은 신형 전투기는 훨씬 빠르게 하늘을 수놓는다. 아찔한 협곡을 가르는 전투기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중전이 시종일관 눈길을 빼앗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파일럿, ‘탑건’이다. 영화 초반 파일럿보다 무인기를 신뢰하는 케인 장군과 매버릭의 대화가 백미(白眉)다.
케인: The end is inevitable, Maverick. Your kind is headed for extinction. (끝은 정해져 있네, 매버릭. 자네 같은 파일럿들은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어)
매버릭: Maybe so, sir. But not today.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무인화나 자율주행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맥도날드 등 요식업에서 키오스크가 일반화된 지는 꽤 되었고, 자동차, 선박, 항공기도 자율주행기술의 침투율은 날로 높아간다. 이대로라면 케인 장군의 말이 맞을 수 있다.
신기술이 일자리 잠식 통념 속
오히려 일자리 늘릴 수도 있어
“But not today” 당분간 유효
톰크루즈의 세 번째 ‘탑건’기대
그런데 논의를 좁혀 항공기 쪽으로 보면 양상이 사뭇 다르다. 자율주행 항공기의 숫자가 늘어나 파일럿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앞으로 수년간은 파일럿의 수요 대비 공급은 매우 부족하다고 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올리버와이먼(OliverWyman)은 전세계적으로 2025년까지 5만 명, 2036년까지 60만 명 이상의 파일럿이 부족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까지 내놓은 바 있다. 이 같은 파일럿의 과소 공급은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항공산업은 파일럿을 대체하는 자율주행 항공기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자율주행 항공기의 개발과 양산으로 가게 하는 동인(動因)은 자율주행기술이 아니라 파일럿의 ‘몸값’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항공기의 경우 추락사고가 발생하면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 참사로 비화될 수 있기에 안전 문제 때문이라도 파일럿이 사라지기 힘들다는 예측도 있다.
신기술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통념이 있으나 오히려 일자리를 늘릴 수도 있고 일자리를 재정의할 수도 있다.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는 없어지나 파일럿과 같은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는 살아남고, 오히려 신기술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에 맞추어 법과 제도를 차분히 점검해야 하겠다.
이쯤 되면 매버릭의 “But not today”라는 말은 당분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 먼 미래에도 <승리호>의 장선장(김태리)처럼 파일럿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톰 크루즈가 나오는 세 번째 ‘탑건’이 기다려진다.
이광욱 변호사 (법무법인 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