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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우 칼럼] 법조인 정치시대의 명암 - 법률가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이한우 교장 (논어등반학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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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민주정 체제 이후 대통령들을 짚어보면 군인 출신 노태우, 직업 정치가 김영삼, 김대중, 법률가 출신 노무현, 전문 경영인 출신 이명박, 전직 대통령 딸 박근혜, 법률가 출신 문재인 그리고 지금은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다.

    게다가 지금 여야 정당 지도자를 보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주호영과 원내대표 권성동 모두 법률가 출신이고 야당도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가 된다면 가위 법률가 정치 시대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우선 왜 이렇게 된 것인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긍정적 측면에서 보자면 민주정 시대와 더불어 ‘민주화’와 같은 거대 담론은 설 자리를 잃었고 진부한 정치가 전면에 자리 잡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둘째는 우리나라 직업군 중 민주정에서 긴요한 사안별 토론 능력은 상대적으로 법률가들이 뛰어나다. 그래서 얼핏 대중들에게 유능한 직업군이라는 인상을 주다 보니 정당에서도 경쟁적으로 이 분야 인재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여야 구별이 거의 없다.

    셋째는 정치 예비군 양성과정이 취약한 우리 정당 특성상 법조인들의 경제적 안정이 정치권으로 향하는 문을 넓혀놓았다.

    그런데 이회창의 실패를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각각 ‘정치개혁’과 ‘검찰개혁’을 내세웠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문 대통령의 실패로 등장한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이미 윤 대통령이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은 대통령실과 내각 인사를 통해 무너져 버렸다. 사실 문 전 대통령의 ‘내로남불’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파급력은 있었지만 ‘공정과 상식’은 대통령 후보가 내놓을 어젠다는 아니다. 그것은 기본일 뿐 우리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비전과는 거리가 먼 표어일 뿐이다.

    법률가로서 정치 영역에 뛰어든다면
    법 기술자로 전락할 위험성 커
    법률가의 사고·행동 방식 끊어 낼 때
    정치가로서 탈바꿈 가능

    보다 중요한 것은 부국강병 향한 비전
    부국강병을 위해 어떻게 도약할 것인지
    구체적·장기적 비전 제시 없으면
    국정은 더욱 난맥상을 보일 수밖에 없어


    여기서 우리는 ‘논어’ 안연편에 나란히 등장하는 공자의 두 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반 마디 말로도 옥사를 판결할 수 있는 자는 아마도 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일단 말을 하면 묵혀두는 법이 없다.”

    판결이란 원고 피고 양측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자로는 용맹에 치우쳐 지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언행일치와 신뢰감을 가진 인물이기에 옥사를 다루면 잘할 것이라고 칭찬한 말이다.

    그런데 이는 법률가 영역일 뿐이다. 그래서 바로 이어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송사를 듣고 판단하는 일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송사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

    송사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공자가 생각했던 정치이다. 모든 것을 법률로 다루려는 태도, 이것이 바로 송사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이런 틀을 갖고서 보자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여전히 법률가 영역에 머물러 ‘유능하게’ 법을 잘 주무르는 법률가일 뿐 “송사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점에 특별한 노력을 보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미 보수 쪽에서는 ‘차기 대선 후보감’ 운운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법률가 잘못이라기보다는 유권자, 즉 국민이 정치지도자를 바라보고 기대하는 수준의 저열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잘못을 ‘유능한’ 법률가들이 올라타고 이어서 ‘정치의 실패’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를 반복한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과학은 스스로를 성찰할 수 없다”며 그 성찰의 공간이 바로 철학이 숨 쉬는 영역임을 설파한 바 있다. 과학 기술은 확신에 기반해 있다. 그러나 과학이 어느 방향으로 발전해 가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과학은 과학적 발언을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과학은 자기성찰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는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그리고 넓게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모두 관여해야 한다.

    법률가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법률가라고 해서 법률에만 머물면서 정치 영역에 뛰어든다면 법기술자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오히려 법률가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끊어낼 때 정치가로의 탈바꿈은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공자와 하이데거는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오히려 국가와 시민사회를 ‘법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데서 제대로 된 정치는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은 공(公)을 바로 세우는 것이고 내용적으로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는 오랜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되는 교훈이다. 문 전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도 따지고 보면 ‘내로남불’로 공(公)을 무너트리고 부국강병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두 달 만에 지지율 20%대 지도자로 전락한 것도 결국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가족을 비롯해 주변 인사 관리가 기대 이하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부국강병을 향한 비전 결핍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이 부국강병을 위해 어떤 도약을 할 것인지 구체적이면서도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지지율 회복은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정은 더욱 난맥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흥미롭게 읽는 책 하나가 있다. 삼국시대 조조의 신하였던 유소라는 사람이 지은 ‘인물지’라는 책이다. 이 대목이야말로 지금 윤 대통령이 새겨야 할 말 같아서 그것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신하는 어떤 일을 떠맡는 것을 능력으로 삼지만, 임금은 사람을 쓰는 것[用人]을 능력으로 삼는다. 신하는 말을 잘 하는 것을 능력으로 삼지만, 임금은 잘 들어주는 것을 능력으로 삼는다. 신하는 일을 잘하는 것을 능력으로 삼지만 임금은 제대로 상과 벌을 내리는 것을 능력으로 삼는다. 임금과 신하는 따라서 능한 바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인물은) 여러 재질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로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좋은 말들은 법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전과 인문학에 들어 있다.


    이한우 교장 (논어등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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