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는 일상적으로 증명하는 일을 한다. 법관이 판결문에 이유를 적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증명이 없으면 판결도 없다. 권리도 책임도 없다.
소송이나 자문 변호사의 실력은 증거를 제출하고 주장이나 의견의 논거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밝히느냐에 달려있다. 로펌 후배변호사가 신입 시절 선배변호사에게 호되게 꾸지람 들은 이야기. 소송서면 초안을 써 선배에게 보내고 검토를 받으러 갔는데, 선배가 대뜸 ‘네가 대법관이야? 왜 서면에 논거가 없어?’라고 힐난하더라는 것.
이 후배가 증명에 소홀했다면 이 점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선배가 ‘네가 대법관이야?’라고 말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비틀어 보면 ‘대법관이면 논거 없이 결론만 내도 된다’는 것인데,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실제로 독일에서도 1960년대 초반까지는 그랬다고 한다. 법은 법관이 그의 최종의지에 따라 인식하고 판단한 바에 따라 해석하면 그뿐이라는 입장이 대세였다. 법관은 자신이 인식한 결과만 제시하면 되었다. 이유를 밝힐 이유가 없었다. 이를테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식이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부터 ‘재판에서의 논증’(juristische Argumentation)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주제는 그 후 20여 년에 걸쳐 법철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논의 대상이 되었다. ‘법관이 내리는 판결의 수준이나 정당성은 법의 해석에 대한 법관의 인식 결과가 아니라 법적 판단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 설정에 달려있다.’ 지금은 이러한 입장이 정설이자 실무로 확고히 자리 잡혀 있다. 독일 법원의 판결문에는 학술논문에 버금갈 정도로 치밀한 논거가 제시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법률문헌이 인용되고 있다.
법관이 내리는 판결의 정당성은
법 해석에 관한 법관 인식 아닌
법적 판단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 설정에 달려있어
법원을 나온 뒤 주위 변호사들에게서 가끔 듣는 민망한 얘기 중 하나.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판결문에 이유 기재가 없다는 것. 여러 논거를 들어 위법하다고 주장했는데, 판결문에는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만 있고 왜 그렇다는 것인지 근거는 쓰여 있지 않더라는 취지다.
그러나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보자. 논증의 교과서이자 보고(寶庫) 아닌가. 그러니 일반적으로 논증의 부재를 탓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부판결, 그중에서도 아주 일부의 일이다. 하지만 전혀 없는 일도 아니다. 나 역시 대법관으로 있으면서 그런 판결문을 쓴 것 같아 뜨끔할 따름이다. ‘판결의 문구가 그럴 뿐이고 실제로는 충분한 검토를 거친 것이 틀림없으니 그리 비난할 일은 아니다’라고 경험에 빗대어 대변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설득되지는 않는 듯하다.
물론 모르지 않는다. 현재의 상고심 구조 아래서는 대법원이나 대법관의 의지만으로 풀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그러나 문제는 문제다. ‘판결이 결론만 맞으면 되지 논증은 해서 뭐 하려고?’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독일에서의 논증이론이 정리한 이런 대답이 논의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관의 논증은 다른 법률가의 논증과는 다른 차원이다. 법관이 논거를 제시하는 것은 재판권의 민주적 행사를 담보하는 함의를 갖기 때문이다. 법관이 재판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보여서도 안 된다는 사고다.’
이러한 사고는 ‘법의 지배’ 사상과도 맥이 통한다고 본다. 상고제도를 개선하는 것과 대법원이 논증에 충실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향한 길목에서 서로 따로 가는 길이 아닐 것이다. 이를 통틀어 우리 사회가 나서서 우리의 격에 맞는 사법제도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일. 이 일을 언제까지 마냥 늦추고만 있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김지형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전 대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