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와 피카소가 서양에서 추상화 시대를 여는 징검다리였다면 한국에서 그 역할은 김환기가 했다고 할 수 있다. 마티스와 피카소는 본인이 직접 추상화를 그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다른 작가들이 추상화 시대를 열었다. 반면 김환기는 구상적인 그림을 오래 그리다가 추상으로 변화했다. 서양에서 여러 세대에 거쳐서 나타난 변화가 한국에서는 한 사람의 화업사(畵業史)에 응축되어 있다.김환기는 1935년 동경에서 데뷔한 뒤 30여 년 동안은 달항아리, 구름, 산, 달, 새, 매화 따위를 간결한 형태로 축약하여 그리는데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이런 소재를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간략한 형태들이 캔버스라는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하게 그려냈다. 김 화백이 가장 사랑한 것은 달항아리 이미지였다. 1950년대 후반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달항아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는데, 서울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내 예술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소.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이 될 것 같소”라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김환기, <항아리와 날으는 새>, 1958년,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의 시감(視感)을 매료시킨 달항아리의 특징은 색깔이었다. 도자의 흰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비치는 빛의 양(量)과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변한다. 그래서 그는 달항아리가 지니는 회백(灰白), 청백(靑白), 순백(純白), 난백(卵白), 유백(乳白)의 은은한 함축미를 사랑했다. 또한 그는 “싸늘하면서도 따사롭고, 두부 같은 살결의 느낌”을 주는 달항아리 표면의 질감(質感)에도 심취했다. 도자의 몸통과 목, 굽의 자연스러운 비대칭 형태도 그를 심쿵하게 하는 매력 포인트였다. <항아리와 날으는 새>에는 파란 하늘과 도자의 푸르스름한 색을 이중적으로 표현하는 바탕색에 구수한 선(線)으로 그려진 달항아리와 달로 보이는 둥그런 형태가 보인다. 그는 색을 칠할 때 붓질을 성글게 하여 캔버스의 흰 여백이 조금씩 보이면서 곱게 알갱이 진 두부 같은 질감을 나타냈다. 김환기의 구상화에는 이렇듯 달항아리의 구체적 미(美)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욕망이 담겨있다. 김환기, <아침의 메아리 4-VIII-65>, 1965년,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의 추상 시대는 1974년 타계하기 전 10년 동안 빠르게 전개됐다. 데뷔한 지 30년이 된 1965년에 내놓은 <아침의 메아리 04-VIII-65>는 선(線)과 면(面)으로 만들어진 추상화이다. 그 후 김환기는 점화(點畵)로 예술적 도약을 했다. 그는 “선인가? 점인가?”를 비교하다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점으로 모든 것들을 환원했다. 점이 가장 기본 단위이기 때문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된다. 김환기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조그만 사각형 안에 찍힌 점(點)들의 셀 수 없는 합(合)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김환기, <19-VII-71 #209> 1971년,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이 과정에서 자신이 그토록 흠모하며 놓칠 수 없었던 대상의 특징들을 지워나갔다. 예를 들어 달항아리의 형태를 그리던 선을 없애면 남는 것은 성글게 칠한 바탕의 붓질뿐이었다. 그래서 유화 물감을 먹처럼 매우 묽게 만들고 붓도 동양화용의 모필(毛筆)을 썼다. 점들은 조그만 사각형의 중앙에 정확히 찍히지 않고 대충 비뚤비뚤 찍었다. 묽은 물감은 때론 번져서 점들이 뭉치기도 했다. 큰 캔버스에 그려진 점화는 언뜻 점들이 울렁거리고 조용히 떨리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김환기는 ‘나는 점(飛點)’을 시도한다고 말했다.김환기의 점화 <우주>는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낙찰되어 한국 미술 최초로 100억 원이 넘는 작품이 되었다. 반면 항아리 작품들은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평생 예찬했던 달항아리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신기하게도 김환기의 존재감은 높아졌다. 모양을 만들기보다 해체하면서 화가로서 도약했다.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AP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