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공익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고 첫 겨울을 맞이한다. 아직 좌충우돌이다. 그런데 자꾸 웃게 된다. 여지껏 들어보지 못한, “예쁘다”는 말을 듣고 산다. 귀화를 도와드리고 있는 대만 국적 할머니의 진료를 동행했다. 할머니께서 묻지도 않는 간호사에게 “옆에는 우리 예쁜 변호사님이에요”라고 말씀하신다. 쪽방주민 자치조직모임에서는 “어디서 많이 봤다. 예뻐서 그런가”라고 툭 던지신다. 학대 피해를 당한 지적장애인 여성은 현장조사 중에 “밖에서 보니 달라 보여요” 해서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니 “예뻐요”라고 말한다. 고마운 의뢰인들 덕분에 웃으며 돈 안 들이고 예뻐지고 있다.
그렇다고 웃을 일만 있지는 않다. 대만 할머니는 심장마비 고위험군으로 인공심장박동기 시술이 시급하지만 돈이 없어 시술을 미루고 있다. 기초생활수급과 의료수급을 받으려면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고 하고, 귀화를 신청하려니 한국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자산 3000만 원이 있어야 귀화가 된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여러 군데 도움을 요청한 끝에 공익법률지원 활동비로 75만 원을 받았다. 귀화 신청에 꼭 필요한 대만 범죄경력증명서를 발급받는데 72만5000원을 쓰고, 귀화 신청비와 병원 진단서, 약값까지 40만 원을 더 썼다. 앞으로 비용이 더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돈 걱정보다는 할머니께서 갑자기 또 쓰러지시지 않을까 걱정이다.
도움될까 걱정했지만 혼자가 아니란 것 금방 깨달아
직접 만나 도움 드리는 ‘공익변호사’로 계속 살고파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여성은 허위서류로 비자를 변경했다는 혐의로 보호소에 갇혀 있다. 다급하게 접견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달려갔다. 보호소에서 갇혀 괴로워하며 자해를 하는 의뢰인을 생각하면 괴롭다. 보호소 번호가 부재중 번호로 떠 있으면 나쁜 소식은 아닐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서울에서는 법이나 제도를 바꾸기 위해 기획해서 임팩트소송을 하거나 기업, 재단과 협력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 그런데 지역에 오니 직접적인 법률지원 요청들이 계속 생긴다. 뛰어다니고 싶어서 지역으로 온 것이지만, 혼자서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금방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란 것을. 우즈베키스탄 여성 사건도 경험이 없어 막막했는데, 서울의 동료 공익변호사와 로펌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신 선배 변호사님의 조언을 들으며 부산에서 틈틈이 공익활동에 앞장서는 개업변호사와 함께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참 든든하고 감사하다.
나는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의뢰인, 인권단체와 급할 때 직접 만나 꼭 필요한 도움을 드리는 ‘공익변호사’로 계속 살고 싶다. 정부와 기업을 규탄할 때도 많지만, 필요할 때는 협력하여 좋은 제도를 만들어가는 유연한 ‘공익법 활동가’도 되고 싶다. 이런 일들을 혼자서 하라면 못할 것이다. 공익활동에 관심이 있는 여러 변호사님들을 잘 모아서 혼자서는 감히 못 할, 함께라서 가능한 일들을 만들어 가는 ‘공익법 생태계’를 꿈꾼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주언 변호사(사단법인 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