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말씀이 너무 빨라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재판이 끝나고 복도에 나와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이 한마디씩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선거공보와 투표용지를 제공하라는 소송에서 그 소송의 당사자인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재판이라니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다. 소송대리인단의 변호사 한 명이 재판장이 무엇을 궁금해했으며, 피고 대리인은 뭐라고 주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풀어서 설명하고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의 질문을 받는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최대한 평이한 일상의 언어로 설명한다.발달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글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발달장애인 A 씨는 병원에서 문진표를 작성하는 것, 약국에서 타온 약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은행을 이용할 때, 휴대폰을 개통하려고 할 때, 장을 볼 때… 일상 곳곳에 장애물이 있다. 심지어 장애인을 위한 제도인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지원주택에 입주하려고 할 때에도 관련 안내문이 어렵게 쓰여 있어서 그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발달장애인뿐만 아니다. 시청각장애인 B 씨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촉각이다. B 씨가 물건을 고르고 사기 위해서는 우선 그 물건을 만져봐야 한다. 하지만 상품들은 보통 포장되어 있기에 만져보는 것이 쉽지 않다. 상점 주인이나 판매원들은 B 씨가 상품을 만져보려고 하면 눈치를 주거나 만지지 못하게 한다. B 씨는 활동지원사나 다른 사람의 지원을 받아야 물건을 살 수 있다. 왜 나의 일로부터 내가 소외되고, ‘너는 신경 쓸 필요 없어’, ‘너는 몰라도 돼’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장애인을 보호받아야 하는 객체 또는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과 2022년에 걸쳐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장애를 ‘손상(impairment)을 지닌 사람과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적·환경적 장벽 사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는 인권적 관점과 조화를 이루도록 권고해왔다. 정보접근권에 있어서 장애 인권적 관점에 기반한다는 것은 장애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장애인이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설명이나 안내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 상대방이 정보를 얻거나 어떠한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보를 얻거나 어떠한 사실을 안다는 것은 정보나 사실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즉,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말과 글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관점에서 장애의 유형과 정도, 특성에 맞는 말과 글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말과 글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에 장애가 없도록 하는 길이 사회 곳곳에 만들어지기를 바란다.이수연 변호사(법조공익모임 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