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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미국판례] 중재인의 이해관계 고지의무와 중재판정 취소사유와의 관계

    김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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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쟁해결수단으로서 중재를 선택할 경우 소송을 하는 경우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더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국제 분쟁뿐만 아니라 국내 분쟁에서도 중재에 의한 해결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대한상사중재원은 법조인, 교수, 기업인 등을 중재인후보자명부에 등재하고, 중재신청이 제기된 경우 이 명부를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중재인 후보자가 어느 일방 당사자 또는 그 중재대리인과 친분관계가 있다고 여길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 이를 빠짐없이 고지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고지하지 않은 경우 중재판정 자체의 공정성에 실제 영향을 미치지 않았더라도 중재판정이 취소되어야 하는지 여부가 최근 문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 연방 제5항소법원이 1년 전에 선고한 자신의 판결을 번복한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뉴 센츄리 모기지 주식회사(New Century Mortgage Corporation, 이하 ‘뉴 센츄리’)는 텔리마케팅을 통한 대부업회사이고, 포지티브 소프트웨어 솔루션 주식회사(Positive Software Solutions, Inc., 이하 ‘포지티브’)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품의 제조·판매회사이다. 포지티브는 대부업자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론포스(LoanForce)’를 개발한 후 이를 라이센스계약을 통해 뉴 센츄리에게 사용토록 하였는데, 뉴 센츄리가 이를 임의로 다른 용도에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저작권 위반, 영업비밀 침해, 라이센스계약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가처분신청을 텍사스 연방법원에 제기했다.

    텍사스 연방법원은 포지티브의 가처분신청은 인용하였으나 손해배상청구부분은 라이센스계약서상 중재조항에 따라 중재절차에 의할 것을 명하였다. 이후 미국중재위원회의 중재절차가 개시되면서 중재위원회는 중재인후보자들의 이력을 기재한 명부를 양 당사자에게 보내어 순위를 매기도록 하였는데 이 중 피터 션(Peter J. Shurn) 변호사가 가장 높은 랭킹을 받았으므로 중재위원회는 중재 당사자들과 중재대리인이 표시된 중재인선정통지서를 션 변호사에게 보냈다. 당시 뉴 센츄리의 대리인은 서스맨 갓프레이(Susman Godfrey L.L.P.)란 로펌이었고 담당변호사는 오펠리아 카미나(Ophelia F. Camina)라는 사실이 기재되었다.

    특히 통지서 하단에는 “공정성에 영향을 주거나 불공정하다고 보일 수 있는 사유를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고, 아울러 “과거나 현재 귀하가 중재당사자, 그들의 대리인 또는 증인으로 증언할 자와 직·간접적으로 재정적, 직업적, 사회적 기타 다른 관계가 형성된 것이 있다면 공개하여 달라”고 요구하는 문구가 있었다. 그런데 션 변호사는 이에 대해 공개할 것이 없다고 기재한 후 중재위원회로 발송하였다.

    중재심리 후 션 변호사는 “뉴 센츄리가 포지티브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영업비밀을 침해하거나 혹은 라이센스 계약을 위반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포지티브의 중재신청 기각판정을 내렸다.

    판정문을 받아본 포지티브는 션 변호사의 배경조사에 착수했고, 션 변호사가 과거 근무했던 ‘아놀드 화이트 덜키(Arnorld White & Durkee)’라는 로펌이 1990년부터 1996년까지 7년간 지속된 인텔사(Intel Corp.)와 사이릭스사(Cyrix Corp.)간 특허분쟁소송에서 서스맨 갓프레이와 인텔측 공동대리인이었던 사실과 그 사건에서 션 변호사와 카미나 변호사는 각 로펌의 담당변호사로 공동으로 사건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포지티브는 중재판정취소청구의 소를 텍사스 연방법원에 제기했는데, 이에 대해 법원은 “포지티브측에서 만약 션 변호사가 중재인으로 선정되기 전 위와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중재인으로 선정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전제한 후, “중재인으로서 일방 당사자의 대리인과 중요한 소송에서 장기간 공동대리인으로 활동한 경험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은 것은 상대당사자에게 중재판정의 공정성에 의심을 줄 수 있는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중재판정을 취소하였다.

    뉴 센츄리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면서 “만약 그러한 이유로 중재판정 자체가 취소되어야 한다면 로펌에 근무하는 대부분 변호사들은 중재인으로 선정되는 데 장애가 되므로 유능한 중재인 선정이 어려워지고, 나아가 포지티브는 중재판정이 내려지고 나서야 중재인의 과거 소송수행 경력을 이유로 판정취소를 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이의제기권을 상실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심리를 맡은 미 연방 제5항소법원은 “중재인이 당사자나 그 대리인과의 관계에 대해 공개할 의무는 능력 있는 중재인을 선정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이고, 포지티브는 션 변호사의 과거 경력을 중재판정 이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으므로 이의제기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고 판시하면서 2006. 1. 11. 항소를 기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소송이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뉴 센츄리는 ‘전원합의체 재심신청(a petition for rehearing en banc)’을 제기했고, 제5항소법원은 2006. 5. 5. 이를 받아들여 재심을 열기로 결정했다. 미 연방항소법원들은 중요사건으로 분류되거나 기존 선례와 배치되는 경우 극히 예외적으로 그 법원의 전원 또는 대부분 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재심절차를 여는 경우가 있다.
    재심결과 2007. 1. 18. 제5항소법원은 1년 전 뉴 센츄리의 항소를 기각했던 판결을 스스로 번복하면서 원심을 파기·환송하였는데, 그 근거는 포지티브의 중재신청을 기각한 중재인이 뉴 센츄리의 중재대리인과 과거 다른 의뢰인의 소송을 공동으로 수행한 경력은 사소한 것이므로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더라도 이것만으로 중재판정 자체의 취소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우리나라 대한상사중재원에서도 중재인취임수락요청서를 보내면서 별지로 취임수락서를 보내는데, 이 수락서에는 “본인은 당해 사건과 관련하여 공정성이나 독립성에 관하여 의문을 야기시킬 만한 사유가 없으며, 본인의 직계 존·비속 등 친인척이 양 당사자와 경제적, 법률적 이해관계가 없음에 대하여 서약한다”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어 있고 이에 서명·날인 후 대한상사중재원에 보내도록 하고 있고, 한편 우리나라 중재법 제13조 제1항에서 “중재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받은 자 또는 선정된 중재인은 자신의 공정성이나 독립성에 관하여 의심을 야기할 수 있는 사유가 있는 때에는 지체없이 이를 당사자들에게 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과 관련하여 우리 대법원은 위 제5항소법원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사안(중재판정의 일방 당사자의 대리인과 같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중재인으로 선정되었던 사안)에서 “민사소송법 제41조 제4호 소정의 ‘법관이 당사자의 대리인이었거나 대리인이 된 때’와 같이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재인의 공정성이나 독립성에 관하여 의심을 야기할 ‘중대한 사유’가 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재판정이 내려진 후 뒤늦게 중재인에게 공정성이나 독립성에 관하여 의심을 야기할 사유가 있었다거나 중재법 제13조 제1항에 의한 중재인의 고지의무를 위반한 위법이 있다는 사유만으로는 중재판정 취소사유인 ‘중재판정부의 구성이나 중재절차가 중재법에 따르지 않은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고지의무의 대상을 ‘중대한 사유’로 어느 정도 제한을 가하고 있다(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4다47901 판결).

    일찍이 미 연방대법원은 1968년 카먼웰쓰코팅스사 사건(Commonwealth Coatings Corp. v. Continental Cas. Co.)에서 “당사자들에게 중재인으로 선정될 후보자에 대한 공정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중재인후보자는 당사자들에게 ‘사소하지 않은 관계(non-trivial relationships)’는 모두 공개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는데, 위 제5항소법원은 션 변호사의 과거 소송수행경력을 ‘사소한 관계(=중대하지 않은 사유)’로 보아 이를 고지하지 않은 사정만으로는 중재판정취소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판결은 중재판정에 대한 취소사유를 지나치게 넓게 인정할 경우 중재제도를 둔 목적과 취지가 상실될 우려가 있음을 고려하여 자신의 판결을 예외적인 재심절차를 통해 번복하였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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