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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주말

    "음악은 나의 내포" 김규헌 변호사

    음악들으며 밤새워 고시공부… "나를 지탱해주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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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영혼을 통해서 체험 되어야 할" 대상이다. 법조인으로서 행로를 시작하게 된 이래 법이 나의 외연이 되었다면, 음악은 여전히 나의 내포다. 이전에도 그러하였듯이, 어려운 상황이 올 때마다 음악이 가리키고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렸을 적의 나는, 이를테면 차이코프스키와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광산기술자인 아버지와 프랑스 계통으로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어머니 밑에서 자란 차이코프스키처럼 나 역시 경성제대 광산과를 나오신 엔지니어이면서도 아마추어 테너로 명성이 높았던 아버지와 넉넉한 문화적 감성의 소유자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접하게 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은 부모님의 권유가 아닌 내가 스스로 선택한 악기였다. 어린 나의 눈망울과 귓가를 파고들며 들려오는 바이올린의 울림은 나로 하여금 뿌리칠 수 없도록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긴장과 이완의 반복 속에서 영혼의 흔들림, 섬세함 등 인간 내면의 소리를 묘사하는 악기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가며, 마치 신의 목소리가 그들의 '보잉(bowing)'을 통해 전달 돼 오는 듯한 명인들의 연주를 통해서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의 접점을 느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김규헌 변호사(58·사법연수원 13기)가 3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잠시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음악은 고시공부를 할 당시에도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그때 나는 집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내 방에 있던 휴대용 축음기에 레코드를 올려놓고 밤새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곤 했다. 그때 음악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나중엔 전축의 축이 휘어버린 일도 있다. 그때 듣던 음악들 중에서도 특히 쌩쌍의 교향곡 3번 '오르간'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로맨틱,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은 레코드 판에 금이 갈 정도로 많이 들었다. 이후 검사 시절에도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중요한 페이퍼 웍을 하게 될 때면 혼자 사무실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습관을 멀리할 수 없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나름대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보는 총보를 구해 혼자 끙끙거리며 기나긴 시간을 외로이 뒤쫓았으며, 또 대영백과사전 등 다양한 서적들을 통해 음악인들이 어떠한 인간적 시련과 고통을 겪었는지, 또 오선지를 통해 표출되는 선율 뒤에 감추어진 그들의 비의는 과연 무엇이겠는지 천착하기도 하였다.

    어느새 인생의 후반에 접어들게 되면서 예술과 관련된 내 삶의 지난 궤적이 어땠는지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아울러 음악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동작의 여러 가지 모습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기승전결, 그 고리 속에서 무용이라는 장르에도 어느새 빠져들게 되었다. 특히 전통적 고전 음악을 떠나 현대음악과 재즈, 심지어 가야금 산조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음악적 변용을 나 나름대로 해석하여 여러 차례 대중 앞에 해설의 무대를 갖기도 하였다. 아울러 바이올린과 타악, 관악과 피아노, 그리고 더블베이스를 포함하는 여러 형태의 앙상블 연주회에도 해설의 기회를 갖게 되면서 본인 스스로의 음악적 한계와 고정관념을 깨어나가게 되었음은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연주회나 공연 등을 관람하는 횟수가 한해 100회를 훌쩍 넘기게 되었다. 어느 문화 전문 기자는 한해 소화할 수 있는 공연 관람 기준이 백회라고 하니, 내 스스로 예술무대로 향하는 발걸음은 어느새 중독성을 띄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 지난해 봄 모 방송 FM의 프로그램에 나가 선친을 추모하며 당신이 좋아하던 베냐미노 질리의 음원으로 '무정한 마음'을 내보내고, 또 나 스스로 차이코프스키의 '외로움을 아는 자만이 나의 아픔을 알리라'를 스튜디오 내에서 독창하였던 것은 오래갈 추억이리라.

    30년에 이르는 공직을 정리하고 야인으로 나선 게 작년 9월 초, 그동안 친분을 이어온 음악계 인사 등이 나를 위해 퇴임기념 음악회를 열어주었음은 나의 큰 기쁨이었다. 100여명을 초대한 소규모 뮤직홀에서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기타리스트, 소프라노, 카운터 테너 등 많은분들이 대단치도 않았던 공직의 도정을 마무리함에 함께 해 주었음은 나의 부채로 남아있다. 그렇기에 그날 중창으로 선택한 곡이 '비코즈 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의 빠르기로 비유하자면 이제 나의 삶은 '모데라토'로 매김하고 싶다. 단순이 보통의 빠르기라는 의미보다는 꾸준히, 흔들림 없이 본연의 나를 지키는 삶이 되고자 희구한다. 또 악기로 비유하자면 저음의 현이고 싶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뒤에서 뒷받침하는 첼로나 콘트라베이스 같은 존재말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나서기보다는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뒤에서 도와주는 삶을 살고 싶다. 이러한 나의 바람 속에서 이번 주말도 나의 발길은 공연장으로 향한다.
    마세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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