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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XIII)-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강신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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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연수원에 갓 입소하여 실무교육을 받기 시작할 무렵, 자주 접하게 되었던 낯선 용어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표현이었다. 판결서 작성 실무를 익히면서, 청구원인의 요건사실에 대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법률효과는 이러하다라고 기재한다고 배웠다. 그러다 보니, 법조인의 대화나 글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말하자면,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표현은 매우 익숙한 전문 용어인 셈이다.

    그런데 기업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법조인들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기업인들은 매우 당황하곤 하였다. 법조인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결론을 이러 하다'라는 의미로 말하고자 하는데, 기업인들은 50%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결론을 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특별한 사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캐물어, 오히려 말을 꺼낸 법조인들을 당황하게 하곤 하였다.

    법조인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특별한 사정'이 어떠한 경우를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소송 실무적으로는 상대방이 항변을 제기하고 그러한 항변이 인용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인다. 그러나 법조인들이 '특별한 사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상대방의 항변이 구체적으로 어떠할 것이고 나아가 그 항변의 인용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하여 깊이 검토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기업인들은 법률가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그리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특히 위험관리(Risk Management)에 철저한 기업인일수록 법조인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사정'에 대하여 구체적인 예시를 원하였고, 각 구체적인 경우에 대한 발생 가능성을 계량적으로 제시하여 주기를 기대하였다.

    한번은 외국 기업인들에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의견서를 제공하였다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질문을 감당하느라 혼이 난 일이 있다. 외국 기업인들이 한국 법조인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표현의 전문적 의미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하였을 경우 그 의미는 한국 법조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외국 기업인들에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표현은 불명확하기 짝이 없는 표현인 것이다.

    기업인들은 위험을 계량화하기를 원한다. 또한 회계적으로는 모든 위험을 계량화하여 숫자로 나타내야 한다는 회계규정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한 기업인들에게 '특별한 사정'은 불명확인 개념이고 계량화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니 기업인들이 그러한 표현을 좋아할 리가 없다. 기업인들이 가끔 승소가능성을 계량화하여 숫자로 제시하여 달라고 하여 법조인을 당황하게 하지만, 법조인들은 기업인들의 이러한 입장을 이해하여야 한다. 모든 경우를 숫자로 계량화하여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구체적인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그 발생가능성까지 구체적으로 판단하여 제시하여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불확정한 표현으로 기업인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법조인들도 이제는 위험을 계량화하는 훈련이 필요한 때가 된 것 같다. 위험관리는 기업경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고, 이에 따라 법조인들도 기업인들의 위험관리에 적합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러한 취지에서, 이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모호한 표현은 점차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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