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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복

    최기식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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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주 전 일요일 저녁, 중2 아들을 데리고 교회봉사팀과 같이 노숙인 봉사를 다녀왔다. 밤 9시30분에 모여 김치와 옷가지 등을 싣고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노숙인 봉사단체를 찾아갔다. 이 단체는 17년 동안 매일밤 을지로입구역, 시청역, 을지로3가역, 종각역 등 4곳에서 노숙인들을 섬겨왔다고 한다. 그날 참여한 봉사자들이 할 일은 컵라면과 밥, 과일 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컵라면을 뜯는 일을, 나는 라면에 물을 따라주는 역할을 맡았다.

    먼저 을지로입구역으로 갔다. 50여명의 노숙인들이 줄을 서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새치기를 하거나 먼저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다만 밥을 말아먹기 위해 컵라면에 물을 좀 많이 채워달라는 정도였다. 쉴 새 없이 뜨거운 물을 따르느라 그분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상태를 짐작할 수 는 있었다. 그렇게 4곳에서 배식을 마치고 나니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물었다. "아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던 분들도 있던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라고 물었다. "다들 사연이 있으시겠지. 지난 설에 밀양가서 뵈었던 큰 아빠도 지금 부산진역에 계시단다. 집보다는 역이 더 편하신 게지." 이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아들은 잠이 들었다. 나도 눈을 좀 붙이려는데 큰형 생각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큰형은 가정형편 때문에 15살 나이에 제주도 가구공장에 취직해야 했다. 타지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방위 복무를 위해 돌아왔을 때 알코올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형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세상살이가 그렇게 힘겨웠던 모양이다. 몇 달 전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되지 않던 형과 최근에 통화가 되었다. 부산진역에서 노숙인들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잘 지내시냐고 물으니, 노숙인들을 섬기는 교회분들과 같이 노숙인들에게 식사 봉사를 하고 있다고, 시골 아버지한테 잘 지낸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목소리만큼은 편안하게 느껴졌다.

    방위 월급으로 내 생애 첫 성경책을 사 주신 맘씨 착하고 여린 큰형이 회복되기를 늘 기도하고 있다. 오늘 새벽에도 무릎을 꿇고 기도해 본다. 큰형과 같이 삶에 지친 이 땅의 영혼들이 회복되기를, 메르스로부터 속히 회복되기를, 억압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북녘 땅 동포들의 삶이 회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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