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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의 숙명, 판단

    법관의 숙명, 판단

    법률문제를 놓고 법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생각의 간극이 의외로 넓은 것에 놀랄 때가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양심'은 주관적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직업적이고 객관적인 양심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현상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이렇게 개개 법관의 생각이 다르다면 법관의 판단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내려지는가. 또는 내려져야 하는가. 먼저 말해둘 것은 사건을 접하면서 처음 든 생각, 즉 감각적인 결론이 언제나 끝까지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의 차이는 구체적 사실관계를 들여다보고 문헌과 판결례를 찾아가면서 의견을 나누고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쳐 선택 가능한 유의미한 견해들의 범위 내로 수렴하는

    황진구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내가 누리는 행운

    내가 누리는 행운

    아침에 출근해서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행운목의 물을 갈아주는 것이다. 행운목,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은 그 이름에 더 정이 간다. 그래서 행운목을 가꾸게 되었다. 행운목을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하였다. 앞으로 누리길 바라는 행운이 아닌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행운은 뭘까. 친한 후배가 결혼 5년 만에 마침내 집을 샀다. 소유권자임을 나타내는 등기필정보를 건네받으며 후배는 참 기뻐하였다. 그 후배가 얼마나 안 먹고 안 입고 고생하였는지 잘 알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기뻤다. 위임인이 부동산에 관하여 권리를 취득하여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등기를 처리한 법무사로서 그 기쁨에 일조를 한 것 같아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50대의 여성이 주택임차보증금 1000만원의 반환을 명하는 확정판결을 가져와서

    최현진 법무사 (서울남부회)
    이사(移徙)

    이사(移徙)

    얼마 전 6층에서 12층 사무실로 방을 옮겼다. 이번에는 2년 만에 하는 이사인데, 생각해 보니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래 군법무관, 법관을 거쳐 변호사가 되어서도 2, 3년마다 한 번씩은 이렇게 이삿짐을 쌌던 것 같다. 새 사무실로 가져갈 것들을 일일이 챙겨야 하니 무척 귀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예전부터 가지고 다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학 입학 때부터 갖고 있던 것도 있으니 마치 나만의 타입캡슐을 꺼내보는 것 같다. 먼지가 뽀얗게 오른 종이박스를 하나 뜯어보았더니, 법과대학 입학 때 나눠 받았던 오리엔테이션 자료가 있다. 당시 함께 입학한 88학번 270여명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 잔뜩 들어 있 는 것을 보니 그야말로 기억이 새롭다. 동기생들이 자주 들어오는 SNS에 올려

    배현태 변호사 (김앤장)
    나는 어떤 부모일까

    나는 어떤 부모일까

    햇살 따스한 겨울날 아침, 나는 충남 보령으로 내려가고 있다. 우리 과 직원 모친상으로 조문가는 길. 굽이굽이 국도를 한참 들어가자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장례식장이 홀로 서 있었다. 그녀의 어머님은 설날 6남매 자녀 부부와 손주들을 만나고 바로 다음날 87세의 춘추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잠시 앉아있는 동안에도 자녀 친구들과 친척들의 경건한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별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장례식장은 훈훈했다. 따뜻한 그곳과는 달리 세상에는 장례식도 없이 세상에 온 흔적마저 차갑게 잊히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의 학대로 죽어간 141명의 아이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우리나라 아동학대 사망자 수치다. 2015년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1만 건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가해자의 80%

    고경순 부장검사(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
    유혹하는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

    '문체요강(The Elements of Style)'이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는 문장론이나 창작론에 관한 대표적인 책이다. '고종석의 문장'이나 '소설가의 일' 같은 우리나라 책들도 있다. 이런 책들에서 제시하는 글쓰기 방법은 법률문장에도 대체로 유용하다. 예를 들면, 수동태는 한사코 피하라는 것, 명사와 동사 위주로 쓰라는 것, 부사를 쓰지 말라는 것, 불필요한 단어를 생략하라는 것, 한국어의 경우 가짜 동사를 쓰지 말라는 것("신청을 했다"보다 "신청했다"가 낫다. '했다'가 아니라 '신청'이 진짜 동사다) 등등이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것이다. 실용적인 글을 쓰는 법률가는 소설가처럼 아름답게 쓰지는 못하더라도 정확한 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황진구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법이 무사한지

    법이 무사한지

    누군가 물었다. 법무사가 사무장보다 나은 게 뭐냐고. 아마도 경험이 많은 사무장을 염두에 두고 물은 것이리라. 법무사가 사무장보다 나은 이유라…. 법무사로서 처음 수임한 사건은 강화도에 있는 부동산의 상속등기였다. 등기소에 도착하니 증지와 등기필정보 송부용 봉투가 없었다. 증지는 등기소에서 파는 줄 알았고 봉투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 저리 뛰어다닌 끝에 등기소가 문 닫기 직전에야 간신히 등기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었고 등기소를 나오는데 안도감에 맥이 탁 풀렸었다. 참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초짜 법무사였다. 업무처리가 사무장은커녕 사무원만도 못하였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나도 제법 전문가 티가 난다. 경험이 쌓이면 그에 비례하여 실력도 쌓이게 마련. 경험이 실력인 것

    최현진 법무사 (서울남부회)
    사람을 아프게 하는 서면들

    사람을 아프게 하는 서면들

    단독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변호사 없이 소송을 수행하던 어떤 당사자가 기억이 난다. 그 당사자가 제출한 서면의 대부분은 상대방에 대한 언어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정도가 다른 사건들보다도 매우 심했다. 하루는 그 당사자에게 하소연 하듯이 부탁을 했다. "원고 아무개 씨, 작성하신 서면은 제가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서면에 쓴 표현들이 너무 강해서 제가 힘들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이렇게 강한 표현이 들어간 서면을 많이 읽으면 재판 준비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아무개 씨가 억울하다는 점을 좀 더 점잖게 써주시면 제가 재판 준비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당사자가 제출하는 서면을 읽을 때마다 칼날 같은 표현들에 내가 찔리는 느낌이었고, 퇴근해서도 그 표현들이 머리에서 사

    배현태 변호사 (김앤장)
    새해 마니산 참성단에서

    새해 마니산 참성단에서

    새해 아침 강화도 마니산에 올랐다. 우리 선조들이 하늘을 만나기 위해 천제(天祭)를 지내던 곳이니 새해를 맞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군데군데 눈으로 뒤덮인 굽이굽이 1008개의 계단을 올라 가까스로 해발 472미터 높이에 있는 참성단에 도착했다.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오랜 풍상을 겪어낸 소시나무 옆 참성단에서는 반듯하고 의연한 하늘의 기운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참성단의 모양이 신기했다. 자연석을 모아 둥근 하단을 만들고 그 위에 네모난 상단을 올려놓은 형상이었다. 통상은 하늘이 땅보다 위에 있으니 하늘을 뜻하는 둥근 하단이 땅을 뜻하는 네모 상단 위에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참성단은 정반대로 놓여 있다. 무슨 뜻일까. 위로 올라가는 기운의 하늘을 아래쪽에, 아래로 내려앉는 기

    고경순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법, 판례, 판결

    법, 판례, 판결

    법관들에게 법조문만 또는 판례만 외워서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는 비판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민사법의 영역에 국한하여 말하자면, 우선 급변하는 사회현상에 대응하여 분쟁의 양상도 새롭고 복잡해져서 실정의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간단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한편 법해석, 적용의 실제 사례인 판례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분쟁을 타당성 있게 해결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므로 언제나 그 맥락 속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사실관계와 시대를 떠나서 독자적으로 부유하는 법리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법관들 스스로도 각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믿는다. 판례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하고 개별사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 장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황진구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나의 다짐이다. 3가지를 보겠다는 의미이다. 즉, 법무사로서 등기를 수임할 때 의뢰인을 직접 만나보고, 등기원인을 알아보고, 관련 권리관계를 알아보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것은 금년에 겪은 2가지 사건 때문이다. 하나는, 별다른 직업이 없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아들이 어머니 몰래 어머니의 유일한 재산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건이다. 그 어머니가 아들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며 하소연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또 다른 하나는, 집을 살 때 돈을 보태준 어머니가 소유자인 아들 몰래 그 집에 관하여 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사건이다. 이때도 아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떻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집에 관하여 저

    최현진 법무사 (서울남부회)
    크리스마스 소원

    크리스마스 소원

    우리 집에는 아직도 '미취학아동'이 있다. 그 늦둥이에게 성당 크리스마스트리에 걸어놓을 손카드를 써보라고 했더니, 잠시 주저하다가 손으로 가린 채 뭔가 열심히 쓴다. 아이의 조그만 어깨 뒤로 훔쳐보니 이런 내용이다. "산타할아버지! 메가드래곤을 가지고 싶어요. 그리고 누나을 착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형아를 합격하개 해주세요. 그리고 아빠를 돈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 아직 조사나 어미 맞춤법이 서툴고 글씨도 삐뚤빼뚤하지만, 순진한 마음이 가득 묻어있어 나도 모르게 "핏!"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보니 고등학생 누나하고 막내는 열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그 둘은 하루에도 몇 번씩 토닥토닥 싸우는 사이이다. 물론 동생이 누나에게 일방적으로 당한다. 누나는 어려서부터 오빠한테 치이면서 컸음에도

    배현태 변호사 (김앤장)
    손편지의 추억

    손편지의 추억

    "부장님, 이 책에 직접 사인이라도 해주세요." 수습수사관 임선미는 전별식 행사가 끝나자마자 사무실로 찾아왔다. 기념으로 준 책에 분명 '함께 근무하며 너무 행복했다'는 짤막한 인사도 기재했기에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그 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임 수사관은 컴퓨터로 출력한 글이 아니라 사람의 체취가 담긴 손 글이 필요했던 것. 사실 내게도 오랫동안 나를 지켜준 편지상자가 있다. 나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중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 논길을 1시간 이상 걸어 나와야 하는 시골이었지만,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과 유쾌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갑작스럽게 그곳을 떠나 서울로 온 1학년 말, 워크맨으로 무장하고 깍쟁이 같기만 한 서울 아이들의 텃세를 이겨낸 건 오롯이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내

    고경순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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