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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만남 그리고 책임

    인연, 만남 그리고 책임

    군대에 간 아들은 면회를 가면 볼 수 있지만, 휴가를 나오면 볼 수가 없다. 이번 휴가에서도 집에 온 지 삼일째 되는 날 아침에야 간신히 얼굴을 본 아들에게 “아들, 좀 너무 하는 것 아냐?” 했더니 “아빠, 바빠. 아빠는 면회나 많이 와줘. 흐흐”라는 답변이 돌아 온다.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드는 한편에 어찌 보면 아들 답변에 인생사 만남에 관한 법칙이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이해타산은 아니고 사랑, 존경, 그리움 등 감성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하여도 만남이라는 것은 만나는 사람 상호간의 수요 곡선이 교차하거나 접점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선생님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인연의 소중함을 다음과 같은 대사로 설명한다.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형 집행에 있어 효율성과 형평성

    형 집행에 있어 효율성과 형평성

    형사절차에서 피고인에게 형이 선고되고, 그 판결이 확정되는 경우 검사가 형을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검찰청의 형 집행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징역과 같은 자유형은 공소제기 전에 피고인이 구속되거나 선고를 받으면서 법정에서 구속되는 경우가 많고, 상대적으로 실형이 선고되는 사건 수가 적어서, 실질적으로는 벌금과 같은 재산형을 집행하는 업무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회가 발달하고 전문화됨에 따라 피고인의 재산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등의 사정으로, 재산형을 집행하는데 과거보다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해지고 있고, 또한 그 분야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것도 필요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9년 전 프랑스에서 연수하던 시절, 한국에서 해외 사법제도

    박성민 지청장 (속초지청)
    단지의 아픈 기억

    단지의 아픈 기억

    이른 아침 일어나 미리 얼려 둔 다진 마늘을 자르다 새로 산 식칼에 순식간에 손가락을 베였다. 서투른 칼질 탓이지만 딱딱하게 언 마늘을 힘으로 억지로 자르려 한 게 화근이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언 마늘이 녹은 다음 잘랐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말이다. 잘린 손가락을 부여잡고 펑펑 우는 만삭의 아내를 달래가며 겨우 택시에 올라탔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 도착해서 한숨 돌렸지만 그로써 안심할 게 아니었다.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는데도 정작 수술할 줄 아는 의사는 컨퍼런스에 갔다고 다른 병원을 찾아 가랜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별 수 없이 난생 처음 앰뷸런스에 몸을 싣고 간이침대에 누웠다. 가뜩이나 아픈 것도 견디기 힘든데 '삐뽀삐뽀' 울리는 요란한 소리에 만감이 교차한다. 손

    김대현 고법판사 (서울고법)
    나쁜 피

    나쁜 피

    '나쁜 피'라니 레오 까락스 감독의 영화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데이빗 보위의 ‘모던러브’가 흐르는 중에 어둑한 파리를 춤추며 달리는 드니 라방의 이미지만 생각날 뿐, 누벨이마주의 거친 편집도 에스에프를 넘나드는 구성도 낯설고 불편한 그런 영화였다.  이번 세기의 나쁜 피는 훨씬 선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존 캐리루가 쓴 ‘배드 블러드(bad blood)’ 말이다. 스탠포드를 중퇴한 84년생 엘리자베스 홈즈는 ‘테라노스’의 창업자로서, 간단한 키트 ‘에디슨’을 사용하여 손끝에서 채혈한 몇 방울을 전송하면 200여 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신기술 개발을 선전했다. 한 컵씩 뽑아내는 정맥 채혈의 공포도, 진단 비용의 걱정도 사라질 예정이라 했다. 기업 가치는 90억 달러로, 홈즈의 지분

    김정연 교수(인천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다. 맑고 투명한 가을 햇살을 보니 문득 국어시간에 배운 안톤쉬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산문 속의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술자리에서 이 산문을 얘기했더니 요즘 교과과정에서는 없어졌다는 후배의 말이 나를 슬프게 했던 기억도 난다. 초추의 양광 속에 잠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빠져본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의 양광이 떨어질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하게 내리고, 친구들과 마신 술로도 모자라 밤 늦게 홀로 찾은 텅 빈 해장국 집, 그 어둑한 한쪽에서 숙제하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김상곤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단상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단상

    우리나라 국민은 범죄로 피해를 입거나 범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누구든지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유독 형사 고소·고발을 제기하는 경우가 월등하게 많다.  고소·고발 사건은 고소·고발인이 피해를 입었거나 범죄가 발생하였다고 호소하는 사건이므로 당연히 잘 수사하여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형사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마음 한곳에 남아 있는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 중에 하나는 민사적인 성격이 짙은 사건들의 상당수가 형사 사건화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기로 고소되는 많은 사건들이 금원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경우인데,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편취 의사, 즉 처음부터 ‘돈을 갚을

    박성민 지청장 (속초지청)
    국민참여재판, “Pick me up!”

    국민참여재판, “Pick me up!”

    지난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꺼지지 않은 법정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 곳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한 역사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감독과 프로듀서에 대한 명예훼손죄 형사공판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현대사의 한 단면을 되짚는 것이지만 역사관, 가치관에 따라 엇갈린 결론이 나올 수도 있는 이 재판에 대한 심판자는 다름 아닌 국민 배심원이었다. 3시간을 넘긴 열띤 평의 끝에 내려진 선고 결과는 무죄. 판결에 제법 논란이 있을 법도 한데 파장이 그리 크지는 않아 보인다.  흔히 사법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손꼽는다. 9주 연속 콘텐츠 영향력 1위를 차지한 모 오디션프로그램처럼 언젠가 모든 재판을 국민 프로듀서님의 선택을 받도록 하는 날이 다가올지 모른다.

    김대현 고법판사(서울고법)
    세 여자 이야기

    세 여자 이야기

    여주인공이 당혜를 신고도 월담을 하여 뜻을 이루고자 내쳐 뛰어가는 드라마 장면에 빠져들고 있자니 미국행 기내에서 한달음에 읽은 조선희 장편소설 ‘세 여자’가 떠올랐다.    ‘세 여자’는 1925년 여름 단발의식을 치르고 천변에서 탁족을 하는 세 여인의 사진 한 장을 모티브로 시작한다. 허헌의 딸 허정숙은 다섯 번의 결혼으로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두었으며 연안으로 건너가 무장항일운동을 이끌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이다. 고명자는 김단야의 연인이었으며, 공산주의 운동과 친일 행적을 오가다 해방 후에는 여운형의 측근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세죽은 음악공부를 하러 건너간 상해에서 박헌영을 동지로 만나 혼인을 하였고, 위 사진을 세상에 알린 비비안나를 낳았다. 그녀는 이

    김정연 교수(인천대)
    고향

    고향

    필자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양구는 서울에서 고속도로와 여러 터널을 통해 두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고 국토 정중앙이며 조선백자의 고향이라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서울까지 8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소양호를 배 타고 건너면 좀 더 빠르다고 하는 그냥 오지였다. 오죽하면 강원도 인제 원통에 군입대 한 병사들이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 죽겠네”하면서도 “그래도 양구보다는 낫잖아”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까.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다 얼마 전 입대를 했는데, 양구 군부대에 자대배치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한다.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다는 생각을 하니 뭐라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이 북받친다. 그 소식을 병

    김상곤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관계(關係)의 회복(回復)과 용기(勇氣)

    관계(關係)의 회복(回復)과 용기(勇氣)

    우리의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관계(關係)의 사전적 의미는 둘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등이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관계, 친구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 남녀관계, 사제관계, 이웃관계, 직장관계, 노사관계, 국민과 국가관계, 법률관계 등 수많은 관계 속에 살아간다.  관계의 유지는 신뢰(信賴)와 배려(配慮)를 기반으로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관계가 깨어진다. 깨어진 관계로 인해 개인은 고통을 느끼고 행복을 박탈당하며,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정 공동체의 유대감이 약화되어 국가경쟁력이 낮아지고 경제발전이 저해된다. 사법농단, 국정농단, 채용비리, 갑질행위, 부패범죄,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몰래카메라, 사기범죄

    김남순 과장(대검 수사지원과)
    강제 셧다운의 필요성

    강제 셧다운의 필요성

     하마터면 사고 날 수 있었다는 핀잔을 듣고 나서야 닳아빠진 타이어를 교체했다. 안전을 위해 수시로 차를 점검해야 하는데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몸 관리도 매한가지다. 누구나 일 못지않게 쉼과 휴식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홀가분하게 여름휴가를 즐기는 분이나 즐기게 하는 분은 흔치 않아 보인다. 수년 전이긴 하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근무하는 판사가 평균 6.9일의 연가를 썼고, 일 년에 사흘 이하만 쉰 판사도 18%나 되었다고 한다. 우편송달을 도맡아 하는 집배원은 이보다 더하다. 재작년 평균 휴가 사용일이 고작 2.7일이라고 한다. 모두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꿈꾸면서도 남의 재충전 시간에는 날선 반

    김대현 고법판사(서울고법)
    작은 일상 큰 변화

    작은 일상 큰 변화

    조금 전 2학기 강의계획서 입력 기간을 알리는 공지를 보았다. 로펌을 그만둔 지 네 번째 계절이 지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간 책상에서도 일상에서도 변화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했다. 읽고 쓰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서 책상 앞의 일들이란 대체로 비슷했다. 오히려 일상의 변화가 진폭이 컸다.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의 등장이었다. 직장 동료, 의뢰인, 감독당국,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익숙하다고 자신하고 있었지만 나와 이해관계도, 인생 어느 지점의 경험도 공유하지 않는 학생들은 달랐다. 장강명 작가의 '당선, 계급, 합격'에서처럼, ‘공채’와 ‘동기’란 번역조차 불가한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고, 그 보기 드문 생존자로서 입학동기, 시험동기와 입사동기에

    김정연 교수(인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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