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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해를 보아야 산다

    손해를 보아야 산다

    최근 들어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정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표출하는 성격장애로 정의되거나 충동으로 인한 분노를 없애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이라고도 한다. 병리학적으로 분노가 심해지면 뇌의 교감신경이 잘 조절되지 않아 신체가 과하게 흥분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범죄까지 저지르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단순히 성격 문제인지 아니면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인지를 떠나 최근 법정에서도 "왜 이렇게 후회할 범죄를 저질렀냐"고 물으면 피고인들은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라거나 "술만 마시면 욱하는 성질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범죄까지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화를 참지 못해서 관계를 그

    김종복 부장판사 (목포지원)
    권력자와 성

    권력자와 성

    서일본의 최대 도시 오사카 도심에는 오사카성이 있다. 우리나라 사적지 중에 흔한 것이 성이지만 대개 산성이나 토성, 읍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오사카성처럼 잘 보존되어 성의 형태를 제대로 갖춘 성은 드물다. 중국이 자금성, 독일이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자랑하고 있고 일본만 해도 오사카성 외에 히메지성이나 구마모토성 같은 자랑할 만한 성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겐 이런 성이 없다. 오사카 도심 고층빌딩들 속에 섬처럼 떠 있는 8층의 천수각과 이를 둘러싼 숲과 성벽, 성문과 해자(성 밖을 둘러 파서 만든 못), 해자 위에 걸쳐진 다리들은 고도의 방어체계를 갖춘 대단했던 권력자의 존재를 보여준다.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 말이다. 오사카성은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0만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축

    김진욱 선임연구관 (헌법재판소)
    조작의 비용

    조작의 비용

    군에 있을 때 사망사고 조사를 담당했었다. 유족들이 사인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건들을 재조사했는데 첫 사건이 군의관 사망사건이었다. 그는 가족의 희망이었다. 아들만 믿고 살아온 홀어머니와 똑똑한 동생을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한 누나는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기록검토 후 유족들을 면담한 다음 유족들이 의문을 제기한 사항을 다시 조사했다. 하지만 기존 결론을 뒤집기는 힘들었다. 여관에 혼자 들어갔고 다음 날에도 나오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목을 매어 죽어있었다는 여관주인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재조사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국가가 지난 세월 동안 사인을 조작하고 은폐했던 과거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현재가 과거에 발목

    정원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프랑스식 ‘사법통제제도’의 도입을 기대하며

    프랑스식 ‘사법통제제도’의 도입을 기대하며

    프랑스의 구속제도는 특이하다. 사법통제(controle judiciaire)와 본래 의미의 구속(detention provisoire)으로 나뉘고 구속은 ‘증거보전, 피의자의 신병확보’ 등 수사의 목적달성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면서 사법통제로는 그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가능하다(프랑스 형사소송법 제144조). 수사 단계에서는 ‘범죄와 관련된 증거를 확보하고, 범죄자를 특정하며, 범죄로 인해 유발된 피해를 구조하는 등의 행위’가 진행되는데 이는 곧 수사의 목적과 일맥상통하며 사법통제는 구속에 앞서 이러한 수사목적을 이루기위해 피의자에게 일정한 의무(obligations)를 부과하는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사법통제는 검사의 청구에 따라 예심수사판사나 석방구금판사가 부과한다. 형

    김영기 부장검사 (서울서부지검)
    사회통념의 함정

    사회통념의 함정

    아이들과의 대화는 늘 초심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얼마 전 어느 중학교 진로교육 강연회에서 판사라는 직업과 법원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늘 빠지지 않는 질문이 ‘판사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정도인데, 그날은 뜻밖에 아무도 이를 묻지 않아서 준비해 둔 대답을 못하고 머쓱해 있었던 순간, 어떤 아이가 손을 들고 “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인생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판결을 하는데, 판사들은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그렇게 다 잘 알고 있나요? 공부를 많이 하면 다 알게 되나요?”라고 물었다. 필자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독서에 관한 동기 부여도 해줄 겸 해서 좋은 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하곤 했다. 한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

    김종복 부장판사 (목포지원)
    주권으로 인권을 쓴다

    주권으로 인권을 쓴다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왕실전범을 제정하여 왕위계승, 종친과 외척의 구별을 분명히 한다. 임금은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과 외척의 정치 관여는 용납하지 않는다.” 1895년 1월 7일 구한말 갑오개혁 당시 고종이 박영효의 권고에 따라 군신들을 거느리고 종묘에 나아가 선포한 홍범 14조의 첫 부분이다. 그러나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한 프랑스 인권선언에 비춰보면 근대헌법으로 보는 건 무리겠다. 사실 헌법(憲法)이라는 말은 동아시아에서 예전에 쓰이던 말이었다. 법(法)과 헌(憲)은 모두 법의 의미로 헌법(憲法)을 일반적인 법(法)의 의미로 썼던 것이

    김진욱 선임연구관 (헌법재판소)
    속상함

    속상함

    재판에서 패소한 의뢰인을 상담하는 일이 많다. 의뢰인은 판결문을 보여주며 “정말 엉망이죠?”, “판결만 봐도 얼마나 엉터리인지 바로 알 수 있죠?”라며 보조를 맞춰주기 바란다. 하지만 의뢰인의 기대에 응하기는 어렵다. 판결문만 본 상태에서 엉터리라고 말할 정도의 흠이 있는 판결은 사실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판결문에서 뭐라고 딱히 지적할 곳은 없네요”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런 말을 뱉는 순간 고객의 얼굴은 이별을 직감한 연인의 얼굴처럼 일그러지고 수임가능성은 영(零)으로 수렴한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판결 받고 많이 속상하셨죠?”이 말을 듣는 순간 의뢰인의 얼굴은 갑자기 환해진다. 많이 속상했고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정원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인권보호, 검찰 그리고 수사지휘

    인권보호, 검찰 그리고 수사지휘

    근대적인 검찰제도는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탄생하였다. 왕정의 혹독함을 경험한 혁명가들은 신체의 자유와 재산 등 시민의 권리보호를 선언하고 검사로 하여금 사법의 영역인 사법경찰활동을 통제하도록 하였다. 수사는 본질적으로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이에 1808년 12월 16일자 프랑스 최초의 형사소송법(Code d'instruction criminelle)은 형사절차의 중심에 검사를 두고 수사의 효율성과 국민의 자유권리보장을 조화하였다. 그 정신은 현재도 이어져 프랑스 형사소송법은 ‘검사는 직접 또는 사법경찰을 지휘하여 수사를 할 수 있고(제41조 1항),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사법경찰권을 행사한다(제12조)’고 명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법경찰과 행정경찰을 기능적으로 분리하였고, 사법경찰은

    김영기 부장검사 (서울서부지검)
    신종범죄와 죄형법정주의, 그리고 국가의 의무

    신종범죄와 죄형법정주의, 그리고 국가의 의무

    법률은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 누구나 알 수 있게끔 명확해야 하고, 법률이 없거나 적용 여부가 불분명하면 아무리 불법성이 큰 행위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 죄형법정주의다. 형벌권 남용을 막기 위해 모든 사람이 범죄가 되는 행위를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현대사회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각종 범죄수단으로 악용되며 신종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몰카’ 범죄가 급증하고, 새로운 군사전력으로 기대되던 드론이 카메라를 매달고 해수욕장 노천 샤워실과 가정집 창문을 기웃거린다. 최근에는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하여 인터넷에 유포하는 범죄도 등장했다. 이런 촬영·합성물들이 여성들에게 협

    김종복 부장판사 (목포지원)
    인권의 기원

    인권의 기원

    1789년 5월초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 삼부회가 소집되었다. 루이16세가 왕실 재정난 타개를 위해 175년 만에 소집한 회의였다. 제1신분 가톨릭 성직자와 제2신분 세속귀족 외에 제3신분 평민의 대표들도 모였다. 다수의 농민과 소수의 도시상공업자 즉 부르주아와 도시 노동자, 그들이 제3신분이었다. 루이13세의 사냥용 별장으로 지어진 베르사이유 궁전은 원래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짐이 곧 국가다”라고 했던 태양왕 루이14세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대대적인 건설 후에 호화로움이 극치를 이룬 궁전으로 거듭난다. 루이16세가 삼부회를 이곳에 소집한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제3신분의 대표 시골뜨기들은 말로만 듣던 이곳에 직접 와보자 자신들의 혈세로 이런 호사스런 궁전이 유지되고 있음을 똑

    김진욱 선임연구관 (헌법재판소)
    블랙리스트

    블랙리스트

    10여년 전 어느 날 오전 서울고등법원 법정. 사건번호를 호명하고 원·피고 소송대리인을 확인한 재판장은 바로 원고 대리인에게 “변론하시죠”라고 말했다. 이 법정에 처음인 듯한 변호사는 상기된 얼굴로 “이 사건은 원고가 피고로부터 불법행위를 당하여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으로서…”라며 변론을 시작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변론을 하시라고요”라며 다그쳤다. 영문을 모른 채 잠시 뜸을 들이다 “원심판결이 부당한 이유는…”이라고 다시 변론했지만, 재판장은 “변론을 안하고 왜 다른 이야기를 해요”라고 질책하며 피고 대리인이 먼저 변론하라고 했다. 이미 이 재판부의 진행방식을 알고 있던 피고 대리인은 “3월 4일자 준비서면 진술, 을 제5호증 제출”이라고 짧게 말했다. 재판장이 요구한 '변론'이었다. 특

    정원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갑질과 ‘덕분에’

    갑질과 ‘덕분에’

    얼마 전 치즈통행세, 보복출점 등 갑질 논란으로 미스터피자의 창업주가 구속기소되었다. 연이어 장성 부인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까지 불거졌다. 돌이켜보면 갖가지 갑질 행위가 도마에 오른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맷값 폭행, 땅콩 회황, 기업 회장들의 운전기사에 대한 폭언 등 오너리스크를 야기한 사건은 물론 비행기 승무원, 백화점 점원, 아파트 경비원 등 약자에 대한 일반인의 폭언·폭행 사건까지 심심치않게 터져나오는 것을 보면 갑질은 이미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유형으로 일상화된 것이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조선 후기 삼정(三政)의 문란도 관리들의 갑질이 수단이었고, 최근 미국에서는 몇몇 항공사의 거친 갑질 태도가 인종차별시비까지 유발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직장 상사 등이 자신의 지위를

    김영기 지청장 (남원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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