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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시민 주도 개헌

    시민 주도 개헌

    제헌절이다. 국회는 작년 12월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발족하여 ‘국민과 함께 하는 상향식 개헌’을 내걸고 헌법개정절차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은 여론 수렴 대상일뿐 개헌의 주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인과 전문가가 다듬은 개헌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헌법은 시민의 권리장전이자 국가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할지 정하는 최고의 사회적 약속이다. 개헌은 주권자이자 헌법개정권력자인 국민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헌법에는 개헌에 대한 국민 참여로서 국민투표만 명시되어 있으므로, ‘국민과 함께 하는 개헌’이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개헌안을 만들도록 ‘(헌법개정) 시민의회’를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 시민의회는 개헌뿐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 기본소득과 대체복무제 도입, 탈핵 등 국가적

    혼자만의 자유

    혼자만의 자유

    영화 시작 10분 전. 그는 너무도 익숙한 듯 햄버거 봉지를 입에 문 채, 두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상영관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적당히 자리를 잡는 동안,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햄버거 봉지를 들어주지 않았다.    사실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수많은 타인들 중 한사람이었다. 그는 햄버거를 먹으며 영화를 감상했다.    수년 전, 미국 연수중에 있었던 일이다. 스스로 불편을 이겨낼 의지만 있다면 혼자서도 휠체어에 앉아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적잖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돌아와, 그동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참여와 견제

    참여와 견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전쟁은 너무 중요한 일이어서 군인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다”를 인용하면서 강조한 “헌법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헌법재판소에만 맡길 수 없다”는 말에서 ‘정치-정치인’과 ‘시민 참여적 재판’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시민이 재판의 수요자나 사법의 객체에 그치지 않고 사법기관의 구성과 사법작용에 참여하여 주체가 되고자 하는 때이니까. 4월 27일 헌법재판소에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설립되었다. 헌법재판소가 1988년 창립한 지 29년만이다. 직장협의회에는 사무처 6급 이하 대상 공무원의 80%가 가입했다. 직장협의회는 김 후보자에 대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견에 걸맞게 하위직 직원도 인격적으로 대하는 인물”이라고 의견도 냈다.   법원에서는 6월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버려지고 버려지다

    버려지고 버려지다

    “더는 안 되겠어요. 무단결석에, 가출에, 술, 담배까지. 얼마 전엔 다른 아이들 지갑에까지 손을 댔어요. 아이들이 자꾸 보고 배운다고요. 절대 다시 안 데려갑니다.”  함께 온 보육시설장은 소년에게 잠깐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소년 역시 불만 가득한 얼굴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보육시설장이 직접 통고한 사건이었다.    다른 사건에 비하여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고, 가출이라 해봐야 하룻밤이었다. 그렇지만 시설장은 더 이상 소년을 시설에 둘 수 없다면서,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6개월의 처분기간이 끝나더라도 소년을 다시 데려가지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만만한 판사

    만만한 판사

    한국고용정보원이 3월에 발표한 ‘2016년도 직업만족도(사회적 평판, 급여만족도, 직무만족도, 직업지속성 등) 조사에서 판사가 1위였다’는 보도는 법관의 퇴임사에서 ‘대과 없이 마쳤다’는 말을 들은 때처럼 민망하였다. 당사자의 판사만족도나 재판만족도라면 모를까. 시민들의 문제와 고통에 주의를 기울여 정성껏 재판하라는 취지인 공동체의 통큰 존중과 뒷바라지가 판사의 만족이나 행복과 결부될 수도 있다는 게 아쉬워서다. 어느 판사의 고백처럼, 법관은 매우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직업이면서 동시에 엄중한 직분임에 틀림없으나, 그 법관의 직을 수행하는 ‘나’는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인간이다. 재판에서 누군가는 패소하고 유죄를 선고받으며 심지어 오판에 억울해 한다. 그럼에도 그 재판을 기꺼이 떠맡아 책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법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법

    응급실. 학대가 의심되는 아이를 진료한 의사가 몰래 112 신고를 하자, 순식간에 도착한 경찰이 병원이 떠나가도록 외쳤다. “아동학대 신고하신 분~?!!” 오래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실화일까 싶다. 아동학대 신고 경험이 있는 의사와 교사를 만났다. 대부분 신고 후에 경찰로, 검찰로 진술하러 다니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경찰에서 이미 한 번 이야기 했는데, 검찰에서 또 부르더라, 진료나 수업에 지장이 있어 안 되겠다 했더니, 그럼 재판 때 법원에 가서 증언해야 한다 하더라. 그래서 과태료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신고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고 했다. 극심한 항의에 힘들었다고도 했다. 왜 신고했느냐는 타박 정도는 애교라고 했다. 그냥 두지 않겠다는 협박, 밤길 조심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지금 이대로라도

    지금 이대로라도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 인선 절차가 진행 중이다. 그들은 단순히 판단자가 아니라 사법 정의(Justice) 자체이기에, 그 자격에 표하는 존경의 결은 특별하다. 부동산·주식을 통한 불로소득의 추구나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 따위의 불의를 저지르지 않았다가 아니라, ‘소수자와 약자,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자’에 대한 불의를 묵과하지 못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한 이야기와 헌법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태풍에 맞서는 ‘첫 파도’인 적이 있는지 듣고 싶다. 그들의 감수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믿음이 차별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거나 비판할 줄 아는 민감함’(신형철)이기를 기대하며, ‘내가 우월한’ 관계가 아니라 ‘함께 대등한’ 관계에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너희는 어쩌다 그곳에 있을까

    너희는 어쩌다 그곳에 있을까

    김천소년교도소. 만 14세부터 23세까지의 소년들이 머무는 대한민국 유일의 소년교도소다. 교정이나 교화를 기대하기에는 너무도 열악한 공간이다. 굵은 창살 사이로 난 한 뼘 남짓한 배식구 너머에는 열을 맞춰 개어진 이부자리와 설거지를 위한 한 칸짜리 개수대가 있다. 개수대가 생기기 전에는 화장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설거지를 했다고 한다. 한 녀석씩 붙잡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묻고 싶었다. 장기형과 단기형, 그 중간의 어느 때쯤엔 출소하리라는 막연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부분은 장기형의 마지막 하루까지 빼곡히 채우고 사회에 발을 디딘다. 열악한 공간에 혈기왕성한 청소년기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좁은 공간에서 서로 다투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인지 23세까지 소년교도소에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분별심 내려놓기

    분별심 내려놓기

    “법관에게 법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단순한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법 이외의 내용은 법관이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으로 채우게 되는데, 주된 구성요소는 선입견이다”라는 지적은 뜨끔하다. 법관도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소설가 김연수)에 빠질 수 있는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생각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증명일 때가 많다. 이는 법관이 접하는 세계가 협소한데도 그가 원칙과 신념이 확고하여 흔들릴 줄 모르는 한결같은 이라면 조금 심각해진다. 여기에도 법관이 무엇보다 자신의 견해에 대하여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아픈 손가락

    아픈 손가락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그에게 막내아들은 항상 더 아픈 손가락이었다. 유학까지 다녀온 큰아들은 번듯한 직장이 있고, 둘째인 딸도 전문직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가벼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막내아들이었다. 그는 막내에게 일찌감치 작은 상가를 넘겨주었다. 관리만 잘 해도 빠듯하나마 세를 받아 제 식구 건사는 하지 싶었다. 그렇지만 귀가 얇은 막내는 그마저 잘 간수하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가는 경매로 넘어갔다. 결국 그는 막내에게 수시로 생활비를 보태주었고, 막내는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그는 떠나면서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적지 않은 재산을 남겼으니 공평하게만 나누면 남겨진 자식들 모두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당사자 본인 진술

    당사자 본인 진술

    야구에서 슬럼프에 빠진 타자는 예전에 좋은 안타를 칠 때의 타격 장면을 반복해 보며 해법을 찾는다고 한다. 요즘도 '좋은 재판'을 하지 못해 부끄러워지면, '그 재판은 잘 했는데…'라며 혼자만 뿌듯한 사건들로 되돌아 가본다. 몇건 아니어서, 복기하면서 반성하는 데 별로 시간은 들지 않는다. 나쁜 재판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나 좋은 재판은 모두 엇비슷하다. 좋은 재판의 첫째는 결론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관계는 법관이 가장 적게 알고 그 다음에 변호사가 조금 알며, 마지막으로 당사자는 다 안다”고 하니,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최선의 방법은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말로써 충분히 주장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도 반박하는 소통 과정에 있다.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

    “내 옆에서 늙어 죽어!” 외도의 끝,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을 향해 아내가 절규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오래전 방영된 것이라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이었던 아내의 한마디는 가끔 떠올리게 된다. 현실의 세계에도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상처 입은 많은 남편들과 아내들이 있다. 주저 없이 배우자와의 결별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혼인 생활을 이어가는 부부가 어쩌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들이 결별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 여전히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이 때문일 수도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 문제였을 수도 있고, 오기나 보복적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 그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꼭 집어 말할 수 있을까. 더는 함께할 수 없다 생각하며 이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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