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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탄원서

    탄원서

    형사재판을 담당하던 어느 해 일이다. 변론을 마치고 판결선고를 앞둔 사건의 피해자가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6건의 사기 사건을 병합하여 진행하였는데 불구속 상태에서 1년여 동안 공판에 출석하던 피고인이 선고기일에 도주하였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 기일에 출석하고, 피고인이 도주한 후에도 기일마다 법정에 나와 재판장으로서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절차에 관한 안내를 해주었기에 안면이 있었다. 탄원서 내용은 판사가 피고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판결선고를 미룬다는 것이었다. 당시 피고인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지명수배를 의뢰한 단계였고 소촉법상 요건은 갖추기 전이었으므로 법적으로 피고인의 출석 없이 판결을 선고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충격과 함께 서운함이 밀려왔다. 오매불망 판결선고를 기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뇌물죄 단상Ⅰ

    뇌물죄 단상Ⅰ

    약 3600년 전 은나라를 세운 탕왕은 왕위에 오른 이후 7년 동안 계속해서 흉년이 들자 6가지 점검 항목을 적은 반성문을 벽에 걸어놓고 하늘에 기도했다고 한다. 그중 다섯 번째 항목이 ‘뇌물이 성행하지 않았는가?’였다. 조선시대 여러 왕들은 국정이 난관에 봉착할 때면 이를 타개할 수단으로 탕왕의 반성문에 몇 가지 항목을 더하거나 빼서 비슷한 방법으로 사용하였는데, 어떤 경우에도 뇌물과 관련된 항목은 빠지는 법이 없었다. 임용한 등이 지은 ‘뇌물의 역사'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뇌물이 나라를 망칠 수도 있는 심각한 병폐라는 경계심이 인류 문명이 태동할 무렵부터 줄곧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지, 2007년 출범한 양형위원회가 살인, 성범죄 등과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새해 소망

    새해 소망

    새해를 맞이하며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손글씨로 정성스레 담은 연하장을 받았다. 어린 시절 이맘때면 성탄을 축하하고 새해 덕담을 나누는 카드를 만들어 친구들과 주고받았다. 더 많은 카드를 받았다고 서로 자랑하던 일, 늘 색색 빛의 가루를 사용하여 카드를 만들던 친구 얼굴, 더 예쁘고 기발한 카드를 만들겠다고 경쟁하던 아이들과 한창 서예를 배우며 먹을 갈아 謹賀新年이라 적어 나누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한동안 12월이면 어김없이 서점과 문구점에 긴 줄로 늘어선 카드 앞에 서성이던 것이 마지막인가 보다. 시간이 흐르며 게으르고 무감해져 이메일과 SNS, 휴대전화 메시지의 편리함 속에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의 모습이 문득 부끄럽다. 새해다. 희망찬 꿈을 꾸어야 할 시기지만 새해를 맞이하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다시 법관윤리를 돌아보며

    다시 법관윤리를 돌아보며

    대법원은 며칠 전 '법관윤리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의 시행을 발표하였다. 지난 9월 개최된 법원장회의에서 사법신뢰를 회복·증진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시하였던 10가지 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계획인 셈이다. 발표된 계획에 따르면 비위 법관에 대한 징계부가금 부과제도 도입, 법조윤리신고센터 신설, 법관윤리심의위원회 구성, 법관 윤리교육 강화 등은 즉시 추진하고, 그 밖의 대책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추가 검토를 거쳐 추진 시기와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아 사실관계가 전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대책 추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부장판사의 금품수수 사건은 국민들과 법관 모두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국민들은 해당 법관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가정문제정보센터

    가정문제정보센터

    얼마 전 일본의 최고재판소와 여러 가정재판소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가사사건에서 완전한 조정전치주의를 실현하고 재판을 지원하기에 충분한 인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사정이 부럽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도 협의이혼 단계부터 후견기능을 다하고 가족의 관계 회복과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적극적이고 다양한 노력을 펼치는 우리 가정법원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며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니 뿌듯함도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일본 방문 전부터 많은 관심이 간 곳은 퇴직한 가정재판소 재판관과 조사관이 모여 설립한 가정문제정보센터였다. 센터는 1987년 동경에서 가정과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당사자를 지원하기 위한 상담실로 시작하여 1993년 사단법인 조직을 갖추며 오사카, 후쿠오카 등지로 사업을 확대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치료명령제도의 시행에 부쳐

    치료명령제도의 시행에 부쳐

    지난 12월 2일 형사재판에서 치료명령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치료명령제도는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심신장애인이나 알코올중독자가 통원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고 다시 죄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법원이 피고인에 대하여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형의 선고나 집행을 유예하면서 일정기간을 두고 치료를 받을 것을 명하는 제도이다. 치료명령을 받은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치료에 응하지 않는 등 준수사항을 위반할 경우 법원은 유예한 형을 선고하거나 집행유예의 선고를 취소할 수도 있다. 기존 법률에서도 중한 범죄를 저지른 심신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된 감호소에 수용하여 치료하는 치료감호제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소년법 개정안 재고를"

    "소년법 개정안 재고를"

    소년사법과 소년보호재판을 강의할 기회가 있으면 보호처분은 형벌이 아니며 가장 중한 소년원 송치 처분을 받더라도 범죄전력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현재 소년원은 초·중등교육법에 의한 일반 학교로서 운영되고 있으며 학업이 중단된 소년을 위한 다양한 직업훈련과정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범죄전력이 되지 않는다고 현실에서 다가오는 보호처분의 경중을 무시할 순 없다. 처분을 받는 소년과 가족이 느끼는 무게가 다르고, 소년에 대한 주위 사람의 시선이 다르다. 지난달 10일 소년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제안이유는 중간처우시설인 6호 기관의 운영기준이 미흡하고 관리·감독할 전담기관이 없어 이를 법무부가 관리하며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집행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0개의 보호처분을 11개로 늘려 6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다른 사람이 되어 본다는 것

    다른 사람이 되어 본다는 것

    조금 용기를 내어 고백하자면, 내 아내는 요리 실력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니다. 솜씨를 발휘해보겠다고 한참을 분주하게 준비한 음식을 맛보고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나는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는데, 이 녀석들은 자기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최고인 줄 안다.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식사 때가 되어 뭘 사줄까 물어보면 빨리 집에 돌아가서 엄마가 끓여주는 야채스프가 먹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내게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국물이 내 아이들에게는 속이 풀리고 기운이 나게 해주는 소울푸드인 셈이다. 겉모습은 나랑 똑 닮은 내 자식들이지만, 어릴 때 무얼 먹고 자랐느냐에 따라 입맛이 이렇게 다른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상습절도죄로 기소된 피고인이 써 낸 탄원서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자기도 판사님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김장 선서

    김장 선서

    이른 아침 센터로 향한다. 오늘은 센터 식구들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날이다. 소녀들은 아침 일찍 차비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쪽에는 절인 배추가 수북이 쌓여 있고 김칫소와 무도 준비되어 있다. 김장은 선서와 함께 시작된다. 맛있고 청결한 김치를 위해 장난치지 않고 기쁜 마음, 단결된 모습으로 김장에 임하겠다는 재미있고도 진지한 내용이다. 재잘대는 소리와 함께 각자 맡은 자리에서 김장이 시작된다. 지금은 다른 업무를 맡아 법정에서 만난 소녀는 없지만, 예전 그 소녀들과 함께하는 느낌이다. 또래들과 다름없이 밝은 모습으로 배추에 소를 버무리며 쉼 없이 이야기하던 친구들. 지난번 합격한 검정고시 이야기, 새로 시작한 수학공부 이야기, 센터 선생님 이야기, 문화축제 이야기. 그때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70만원의 무게

    70만원의 무게

    피고인은 30대 후반의 가정주부였다. 집에 사람이 없다면서 재판 때마다 백일이나 갓 넘겼음직한 아기를 등에 업고 법정에 나왔다. 컴퓨터 부품을 샀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환불을 요청했는데 판매자가 거절하자 그를 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행위로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이 청구되었다가 무죄를 다투어 공판에 회부된 터였다. 그녀는 최후변론에서도 자신은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문 작성을 위해 기록을 검토하던 필자는 피고인이 '진술서'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편지에서 뜻밖의 구절을 발견하였다. 남편이 실직한 지 오래되어 아기의 분유값조차 마련하기 힘드니, 혹시라도 자신의 행위가 죄가 된다면 벌금형 대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는 것이었다.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사랑의 언어

    사랑의 언어

    처음 가정법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소개 자리에서 다른 포부와 더불어 이곳에서 근무하며 조금 더 좋은 아빠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당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아이를 생각하며 나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부족했던 것들을, 그래서 내가 잘 알지 못하던 것들을 배우고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우리는 자녀와의 관계뿐 아니라 부부, 친구, 직장동료, 그 밖의 많은 장면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 하지만 가끔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도 만나게 된다. 게리 채프먼은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며 우리 내면의 사랑 탱크에 충분한 사랑을 채워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지속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판사들이 공단으로 간 까닭

    판사들이 공단으로 간 까닭

    필자가 근무하는 창원에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기계공업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시내 어디서든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 공단 쪽을 바라보면 푸른 지붕을 맞댄 공장 건물들이 시야가 닿는 곳 끝까지 줄지어 늘어선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선 수만 명의 근로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쉴 새 없이 기계를 돌리고 있다. 처음 시작은 이 도시의 특성에 맞는 법 교육 방법이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법률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적 욕구는 있지만 빡빡한 일과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쁜 근로자들과 함께 하려면 그들의 일터로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판사 10명이 2개 조로 나누어 5개의 법률 분야에 대하여 10개의 기업체를 순회하면서 릴레이 강의를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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