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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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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어쩌다 그곳에 있을까

    너희는 어쩌다 그곳에 있을까

    김천소년교도소. 만 14세부터 23세까지의 소년들이 머무는 대한민국 유일의 소년교도소다. 교정이나 교화를 기대하기에는 너무도 열악한 공간이다. 굵은 창살 사이로 난 한 뼘 남짓한 배식구 너머에는 열을 맞춰 개어진 이부자리와 설거지를 위한 한 칸짜리 개수대가 있다. 개수대가 생기기 전에는 화장실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설거지를 했다고 한다. 한 녀석씩 붙잡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묻고 싶었다. 장기형과 단기형, 그 중간의 어느 때쯤엔 출소하리라는 막연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부분은 장기형의 마지막 하루까지 빼곡히 채우고 사회에 발을 디딘다. 열악한 공간에 혈기왕성한 청소년기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좁은 공간에서 서로 다투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인지 23세까지 소년교도소에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분별심 내려놓기

    분별심 내려놓기

    “법관에게 법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단순한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법 이외의 내용은 법관이 자신에게 주어진 재량으로 채우게 되는데, 주된 구성요소는 선입견이다”라는 지적은 뜨끔하다. 법관도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소설가 김연수)에 빠질 수 있는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생각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증명일 때가 많다. 이는 법관이 접하는 세계가 협소한데도 그가 원칙과 신념이 확고하여 흔들릴 줄 모르는 한결같은 이라면 조금 심각해진다. 여기에도 법관이 무엇보다 자신의 견해에 대하여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아픈 손가락

    아픈 손가락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그에게 막내아들은 항상 더 아픈 손가락이었다. 유학까지 다녀온 큰아들은 번듯한 직장이 있고, 둘째인 딸도 전문직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가벼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막내아들이었다. 그는 막내에게 일찌감치 작은 상가를 넘겨주었다. 관리만 잘 해도 빠듯하나마 세를 받아 제 식구 건사는 하지 싶었다. 그렇지만 귀가 얇은 막내는 그마저 잘 간수하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가는 경매로 넘어갔다. 결국 그는 막내에게 수시로 생활비를 보태주었고, 막내는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그는 떠나면서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적지 않은 재산을 남겼으니 공평하게만 나누면 남겨진 자식들 모두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당사자 본인 진술

    당사자 본인 진술

    야구에서 슬럼프에 빠진 타자는 예전에 좋은 안타를 칠 때의 타격 장면을 반복해 보며 해법을 찾는다고 한다. 요즘도 '좋은 재판'을 하지 못해 부끄러워지면, '그 재판은 잘 했는데…'라며 혼자만 뿌듯한 사건들로 되돌아 가본다. 몇건 아니어서, 복기하면서 반성하는 데 별로 시간은 들지 않는다. 나쁜 재판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나 좋은 재판은 모두 엇비슷하다. 좋은 재판의 첫째는 결론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관계는 법관이 가장 적게 알고 그 다음에 변호사가 조금 알며, 마지막으로 당사자는 다 안다”고 하니,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최선의 방법은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말로써 충분히 주장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도 반박하는 소통 과정에 있다.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

    “내 옆에서 늙어 죽어!” 외도의 끝,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을 향해 아내가 절규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오래전 방영된 것이라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이었던 아내의 한마디는 가끔 떠올리게 된다. 현실의 세계에도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상처 입은 많은 남편들과 아내들이 있다. 주저 없이 배우자와의 결별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혼인 생활을 이어가는 부부가 어쩌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들이 결별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 여전히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이 때문일 수도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 문제였을 수도 있고, 오기나 보복적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 그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꼭 집어 말할 수 있을까. 더는 함께할 수 없다 생각하며 이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다가가는 인기척

    다가가는 인기척

    1073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목포 신항만에서 마주하고는, 작가 김훈의 순직 소방관에 관한 글을 찾아 읽었다. “숨진 대원이 암흑 속에서 고립되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전짓불 빛을 기다리고 있었을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울음을 참았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는 결국 고립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중략) 고립된 대원들이 그 암흑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중에서)  재판을 하게 된 후 언젠가부터 ‘사회적 죽음’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의 슬픈 소식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희생과 욕심 사이

    희생과 욕심 사이

    # 이혼법정 “국제중학교, 생각하고 있어요.” 피고석에 앉은 그녀의 얼굴에 묘한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과도한 교육열이 다툼의 불씨가 된 사건이었다. 남편은 아이의 교육비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는 사립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이가 졸업해서 중학교에 가면 좀 낫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아이가 공부를 곧잘 해서 국제중학교에 보낼 것이라고. 최고로 키울 것이라고. 부모가 되어 이 정도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고. 동의하지 않는 남편이 이기적인 것이라고…. 결국 부부는 이혼에 합의했다. 과연 그 아이는 행복할까. 자라서 자신의 교육 문제가 빚어낸 갈등으로 부모가 이혼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소년법정 폭력 사건으로 경찰 조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독립에 걸맞는 책임

    독립에 걸맞는 책임

    지달달 25일 국제인권법연구회가 공동개최한 학술대회(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법관독립 강화의 관점에서)에서 참석자들은 독립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우리 법관인사제도의 문제를 검토하고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그 자리에서는 “법관의 독립성과 책임성은 판결의 정당성을 이끌어내고 확보하기 위하여 상호 작용한다”, “책임을 지지 않는 사법부 독립은 맹목의 것”이라며 독립에 걸맞는 법관의 책임도 누차 강조되었다.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인권 보호를 위해 보장되는 것이다. 국민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법에 의해 재판을 받기도 하는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였다면(헌법 제103조) 오판을 하더라도 개인적 책임을 지지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아버지의 성(姓)

    아버지의 성(姓)

    잔뜩 긴장한 표정의 앳된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소년법정에 들어섰다. 소년의 환경 조사서에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였고, 소년은 어머니와 계부, 계부의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함께 온 아버지는 소년과 성이 달랐다. 눈매가 꽤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계부인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애 엄마가 애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관계도 정리시킬 겸, 한 달 전쯤에 제가 데려왔습니다. 전학도 했고요. 아이 데리고 재혼한다고 해서, 잘 살라고 아들 성 바꾸는데도 동의해 줬는데, 이제 제가 데려왔으니 다시 성을 바꾸려고요.” 그는 소년의 친아버지였다. 성과 본이 다른, 눈매가 닮은 친아버지. 아마도 소년은 곧 친아버지를 따라 원래의 성과 본으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

    현재 삼권분립의 국가틀에서 핵심적인 대통령과 헌법재판소장의 자리가 비어 있고, 현 대법원장의 임기도 9월 말 만료된다. 국민들은 5월 9일까지 후보들을 면밀히 따져 새 대통령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새 헌법재판소장과 후임 대법원장의 선정에 국민들은 물론 헌법재판소나 사법부 구성원들이 참여하지 못한다. 헌법상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만으로 임명하기 때문이다. 5월 선출되는 대통령이 새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의 후임을 정하는 데 사전에 거쳐야 하는 공식 절차가 없다. 오직 ‘제왕적 대통령’ 1인의 의중에 달려 있어, 특정 정치세력이나 비선을 통해 내정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이후 거치는 국회의 동의도, 국민의 투표 지지와 의석 수의 비례성에 문제가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그녀의 진심

    그녀의 진심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니까요! 상담도, 교육도 필요 없어요.” 텅 빈 동공의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살다보면 뺨 한 대 때릴 수도 있지, 이제 다 잊고 잘 살고 있는데, 국가가 집안 문제에 개입해서 이혼시키려고 하느냐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은 너무 잘해준다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남편을 법정 밖으로 내보내고,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마이크까지 꺼버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같은 대답을 했다.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이전에도 그녀의 남편은 가정폭력으로 법정에 섰고, 상담위탁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몇 개월 후, 그는 다시 그녀의 목을 조르고 뺨을 때렸다.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사는 만큼

    사는 만큼

    2월 큰 규모의 법관 인사이동이 있었다. 작년 봄부터 연잇던 법조비리에 대한 1심 재판이 일단락되고 국정농단과 탄핵심판 국면에서 법조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와중이라선지, 법정 안팎에서 내가 사는 실상을 살피는 계기가 된다. 신임 법관을 축하하면서 지금 판사의 일은 문병일지 모르니 사건으로 다가오는 마음을 더듬어 환대하기를 응원하고, 사직한 동료가 안타깝지만 헌법기관으로서 공적으로 형성된 존재이니 법정 밖에서도 먼 이웃들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축복한다. 광장을 통하여 ‘모두에 의한-모두를 위한 나라’ 민주공화국을 대의제 틀에서 벗어나 ‘시민(Demos)의 힘(Cracy) 자체’로도 보게 되자, 우리 재판부의 법정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는지, 새 헌법재판소장과 9월 임기 만료인 대법원장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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