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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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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어버린, 잃어버린 마을공동체!

    잊어버린, 잃어버린 마을공동체!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동네 골목에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아니 사방이 캄캄해서 서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워도 노느라 정신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 집에 몰려가서 있는 반찬 없는 반찬 가리지 않고 한 끼를 때우기도 했다. 무작스럽게 먹어치우던 아이들을 위해 수고스럽게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들에 대한 감사는 아무리 표현해도 부족하다. 친구 집에서 밤늦게까지 놀다 그냥 내처 잠을 자고는 아침밥까지 먹고 나오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투닥투닥 다투는 경우에는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어른들은 혼냈다. 소소한 문제들이 종종 발생하지만, 큰 일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동네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다 알고 소문도 금방나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드물었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과거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는데, 쌀쌀한 초봄에 합정역 아닌 서초역 5번 출구에서 가을에나 필 법한 국화를 보았네요. 그들은 허리가 끊긴 채 장례화환에 박혀 큰 법원의 흰 청사를 품고 있었고,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인물이 된 것인 양 처음 보는 기괴한 모습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리본에 적힌 운율 맞춰 기재된 골계미 충만한 글을 보니 헛웃음도 나고 부끄러웠네요. 어떤 글들은 그 표현에 비추어 적시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표현의 자유를 일탈한 것으로 보였고 이에 대하여 고위 공무원도 모욕죄 고소를 하던데 대리인 통한 고소는 없는지, 왜 저들이 방치되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편 이 모습이 사법부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물과 햇볕 그리고 바람을 잊지 말아야지

    물과 햇볕 그리고 바람을 잊지 말아야지

    창가에 화분 몇 개가 있다. 햇볕을 잘 쬐여주고, 적당한 간격으로 물도 준다. 그런데도 나무 상태는 시원치 않다.   "창문을 자주 열고 바람을 쐬어줘야 하는데…"라는 아내의 말을 듣는다. 이전보다 자주 창문을 열고 바람이 흘러들어오게 한다.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노래를 한다. 진작 바람을 쐬어줄 걸 그랬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흘러가는 바람의 숨결을 나뭇잎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모든 것이 신나한다. 베란다 창문과 주방 창문을 마주 열면 바람은 더욱 신나게 뛰어논다. 주방 쪽에 놓여 있는 음지식물들도 활기가 돋는다. 햇볕을 직접 쬐지 않더라도 바람은 쐬어주어야 한다. 신선한 바람이 온 집안을 몇 바퀴 휘젓고 다니면 마음속까지 상쾌해진다.   흘러야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판결초고와 제조물책임

    판결초고와 제조물책임

    절대 제 이야기 아닙니다. 예전 어떤 부장판사가 손을 털며 지나는데 이유가 연필로 판결문을 너무 많이 고쳐 손목이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부장은 컴퓨터로 수정하느라 눈이 아픈 경우 작성한 배석에게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법리검토를 하는 분도 있었고, 다른 분은 '초고'라는 용어 때문인지 판결문에서 열의도 성의도 느낄 수 없다고 개탄하셨네요. 쟁점이 많고 기록이 방대한 사건은 심리도 어렵지만 종결 후 판결문 작성에도 판사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합니다. 그래서 배척될 것이 명백해 보이는 주장은 이유를 설명한 후 철회를 권유하였고, 대부분은 철회해 주셨네요. 이를 통해 재판부의 시간, 노력뿐 아니라 A4용지와 프린터토너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론을 종결하면 합의부에서는 합의를 거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여백과 쉼이 있는 인생 시간표

    여백과 쉼이 있는 인생 시간표

    오늘도 달립니다. 잠시라도 멈칫하는 순간 뒷사람이 나를 제치고 앞서나갈까 두렵습니다. 쓰러질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갑니다. 쉰다는 것은 사치입니다. 저 멀리 앞서 가는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보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멈추기는 더 어렵습니다. 경쟁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앞서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낙오는 말아야지 하는 강박으로 경쟁의 대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지만 모두 내심으로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며 나도 그렇지 않은 척 합니다.   이렇게 달리고 달리면 그 끝은 어디일까요? 이런 질문조차 한가한 것인가요? 그럴 시간에 좀 더 달려야 하나요? 1분 1초를 아껴 빈틈없이 채워진 시간표를 분주하게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판사는 다른 이들의 과거를 삽니다. 재판장은 재판에서 원·피고 또는 피고인·검사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들어 과거 일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소액재판을 할 때 원고에게 "증거가 있냐?"고 묻자 "피고가 알고 하늘이 알며 땅도 안다"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는데, 하늘과 땅은 증인적격이 없고 판사는 해당 일을 경험한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증거계의 오승환, 즉 끝판왕인 처분문서나 최근 당사자 사이에 첨예하게 상반된 주장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녹취파일이 없으면 증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기억이 모두 다르듯이 세월이 가면 그 취약한 기억도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누군가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가사를 쓰고 그리도 절절히 노래했나 보네요. 다만 법정에서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소유의 욕심? 존재의 욕심!

    소유의 욕심? 존재의 욕심!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있습니다. "욕심이 없어"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면, 십중팔구 거짓이거나 마음을 비운다는 희망사항이겠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 욕심쟁이입니다. 욕심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고, 불필요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욕심을 부린다고 뜻대로 채워지지 않는 것도 압니다. 내면의 욕심을 남이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우리 모두 자신의 욕심을 적절히 통제하며 살아갑니다.   과도한 욕심이 잘못된 방법과 방향으로 분출될 때 문제가 생깁니다. 때로 법률문제로 비화하여 민사소송이나 형사처벌에 이르기도 합니다. 알면서도 욕심을 조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른 이가 가지면 나도 갖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나는 갖지 못했어도 내 아이는 가졌으면…'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민소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민소규

    가끔 "재판 안 하면 뭐하냐?"는 질문을 받는데 대부분 재판을 준비하고, 취미가 성악일 거 같은 다른 필자가 쓰셨듯이 민사에서는 준비서면을 읽습니다. 그런데 전자소송의 부작용으로 재판전날 오후부터 서면이 밀려들다가 오후 6시 전후 큰 파도가 치는데, 접수시간(17:58, 18:02 등)과 제출 시기에 비추어 다소 아쉬운 준비서면을 읽다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하는 변호사님 뒷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심지어 재판 날 변호사님은 법정에 계신데 준비서면이 접수되기도 하구요.   제가 민사소송규칙(이하 '민소규') 제69조의3을 들어 늦게 제출되는 서면에 대하여 지적하면 대개 기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였단 답변을 듣는데 '그리 간단하면 더 빨리 내시지…'라는 생각이 들고, 가끔 위 홑 따옴표를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주연과 조연

    주연과 조연

    우리 모두 자기 인생의 주연입니다. 동시에 누군가의 조연이고, 사회라는 무대에서는 대부분 무명 엑스트라입니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세상의 중심이나 주연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에서조차 주연으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지요.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얼기설기 엮여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란 아주 제한적이니까요. 일생 동안 고유한 자신의 삶을 살지도 못하면서 평생 조연이나 무명의 엑스트라로 살아가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주연은 물론이고 조연으로도 살고 싶지 않은 삶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범죄라는 무대에서는 주연(정범)을 맡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조연(종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세상에 뿌려진 초임부장님들께

    세상에 뿌려진 초임부장님들께

    무엇보다 건강하게 지내셨길 기원합니다. 5년차 부장으로서 초임 부장님들께 제 초임부장 시절 경험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4년 전 순천지원으로 발령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자신이 없어 형사단독을 지원하였으나 불희망한 민사합의부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이번에는 불희망한 형사단독을 하게 되었네요.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고, 하여야 할 사무분담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나 봅니다.    민사합의부장을 하기 주저한 이유 중 하나는 과거 1년간 배석을 한 것이 민사합의 경험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열정이 넘쳤던 부장님으로부터 스파르타식으로 가열차게 업무를 배웠고, 연이은 신건메모 및 판결문 작성으로 페르시아 군과 싸우는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법관의 읽기

    법관의 읽기

    업무의 상당 부분은 읽는 것입니다. 종이기록을 읽고, 전자문서를 읽습니다. 법정에서 재판 할 때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읽기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재판관련 서류 읽기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법률요건 또는 구성요건에 맞춰 읽습니다. 요건사실을 추려내고, 사실과 주장을 구분하여 읽습니다. 주장임에도 사실처럼 쓰인 경우도 있습니다. 주장과 사실이 뒤섞여 있을 때는 사실을 추려내고, 그 사실을 증거와 대조해서 다시 읽어 봅니다.   역사적 사실, 객관적 사실이 하나인 것 같지만, 관점 또는 경험의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실이 존재합니다. 대립하는 당사자 사이에서는 사실의 간격이 심연과 같습니다. 어떻게 이럴까 싶지만, 저 자신도 기억 속의 사실과 객관적 자료의 차이가 있었던 경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법대(法大)에서, 법대(法臺)에서

    법대(法大)에서, 법대(法臺)에서

    존경하는 독자님들, 지면으로 인사드리게 되었네요. 저는 수원에서 형사단독을 하는 판사입니다.   얼마 전 "김 부장은 재판경험이 많으니 법대에서 글을 쓰면 어때요?"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법대(法大)에서 요청을 하였나요?"라고 물었더니 연락 주신 분이 웃으면서 그 법대가 아니라 법률신문의 '법대에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법대에서'는 한국전쟁 중 서울 중구 을지로1가에서 타블로이드 4면으로 창간되었고, '법조와 함께, 국민과 함께 100년의 미래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대한민국 유일의 법률분야 전문신문인 법률신문의 칼럼이 아닙니까?"라고 놀라 되물었습니다.   저도 훌륭한 판사님들이 재밌고 유익한 글을 쓰셔서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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