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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프리즘 리스트

    빌리버(Believer)

    빌리버(Believer)

    영화 ‘독전(2018, Believer)’에서 킬링 파트를 꼽으라면, 나는 이거다. “저 못 믿으시잖아요”라는 거대 마약조직의 말단사원 서영락의 질문에 형사 조원호는, “애초부터 너 믿어서 가는 거 아니었어”라며 자신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쓰러져있는 서영락을 일으켜 세운다. 서영락은 대답한다. “괜찮습니다. 전 팀장님 믿으니까.” 변호사 업무를 하다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내 언행을 뒤돌아 볼 때가 있다. 의뢰인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다. “저는 변호사님을 믿어요.” 그럼 미처 어떤 생각을 하기 전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은 ‘내가 의뢰인께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앞으로의 업무 진행 향방에 대한 다소의 불안감이다. ‘믿음’이란 단어는 묘하다. 그 단어가 주는 긍정적 어감에도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소송의 밀도 인생의 밀도

    소송의 밀도 인생의 밀도

    내가 첫 변호를 맡고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정말 밀도 높은 소송이었던 것 같다. 피해자 오천퀵서비스 업체 대표는 주식회사 오천퀵 대표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가 먼저 사용한 상호를 피고인이 동의도 얻지 않고 사용한 것을 이유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상호를 무단도용한 결과 연 수익이 떨어진 것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기록을 보니 수익 증가율이 감소했을 뿐 실제 수익은 상승했다. 그리고 의뢰인은 자신이 원래 이 상호를 처음 사용하였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증인신문을 열심히 했는데, 사실은 피해자가 먼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패소가 짙어보였다. 그 때 전략을 바꿔 재판을 법리논쟁으로 전환했다. 오천퀵은 '오천원으로 퀵서비스를 이용한다'는 뜻으로 보통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아나키아(ANArKH)

    아나키아(ANArKH)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시인들도 노래했지 수많은 사랑의 노래를/ 인류에게 더 나은 날을 약속하는 노래를.” 노트르담 성벽의 “아나키아(ANArKH, ‘숙명’)”는 빅토르 위고에게 영감을 주어 '노트르담 드 파리'가 탄생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인간이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 시대 변화와, 그 앞에 작은 인간의 존재를 그린다. 중세시대를 상징하는 “전능한 신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뮤지컬 넘버 “피렌체(Florence)”를 시작으로 구텐베르크와 코페르니쿠스로 상징되는 “르네상스 시대”가 개막한다. “개혁자 구텐베르크 세상을 변화시켰고/ 쉴 새 없이 새 글이 인쇄되는 뉘렌베르크/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고개 숙인 변호사

    고개 숙인 변호사

    법정을 처음 구경한 때 깊은 실망을 가져다 준 장면이 있다. 바로 변호사가 법정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볼 때였다. 왜 변호사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 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도 머리를 숙여야 한다. 뉴스지상에 등장하는 법률사무소에 대한 무차별적인 압수수색과 영장집행은 좌절에 빠뜨리기도 한다. 어떤 경우 변호사를 사익만 도모하는 법조인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오해를 갖게 하기도 한다. 이뿐인가. 때로 변호사는 사건을 맡긴 악성 의뢰인에게 의도하지 결과로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변호사 2만명시대가 도래하고 변호사들은 자신의 경제능력으로 스스로 고개를 떨구곤 한다. 필자 또한 지인으로부터 학창시절에 비해 자신감이 떨어지는 발걸음을 보게 된다는 말을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를 선임하는 보수로 12억원을 지급한다면 변호를 맡아야 할까.’ 이런 순진한 고민을 내가 했다. 사법연수원 수료를 앞두고 법원에서 시보를 할 때 필수적으로 국선변호를 2건 맡게 되는데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하필이면 12억원인지는 잘 모른다. 아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정말 큰돈의 단위였던 것 같다. 시보 교육을 담당한 판사와 동기는 나의 고민을 듣고 웃으며 맡아야 한다고 대답해주었다. 국선변호인으로서 그때 내가 변호한 피고인은 직장 동료인 여성들이 이용하는 화장실 변기 안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여 촬영하고 결과물을 인터넷에 유포한 삼십대의 남성이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기록 중 사진은 흐릿했고 피해자들의 신체 부위만 드러날 뿐 인적사항을 식별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국선변호인 P

    국선변호인 P

    영화 ‘7번방의 선물’에 등장하는 6살 지능의 용구의 국선변호인은 교도소 수감자들의 탄원서를 재판정에 전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도 용구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변호하지 않았다. 영화는 사회적 약자를 변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선변호인제도가 제도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듯하다. 하퍼리의 앵무새죽이기는 국선변호인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국선변호인 핀치는 흑인 톰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생을 걸었다. 법정에서 인종의 편견과 싸우고 톰을 끌어안으려 했던 백인 여성 메이엘라의 거짓을 밝히는 데 혼신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유죄였다. 그러나 1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흑인의 권익이 신장된 때에, 핀치는 자기집 식모 흑인 캘퍼티아의 손자 지보가 과속으로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마음 이론(Theory of Mind)

    마음 이론(Theory of Mind)

    얼마 전 업무 차 외교부 청사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평소에 광화문 거리에서 천천히 걷기를 좋아하는데 나에게는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을 마주하고 경복궁을 바라보는 방향이 익숙하다. 그날 정부종합청사의 외교부 별관에서 지도 어플을 보며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걷는데 나의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너무도 낯설어 마치 처음 가본 장소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서 있는 위치와 마주한 방향에 따라 얼마나 바라보는 풍경과 관점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새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수급정상화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회의 주제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이었다. 법률시장 규모, 국내총생산 및 인구수 대비 변호사 공급 과잉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위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북핵과 동시이행의 문제

    북핵과 동시이행의 문제

    북미정상회담 취소와 재개시도 그리고 다시 남북정상회담. 한반도는 북핵해결을 위해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다. 북핵해결 로드맵에서 한반도비핵화, 완전한 핵폐기, 체제보장 등 용어상의 독해가 절박하게 요청되는 때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핵폐기 이행방법으로 보인다. 미국은 먼저 핵을 폐기하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반면 북한은 체제를 보장해주면 핵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한다. 핵폐기 후 붕괴된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핵폐기와 체제보장을 교환하는 방법을 높고 트럼프 미정부와 북한은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북핵문제를 볼 때면 동시이행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부동산 매수자가 계약금과 중도금 그리고 잔금을 지급하면, 매도인은 소유권이전등기의무와 인도를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습작(習作), 죽음에 대하여

    습작(習作), 죽음에 대하여

    호주의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가 104번째 생일 선물로 원한 것은 ‘편안한 죽음’이었고, 가족의 배웅 속에서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되는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지난 10일, 그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우리는 신체가 건강한 사람에게, 그가 설령 백세의 노인일지라도, 스스로 생을 마감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건강을 현저하게 잃은 고령의 환자에게조차 권리의 인정에 인색해왔다. 10년 전 식물인간이 된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로 연명했고 할머니의 가족들은 치료의 중단을 위해 투쟁해야 했다.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인 고령의 김할머니를 인공호흡기로 치료하는 것에 대해,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의 단순한 현상 유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평양지방법원을 꿈꾸며

    평양지방법원을 꿈꾸며

    4월 27일 판문점,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역사적인 날이다. 오랜기간 이별했던 가족이 상봉하는 기쁨처럼 남북정상은 서로를 포옹했다.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분단의 경계선을 오고 가는 모습을 보며 통일을 향한 작은 발걸음을 보았다. 만남을 지켜보며 곧 다가올 통일시대에 넓어지는 변호사의 역할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평양시민으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은 나는 새벽녘 부산역에서 KTX를 타고 평양역에 도착할 것이다. 점심은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 지하철을 타고 평양 법정 앞에 도착한 나는 평양에 거주하는 의뢰인과 마주하며 제출한 준비서면과 함께 향후 소송대응방안을 설명해 줄 것이다. 의뢰인은 남한기업에 취업했는데 부당해고 통보를 받고 이를 다투려 한다. 법정에 도착한 나는 평양지방법원 소속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나의 의뢰인

    나의 의뢰인

    그녀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운다는 걸 알고 나는 당황했다. 아차, 놓쳤구나 싶었다. 아름다운 날씨의 봄, 금요일 오후 가정법원 조정실에서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아 조정위원이 다섯 살 딸아이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다. 의뢰인이 소송을 통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란 도무지 쉽지가 않다. 가장 뛰어난 화법은 경청이라는데, 듣는 게 참 어렵다. 내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을 참아야 하며, 더욱이 마음을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과묵한 의뢰인이라면, 적절한 질문과 호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도 있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경험과 이해가 필요한 일인가. 나에게는 늘 어렵다. 이번에는 그녀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삼십대 초반인

    홍지혜 변호사 (법무법인 제이앤씨)
    아! 빌라도

    아! 빌라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암송하고 있는 사도신경의 내용을 보면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초대 교부들은 예수의 죽음이 빌라도의 오판 때문으로 본 듯하다. 총독 빌라도는 재판 중 예수에게 3차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그는 유대민중들의 거듭된 사형요구에 민란이 두려워 사형선고를 했다. 소크라테스는 어떤가. 잘못된 사상으로 청년들의 영혼을 오염시켰다는 이유로 배심재판에 회부된 후 독배를 들었다. 두 재판은 재판의 독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주고 있다. 교회는 빌라도가 재판관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저버린 행동을 정죄했으나, 지동설을 받아들인 갈릴레오를 신성모독죄로 법정에 세우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이처럼 재판의 역사는 재판관의 독립된 판단이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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