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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상인, 속물 그리고 가려진 욕망

    변호사, 상인, 속물 그리고 가려진 욕망

    한 달 전이었다. 상담이 끝난 후 의뢰인들로부터 상담료를 받았다. 그동안 지인들의 소개로 의뢰인들이 찾아왔기에 상담료를 받지 않곤 했는데, 그날 처음으로 상담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것이었다. 현금이었다. 제공한 법률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현금을 받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손으로 현금을 받아드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 연수원 동기 몇 명과 만났다. 맥주를 마시며 그 중 두 명과 '수임료와 사건에 쏟아붓는 노력의 비례 관계'에 대해 얘기했다. 어쏘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본인은 어쏘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이 지불한 수임료만큼 일하게 된다고 하면서, 자신이 속물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했다. 개업 변인 나와 다른 동기는 그의 말에 동감하며 그를 위로했다. 아마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망자의 대리인

    망자의 대리인

    어쏘 변호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배당 받았다. 피고의 자리에서 적극 방어하여야 할 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여 망자가 되어 버렸고, 황망하게 남편을 잃고 상속인으로서 피고의 자리에 선 유족은 원고들과 망자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밤늦게 사무실에 혼자 남아 항소이유서를 준비하면서 망자의 행적을 재구성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들면서 망자가 옆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로서 남아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이 될까. ‘내가 당신 대신 열심히 도울 테니 걱정말라고, 그리고 당신도 열심히 도우라’고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고등법원 첫 변론기일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을 신청하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나와 그들이 사는 세상

    나와 그들이 사는 세상

    작년 12월 대학 동기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었고, 개업에 관한 얘기도 나누었다.    그런데 그녀는 본인이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변호사가 아닌 사업가로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얼마 전 읽은 책을 통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가나 투자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할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학교에서는 직원이 되는 방법을 가르칠 뿐 자본가나 투자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란다.   친구가 말한 그 책은 나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몇 해 전 군에서 전역하고 미래에 대해 막막해 할 때였다. 고시 공부를 하고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북경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증인’이라는 영화를 뒤늦게 보았다. 별 기대 없이 틀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중간 중간 기장과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으로 끊겨서 다 보지 못하고 결국 집에 와서 뒷부분을 마저 보았다.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린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증인’은 한 변호사가 살인사건 피고인의 변호인이 되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건 당일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성향 중학생 소녀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중학생 소녀가 변호사에게 던진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은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초심을 일깨우는 화두처럼 필자에게 다가왔다.    작년에 3건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 건은 국과수 감정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선택의 기준

    선택의 기준

    2014년 사법시험 2차 시험을 2개월 정도 앞둔 어느 봄날, 노장 3명은 신림동 원룸 건물의 옥상에서 고시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사람들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그들은 퇴근 후 가족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저녁을 먹을 것이다. 그들이 부러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고….” 누군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시작한 말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다른 두 사람도 바로 맞장구를 쳤다. 전장에서 여러 번 패배한 노장들은 시험 합격 그 자체가 목표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앞으로의 꿈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우리들은 공책에 각자의 꿈을 적었고, 잠시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하룻밤

    하룻밤

    변호사로 개업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기업, 국회, 은행, 대학, 시민단체, 연구소, 로타리, 카네기, 무슨 무슨 CEO 과정들, 동창모임, 지역 모임까지, 그동안 거쳐 왔고 또 지금 몸담고 있는 분야의 사람들과 저녁마다 약속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여러 모임에 가입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만큼 사건도 많아졌다. 일정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빼곡히 채워지고, 저녁약속은 두세개가 겹치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주말에도 경조사, 골프에 워크샵까지 일정이 빽빽했다.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고,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하루는 유독 힘든 의뢰인의 ‘말바꾸기’에 대응하다가 스트레스를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지금 당장 어디로든 탈출하고 싶었다. 서울 근교의 사찰의 템플스테이를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소중하고 중요한 것

    소중하고 중요한 것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어느 날이었다. 그날 저녁 난 운동장에 서서 떨어지는 해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간 과거처럼 앞으로의 삶도 금방 흘러갈 텐데, 난 과연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애쓰며 공부를 하나’란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러나 모범생이던 나는 대학 입학 이후 그 고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한 고민은 공부에 방해만 될 것이 분명했고, ‘이유는 모르지만’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 법대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 동기 1명, 선배 2명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강릉에서 출발해 부산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셋째 날이었던가, 그날 밤에도 우리들은 교회에 신세를 졌다. 잠자리를 대충 준비하고 대화를 나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크로스체크(cross-check)

    크로스체크(cross-check)

    국회 법사위원장 비서관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법사위 전체회의에 아파트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가능하게 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올라왔다. 원안에는 1차 안전진단을 한 업체가 2차 안전진단까지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원안대로 하면 건물안전에 대한 크로스체크가 되지 않아 심각한 안전상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어 시행령에 ‘2차 안전진단은 다른 기관으로 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넣는 것을 부대조건으로 달아서 통과시켰다. 만약에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어서, 만에 하나라도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였다면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우리 법률사무소는 고소대리 사건을 수임하면 고소장을 검찰청에 제출한다. 절대 다수의 경찰들은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차차 나아 진다

    차차 나아 진다

    몇 해 전 친한 형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한의원이 지하철역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한의원 목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지인의 걱정 어린 말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한의원이 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는 보이지 않았다. 한의원은 깔끔했으나, 조용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형이 진료실 침대에 눕게 한 후 내 몸을 꼼꼼히 살폈다. 팔을 이리저리 돌려 어깨 관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고관절과 무릎 관절의 운동 범위를 여러번 확인했다. 그리고는 진단결과를 말해준 다음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침을 놓았다. 진료를 시작한 때로부터 30분이 지나 있었다. 형에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미안하다

    미안하다

    서울 소재 법과대학에서 2년 동안 강의를 했다. 겸임교수로 법학개론, 가족법, 민사소송법 등을 가르쳤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강의 준비가 잘 되지 않았던 날은 강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사건들 이야기를 해 주면서 시간을 때운 적도 있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정답시비가 없게끔 조문이나 판례위주로 출제했다. 학생보다 교수의 편의를 먼저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배움에 목말라 있는 초롱초롱한 수많은 눈들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럼 없이 강의했노라”고 말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하겠다. 실력도 인품도 부족한 사람이 겸임교수라는 이름을 달고 살았다. 그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에게 “잘못 가르쳐서 죄송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참회한다.  모교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전국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고생했다

    고생했다

    늦은 밤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왔으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신림역까지 걷기로 하고 자취방을 나섰다. 걸어도 걸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예정했던 신림역은 벌써 지나쳤지만 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계속 걸었다. 사법시험 2차 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은 초여름 밤이었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 불안감 속에서 난 더욱더 강도를 높여가며 지난 수험 기간을 검열했다. 난 그동안 무얼 하며 지냈던가, 내가 공부를 하기는 하였던가. 지난 수험 생활은 불성실로만 가득차 있었다. 고시 공부를 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그러한 검열 끝에 ‘불성실한 나는 시험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나같은 녀석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았다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법의 날 단상(斷想)

    법의 날 단상(斷想)

    '파벌망한(派閥亡韓)'이라는 말이 평창올림픽 이후 체육계 일부에서 나왔다. 뜻은 '이 나라는 파벌 때문에 망할 것이다' 정도가 되겠다. 실제로 나라가 파벌과 파벌이 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너는 누구 편이냐"를 끊임없이 묻는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차이가 없고, 공직이든 민간 영역이든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당신 편이야"라고 일단 줄을 서야지 운이 좋으면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있다. 일부 종목에서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려면 실력보다는 파벌이 중요하고, 학부모들은 좋은 파벌에 들어가야 일류대에 들어갈 수 있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법치국가 성립 이전의 원시 수렵시대 부족들의 공동사냥, 공동분배와 다를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파벌이 내세우는 명분은 구성원들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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