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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프리즘 리스트

    차차 나아 진다

    차차 나아 진다

    몇 해 전 친한 형이 운영하는 한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다. 한의원이 지하철역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한의원 목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지인의 걱정 어린 말이 떠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한의원이 있는 건물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는 보이지 않았다. 한의원은 깔끔했으나, 조용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형이 진료실 침대에 눕게 한 후 내 몸을 꼼꼼히 살폈다. 팔을 이리저리 돌려 어깨 관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고관절과 무릎 관절의 운동 범위를 여러번 확인했다. 그리고는 진단결과를 말해준 다음 치료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침을 놓았다. 진료를 시작한 때로부터 30분이 지나 있었다. 형에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미안하다

    미안하다

    서울 소재 법과대학에서 2년 동안 강의를 했다. 겸임교수로 법학개론, 가족법, 민사소송법 등을 가르쳤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강의 준비가 잘 되지 않았던 날은 강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사건들 이야기를 해 주면서 시간을 때운 적도 있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정답시비가 없게끔 조문이나 판례위주로 출제했다. 학생보다 교수의 편의를 먼저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배움에 목말라 있는 초롱초롱한 수많은 눈들을 생각하면 “나는 부끄럼 없이 강의했노라”고 말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하겠다. 실력도 인품도 부족한 사람이 겸임교수라는 이름을 달고 살았다. 그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에게 “잘못 가르쳐서 죄송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참회한다.  모교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전국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고생했다

    고생했다

    늦은 밤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왔으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신림역까지 걷기로 하고 자취방을 나섰다. 걸어도 걸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예정했던 신림역은 벌써 지나쳤지만 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계속 걸었다. 사법시험 2차 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은 초여름 밤이었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 불안감 속에서 난 더욱더 강도를 높여가며 지난 수험 기간을 검열했다. 난 그동안 무얼 하며 지냈던가, 내가 공부를 하기는 하였던가. 지난 수험 생활은 불성실로만 가득차 있었다. 고시 공부를 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그러한 검열 끝에 ‘불성실한 나는 시험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나같은 녀석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았다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법의 날 단상(斷想)

    법의 날 단상(斷想)

    '파벌망한(派閥亡韓)'이라는 말이 평창올림픽 이후 체육계 일부에서 나왔다. 뜻은 '이 나라는 파벌 때문에 망할 것이다' 정도가 되겠다. 실제로 나라가 파벌과 파벌이 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너는 누구 편이냐"를 끊임없이 묻는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차이가 없고, 공직이든 민간 영역이든 다를 바가 없다. "나는 당신 편이야"라고 일단 줄을 서야지 운이 좋으면 이너서클에 들어갈 수 있다. 일부 종목에서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려면 실력보다는 파벌이 중요하고, 학부모들은 좋은 파벌에 들어가야 일류대에 들어갈 수 있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법치국가 성립 이전의 원시 수렵시대 부족들의 공동사냥, 공동분배와 다를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파벌이 내세우는 명분은 구성원들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다들 하는 고민

    다들 하는 고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몇 달 동안 쉬었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TV 드라마를 보고 인터넷을 하면서 빈둥거렸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했다. 일단 변호사 업은 아니어야 했다. 다툼의 한가운데 서서 소리치고 싶지 않았다. 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돈은 풍부히 벌고 싶었다. 카페 창업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맛나는 커피를 만들고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하면 손님들이 몰릴 것 같았다. 맛카페와 멋카페가 곳곳에 널렸지만, 내가 차리면 유독 잘 될 것만 같았다. 시스템에 의해 카페는 굴러갈 것이고, 난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을 구경하면 될 것이다. 부동산 거래 앱 개발도 괜찮아 보였다. 부동산 불패이니 부동산 거래부터 이사, 청소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11살 아이

    11살 아이

    9년 전 성탄전야에 아들이 유도분만으로 태어났다. 원래 출산예정일은 다음 해 1월 초·중순이었으나, 마침 그 즈음 아기 엄마는 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해야 했고, 아빠는 제1회 변호사시험을 봐야 하는 등 접시 3개를 동시에 돌리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시기였다. 엄마는 산후조리원에서 누워서 공부하다가 시험장에 들어갔다. 그해 아빠는 변호사가, 엄마는 의사가 되었다. 8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빠는 변호사로 여러 가지 성과를 거두고 있고, 엄마도 어엿한 대학병원 전문의가 되었다. 그해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의사 국시 합격률이 50%도 안 되었더라면, 아빠는 변호사가, 엄마는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률(87.2%)이 높아서 변시 출신들이 실력이 부족하여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개업 변호사로서 내 상상의 방향

    개업 변호사로서 내 상상의 방향

    지난 2월 중순 군대 동기와 후임, 대대장님을 만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개업을 했다고 알리며 새로 만든 명함을 건넸다. 오랜만에 만나 내 근황을 들은 후임은 나에게 “변호사 형님이 생겨서 든든합니다. 사건 생기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축하 인사를 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어떻게 답할지 고민했다. 개업 변호사로서 ‘사건 생기면 연락 달라’고 대답해야 했으나, 그 말은 그 후임에게 법적 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제로 한 것 같아 꺼려졌다. 변호사는 법적 분쟁을 다룬다. 그리고 대체로 분쟁이 무르익을 즈음 사건에 개입한다. 사람들은 먼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분쟁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기에, 분쟁이 발생하고 불안감이 증폭될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사면의 미래

    사면의 미래

    얼마 전 삼일절 특사 관련 라디오 인터뷰를 했다. 현재 재판 진행중인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특별사면 가능성을 묻길래, "형이 확정된 이후 사면 여부를 논의할 때에는 과거의 사면 사례에 대한 심도 깊은 검토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지법에서 진행되는 피고인 전두환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사건, 일부 극우 인사들의 북한군 개입설 등의 망언을 보면서, 과연 전두환에 대한 사면은 옳은 일이었는가에 대한 깊은 의문이 생겼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존재하고 당시에도 여전히 고통 받고 있었는데, 피해자들의 의견수렴 절차는 거쳤을까? 반성하지 않는 자를 용서하는 것이 국민적 통합에 기여하리라고 예상했을까? 치열한 법리 다툼 끝에 용기 있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린 사법부에 대한 고려는 있었을까?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그들은 나와 다를 수 있다.

    그들은 나와 다를 수 있다.

    2010년 7월 군에 입대했다. 신병교육대 입소 첫날 조교들의 삼엄한 감독 아래 총을 수령했다. 건네받은 총은 무겁고 묵직했다. 달리 특별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은 수월했고 체력적으로도 견딜 만했다. 다만 훈련 내내 총을 휴대해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팔과 어깨가 뻐근했다. 걸리적거리기만 하던 총이었으나 제 몫을 할 날이 왔다. 사격 훈련 날이 된 것이다. 동기들은 실탄을 쏜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설렌 우리 조 동기들과 함께 사격장으로 향했다. 사격장이 다가올수록 선행 조의 사격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사격장 앞 공터에 도착했을 때 그 소리는 굉음으로 발전해 있었다. 가까이서 듣게 된 총소리에 나도, 다른 훈련병들도 모두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나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내가 법정에서 사배(四拜)하는 이유

    내가 법정에서 사배(四拜)하는 이유

    아들이랑 절에 갔다. 완전히 엎드린 채, 전신을 바닥에 바싹 붙여 절하는 오체투지를 하길래, 시범을 보여 가며 한국식 절하는 법을 가르쳤다. 부처님(佛), 그의 가르침(法), 스님(僧)을 생각하며 삼배(三拜)를 한다는 의미도 알려 주었다. 다음 날 변론하러 갔다. 법정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반배(半拜), 변호인석에 앉기 전 반배, 재판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배, 법정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반배하는 습관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항상 법정을 드나들면서 사배(四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에 대하여 한 번,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하여 한 번, 헌법 제103조가 규정하는 법관에 대하여 한 번, 당해 사건 재판부에 대하여 한 번. 이렇게 존중과 경의를 담아 사배(四拜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
    그들은 법률 전문가 아니다.

    그들은 법률 전문가 아니다.

    몇 개월 동안 애를 썼던 형사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사회 경험도 많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 학업을 마쳤고 전공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취직해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관련 사업체를 인수·운영하였다. 그런데 그 사업체 인수 및 운영 과정에 법 위반 사실이 있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었다.  피고인이 희망에 부풀어 작성했던 양수도 관련 약정서가 공소사실의 유력한 증거였다. 피고인은 사업체의 온전한 인수만을 의욕하고 그 약정서를 작성했으나, 수사기관은 그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부 조항들에 주목했다. 그 조항들은 양도인의 요구로 추가된 것이었는데, 피고인은 해당 조항들에 공소사실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조항들로 인하여 양도인뿐만 아니라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정의없이 조정없다

    정의없이 조정없다

    “원고가 양보하도록 어서 설득하세요.” 이게 무슨 말인가. 1심에서 전부 승소 판결을 받은 후 피고만 항소를 해 잡힌 조정이었다. 의뢰인인 원고는 피고에게 십수 년 간 많은 돈을 빌려줬고, 이자 몇 번밖에 받질 못해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럼에도 조정위원은 “인척 간인데 어지간하면 합의하라”, “되는대로 깎아서라도 일단 받아라”고 한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자 재판장을 부른다. 이유인즉슨 “원고 대리인이 버티고 있으니 강제조정 결정을 하셔야 할 것 같다”는 것. 어리둥절한 표정의 재판장은 설명을 듣더니 “강제조정 할 사안이라 보기 어렵네요. 변론기일 잡겠습니다”라며 웃으며 금세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다는 조정에서의 신선한(?)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일까. 여전히 당황스

    장희진 변호사 (지음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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