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는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멸시효를 폐지하는 연방 법률이 제정돼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상 권리 구제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법제처 세계법제정보센터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9월 16일 '아동 성범죄 피해자 사법적 제약의 제거에 관한 법률(Eliminating Limits to Justice for Child Sex Abuse Victims Act of 2022)'을 제정해 미 연방법상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폐지했다.
리처드 조셉 더빈 미 상원의원(민주당, 일리노이)이 지난해 10월 발의한 이 법률은 올해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뒤 지난 9월 16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최종 서명하면서 시행됐다.
미국은 기존 형법상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형사상 공소시효를 규정하지 않았지만, 형법 제2255조를 근거로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가 제기할 수 있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시효를 피해자가 18세가 되는 날 또는 범죄가 확인된 날로부터 10년으로 제한해 왔다.
이 법률은 제정과 동시에 시행됐는데, 제정일인 9월 16일을 기준으로 기존 형법 제2255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한 적이 없는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는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한 금전적 구제 등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법률의 소급 적용은 불가능하다.
미국 형법 제2255조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 범죄로는 아동 또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강제 노동, 인신매매, 성매매, 성 착취 및 학대, 아동포르노 관련 행위, 성매매 또는 착취를 목적으로 아동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행위, 성범죄 위험이 있음을 알면서 아동을 매매하는 행위 등이다.
미국에서는 뉴욕주와 아이오와주, 메인주 등 주 차원에서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의 민사상 구제를 위한 입법적 개선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연방법상 변화를 계기로 성범죄 피해를 당한 미성년자의 권리 구제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강병진 미국 뉴욕주 변호사는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의 소멸시효를 폐지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아무래도 미성년자 성범죄는 그 사실을 드러내기가 어렵고 성인이 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 소멸시효 폐지 등 입법 개선이 있어 왔는데, 연방법도 이에 발맞춰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방법상 변화에 따라 다른 주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며 "현재 모든 주에서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멸시효를 폐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번 변화를 계기로 미국 내 소멸시효 폐지 흐름에 상당한 기폭제가 되리라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0조에 따라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공소시효를 중지하고 있다. 만 13세 미만이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경우 '형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각각 규정하고 있는 강간죄, 강제추행죄, 준강간죄, 준강제추행죄, 강간 등 상해·치상, 강간 등 살인·치사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아울러 현행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가 있던 날로부터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2020년 10월에는 이 조항에 제3항이 신설돼 미성년자가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그 밖의 성적 침해를 당한 경우 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진행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