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칼럼에서 작년까지 지재법 관련 학계와 실무계를 휩쓸던 메타버스와 NFT 이슈가 금년 들어 잠잠해지고 대신 생성형 AI에 관한 논의가 재유행하는 것 같다고 썼다. 개별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실무계가 유행을 좇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학계마저 그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로펌의 과제가 주로 단기 지속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학계의 과제는 그러한 현상적 이슈에 공통적으로 내재하는 장기 지속성 주제를 선별하여 천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에 관해서는 훗날 본 칼럼에서 따로 논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사진기술의 등장을 전후하여 펼쳐졌던 저작권법에 관한 ‘과거’ 논의가 AI 출현 이후 전개되고 있는 ‘현재’ 혹은 ‘미래’의 저작권법 논의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쓴 《명화의 비밀》(남경태 옮김, 한길아트, 2003)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초상화의 대가들이 그린 ‘명화의 비밀’은 이미지를 베끼기 위해 사용한 카메라 옵스쿠라 기법에 있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자 이태호는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생각의 나무, 2008)라는 책에서 조선시대 후반기 화가들도 초상화를 그릴 때 카메라 옵스쿠라 기법을 활용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얼굴 주름은 물론 터럭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양이든 우리나라든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렌즈와 거울 등 광학기기를 도구로 사용한 것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될 까닭은 없다.
문제는 카메라 옵스쿠라 기법이 사진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진 뒤에 생겼다. 1839년 처음 사진기술이 등장하였을 때, 인간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피사체의 이미지가 필름이라는 기록매체에 기계적으로 고정되고, 그 이미지가 그대로 객관적으로 재현되는 것이기에 인간은 아무런 창작적 역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당연히 ‘사진기술에 의한 이미지 재현물’은 저작권법으로 보호될 수 없었다.
사진기술의 등장을 전후한 저작권법의 ‘과거’ 논의가 AI 출현 이후 전개되고 있는 ‘현재’ 혹은 ‘미래’의 저작권법 논의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저작권법의 보호요건으로 창작성 개념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사진기술에 의한 이미지 재현물’을 보호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부터라는 법제사적 관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AI 생성물에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창작성’ 요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진기술의 이미지 재현과정을 분석·연구하는 가운데 점차 사진기술의 기계적·객관적 측면보다는 인간이 사진기술을 사용하는 과정, 즉 피사체를 선정하여 촬영방법을 선택하고 현상·인화하는 일련의 과정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진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촬영자)의 창작적 역할을 긍정하고 카메라는 창작을 보조하는 ‘도구’라고 규범적 평가를 하게 된 것이다.
저작권을 부여하는 근거로서 저작자의 개성의 표현, 즉 창작성 개념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사진기술에 의한 이미지 재현물’을 저작권법으로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를 논의하면서부터라는 법제사적 관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창작성 개념이 그 이전에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문학·음악·미술저작물과 같은 전통적 예술작품의 경우 창작성은 너무나 당연한 전제조건이었기에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이처럼 1860년대 유럽 각국의 저작권법 차원에서 ‘사진기술에 의한 이미지 재현물’을 보호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장면에서 창작성 개념이 저작권법 보호요건으로 ‘새삼’ 호명되었던 것이다. 저작권법에서 ‘사진기술에 의한 이미지 재현물’을 명시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한 것은 1862년 영국 저작권법이 처음이다. 이때 1862년 법에 처음으로 ‘창작성’ 요건이 등장하였다. 인간의 지시에 의한 AI 생성물에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창작성’ 요건이다.
박성호 교수(한양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