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관심은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쏠려있다. 유류분 제도의 변동이 있을 경우 경영권 승계 구도 등이 변할 수 밖에 없어서다.
유류분 제도가 유지되는 한 부모가 특정 자식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유언했더라도 다른 자식들도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 개인의 마지막 재산 처분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상황. 유언을 남긴 사람과의 생전 관계는 무시된다. 불효자나 계모 등 생전에 부정적 관계였을지라도 사후 본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 기업으로 전환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기업의 경영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자식들이 상속 재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회사의 주식에 대해 유류분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류분 앞세운 경영권 분쟁
실제로 재벌가에서는 유류분을 앞세운 경영권 분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석범 BYC 회장이 부친인 고(故) 한영대 전 회장의 상속재산을 두고 가족과 1300억 원대 소송이 지난달 23일 시작됐다.
한 전 회장의 배우자이자 한 회장의 모친인 김모 씨와 그의 다른 자녀인 한지형 BYC 이사, 한민자 씨가 한 회장과 한기성 한흥물산 대표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김 씨 등은 지난해 12월 한 회장을 상대로 한 전 회장이 별세한 후 유산 상속 과정에서 법적으로 보장된 유류분을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냈다.
최근 LG그룹에서 불거진 상속 분쟁에서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 등이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소송을 제기하며 예비적으로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한다고 밝혀 ‘유류분 제도’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LG의 세 모녀 측은 예비적으로 청구했던 유류분반환청구은 지난달 취하했다.
앞서 2015년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혼외자인 이모 씨는 2017년 이 명예회장의 부인인 손복남 CJ그룹 고문과 이 회장 등 삼남매를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패소한 뒤 2심에서 소 취하로 종결됐다.
경영권 승계 끝나지 않은 그룹도 분쟁 가능성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그룹들 역시 유류분을 둘러싼 분쟁의 씨앗은 남아있다.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우,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 사이에 삼남매를 두고 있는 한편 동거인 김모 씨와의 사이에 혼외자가 있다. 김 씨에게는 또다른 자녀들도 있어 향후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이혼한 뒤 최 회장이 김 씨와 혼인신고를 할 경우에는 추후 자식들이 서로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더 다양해진다.
한국 재계 순위 3위인 현대자동차그룹도 자유롭지 못하다. 정의선 회장의 누나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커머셜 사장,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이 정 회장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계 순위 7위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경우에도 첫째 아들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지만, 추후 둘째 아들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셋째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유류분을 무기로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박수연·한수현·이용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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