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사에서 몇년간 준비한 OTT시리즈가 릴리즈를 앞두고 있다. 지난 주말 유튜브에서 고객사 시리즈의 예고편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고객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보냈다. 고객은 릴리징을 앞둔 마음을 “’제발‘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다 “는 절실한 답변으로 표현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답을 남긴 후, 남은 주말동안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넷플릭스를 켜서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유튜버의 추천을 받기로 했다. 유튜브에 접속해서 “넷플릭스 영화” 추천을 검색하니 조회수가 수십만은 족히 넘는 영상콘텐츠들이 엄지손가락을 따라 줄줄이 올라온다.
이 영상들중 하나를 플레이했더니 20분 남짓의 시간동안 그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 주요 스토리라인과 결말까지를 요약해서 볼 수 있었다. 빠르고 효율적인 스토리 감상이었다.
이렇게 영화나 시리즈를 요약하여 볼 수 있도록 편집하여 만든 영상을 ‘패스트무비’라고 한다.
얼마전 개봉한 존윅4를 보기전에 친구는 유튜버에서 존윅1편부터 3편까지를 패스트 무비로 빠르게 감상했다고 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효율적이지만 유료 OTT서비스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영화를 이렇게 ‘무상으로’ 소비해도 되는 것인가 싶다. 내가 이 영화들중 하나를 연출한 사람이라면, 섬세한 영상 표현과 스토리라인, 대사들이 생략되고 오로지 유튜버 개인의 관점에서 편집된 영상이 돌아다니는 것을 유쾌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권자에는 복제전송권, 2차적저작물작성권이라는 저작재산권과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인격권이 인정되는데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시리즈가 이처럼 패스트무비로 제작되는 것에 대해 영화제작사와 배급사 등 권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제작사들은 최대한 많은 관객들이 콘텐츠 릴리징 초기에 포털서비스나 SNS에 긍정적인 리뷰를 남겨주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광고대행사를 통해 유튜버에게 콘텐츠 제작 및 스트리밍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
유투버가 박진감 넘치게 짧게 편집해서 올려놓은 영상물을 보다보면 '이거 봐야겠다' 싶은 영화나 시리즈가 눈에 들어오고 그 때 비로소 넷플릭스로 들어가거나 영화티켓을 예매하는 것이 콘텐츠 소비자의 행동 습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제작사에게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리뷰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흥행에 있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권리자로부터 이용허락을 얻고 자료를 제공받은 경우가 아니라, 관행상 허용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영화나 시리즈 영상을 자의적으로 편집하여 이용한다면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 '패스트 무비'와 관련하여 원본 영화제작사와 유튜버들 사이에 저작권 분쟁이 있었다.
이 유튜버들은 일본의 영화제작사들이 제작한 영화 총 54편에 대한 '패스트 무비'를 제작하여 유튜브에 업로드하였고, 영상으로 인해 얻은 광고수익은 약 700만엔에 달하였다. 영화제작사들은 유튜버들에 대하여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법원은 약 5억엔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유튜브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편당 약 400엔(한화 3,800원) 이상의 서비스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문제가 된 '패스트 무비'의 조회수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에서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저작물이 복제되고 재생산된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공정이용과 위법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패스트무비’의 사례에서처럼 소비자의 행동변화에 따라 권리자와 이용자간 협업이 필요해진 산업군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이용으로 인해 권리자의 시장이 침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상호 이익을 꾀할 수 있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유튜브가 음원저작권자에게 수익을 배분하기 위하여 운영하고 있는 ‘화이트리스트‘와 유사한 시스템을 영화나 드라마시리즈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권리자와 이용자간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쟁에 대한 긴장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영화를 즐겨보는 관람객 입장에서 보는 ‘패스트무비’는 어떠했는지 생각해본다. 혼자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주말에 결국 패스트 무비 몇 편을 보다 지치고 말았다.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단순히 스토리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 영화만의 섬세한 연출, 배우들의 표현력, 씬에 딱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의 절묘한 조합 이런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의 요소가 패스트무비에는 하나도 없었기에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패스트무비가 영화를 대체할 순 없겠구나 생각했다.
유튜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예술가들의 섬세한 작업으로 탄생한 ‘예술작품’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김유나 변호사(서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