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학원가 일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필로폰이 든 음료를 제공하고 이를 빌미로 학부모들에게 돈을 뜯으려 한 일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전담 수사팀.
법률신문은 30일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신준호 팀장(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을 만났다. 신 부장검사는 이 사건을 두고 "마약을 수단으로 한 새로운 유형의 보이스피싱 범죄이자 한국 사회에 마약이 깊숙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보이스피싱+마약 결합된 신종 범죄
4월 3일, 강남 학원가 길거리에서 기억력과 집중력에 좋은 음료의 시음 행사라는 말로 미성년자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를 마시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마약 음료에는 1회 사용량보다 무려 3배나 더 많은 양의 필로폰이 들어 있었다. 조직범죄일당은 음료를 마신 학생들의 부모에게 ‘당신의 자녀가 마약을 복용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돈을 요구했다. 상대방에게 정체를 알리지 않고 몰래 마약을 복용하게 한 일명 ‘몰래뽕’과 보이스피싱이 합쳐진 유례없는 사건이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마약 범죄의 타깃이 됐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사건 발생 이후 수사 기관은 발 빠르게 대처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찰청, 서울시, 식약처, 세관 등은 즉시 '마약수사 실무협의회'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전담수사팀은 전담검사와 수사관 등 인력 스무 명을 이 사건에 배치하고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사건 발생 한달여 만인 지난달 4일 길모 씨와 김모 씨를 구속기소 했고, 음료에 들어간 마약을 제공한 공범 박모 씨를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이 추가로 직접 수사한 결과 지난달 22일에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중국에 소개한 모집책 이모 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보이스피싱 총책 등 사건과 관련한 공범들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배후에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과 마약 공급 조직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간 보이스피싱 범죄는 상대방을 교묘하게 짜여진 각본으로 속여 돈을 갈취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이번 사건은 마약을 수단으로 삼아 피해자의 몸에 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 부장검사는 “거짓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몰래 마약을 먹여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악랄한 범죄”라며 “실제로 범행에 사용된 음료 병이나 박스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중국 마약공급책을 통해 원활한 마약 조달이 가능했던 일당이 금전적 이득을 충분히 얻을 때 까지 같은 범행을 계속 시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초기에 적발되지 않았다면 피해 규모가 훨씬 커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성년자 대상으로 마약 제공·영리 행위…검찰, “피고인들에 최대 사형 구형”
신 부장검사는“ 다시는 이런 범죄를 흉내조차 낼 수 없도록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마약이 테러에 사용된 초유의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한 구형으로 일벌백계 하겠다는 것. 수사팀은 사건 관련자 3명에게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면서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제공한 혐의와 더불어 영리를 목적으로 마약을 제공한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신 부장검사는 다만 현행법상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마약을 복용하게 하거나 투약하는 행위인 이른바 ‘몰래뽕’, ‘퐁당’ 범죄의 경우 이를 가중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대부분 마약범죄는 자신의 의지대로 투약을 결정하고, 쾌락을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판매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마약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마약의 투약 또는 사용으로 똑같이 처벌하고 있는 것”이라며 “남을 속여서 마약을 먹이는 행위에 대해서는 더 강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새로운 범죄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 같은 행위를 별도의 범죄 구성요건으로 규정하도록 법을 개정해 마약 범죄의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골든타임 얼마 안 남아…유관기관, 마약과의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임해야”
신 부장검사는 한국이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전방위적인 감시망을 구축하는 한편 수사 기법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신 부장검사는 우선 마약 범죄를 수사하는 수사기관이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마약은 주로 온라인을 통해 비대면으로 거래되는데, 이 때 마약 공급책이 구매자의 신분 확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위장된 신분이 필요한 셈인데 지금은 적극적인 위장 수사가 현저히 곤란해 조직적인 마약 거래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른바 ‘박사방’ 사건 이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위장수사 근거를 마련한 것처럼 마약범죄에도 이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 부장검사는 마약류에 대한 신고 포상 공익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마약류에 관한 범죄가 발각되기 전에 범죄를 수사기관에 신고 또는 고발하거나 검거한 사람에게는 대통령령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과 홍보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는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 부장검사는 “마약과 관련한 신고 포상금을 확대하면 신고 유인은 높아지는 반면 마약사범은 범행이 적발될 수 있다는 우려와 심적 부담을 크게 안게 될 것이다. 마약류 범죄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마약 범죄를 저지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련 기관들이 마약과의 전쟁을 치른다는 마음으로 감시망을 더욱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