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경 우리나라 김제시 금산에 ‘조덕삼’이라는 거상이 있었다. 그는 부친도 거상이면서 대지주였기 때문에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인이 되었고 모임을 위해 자신의 사랑채를 내주기도 했다. 이 집에는 여섯 살에 고아가 되어 떠돌아 다니다가 그 집 마부가 된 소년이 있었다. 사람이 점차 늘어 교회의 가장 큰 어른인 장로를 뽑기로 하였는데, 그 거상과 청년으로 자란 소년이 함께 장로 후보로 추천되었다. 청년은 마부 즉 머슴이나 마찬가지였고 거부보다 15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주인과 마부가 나란히 장로 후보가 된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투표 결과 주인을 제치고 마부인 청년이 장로로 선출되었으니 당사자들뿐 아니라 정작 투표를 한 사람들도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894년 갑오년에 법적으로 신분제도가 폐지되었다고 하나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신분차별이 존재할 때였다. 그러나 이 거상이 그러한 투표를 한 장내 사람들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선출된 장로를 잘 받들겠다고 다짐하면서 한순간의 정적과 염려는 사라졌다. 그는 실제로도 자신의 말을 성실히 지켰다. 더욱이 그는 청년 마부를 신학교에 진학시키고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였으며 그 청년이 목사가 되자 다시 자신의 교회로 모시고 장로로서 성심껏 일하였다. 이 청년은 나중에 한국 기독교계에서 큰 인물로 성장한 이자익 목사이다.
이 이야기는 특정 종교에 관한 미담이 아니다. 19세기 격동의 조선에서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200년 전에 일제치하 직전이었으니 민주주의도 모를 때이고 시민의식도 성숙하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우리 선조 중에는 조용하면서 위대한 개혁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투표한 사람들이 청년 마부 대신 그 거상을 선출하였다면 어땠을까? 아니, 만약 청년 마부를 후보에도 올리지 못하도록 하였다면 어땠을까? 또 만약 그 거상이 그 투표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중에라도 그 일 때문에 주인의 지위를 이용해 청년 마부에게 부당한 처우를 하였더라면 어땠을까? 그 당시 신분사회의 잔재가 남아 있던 모습을 그려보면, 그러고도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근 정치인이나 정부의 부정부패나 부도덕성을 비난하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적폐청산을 위해 법을 강력하게 개정하고 이를 엄정하게 집행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제도와 정책만으로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올바른 개혁을 바란다면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마부 청년을 뽑은 선조들처럼, 마부 청년을 뽑은 사람들을 존중하고 자신의 말을 지켜낸 그 거상처럼!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