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선의(善意)와 악의(惡意)가 있다. 선의는 ‘돕고자 하는 착한 마음’을 의미하지만, 법에서는 ‘법률상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악의는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나쁜 마음’을 의미하지만, 법에서는 ‘법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뭘 알아야 도울 수 있으므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생일인 줄 모르고 내가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한 날 미안했고, 늘 밝은 모습이기에 아픈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서 미안했다. 상황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화를 낼 때면 저렇게 힘들 때까지 내가 알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내가 해결해줄 수 없을지라도 듣기 위해 노력했고 알려고 애썼다. 그래야 덜 미안하니까.
법대에 입학해서 민법총칙을 배우는데, ‘모르는 게 선의’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의아했다. 같은 단어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 것은 모든 언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지만 아주 반대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 특히 표의문자(表意文字)를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드물다. 그런데 법을 공부해보니 법은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모르는 걸 착하다고 여겼다. 크게 피해를 입은 사람도 선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하고, 악의가 있으면 내 잘못이 아니어도 돈을 물어주거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더 희한한 것은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서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사정에 관심이 많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선배들을 따라다녔다. 그런데 법대에는 지식을 쌓는 것에만 몰두할 뿐, 친구들과의 관계나 상대의 마음에는 무관심한 학우들도 많았다. 그것은 성공의 비결이었다. 법조인에게 법률의 부지(malpractice)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가족과 친구의 아픈 마음쯤은 몰라도 당장 문제될 것이 없다. 나 역시 법조인으로 성장하면서 “몰라서 미안해”라는 말 대신, “그건 네 사정이고, 나는 몰랐잖아”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진실도, 마음도 내가 모르면 괜찮은 걸까.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 때 그 선배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