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는 '등대방'이 있습니다. 365일 불빛이 꺼지지 않기 때문인데,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처리하느라 방에 불이 꺼질 새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말 서초역 인근에서 책가방을 맨 직장인을 보면 90%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라는 말이 있다. 농담 같은 표현이긴 하지만, 얼마나 업무량이 상당할지 느껴지는 말이었다. 나중에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부장판사에게 전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진짜로 제가 그랬어요!"였다.
상고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건 상고사건의 통계다. 매년 본안사건만 4~5만 건 가량 상고되는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심리할 사건을 계산하면 1인당 연간 4000여 건의 사건을 담당하는 셈이다.
그 수만 보더라도 상고사건은 대법관을 보필하는 재판연구관 없이는 감당할 수 없다. 정확·신속하게 사건을 연구·검토한 뒤 보고서를 작성해 대법관의 최종 판단에 도움을 주는 재판연구관들이 있어 대법원 재판이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올해 법조일원화 제도 도입 10주년을 맞았다. 지금까지는 법관의 경우 통상 법관 경력 12년 차 이상이 되는 판사들이 재판연구관으로 임용됐지만 앞으로는 재판연구관 선발 기준이나 운용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법원조직법이 개정되면서 현재 법관 임용에 필요한 최소 경력 5년에서 2025년부터 필요한 법조경력이 7~10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당장 2년 뒤의 일인데 앞으로 어떻게 재판연구관을 임용할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나오지 않고 있다. 법원 안팎에선 "이미 늦었다"는 자조섞인 말도 나온다. 재판연구관 시스템이 완비됐을 때 상고심 사건 처리에 신속과 정확성이 담보될 수 있다.
"이걸 어떻게 다 처리할까 싶을 정도의 업무량인 만큼, 때론 동료들과 '대체 우리가 어쩌다가 재판연구관에 지원했을까'란 얘길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재판연구관으로서 판사, 전문가 등과 함께 토론을 거듭하며 일선 법원에서 재판을 하면서 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고, 대법관을 보좌하며 그동안 갖지 못했던 시야를 갖추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상고심 판단을 보필했다는 점이 큰 자부심으로 남습니다."
재판연구관을 지낸 부장판사의 말이다. 오늘도 대법원은 등대처럼 서초동을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