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일 이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에게는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지 않도록 한 세무사법 조항이 가까스로 위헌 결정을 면했다. 9명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위헌(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이 다수였지만 위헌결정 정족수인 6명에는 이르지는 못했다.
헌재는 2018년 1월 이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A변호사 등이 "세무사법 제3조와 관련 부칙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2018헌마279 등)을 15일 기각했다.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부여하는 내용을 삭제한 세무사법 제3조에 대해서는 재판관 5(합헌)대 4(위헌)의 의견으로, 이러한 개정 내용을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토록 한 세무사법 부칙 제1조 등에 대해서는 재판관 4(합헌)대 5(헌법불합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1961년 9월 9일 세무사법이 제정된 이후 2017년까지 56년간 변호사는 세무사법 제3조 3호에 따라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부여 받았다. 하지만 2017년 12월 이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 내용은 부칙 제1조에 따라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개정법은 다만 부칙 제2조에 '법 시행 당시 종전의 제3조 3호의 규정에 따라 세무사의 자격이 있던 사람은 개정규정에도 불구하고 세무사 자격이 있는 것으로 본다'는 경과조치를 둬 2017년까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에게 자동 부여된 세무사 자격은 그대로 유지하게 했다.
2018년 1월 제47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A변호사와 같은 해 제7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B변호사 등은 개정 세무사법에 따라 세무사 자격을 자동 취득하지 못하게 되자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 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격 자동 부여 폐지에 대해 "특혜 시비를 없애고 세무사시험에 응시하는 일반 국민과의 형평을 도모하면서 세무분야의 전문성을 높여 소비자에게 고품질의 세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면서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할 것인지 여부는 국가가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또 "세무사법은 세무사 제도가 정착되고 세무대리시장의 수급이 안정됨에 따라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 대상을 점차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 왔으며,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은 변호사의 직무로서 세무대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조항이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조항으로 변호사의 직무로서 세무대리를 하는 것 외에는 세무대리를 할 수 없게 돼 업무의 범위가 축소되는 불이익은 입었지만, 불이익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보다 크지 않아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헌법재판관은 "해당 조항은 표면적으로 제시된 입법목적과 달리 세무사시험 합격자가 세무서비스 시장에서 가지는 지배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로스쿨 교육이념의 취지에 부합하는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국가의 협력의무 이행을 저해하는 것이기에 정당한 입법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설령 입법목적을 '세무분야의 전문성 제고'라고 파악해 정당성을 인정하더라도, 변호사에게는 세무사로서 수행할 수 있는 세무대리업무 전반에 관한 전문성이 인정되므로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은 부여하되 추가 교육 이수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함으로써 입법목적을 동일한 정도로 달성할 수 있기에 피해의 최소성 원칙도 충족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헌재는 개정 세무사법을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도록 한 부칙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A변호사 등은 변호사법 제3조에 따라 변호사의 직무로서 세무대리를 할 수 있으므로 신뢰이익을 침해 받는 정도가 이 사건 부칙조항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에 비해 크다고 보기 어려워 이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며 "2017년 12월 26일 개정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시행일을 2018년 1월 1일로 정한 것은 개정 세무사법의 입법목적을 가급적 빨리 달성하기 위한 고려에서 내려진 입법적 결단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기영 헌법재판관은 반대의견(헌법불합치)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격 부여 제도는 1961년 세무사법이 제정된 이래 50년 이상 동안 줄곧 시행되어 왔으며, 이러한 제도가 단시일 내에 폐지 또는 변경되리라고 예상될 만한 별다른 사정은 없었다"며 "그런데 이 사건 부칙조항으로 이미 세무사 자격 취득에 대한 기대를 가진 채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변호사 자격 취득을 위한 단계에 진입한 사람들은 이제 세무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종전과 달리 반드시 세무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야만 하게 됐는데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시험의 일부를 면제하거나 유예기간을 두는 등의 일체의 조치가 마련된 바도 없기 때문에 그 신뢰이익의 침해정도가 중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무분야의 전문성 제고라는 공익의 실현이 장기적 관점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 법률조항의 개정 당시 이미 변호사 자격 취득을 위한 단계에 진입한 사람에게까지 시급히 적용해야 할 정도로 긴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단순 위헌을 선고하면 그나마 이 사건 부칙조항에 의해 세무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사람들마저 그 근거규정이 사라져버리는 법적 공백이 초래되므로 헌법불합치를 선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날 헌재 합헌 결정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는 보도자료를 내고 "변호사들의 세무사 자격 수호를 위해 끝까지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변협은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세무사법이 개정될 당시 로스쿨에 재학중이었던 청년 변호사들의 세무사 자격까지 일괄 박탈한 세무사법 부칙 제2조에 대해 재판관 5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고, 청년 변호사들에 대한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를 폐지한 세무사법 제3조에 대해서도 재판관 4명이 반대의견을 냈다"며 "과반수의 재판관들이 위헌 의견을 낸 것은 현행 세무사법의 위헌성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수(42·변호사시험 2회) 대한변협 부협회장은 "청년 변호사들의 세무사 자격만 일괄 박탈하는 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자의적 차별"이라며 "변협은 세무사법이 폐기될 때까지 계속해서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세무사 자격도 자동 취득돼 모든 변호사가 제한 업이 세무업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3년 12월 세무사법이 개정되면서 2004~2017년까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1만8100여명은 세무사 자격은 있지만 세무사 등록을 하지 못해 세무대리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제한을 받았다. 또 2017년 12월에는 세무사법이 또 개정돼 2018년 1월부터는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 부여하는 제도도 폐지됐다.
그러다 2018년 4월 헌재의 결정(2015헌가19)으로 세무사 자격을 자동 취득했던 변호사들에 대해서는 세무대리 업무와 세무조정 업무 등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헌재는 당시 "세무사법이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하면서도 (세무소송 등) 변호사의 직무로서 행하는 경우 이외에는 세무대리업무를 일체 수행할 수 없게 하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면서 변호사의 세무사 등록과 관련한 세무사법 제6조 1항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개선입법시한을 2019년 12월 31일까지로 못박았다.
그러나 개정입법이 지연되며, 2020년 1월 1일부터 변호사의 세무사 등록이 전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입법 공백 상태가 발생했다. 결국 지난해부터 한시적으로 세무사 자격을 가진 변호사들은 국세청으로 임시 관리번호를 부여받아 세무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