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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의 접속경로 변경 관련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 판결
작년 12월 대법원은 메타와 방통위 간 분쟁에서 메타의 국내 트래픽 접속 변경이‘이용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이용 자체는 가능하나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용에 다소간의 지연이나 불편을 초래하게 하는 행위는 이용 제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분쟁 이후 CP에게도 망 품질 관리책임을 부여하는 법이 시행되어 CP에게 인터넷 생태계에서의 의무와 책임이 부여되었다. I. 사안의 개요 메타,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은 지능정보사회의 핵심 플랫폼의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생태계 구축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콘텐츠제공자(Contents Provider: CP)들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인터넷서비스제공자(Internet Service Provider: ISP)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데, 이 과정에서 망 이용대가 부담 주체, 적정규모 등에 관한 분쟁이 빈번하다. 이와 관련 메타(구 페이스북)가 SKT와 LGU+ 가입자가 자사에 접속하는 인터넷 트래픽의 일부의 접속경로를 국내 서버에서 홍콩 등 해외 서버 등으로 변경하여 국내 이용자들의 접속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동영상이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 등의 장애, 불편, 지연 등이 발생하자, 방송통신위원회 이러한 임의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 제한에 해당하고 이용자 이익의 저해 정도가 현저하다는 이유로 시정조치와 과징금(3억 9,600만 원) 납부 등을 명하였다. 이에 불복한 메타는 시정조치 및 과징금 부과 처분 등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은 방통위의 상고를 기각하였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0두50348 판결). 메타는 방통위의 예정 처분에 대해서 1) 콘텐츠 제공사업자로서 인터넷 접속 품질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수 없으며, 2) 응답속도가 느려졌더라도 이용자가 체감할 수준은 아니며, 3) 이용약관에 서비스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으므로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방통위는 1) 메타가 콘텐츠 제공사업자라 하더라도 직접 접속경로를 변경한 행위 주체로서 책임이 있으며, 2) 응답속도는 전반적인 네트워크 관리지표로서 2.4배 또는 4.5배 응답속도가 저하된 것은 접속 품질이 과거 수준에서 현저히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3) 이용약관에서 정한 무조건적인 면책조항은 부당한 점 등을 고려하여 페이스북의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의 접속경로 변경행위가 이 사건 쟁점 조항의 ‘이용 제한’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이다. 이 사건 쟁점 조항이 정한 금지행위를 이유로 하는 과징금 부과 등은 침익적 행정처분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쟁점조항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적용하여서는 안 된다. ‘제한’의 사전적 의미와 ‘제한’이 ‘중단’과 병렬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용의 제한’은 이용의 시기나 방법, 범위 등에 한도나 한계를 정하여 이용을 못 하게 막거나 실질적으로 그에 준하는 정도로 이용을 못 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이용자 편의 도모나 이용자의 보호를 이유로 이용의 ‘제한’을 ‘이용 자체는 가능하나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용에 다소간의 지연이나 불편을 초래하게 하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므로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에 반할 여지가 있다. CP가 자신이 제공하는 콘텐츠로의 과다 접속에 따른 다량의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전송, 처리하기 위하여 접속경로 변경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고 결코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CP의 접속경로 변경행위는 합리적 의사결정에 따른 것으로 영업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 있을 여지도 다분하다. 전기통신사업법은 2020. 6. 9. 법률 제17352호로 개정되면서 제22조의7이 신설되었는데, 위 조항은 이용자 수, 트래픽 양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이용자에게 편리하고 안정적인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서비스 안정수단의 확보, 이용자 요구사항 처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위임에 따라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30조의8 제2항은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를 위한 구체적 조치사항으로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트래픽의 과도한 집중, 기술적 오류 등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와 트래픽 양 변동 추이를 고려한 서버 용량, 인터넷 연결의 원활성 확보 및 트래픽 경로의 최적화 등을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법이 개정된 이유는 이용자의 보호를 위한 것인데,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7이 신설되기 이전에는 CP의 일방적인 접속경로 변경행위에 대한 규제 또는 규율의 법적 공백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Ⅲ. 평석 1. 이용 제한 해당 여부 2018. 3. 21. 방통위 처분으로 시작된 접속경로 변경 분쟁은 5년 7개월 만에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메타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전기통신사업법령에서 금지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 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행위’ 중 ‘이용의 제한’에 해당하는지와 전기통신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이다. 이에 대해 1심은 메타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 제한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터넷 이용은 가능하나, 인터넷 이용이 지연되거나 불편할 수는 있으나 이용은 가능했기 때문에 ‘제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접속경로를 ‘우회’하도록 한 것은 이용 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용 제한이란 ‘이용은 가능하지만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를 곤란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다만, 다른 요건인 이용자들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상고심은 ‘이용의 ‘제한’을 ‘이용 자체는 가능하나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용에 다소간의 지연이나 불편을 초래하게 하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에 반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1심은 이용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2심은 이용 제한에 해당하나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이 아니라고 보았으며, 상고심은 1심의 결론을 지지했다. 이처럼 ‘이용 제한’의 개념에 대한 심급별 판단이 달랐다. 그러나 2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제한은 금지에 이르지 않지만 곤란, 불편, 장애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본건 인터넷 응답속도 저하는 제한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음 현저성에 관한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명백히 전기통신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저성의 요건은 정도나 수준의 문제라기보다 방식, 수단, 형태에 관한 판단이 필요한데, 1심과 2심 모두 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재판부에서 판단한 것처럼 ‘CP인 원고로서는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하여 서비스 품질이 어느 정도까지 저하될 것인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거대 CP인 메타는 접속경로를 스스로 설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특정 접속경로를 통해 흐르는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따라서 접속경로를 일시에 다량 변경하는 경우, 병목현상 등으로 인해 접속장애가 발생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접속경로를 변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방식이나 형태의 현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현저성을 수준이나 정도로 본다고 하여도 이용자 이익 저해 현저성은 상대적 개념으로 특정 국제기준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구체적, 개별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해외의 낮은 기준으로 국내 이용자가 겪은 접속지연이 현저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은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기대를 고려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2. 시사점 위 판결에서 법원은 인터넷 응답속도 등 인터넷 접속서비스의 품질은 기본적으로 ISP가 관리,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지, 원고와 같은 CP가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법원도 CP의 접속경로 변경 등으로 접속속도가 저하되어 전기통신서비스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명문의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입법 필요성을 강조한 점을 보면, CP의 망 품질 제어 가능성은 인정하였다. 이와 관련 방통위는 2019년 말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망 이용자의 지위에 불과했던 CP들에게 트래픽 관리를 포함한 이용자 보호책임을 인정하였다. 이후 정부는 상고심이 지적한 바와 같이 CP에게도 망 품질 관리책임을 인정하는 입법을 하게 된다. 이 법 적용 대상은 직전년도 3개월간 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0만 명 이상이면서 국내 발생 트래픽 총량의 1% 이상을 차지한 사업자인데, 구글, 넷플릭스, 메타, 네이버, 카카오가 대상이 되었다. 결국 이 사건 판결로 인해 인터넷 응답속도 등 인터넷 접속 서비스의 품질은 ISP가 관리,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지, CP가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던 관점이 변경되었다. 또한 부가통신사업자에 불과하였던 CP에게도 인터넷 생태계에서 책임과 의무를 인정하는 입법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이 판결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엽 교수(고려대)·법학박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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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
이성엽 교수(고려대)·법학박사
2024-02-24
금융·보험
기업법무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사건의 개요] 1. 사실관계 ① 해상운송업을 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인 원고는 2008년 4월 13일 파나마 법인으로 선박보유회사인 피고와 캄보디아에 등록된 선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bareboat charter with hire purchase, BBCHP)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용선료는 1일당 일화 130,000엔이고, 용선기간(50개월) 종료 후 인도대금 38,000,000엔을 피고에게 지급한다. 용선기간 만료 후 피고는 원고에게 소유권을 이전한다. ② 원고는 42회차부터 용선료를 지연하여 분할 납부하였고, 46회차분 이후는 매월 3,000,000엔을 지급하였다. 원고가 2013년 6월 27일까지 지급한 용선료 총액은 217,100,000엔이다. ③ 원고가 용선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아니하고 용선기간 만료일(2012. 6. 12.) 이후 계속 사용하였음에도 피고는 이 사건 선박을 회수하지 않았다. ④ 이 사건 선박은 2013년 7월 12일 항해 중 폭발 사고로 침몰하였다. ⑤ 원고에게 선박의 관리를 위탁받은 B 회사는 A 보험회사와 선체보험계약이 포함된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⑥ 사고 발생 후 원고와 피고가 각각 자신이 정당한 보험금청구권자라며 보험금의 지급을 구하자, A 보험회사는 채권자 불확지를 이유로 보험금을 변제공탁하였다. 2. 사건의 경과 ① (본소) 원고는 용선료 대부분을 피고에게 지급하여 이 사건 선박의 사실상 소유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보험계약의 피보험이익이 원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탁금의 출급청구권자가 원고라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② (반소) 피고는 용선료 및 선박인도대금을 전액 납입하지 않은 이상 선박의 소유권자는 피고이므로 피보험이익은 피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탁금의 출급권자가 피고라는 확인을 구하고, 미지급 용선료 15,000,000엔의 지급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3. 대상판결 대법원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한 원심의 판결이유를 그대로 원용하였다. 원심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은 원고가 피고에게 약정 용선료 등(50개월간 1일당 130,000엔의 용선료 + 선박인도금 38,000,000엔)을 모두 지급하면 피고가 원고에게 선박의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소유권유보부매매와 유사한 성격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격은 용선기간 종료 후 소유권취득 조건이 부가된 선박임대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연구 및 평석] Ⅰ. 선체용선계약의 의의와 법적 성질 1. 선체용선계약의 의의 선체용선계약은 통상 ① 선박 임대차계약, ② 운용형 선체용선계약, ③ 금융형 선체용선계약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상법상 선체용선계약이 민법상 임대차계약과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운용형 선체용선계약(Operating Bareboat Charters)의 경우, 용선자가 용선기간 중 선박의 점유와 지배·관리권을 행사하므로, 선박소유자는 선박 인도시 용선계약에 따른 감항능력을 구비한 선박을 인도해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금융형 선체용선계약(Financing Bareboat Charters)은 용선기간 동안 선박의 소유권은 금융제공자가 보유하지만, 이는 자신의 대여금채권의 담보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뿐 선박에 대한 지배·관리권은 용선자에게 이전된다는 의미에서 용선자는 ‘선박의 사실상 소유자(the de facto owner)’라고 볼 수 있다. 해운실무상 선체용선계약은 자금이 부족한 해상기업주체의 선박 획득에 필요한 물적 금융의 수단으로서 BBCHP계약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2.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핵심 요소 선체용선계약의 핵심 요소는 '선박소유자로부터 용선선박의 점유와 지배·관리권이 용선자에게 이전된다'는 점에 있다. 해운실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표준 선체용선계약서식인 BARECON 2017의 규정을 종합해 보면, 표준적 BBCHP계약의 핵심 요소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① 선체용선계약에 ‘소유권취득조건’이 부가되어 있어야 한다. BARECON 2017의 관련 규정에서 이는 용선자가 가지는 선박의 구매에 대한 선택권(Option)이다. 용선자는 약정된 시일에 선박의 구매를 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고, 이러한 선택권의 행사에 따라 선박소유권의 이전이 발생한다. ② 용선자는 선박소유권을 이전받기 위해 약정된 선박의 대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추가적인 금전의 지급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이러한 추가적 금전지급을 완료하여야 선박소유권이 이전된다. 이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박의 매매가격이라고 할 것이다. 선박소유자는 금융제공액의 원리금 상당을 용선자로부터 회수하여야 할 것이므로, 용선자가 지급하는 금전의 총액이 선박소유자의 금융제공액과 근사할 경우에는 해당 계약의 법적 성질을 BBCHP계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Ⅱ.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1.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이전과 준거법 원심은 우리 법제상 소유권유보부매매의 개념을 원용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외국적 요소가 있어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하여야 할 것이고, 국제사법 제19조에 따르면 물권의 변동은 매매계약의 준거법과 달리 물권변동의 준거법에 의하여 규율된다. 국제사법 제60조는 선박의 소유권에 관한 사항은 선적국법에 의하도록 특칙을 두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당사자 사이에 선박소유권이전의 원인이 되는 선체용선계약의 준거법과 소유권이전에 관한 물권적 합의의 준거법은 달리 결정할 문제이다. 이 사건 선박은 캄보디아에 선적을 두고 있으므로, 설령 원심과 대법원과 같이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대한민국 법상 소유권유보부매매로 인정하더라도, 선박의 소유권이전을 위해 물권적 합의가 필요한지, 나아가 물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소유권이전행위가 요구되는지 여부는 이 사건 선박의 선적국인 캄보디아국 법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2. 선박 소유권이전을 위한 별도의 소유권이전 행위의 요부와 이 사건 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이 사건 선박의 물권변동의 준거법이 대한민국 법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다음 문제가 제기된다. ① 본소 원고는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BBCHP계약으로서, ‘소유권유보부매매’라고 주장하였다. 원심은 소유권유보부매매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을 뿐이다. 즉 원심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소유권유보부매매와 유사할 뿐 소유권유보부매매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을 뿐이므로,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도 아니라고 볼 근거는 없다. 오히려 BARECON 2017 BBCHP 제1조 및 제2조에 따르면,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 제5조의 ‘선박반선(Re-delivery)’ 및 선박소유권이전에 관한 규정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 전형적인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② 원심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 제5조에 의하면 용선기간이 만료될 경우 자동적으로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이 원고에게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소유권 이전행위가 요구되므로, 이 사건 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은 소유권유보부매매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선체용선계약서식인 BARECON 2017은 BBCHP계약상 용선자의 소유권취득을 위해서는 별도의 소유권이전행위를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과 원심의 판시에 따르면, BARECON 2017의 BBCHP의 준거법이 대한민국 법인 경우에는 그 법적 성질을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이 아닌 소유권취득조건이 부가된 선박임대차계약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이러한 해석은 당사자의 의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③ 원심은 소유권유보부매매는 동산의 매도인이 매매대금을 다 수령할 때까지 그 대금채권에 대한 담보의 효과를 취득·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매도인은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매수인에게 해주지 않음으로써 대금채권에 대한 담보 기능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소유권유보부매매의 개념을 원용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박에 대한 공시제도로서 선박등기제도를 두고 있고, 선박에 대한 소유권이전은 등기를 하여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으므로(상법 제743조), BBCHP계약을 체결한 선박소유자는 용선자의 원리금상환이 완료될 때까지는 자신의 채권의 보전수단으로서 용선선박의 소유권을 보유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선박에 대한 등기가 피고 명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이 BBCHP계약이라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결론] 사적자치의 원칙상 BBCHP계약의 계약당사자는 선박가격을 균등분할방식으로 지급할 수도 있지만, 용선기간 중 일정한 시기에 선박가격 중 상당한 액수를 일시불로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등 다양한 상환설계를 하는 것도 가능하고, 선박금융 실무도 동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 판례의 태도는 BBCHP계약 및 위 계약을 선박금융의 주된 수단으로 활용하는 선박금융의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선체용선계약
선박
소유권유보부매매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2022-07-11
기업법무
민사일반
대우건설 주주대표소송
I. 글머리에 지난해 11월 유니온스틸㈜의 대표이사가 내부통제시스템구축 및 유지관리의무 위반을 이유로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대법원 판결(2017다222368)이 난 지 불과 반년 만에 대법원은 다시 ㈜대우건설 주주대표소송의 상고심을 선고하였다. 매우 긴박한 법발전이라고 생각한다. 판결의 내용을 보아도 유니온스틸 때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하다. 아래에서 보듯이 여러 논점이 포함되어 있어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와 판시내용을 요약한 후 관련 문제점으로 진입해 보기로 하자. Ⅱ. 사실관계 및 판시내용의 축약 대우건설은 4대강사업, 영주다목적댐공사 및 인천도시철도 2호선공사의 입찰 등에 있어 다른 건설사들과 더불어 입찰가격을 담합함으로써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각 97억여원, 24억여원 및 161억여원의 과징금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우건설의 주주들이 이 회사의 대표이사, 평이사 및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것이 본 사건이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대표이사에 대해서만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을 적용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고 다른 이사들에 대해서는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이건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이건 그 적용이 어렵다고 보아 상법 제 399 조상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고가 항소하자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1심판결을 변경하면서 모든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에 관한 한'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판단부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을 적용하였다. 책임의 범위에 대해서는 전체 손해액의 약 5% 정도를 적정한 것으로 보아 책임제한을 시행하였고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였다. Ⅲ. 평석 1.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의무의 귀속 주체 모든 이사가 이에 포함된다. 사내이사건 사외이사건 대표이사건 평이사건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유니온스틸사건(2017다222368)에서는 대표이사만 피고여서 이 점이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우건설 사건은 이 점을 명확히 하였다. 사외이사 역시 예외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사외이사는 바로 이러한 감시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선임된 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의무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발생요건에서는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는 시스템구축을 위한 의사결정, 시스템 구축의 실행 및 구축된 시스템의 유지·관리 등 시간순서상 여러 단계로 나뉘어질 것이다. 시스템구축의 실행 및 그 유지관리는 대부분 대표이사나 그의 지시를 받는 사내 하부조직에 위임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사는 일부나 전부의 위임여부를 떠나 모든 단계에 걸쳐 법적 책임을 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번에 대법원은 이를 분명히 하였다. 그 점에서 이번 판결은 큰 의미를 갖는다. 2. Mission-Critical(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 유니언스틸사건(2017다222368)이나 대우건설사건(2021다279347)의 판결문과 2008년의 대우분식회계사건(2006다68636)의 그것을 비교해보면 모두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를 다루고 있기는 하나 한 가지 점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다. 전자(前者)들에서는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업무'라는 용어가 등장하나 후자(後者)에서는 그런 언급을 발견할 수 없다. 즉 전자들에서는 회사 내부의 사정상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그런 영역에서는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가 보다 높은 수준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적어도 이런 경우에는 적정한 내부통제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사는 면책되기 어렵다는 경고성 판시를 하고 있다. 결국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의 정도를 업무의 성격이나 종류 등에 따라 차등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이런 경우에는 보다 제고된 의무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향후의 법률자문에서는 이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의 이런 자세는 내부통제시스템에 관한 델라웨어주 법원들의 근자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1996년 이 사법심사기준이 처음 케어막사건에 등장한 이후 이 청구원인(cause of action)은 크게 이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9년 Marchand v. Barnhill 사건을 게기로 전기를 맞는다. 이 사건 이후 본 청구원인의 승소사례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Marchand사건 이후 , Clovis사건, Hughes사건, Chou사건, Boeing 사건 등 일련의 판결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승소사례의 증가에는 ① 'mission critical'이란 개념을 이용하면서 판례법이 급속히 진화하였고, ② 원고 주주의 증거수집상 어려움이 해소되었으며, ③ 기업경영에 있어 ESG의 요소를 중시하는 근자의 흐름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분석들이 있다. 어쨌든 이번 판결은 내부통제시스템을 둘러싼 회사 내부의 위험을 차등화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항공기를 제조하는 보잉사에 있어 제작한 항공기의 안전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mission-critical) 이며, 아이스크림만 제조하는 Blue Bell 社에 있어 생산된 아이스크림의 안전은 식품위생법상 절대적 요소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은 mission-critical이다. [판결요지] 서울고법은 1심판결을 변경하면서 모든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에 관한 한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판단 부분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내부 통제시스템 기준’을 적용하였다. 책임의 범위에 대해서는 전체 손해액의 약 5% 정도를 적정한 것으로 보아 책임 제한을 시행하였고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였다. [평석요지] 내부 통제시스템 구축의무는 시스템구축을 위한 의사결정, 시스템 구축의 실행 및 구축된 시스템의 유지·관리 등 시간 순서상 여러 단계로 나누어질 것이다. 시스템구축의 실행 및 그 유지관리는 대부분 대표이사나 그의 지시를 받는 사내 하부조직에 위임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사는 일부나 전부의 위임 여부를 떠나 모든 단계에 걸쳐 법적 책임을 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번에 대법원은 이를 분명히 하였다. 그 점에서 이번 판결은 큰 의미를 갖는다. 3. 사외이사의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 본 판결은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 위반으로 인한 사외이사의 책임발생요건을 별도로 설시하고 있다. 사외이사 역시 내부통제시스템구축의무의 주체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사내이사들과 달리 회사내 업무집행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없다. 따라서 의무위반의 성립요건상 다른 사내이사들과는 차이를 두어야 하며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대법원은 두가지 경우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내부통제시스템이 전혀 구축되지 않은 경우이다. 이 경우 사외이사에게는 시스템설치에 대한 촉구의무가 부과된다. 다른 하나는 이미 시스템이 구축된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해당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하며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동원가능한 조치를 취하는 등 정상적인 운영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만약 이를 외면하고 방치하는 경우에는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향후의 판례법에서 이번에 설시된 책임발생요건이 좀더 구체화되기를 바란다. 4.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과 내부통제시스템기준간의 관계 이번 판결을 통하여 분명해진 것은 동일한 회사라도 이사의 감시의무에 관한 두가지 사법심사기준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회사의 규모에 관계없이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은 모든 회사에 있어 보편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다만 고도로 분업화되고 조직화된 대규모 회사에 있어서는 이사들이 의심할 만한 상황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를 위하여 마련된 것이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이다. 본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표이사, 평이사 및 사외이사의 책임발생요건을 각각 달리 설정하고 있다. 4대강 사업에 관한 한 가장 주된 피고라 할 대표이사의 경우 청구원인은 '의심할 만한 사유기준'이었다. 이에 반하여 여타 사내이사들과 사외이사들에 대해서는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을 적용하였다. 다만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같은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이라도 사내이사와 다른 별도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고도로 분업화되고 조직화된 대규모 회사라도 나라마다 사외이사제도를 둘러싼 법률환경은 천차만별 다르므로 이러한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 의무위반 이사의 책임범위 특히 가격담합이나 입찰담합 등 공정거래법위반으로 회사가 과징금을 부과받는 경우가 많은 바 이때 과징금의 전부가 회사의 손해인가? 그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법규위반 상황에서는 손익상계 등의 적용은 어려울 것이다. 판례 역시 뇌물공여나 분식회계 등 법규위반 상황에 대해서는 손익상계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기준을 위반하였다고 당해 이사가 언제나 발생한 손해의 전부를 배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제한에 관한 판례법의 잣대가 탄력적으로 동원될 수 있다고 본다. 본 사건의 원심에서도 피고 이사들의 책임액을 합산하면 과징금 부과처분으로 ㈜대우건설이 입은 전체 손해액(약 284억원)의 5% 정도에 불과하다(2020나2034989). 대법원도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였다. 대표이사, 평이사, 사외이사 등 사내 비리나 정보에 접근할 가능성을 차등화할 수 있다면 이에 따라 책임제한의 비율도 달라질 것이다. 나아가 각 이사의 연보수 수준, 개인적인 이득 또는 형사처벌의 유무 등도 구체적인 책임산정에 작용할 것이다. 김정호 명예교수(고려대 로스쿨)
준법경영
이사
준법감시
김정호 명예교수(고려대 로스쿨)
2022-07-07
기업법무
상사일반
파산·회생
쌍무계약, 신용거래, 그리고 채권자평등주의
[사안의 개요] 원고는 건축자재 도·소매업을 하는 회사이고, 피고는 건축자재 수·출입업을 하는 회사이다. 원고와 피고는 2014년 6월 17일 피고가 원고에게 건축자재를 공급하는 계약('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내용은 다음과 같다. 계약기간은 2014년 7월 1일부터 2년으로 하되 상호 협의하여 연장할 수 있다. 원고는 피고에게 제품대금 정산을 위한 보증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한다. 위 보증금은 계약 해지 시 10일 이내에 반환받을 수 있다. 원고는 보증금 범위에서 제품을 주문할 수 있고, 주문한 제품의 대금이 보증금을 초과하면 초과 금액을 먼저 입금한 후 제품을 주문할 수 있다. 원고가 대금을 사전에 서면 양해 없이 임의로 30일 이상 연체할 경우 피고는 미수금 총액을 보증금에서 우선 변제한다. 본 계약서 조항을 위반하여 상대방에게 보증금 이상의 피해를 주었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원고는 이 사건 계약에 따라 2014년 6월 30일 피고에게 보증금 1억 원을 지급하였다. 피고는 2014년 9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하였다. 위 법원은 2014년 11월 3일 회생절차개시결정을 하였고, 2015년 4월 22일 회생계획인가결정을 하였으며, 2016년 6월 29일 회생절차종결결정을 하였다. 피고의 대표이사이자 관리인인 소외인은 2014년 12월 5일 원고와 물품을 계속 공급하기로 협의하였다. 원고는 2016년 5월경 최종적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대금을 결제한 다음 2016년 6월 24일 피고에게 2016년 6월 30일 계약기간이 만료한 후 재계약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2016년 7월 10일까지 보증금 1억 원을 반환할 것을 요청하였다. 피고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자 원고는 피고에게 보증금 1억 원 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소송의 경과]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어 원고의 보증금반환채권은 공익채권이라고 보았다(원고 승소). 1심과 원심의 입장도 같다. "원고가 피고에게 지급한 보증금은 이 사건 계약 제4조에서 정한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 원·피고의 별도 의사표시 없이 물품대금 지급에 충당되므로, 보증금은 물품대금에 대한 선급금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보증금반환채권은 피고의 원고에 대한 물품대금채권과 이행·존속상 견련성을 갖고 있어 서로 담보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79조 제1항 제7호에서 정한 공익채권에 해당한다." [평석] 필자는 대상판결에 반대한다. 원고의 보증금반환채권은 회생채권으로 봄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견련성 개념의 혼동 대상판결은 견련성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쌍방미이행 쌍무계약 관련 도산법 법리는 쌍무계약상 두 채무의 이행·존속상 견련성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 보증금반환의무와 매매대금지급의무 사이에는 이행·존속상 견련성이 없다. 미지급 매매대금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견련성이 존재할 뿐이다. 두 견련성 개념은 구분해야 한다. 쌍무계약에서 이행·존속상 견련성의 경우 계약당사자 모두가 담보적 기능을 누린다(쌍방향의 담보적 기능). 이에 반해 공제법리에서 견련성의 경우 일방당사자(이 사건의 경우 피고, 임대차계약의 경우 보증금을 수령한 임대인)만 담보적 기능을 누린다(일방향의 담보적 기능). 이 사건 계약조항에 따르면 -계약해석 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피고 측의 이행선택에 따라 피고가 계속 물품을 공급하는 경우, 원고는 물품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선납한 보증금에서 공제하라고 주장할 수 있다. 원고는 1억 원의 보증금 한도에서 추가 출연없이 물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사정이 이와 같다면 피고의 관리인은 이 사건 계약의 이행을 선택하는데 매우 신중하였어야 한다). 그런데 원고는 대금지금 없는 '물품공급'을 보장받은 것이지, '보증금반환'을 보장받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사정을 들어 보증금반환채권을 공익채권으로 구성할 수는 없다(참고로 이 사건에서 원고는 선납한 보증금에서 물품대금을 공제하라고 주장하지 않고, 개별 물품대금을 지급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였다). 2. 관리인의 이행선택이 갖는 법적 의미 관리인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이행을 선택하면 도산채무자의 채권과 이행·존속상 견련성이 있는 계약상대방의 채권이 공익채권이 된다(회생파산법 제179조 제1항 제7호). 회생파산법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을 도산절차 내부에서 실현함으로써 도산재단을 극대화하기 위해 계약상대방의 채권을 공익채권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 문제된 원고의 보증금반환채권은 이 사건 계약 종료 후 비로소 발생(또는 변제기가 도래)하는 권리이다. 관리인은 계약내용 실현을 위해 이행을 선택한 것이지, 계약종료 후 원상회복 법률관계의 실현을 위해 이행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관리인의 이행선택을 근거로 원고의 보증금반환채권이 공익채권으로 격상될 수 없다. 공익채권으로 격상되는 것은 원고의 물품공급청구권이다. 3. 관리인이 새롭게 체결한 계약처럼 취급? 관리인이 이행을 선택한 계약은 마치 관리인이 새롭게 체결한 계약처럼 취급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관리인의 이행선택을 근거로 도산절차개시 후 비로소 상대방이 선이행을 하였다면, 해당 급부의 원상회복채권은 공익채권으로 봄이 타당하다. 도산재단은 도산절차개시 후 비로소 해당 급부를 수령하였다. 계약이 해제된다면 상대방의 부당이득청구권은 도산절차개시 후 발생한 것이다. 이 경우 상대방은 관리인의 이행선택을 믿고 선이행을 하였으므로, 즉 채무자가 도산절차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계약내용대로 관리인이 채무를 이행할 것이라는 정당하고 보호가치 있는 기대 하에 선이행을 한 것이므로, 나중에 어떠한 이유로든 해당 계약의 실현이 좌절되어 원상회복청구권이 발생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해당 급부의 원상회복청구권은 공익채권으로 봄이 공평하다. 그러나 도산절차개시 전 상대방의 선이행은 사정이 다르다. 관리인이 이행선택을 함으로써 계약상대방에게 신뢰를 부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채무자의 자력을 믿고 선이행을 하였다. 그런데 채무자는 상대방의 기대와 달리 도산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상대방이 지급한 대금은 채무자의 일반재산에 혼입되어 채무자에 대한 모든 채권자들이 공취할 수 있는 책임재산이 되었고, 이러한 책임재산이 도산재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 경우 선이행을 한 상대방은 채무자와 계약관계를 맺은 다른 일반채권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용거래에 따른 위험을 부담함이 공평하다. 일반채권자들은 채권자평등주의에 따라 도산절차 내에서 도산채권자가 되어야 한다. 설령 관리인이 이행선택을 하였더라도 위와 같은 선이행 급부의 반환이 문제되는 상황이라면, 선이행을 한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신용거래의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비록 도산절차개시 후 비로소 계약이 해제(해지)되어 부당이득반환채권이 발생하였더라도, 도산절차개시 전에 채무자가 급부를 수령하였으므로 채권발생의 법적 원인은 도산절차개시 당시 이미 존재하였다고 구성할 수 있다. 4. 관리인이 해지권을 행사한 경우와의 균형? 대상판결 사안에서 관리인이 이행을 선택하지 않고 해지를 선택하였다면, 상대방의 원상회복채권은 공익채권이므로(회생파산법 제121조 제2항) 원고는 보증금반환채권을 공익채권으로 행사할 수 있는가? 공익채권으로 행사할 수 있다면, 관리인이 이행을 선택한 후 계약이 기간만료 또는 해지로 종료된 경우 상대방의 원상회복채권도 공익채권으로 봄이 균형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타당하지 않다.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 대하여 관리인에게 해제권을 부여하고 관리인의 해제에 따른 상대방의 원상회복청구권을 환취권 또는 공익채권으로 보는 현행법(해제권 구성)은 입법론의 관점에서 부당하다(구체적 이유의 제시는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따라서 해제권 구성에 따른 법률효과를 준거점(reference point)으로 삼아 다른 문제상황에서도 그와 유사한 법률관계를 도출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하다. 법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결론과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하면, 일시적·표면적으로는 정합성이 달성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문제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雪上加霜). 또한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 도산 시 임대인의 관리인이 계약해지를 선택한 경우(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을 전제)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은 회생(파산)채권이라는 것이 대체적 견해이다. 그렇다면 대상판결 사안에서 관리인이 해지를 선택하였다고 해서 상대방의 원상회복 채권이 공익채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5. 임대인의 관리인이 이행을 선택한 경우와 비교 임대차계약 상 임대인에 대하여 도산절차가 개시되었고 임대인의 관리인이 임대차계약의 이행을 선택하였으며 그 후 기간만료 등으로 임대차계약이 종료한 경우,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은 회생채권이라는 것이 다수설 및 실무의 입장이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실무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최준규 교수(서울대 로스쿨)
신용거래
보증금반환채권
회생채권
도산
최준규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11-29
기업법무
이사의 충실의무와 회사기회유용금지
I. 사실관계 甲은 스포츠용품 수출입업을 운영하는 A회사에서 1981년부터 2011년까지 30년간 이사 또는 대표이사를 지냈다. 甲은 A회사에 속해 있던 기간 중인 1987년 별도의 회사를 설립해 1990년까지 대표이사로 지냈다. 甲은 최소 1987~1990년에는 두 회사의 대표이사로 있었다. 그런데 甲이 신설한 B회사는 종전까지 A회사가 운영하던 골프용품 수입업에 손을 댔다. A회사가 외국 골프용품 제조사와 체결한 독점 판매 계약이 끝나는 기간에 B회사는 해당 제조사에 접근했던 것이다. A회사가 종전까지 10년간 독점 판매했던 골프용품의 국내 판매권은 전적으로 B회사에 귀속됐다. 이 여파로 A회사는 결국 경영난을 겪다가 해산됐다. 甲은 B회사의 지분을 해외 유명 스포츠브랜드에 200억원 이상을 받고 팔았다. 이에 A회사의 주주가 甲을 상대로 경업금지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II. 판결요지 원심은 甲 측(甲은 소송 진행 도중 사망해 그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받았다)이 A회사 주주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도, B회사가 침해한 A회사의 '영업권' 가치가 손해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였다. 원심 재판부는 "A회사가 외국 제조사 제품의 수입, 판매업을 하지 못함으로써 일실이익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골프용품 사업부문 영업권'에 손해를 입었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B회사가 매각한 골프용품 사업부문의 영업권은 B회사가 그간 형성한 자본을 재투자하고 고유의 노력을 기울여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등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甲 측이 A회사 주주에게 물어줘야 할 손해배상액에 '영업권'가치를 배제한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甲이 A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해 B회사로 하여금 그 사업을 영위하게 한 것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내지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회사 이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회사의 사업기회 유용행위에 해당한다"며 "B회사가 골프용품 사업을 제3자에게 매각해 얻은 영업권 상당의 이익에는 B회사가 직접 형성한 가치 외에 A회사가 상실한 독점판매 계약권의 가치도 포함돼 있다고 봐야한다"고 판시했다. 또 "원심으로서는 B회사가 골프용품 사업부문을 제3자에게 양도하고 받은 양도대금 중 A회사의 사업기회를 이용해 수년간 직접 사업을 영위하면서 스스로 창출한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A회사가 빼앗긴 사업기회의 가치 상당액을 산정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이를 A회사의 손해로 인정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III. 평석 1. 경업금지의무 위반 경업금지에 관하여 상법 제397조 제1항에 의하면,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이 없으면 ① 자기 또는 제삼자의 계산으로 회사의 영업부류에 속한 거래를 하거나, ② 동종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회사의 무한책임사원이나 이사가 되지 못한다. 강학상 ①은 경업금지, ②는 겸직금지라고 부른다. A회사의 대표이사 甲은 문제되는 기간 중 2003년 4월 11일 이후에는 경쟁업체인 B회사의 이사로 재직하지 않았으므로 ②의 겸직금지의 적용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대법원은 "이사는 경업대상 회사의 이사, 대표이사가 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 회사의 지배주주가 되어 그 회사의 의사결정과 업무집행에 관여할 수 있게 된 경우에도 자신이 속한 회사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대법원 2013.9.12. 선고 2011다57869 판결, 신세계 주주대표소송)를 확인하면서 상법 제397조 제1항 위반으로 보았다. ①의 경업금지 위반으로 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회사기회유용금지 회사기회유용과 관련하여 위 행위 당시에는 2011년 개정 상법 제397조의2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일반적인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로 회사기회 유용금지의무가 도출되는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사는 이익이 될 여지가 있는 사업기회가 있으면 이를 회사에 제공하여 회사로 하여금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회사의 승인 없이 이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기존 판례(대법원 2013.9.12. 선고 2011다57869 판결)를 확인하면서 이를 긍정하였다. 결국 甲이 "1999년경부터 2005년 말경까지 상법 제397조 제1항이 규정한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하고, 2006년경부터 2011년경까지 일본 던롭 제품의 독점 수입, 판매업이라는 A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함으로써 A회사 이사로서 부담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를 위반한다"고 보았다. 2005년 말을 기준으로 한 것은 그 시점에 A회사와 일본 던롭사간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기 때문이고, 2011년경을 기준으로 한 것은 2011년 2월경 B회사가 골프용품 사업부분을 제3자에게 양도하였고, 같은 해 8월 A회사가 해산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3. 손해배상의 범위 원고는 경업금지의무 위반에 따른 개입권(상법 제397조 제2항) 대신 일반적인 손해배상을 주장하였다. 또한 2011년 상법 개정 이전 사안이므로 회사기회유용금지 의무위반에 대하여는 손해추정 조항(현행 상법 제397조의2 제2항)도 적용되지 않았다. 쟁점이 된 것은 ① 일실 영업수익의 범위와 ② 영업권의 가치였다. 먼저 ① 일실 영업수익 계산방식은 경업금지 위반 및 회사기회유용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원심은 A회사의 매출액 감소분은 B회사의 매출액 상당액이라 할 것이므로, 여기에 A회사 고유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甲의 임무위배행위 이전 기간을 기준으로 산정)을 곱하여 산정하였다. 실제로는 손해분담의 공평을 고려하여 손해배상책임을 60%로 제한하였다. 대법원은 이 부분 원심 판단을 수긍하였다. 한편 ② 영업권 상당 손해액은 회사기회 유용에 관하여만 문제되었다. 원심은 A회사가 2011년 8월 4일 해산함으로써 그 이후 영업을 통해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없다는 점, B회사가 2011년 2월 제3자에 골프용품 사업부분을 매각하고 수령한 대금 중 영업권 상당액은 실제 B회사의 고유 노력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어 별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영업권 중 B회사가 스스로 창출한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A회사가 빼앗긴 사업기회의 가치 상당액을 산정하는 방법으로 A회사의 손해를 인정했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타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4. 손해배상액 산정 2심 법원은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 구간을 나누지 않고 'A회사의 매출액 감소분 × A회사 매출액 대비 순이익율'의 산식에 따라 A회사의 일실손해액을 산정하였다. 이 방식은 비교적 타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2심 법원은 상법 제397조의2 제2항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이러한 2심 법원의 입장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상법 제397조의2가 신설되기 이전에 발생한 것은 맞지만, 2011년 개정 상법 부칙 제3조에 의하면 동 규정은 시행 전에 발생한 사항에도 개정상법규정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어, 이 사건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상법 제397조의2가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2심 법원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상법 제397조의2를 직접 근거로 하는 손해배상사건이 아니고 이 사건과 같이 상법 제399조에 근거하여 이사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에는 상법 제397조의2 제2항을 직접 적용할 수 없다는 형식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상법 제397조의2 제2항의 입법취지를 생각해 볼 때, 회사기회유용이라는 충실의무 위반사건에서 상법 제399조를 근거로 제기한 소송과 상법 제397조의2를 근거로 제기한 소송을 구분하여 다른 증명책임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만일 상법 제397조의2 제2항을 적용했다면, 회사기회 유용금지 위반에 해당하는 구간의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서는 이사 甲 이나 제3자(B회사)가 얻은 이익을 손해로 추정하면 된다. 만일 상법 제397조의2가 온전히 적용되었다면 대법원이 원심과 달리 손해배상액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결정한 골프용품 사업부분 매각 대금 중 영업권의 상당액을 추정의 법리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IV. 결언 본 판례와 관련하여 회사기회유용금지 제도의 올바른 운영방안을 정립하기 위하여는 현행 상법규정을 다음과 같이 개정·보완할 것을 제안한다. ① 현행 상법은 회사기회유용금지 규정의 적용대상을 이사와 집행임원으로만 한정하고 있으나 회사기회유용은 지배주주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을 고려하여 지배주주도 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② 우리나라 상법에는 미국과 독일에서 인정되는 피소된 경영자의 항변사유와 관련된 명확한 규정이 없으므로 법해석상 회사가 법적·재정적·구조적 능력 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에는 경영자의 항변사유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③ 회사기회유용금지 위반이 있는 경우 실질적인 구제를 위해서는 위반의 효과로서 경업금지 위반의 경우처럼 개입권을 도입·인정할 필요가 있다. 최완진 명예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경업금지의무
영업권
회사기회유용
최완진 명예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2019-10-17
기업법무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의 법적성질
-서울남부지방법원 2017. 2. 9. 선고 2016가단13431 판결을 중심으로- 1. 사안의 개요 원 선주와 원고는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하면서 아래와 같은 계약조항을 두었다. 원고는 선적할 화물을 모두 선적하여도 선박에 남는 부분이 있을 것이 예상되어, 피고와 재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재용선계약에도 같은 조항을 두었다. 양륙항에서 선석대기는 5일간 지속되었다. 그래서 선주는 원고에게 선석대기 5일에 대한 체박손해금의 지급을 청구하였고, 원고는 선주에게 체박손해금을 지급하였다. 원고가 체박손해금을 선주에게 지급한 후, 피고에게 같은 금액의 체박손해금 지급을 청구하였다. 피고는 ‘위 j항 제2문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이고, 피고는 선석대기와 관련하여 과실이 없으므로, 원고에게 금전의 지급의무가 없다’라고 하며, 체박손해금 지급을 거절하였다. 이에 원고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2. 논의의 실익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의 법적성질이 손해배상이라면, 용선자에게 선석대기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청구권이 발생하고, 청구권이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민법 제396조 과실상계 규정이 적용된다. 또한 체박손해금액도 정해져 있는 경우라면, 민법 제398조의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되어,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법원이 감액할 수도 있다. 반대로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이 선주의 보수라면, 선석대기는 항구의 사정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므로 용선자가 항구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바, 용선자의 고의 내지 과실을 불문하고, 선석대기가 발생하기만 하면 선주에게 체박손해금 청구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민법 제396조의 과실상계 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하고, 체박손해금액도 정해져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민법 제398조의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해당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과실상계나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원인으로 한 감액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3. 울산지방법원 2014. 9. 4. 선고 2012가합1883 판결 울산지방법원 2014. 9. 4. 선고 2012가합1883 판결(이 판결의 상소심인 부산고등법원 2014나7179 판결, 대법원 2016다12151 판결에서는 체박손해금에 대해 판단이 변경되지 아니하였다. 이하 ‘울산지법 판결’이라고 한다)에서는 용선계약에 ‘체박손해금(Detention): 선적지나 양하지에 선박이 도착하기 이전에 화물이나 서류가 완비되지 않은 경우에 또는 용선자나 수하인이 화물의 하역이나 선적을 위한 야역장, 충분한 트럭, 부선을 제공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정박, 선적, 하역 대기를 하느라 지연된 시간에 대한 체박손해금은 일당 미화 3000달러의 비율로 발생함. 선적항에서 발생한 체박손해금은 모두 운임과 함께 정산이 되어야 하고, 양하항에서 발생한 체박손해금은 선박의 양하작업이 완료되기 이전에 정산이 되어야 함’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울산지방법원은 위와 같은 조항에 따른 체박손해금에 대하여 ‘체박손해금은 양하지에 선박이 도착하기 이전에 서류가 완비되지 않은 경우 또는 용선자나 수하인이 화물의 하역을 위한 야적장 등을 제공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정박이나 하역대기를 하느라 지연된 기간에 대하여 발생하는 보수이고, 상법 제807조에서 체박손해금을 유치권의 피담보채권으로 열거하고 있지는 아니하지만, 그 성격상 선박소유자가 체선기간 중 입게 되는 선원료, 식비, 선박이용을 방해받음으로 인하여 상실한 이익 등의 손실을 전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체선료와 다를 바 없어’라고 판시하였다. 위 울산지법 판결에서 문제된 체박손해금 조항은 위 사안의 개요에 소개한 j항 제1문과 유사한 조항이다. 그래서 선석대기와 관련된 체박손해금의 경우에 직접 원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판결이기는 하다. 그러나 일단 체박손해금 중 일정 부분은 손해배상이 아닌 선주의 보수라고 판시한 점에 의미가 있다. 4. 서울남부지방법원 2017. 2. 9. 선고 2016가단13431 판결 실무상 WIBON(whether in berth or not)조항 없이 부두조건 용선계약(항구조건 용건계약과 WIBON 조항이 있는 부두조건 용선계약의 경우에는 발항지연에 따라 용선자가 선주에게 지급하는 금원은 체선료에 해당하게 되기 때문이다)을 체결하면서 위 j항처럼 ‘① 하역항에 선하증권의 원본이 도착하지 않거나, 화물 하역 준비/화물인수가 지연되어 선박의 발항이 지연될 경우, 용선자는 선주에게 모든 실제적인 시간 손실에 대해 체박손해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② 선석대기, 놀 또는 용선자의 편의에 의한 야간 작업 중단에 의한 시간 손실은 발항지연에 의한 시간 손실로 간주한다. ③ 체박손해금은 하루당 xx달러 또는 시간 비율에 따른 금액으로 청구한다’라는 계약조항(이하 ‘예시조항’이라고 한다)을 두는 경우가 있다. 체박손해금을 영문으로는 Detention charge라고 한다. 이러한 체박손해금은 발항지연에 따른 손실부담에 관련된 것인데, 예시조항에 따른 체박손해금의 성격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아니하다. 특히 체박손해금 조항에 예시조항 ③까지 있는 경우, 체박손해금 조항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아니면 선주의 보수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예시조항 ①과 같은 조항에 대해서는 울산지법 판결에서 체박손해금을 선주의 보수라고 판단하였다. 이 글에서 살펴볼 서울남부지방법원 2017. 2. 9. 선고 2016가단13431 판결(1심판결이 확정되었다. 이하 ‘본건 판결’이라고 한다)에서는 위 사안의 개요의 j항 제2문 및 예시조항 ② 중 선석대기가 발생하여 발항이 지연되었고, j항 제3문 및 예시조항 ③처럼 체박손해금액이 정해져 있었던 사건이다. 즉,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아니면 선주의 보수인지’가 논쟁이 되었다. 위와 같은 논쟁에 대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경우 화물을 하역할 부두 혼잡으로 하역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이 사건 용선계약에서 이러한 선석대기(waiting for berth)로 인한 정박기간 초과를 체박손해로 간주한 점, 이 사건 용선계약에서 정한 Berth to Berth조항은 양륙준비완료통지를 유효하게 발송할 수 있는 조건이라기보다는 양륙이 선주의 책임과 비용으로 이루어지는 조건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 사건 용선계약의 문언과 GENCON 서식에 보다 부합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선박이 양하항에 도착한 후 양륙준비완료통지가 있었던 이후 선석대기 기간은, 용선자가 하역 대기를 하느라 지연된 시간으로서 체박손해금이 발생하는 기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5. 판결의 타당성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은 본건 판결처럼 선주의 보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울산지법 판결에 판시된 것처럼 체박손해금의 성격상 선주가 선석대기로 인해 체선기간 중 입게 되는 선원료, 식비, 선박이용을 방해받음으로 인하여 상실한 이익 등의 손실을 전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선주의 보수인 체선료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체박손해금은 Detention charge라는 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charge라는 단어 자체가 ‘요금, 대금’이라는 의미인 점, 위 j항 및 예시조항의 구조상 j항 제2문과 예시조항 ②의 선석대기로 인한 시간 손실을 j항 제1문 예시조항 ①의 체박손해금이 발생하는 시간손실로 계산 내지 간주하는 점을 볼 때에도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 역시 Detention charge로서 선주의 보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울러 항해용선 용선계약에서 특약으로 따로 정하는 내용 외에 GENCON의 내용이 준용되는 경우에는 GENCON PART2 선박소유자의 책임 조항에 의해, 선주는 물건의 멸실이나 훼손이나 인도지연에 대하여 그 멸실, 훼손 또는 인도지연이 모든 면에서 선박에 감항력을 확보하고 적절한 인원을 배치하며 장비를 보급할 것을 담보할 선주나 그 관리인의 개인적 주의의무의 결여에 기인하거나 또는 선박소유자나 관리인의 개인적 작위나 부주의에 기인하는 경우에만 그 책임을 지고, 그 이외의 어떠한 원인으로 인한 멸실, 훼손, 지연에 대하여서도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즉 GENCON의 내용이 준용되는 항해용선 계약의 경우, 일반적으로 선석대기로 인한 비용은 용선자가 부담하게 되고 선주는 책임이 없다. 따라서 선석대기로 인한 비용은 용선자에게 선석대기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용선자가 모두 부담하게 된다. 결국 선석대기로 인한 비용은 용선자의 고의 또는 과실과 관계없이 용선자가 부담하는 것이므로, 이를 귀책사유를 요건으로 하는 손해배상이라고 볼 수 없고,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 역시 선석대기로 인한 비용이므로,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은 손해배상금이라기보다는 선주의 보수에 해당된다. 6. 결어 그렇다면 본건 판결이 판시는 타당한 판시이고,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의 법적성질은 선주의 보수에 해당한다. 본건 판결은 하급심 판결이긴 하지만, 선석대기로 인한 체박손해금이 선주의 보수임을 처음으로 확인한 선례로서 그 의의가 있는 판결로 사료된다.
선석대기
체박손해금
선박
용선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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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변호사(김창규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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