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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9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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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부담금
행정사건
위탁자와 수탁자가 합의한 목적신탁 해지의 위법성
[ 요 약 ] 원고는 B 법인을 2020년에 흡수합병한 법인으로서, B의 주주였던 C는 2017년 3월 B 명의의 계좌로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100억 원을 기부했다. 이 자금은 B에 의해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21개 중소기업에 총 38억 원이 지급되었고, 나머지 62억 원은 2019년 12월 C에게 반환됐다. 과세관청은 이 100억 원을 B의 익금으로 간주하여 2017년도에 26억 원의 법인세를 부과하였고, 반환된 62억 원을 B가 C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하여 2020년에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원고는 불복하여, 기부된 자금이 B의 실질적인 자산으로 귀속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익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기부금 100억 원이 B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 않고, 외부에 공시된 바도 없으며, B가 자체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 기부금이 B의 익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기부금은 목적에 따라 집행되었으며, 남은 정산금도 C와 B의 합의해지에 따라 반환되었으므로, 신탁재산의 귀속을 재단하는 기준에 따라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원고에 대한 2017년도 법인세 26억 원의 부과처분과 2020년도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을 모두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기부금이 특정 목적을 위해 신탁된 것으로 보아, 신탁법과 신탁법리를 적용하여 법률관계를 판단한 중요한 사례다. Ⅰ. 사건의 개요 1. 원고는 2020년 5월 B를 흡수합병한 법인이다. C는 B의 주주이었던 자이다. 피고는 과세관청이다. C와 B는 중소업체 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C는 2017년 3월 B 명의의 H라는 계좌로 100억 원을 기부하였다. B는 2017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총 6회에 걸쳐 21개의 중소업체에 38억 원을 지급하였다. C와 B는 2019년 12월 양해각서를 합의해지하고, B는 같은 날 C에게 100억 원 중 중소업체에 지급된 38억 원을 공제한 나머지 정산금인 62억 원을 반환하였다. 2. 피고는 위 100억 원은 B의 익금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에게 2017년도 법인세 26억 원을 경정·고지하였고, 정산금으로 반환한 62억 원도 B의 익금에 산입할 금액으로서 B가 C에게 배당한 것으로 보아 원고에게 2020년도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를 하였다. 이에 원고는 위 100억 원은 B에 실질적으로 귀속되었다고 볼 수 없어 익금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26억 원의 부과처분은 위법하고, 반환금 62억 원이 익금에 산입할 금액임을 전제로 한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도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3. 제1심은 피고에게 법인세 26억 원의 부과처분과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하였다. 제2심도 원고의 청구를 모두 인용하여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Ⅱ. 법원의 판단 1. 양해각서의 성격 양해각서에 ‘신탁’, ‘수탁’, ‘수익자’라는 형식적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가 신탁의 성질을 가졌음을 부인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양해각서는 수익자가 없는 이른바 ‘목적신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유형의 신탁은 신탁법 제3조 제1항 단서에 의하여 허용되고 있으므로, 양해각서와 같이 수익자가 구체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신탁의 본질에 반하지는 않는다. 결국 양해각서의 형식과 실질이 모두 신탁 또는 그와 유사한 법률관계에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2. 기부금 100억 원이 익금에 해당하는지 여부 기부금 100억 원은 B가 대내외적으로 이를 소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B의 자산수증이익이나 그 밖의 수익 등 익금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B는 양해각서에서 정한 목적에 따라 100억 원을 관리·집행할 수 있었을 뿐이고, 자기를 위한 용도로는 이를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100억 원은 B의 고유재산과 분리되어 별도로 집행·관리되었고, B의 자산으로 회계 처리되지도 않았으며, 그와 같은 사실이 외부로 공시되어 표시되었다. ② 구법인세법 제5조(2020. 12. 22. 법률 제1765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는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그 신탁의 이익을 받을 수익자(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탁의 위탁자 또는 그 상속인)가 그 신탁재산을 가진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③ 100억 원은 양해각서에 따라 중소PP를 위하여 지출되었고, 남은 정산금도 B와 C의 합의해지에 따라 C에게 반환되었다. 당사자의 합의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는 행위가 신탁의 성질에 반한다거나, 단지 일방의 임의해지를 제한하는 취지의 양해각서 제4조(발효)의 문언을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Ⅲ.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1. 묵시적인 법률관계를 신탁 법률관계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 대상 판결은 ‘신탁’, ‘수탁’, ‘수익자’ 등과 같은 신탁을 나타내는 형식적 표현이 양해각서 어디에도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양해각서의 내용이 신탁 법률관계가 가지는 성격인 ‘소유권의 이전’, ‘수탁자의 배타적 관리·처분권’, ‘신탁재산의 분별관리의무’라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보아, 양해각서에 따른 법률관계를 신탁법 제3조 제1항 단서의 ‘수익자가 없는 특정의 목적을 위한 신탁’ 이른바 ‘목적신탁’으로 보았다. 즉 C가 B에게 기부한 100억 원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C가 B에게 신탁한 것으로 보았고, 기부금 100억 원에 관한 법률관계에 신탁법과 신탁법리를 적용 또는 유추적용하여 판단하고 있다. 2. 신탁법상 목적신탁의 설정 신탁법은 신탁의 설정방식으로 계약, 유언, 신탁선언 3가지 유형을 정하고 있다(제3조 제1항). 이 3가지 방식 모두 위탁자의 신탁설정 의사표시를 필수요건으로 하고 이러한 신탁설정행위(당사자 간에 신탁이라는 법률관계를 성립시키는 행위)를 신탁행위라고 한다. 법률행위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탁행위에 있어서도 의사표시는 명시적으로도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 또한 의사표시가 명시적인지 묵시적인지에 따라 신탁행위의 종류를 구분하지는 않으며, 그 효과에서도 차이가 없다. 당사자들의 언어를 통해서 신탁설정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전체 정황을 통해서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고, 이때 신탁설정의사는 특정 용어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행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목적신탁은 공익신탁이 아닌 한 신탁선언에 의해서는 설정할 수 없다(제3조 제1항 단서). 신탁선언에 의해 목적신탁을 설정할 수 있게 한다면, 채무자인 위탁자가 종래 자신의 채권자의 책임재산에 속하던 재산을 이제부터는 독립한 재산으로서 직접 관리하게 된다. 그래서 채무자가 집행면탈 등의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탁선언의 방식으로는 목적신탁을 설정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3. 목적신탁에서 법인세 납세의무자 구법인세법 제5조 제3항에 의하면,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해서는 수익자가 특정되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신탁의 위탁자가 법인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 즉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의 경우 법인세 납세의무자는 위탁자이다. 따라서 위 100억 원의 거래가 B의 익금이 될 수 없다는 원고의 주장은 정당하다. 4. 신탁법상 목적신탁의 종료 신탁이 종료되기 위해서는 우선 종료의 원인이 있어야 한다. 신탁법은 여러 유형의 종료사유를 정하고 있는데, 위탁자가 신탁이익의 전부를 누리는 경우 위탁자는 언제든지 신탁을 종료할 수 있다(제99조 제2항). 신탁의 설정자이면서 신탁재산의 이익을 모두 향수하는 위탁자 겸 수익자가 신탁의 종료를 의욕하는 이상 이를 금지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 위탁자가 별도로 해지권을 유보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위탁자에게 신탁의 해지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신탁계약을 통해 독립된 신탁재산이 구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법률관계가 형성되므로, 신탁을 설정한 위탁자라고 하더라도 이를 자의적으로 종료시킬 수는 없다. 또한 신탁행위로 달리 정함이 없는 한 위탁자와 수익자는 합의에 의하여 언제든지 신탁을 종료할 수 있다(제99조 제1항, 제4항). 그러나 이들 규정은 수익자신탁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수익자가 없는 목적신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목적신탁의 경우 위탁자의 임의해지와 위탁자와 수익자의 합의에 의한 종료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신탁관리인이 선임된 목적신탁의 경우 위탁자와 신탁관리인의 합의에 의한 종료는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당사자의 의사에 기한 신탁의 종료에서 어느 경우에 의하건 수탁자는 종료의 합의권자의 범위에서 제외된다. 신탁은 수익자의 이익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신탁재산을 관리하는 제도이므로 수탁자는 합의에 의한 신탁종료시 관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신탁 법률관계를 해석함에 있어 위탁자가 별도로 해지권을 유보하거나 신탁법상 종료사유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탁자와 수탁자가 임의로 합의하여 목적신탁을 해지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은 C와 B의 합의로 양해각서를 해지하는 행위가 신탁의 성질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으나, 사안에서 해지 당사자는 위탁자와 수익자가 아닌 위탁자 C와 수탁자 B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 양해각서는 C와 B 사이의 합의해지로 종료될 수 없으므로, B가 C에게 지급한 62억 원은 신탁재산의 반환이나 잔여재산의 귀속이 아니라 B의 자산을 C에게 지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피고가 원고에게 한 2020년도 귀속 62억 원의 소득금액변동통지 처분은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Ⅳ. 대상 판결의 의미 대상 판결은 법인이 아닌 재단을 갈음할 수 있는 목적신탁의 실제 활용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현행 우리법체계에서는 사익 또는 영리를 도모할 목적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사익을 위하여 재단법인에 버금가는 독립재산체를 신탁의 이름으로 창설할 수 있다.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본질로 하는 신탁은 재단법인과 기능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대상 판결을 계기로 목적신탁의 스킴이 제공하는 장점과 매력을 활용하여 그 이용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안성포 교수(전남대 로스쿨)
익금
목적신탁
법인세
기부금
신탁
양해각서
안성포 교수(전남대 로스쿨)
2024-04-14
부동산·건축
행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12)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의 의미
[ 요 약 ] 원고는 2017년 3월 8일, 대구광역시 서구청장을 상대로 대구 서구에 위치한 지정된 부지에 동물장묘시설을 신축하기 위한 개발행위허가신청을 포함한 건축허가신청을 제출했다. 이 신청은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을 준수해야 했으며, 이에 따르면 건축물 또는 공작물을 설치하는 부지는 도시 또는 군 계획도로에 접속해야 하며, 특히 개발규모가 5000㎡ 미만일 경우 진입도로의 최소 폭은 4미터 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원고는 충분한 자료 등을 제공하지 못했고, 이를 근거로 2019년 4월 10일 피고는 신청을 거부했다. 이 거부처분에 대한 법적 분쟁에는 국토계획법과 시행령이 쟁점이 됐다. 국토계획법 제58조와 시행령 제56조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지역의 특성, 개발 상황, 기반시설의 현황 등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은 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대구고등법원은 원심 판결에서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에 따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지침이 법규명령의 효력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지침이 내부적인 지침에 불과하며 대외적인 구속력은 없다고 판단,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대상판결은 상위법령인 시행령의 ‘세부 검토기준’의 구체화 권한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그렇다면 상위법령 입법자의 의사를 ‘위임’으로 보고, 이 사건 지침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했어야 마땅하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수임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대상판결은 결국 규범통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원고는 2017. 3. 8. 피고(대구광역시 서구청장)에게 대구 서구 (주소 생략) 외 1필지(이하 ‘이 사건 신청지’라고 한다) 지상에 동물장묘시설 1동을 신축하기 위하여 개발행위허가신청 등이 포함된 복합민원 형태의 건축허가신청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신청’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 훈령인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이하 ‘이 사건 지침’이라고 한다) 3-3-2-1에서는 도로에의 접속 및 도로확보기준에 관하여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공작물을 설치하는 부지는 도시·군계획도로 등에 접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에 따라 개설(도로확장 포함)하고자 하는 진입도로의 폭은 개발규모 5000㎡ 미만은 4m 이상으로서 개발행위규모에 따른 교통량을 고려하여 적정 폭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9. 4. 10. 이 사건 신청에 대해 피고는 거부처분을 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교통 관련: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 중 3-3-2-1에 근거한 진입도로 확보와 관련한 자료 불충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이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라고 한다) 제58조 제1항, 제3항에서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은 지역의 특성, 지역의 개발상황, 기반시설의 현황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1항 [별표 1의2] ‘개발행위허가기준’은 국토계획법 제58조 제3항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대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규명령에 해당한다. 한편,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4항에서는 “국토교통부장관이 제1항의 개발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국토교통부장관이‘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을 뿐이므로, 그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이 이 사건 지침은 상급행정기관인 국토교통부장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하급행정기관에 대하여 개발행위허가업무와 관련하여 국토계획법령에 규정된 개발행위허가기준의 해석·적용에 관한 세부 기준을 정하여 둔 행정규칙에 불과하여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 Ⅲ. 판례평석 1. 대상판결의 의미와 문제점 대상판결의 원심판결인 대구고등법원 2020. 6. 26. 선고 2019누5237 판결에서는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의 단계적 위임에 따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지침은 법규명령의 효력을 갖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대상판결은 ‘위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지침이‘국토계획법령에 규정된 개발행위허가기준의 해석·적용에 관한 세부 검토기준’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 법규성을 부정하였다. 대상판결이 이 사건 지침을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개발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기준”은 위임 없이도 행정이 당연히 그 권한 범위 내에서 행정규칙으로 구체화할 수 있고, 국토계획법 제56조 제4항은 단지 이를 확인적으로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고,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4항의 규정이 ‘구체적 위임’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일관되지 못하다면 그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은 성문법원의 하나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法院이 판단하기 전에 그 법원성 여부는 충분히 예측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2.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관련 판례 분석 대법원은 대법원 1987. 9. 29. 선고 86누484 판결 [양도소득세부과처분취소]에서 최초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개념을 인정하였다. 동 판결에서 설시한 법리에 따르면,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위 법령이 권한행사의 절차나 방법을 특정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특정행정기관에 대해 ‘그 법령내용의 구체적 사항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수임행정기관이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그 법령의 내용이 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된다. 즉, 상위법령은 행정규칙에 대해 상위법령 내용의 구체화 권한을 부여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 대해 대법원은 사안에 따라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대법원 2003. 9. 5. 선고 2001두403 판결에서는 소득금액조정 합계표 작성요령이 “법률의 위임을 받은 것이기는 하나 법인세의 부과징수라는 행정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절차적 규정으로서 단순히 행정규칙의 성질을 가지는 데 불과하다”고 하였고, 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두39297 판결에서는 위임명령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이 예시적 규정에 불과한 이상 그 위임에 따른 고시는 행정규칙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법리에 따르면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도, 하위 행정규칙이 상위 위임법령의 위임범위를 일탈했다는 이유로 아예 그 대외적 구속력을 바로 부정해 버리는 판례를 다수 양산해 왔다. 즉, “행정 각부의 장이 정하는 고시가 비록 법령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규정 내용이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일 경우에는 법규명령으로서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1987. 9. 29. 선고 86누484 판결, 대법원 1999. 11. 26. 선고 97누13474 판결, 대법원 2006. 4. 28.자 2003마715 결정 등). 대법원으로서는 절차적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나치게 많이 제정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사전에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을 수 있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행정규칙에 위임하는 경우가 빈번할 뿐 아니라, 위임하는 이유 또한 법규명령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상위법령의 ‘위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따라 그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해 온 것일 수 있다. 이상덕, 할당관세 적용 추천이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2017. 9. 21. 선고 2016두34417 판결: 공2017하, 2003), 대법원판례해설, 제114호(2017년 하), 27-29쪽. 하지만, 아무리 선해하더라도 대법원의 판례법리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위임이 지나치게 빈번’하다면 적절한 범위 내에서 위임이 되도록 법원은 규범통제를 했어야 한다. 요컨대, 최소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법원에 대해 ‘법’이 무엇인지는 예측가능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법원은 위임의 방식이나 위임의 내용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상위 위임법령이나 수임규칙에 대한 규범통제를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 포괄위임금지 원칙은 현재의 입법상황이나 세계적 입법례에 맞지 않으므로 헌법상 국회 입법권의 보장 및 침해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4차 산업혁명 대응 입법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포괄위임금지를 완화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박균성, 행정법 연구방법론의 모색, 2024년 한국공법학회 신진학자대회 ‘공법의 새로운 동향 탐색과 미래 공법의 조망’ 발표문, 43-44쪽 참조. Ⅳ. 맺음말 대상판결은 상위법령인 시행령의 ‘세부 검토기준’의 구체화 권한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그렇다면 상위법령 입법자의 의사를 ‘위임’으로 보고, 이 사건 지침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했어야 마땅하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수임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대상판결은 결국 규범통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에서는 법령에서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에 대해 하위 고시 등에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위임에 따른 행정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이 인정된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러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 제정과정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입법론적으로는, 행정입법의 절차적 정당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행정부 주도로 경제개발·사회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국회는 행정부에서 마련해 온 법률안에 대한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과정을 소홀히 한 채 통과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위임입법이 양산된 것이 헌정의 현실이기도 하다. (헌재 1998. 5. 28. 96헌가1 결정). 앞으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인정범위를 법령상 명확히 해나가는 논의와 함께, 행정규칙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다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미형 교수 (충남대 로스쿨)
개발행위허가
위임입법
행정규칙
법령보충
우미형 교수 (충남대 로스쿨)
2024-04-14
기업법무
정보통신
행정사건
메타의 접속경로 변경 관련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 판결
작년 12월 대법원은 메타와 방통위 간 분쟁에서 메타의 국내 트래픽 접속 변경이‘이용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이용 자체는 가능하나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용에 다소간의 지연이나 불편을 초래하게 하는 행위는 이용 제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분쟁 이후 CP에게도 망 품질 관리책임을 부여하는 법이 시행되어 CP에게 인터넷 생태계에서의 의무와 책임이 부여되었다. I. 사안의 개요 메타,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은 지능정보사회의 핵심 플랫폼의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생태계 구축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콘텐츠제공자(Contents Provider: CP)들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인터넷서비스제공자(Internet Service Provider: ISP)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데, 이 과정에서 망 이용대가 부담 주체, 적정규모 등에 관한 분쟁이 빈번하다. 이와 관련 메타(구 페이스북)가 SKT와 LGU+ 가입자가 자사에 접속하는 인터넷 트래픽의 일부의 접속경로를 국내 서버에서 홍콩 등 해외 서버 등으로 변경하여 국내 이용자들의 접속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동영상이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 등의 장애, 불편, 지연 등이 발생하자, 방송통신위원회 이러한 임의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 제한에 해당하고 이용자 이익의 저해 정도가 현저하다는 이유로 시정조치와 과징금(3억 9,600만 원) 납부 등을 명하였다. 이에 불복한 메타는 시정조치 및 과징금 부과 처분 등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은 방통위의 상고를 기각하였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0두50348 판결). 메타는 방통위의 예정 처분에 대해서 1) 콘텐츠 제공사업자로서 인터넷 접속 품질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수 없으며, 2) 응답속도가 느려졌더라도 이용자가 체감할 수준은 아니며, 3) 이용약관에 서비스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으므로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방통위는 1) 메타가 콘텐츠 제공사업자라 하더라도 직접 접속경로를 변경한 행위 주체로서 책임이 있으며, 2) 응답속도는 전반적인 네트워크 관리지표로서 2.4배 또는 4.5배 응답속도가 저하된 것은 접속 품질이 과거 수준에서 현저히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3) 이용약관에서 정한 무조건적인 면책조항은 부당한 점 등을 고려하여 페이스북의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의 접속경로 변경행위가 이 사건 쟁점 조항의 ‘이용 제한’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이다. 이 사건 쟁점 조항이 정한 금지행위를 이유로 하는 과징금 부과 등은 침익적 행정처분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쟁점조항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하고,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적용하여서는 안 된다. ‘제한’의 사전적 의미와 ‘제한’이 ‘중단’과 병렬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용의 제한’은 이용의 시기나 방법, 범위 등에 한도나 한계를 정하여 이용을 못 하게 막거나 실질적으로 그에 준하는 정도로 이용을 못 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이용자 편의 도모나 이용자의 보호를 이유로 이용의 ‘제한’을 ‘이용 자체는 가능하나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용에 다소간의 지연이나 불편을 초래하게 하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므로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에 반할 여지가 있다. CP가 자신이 제공하는 콘텐츠로의 과다 접속에 따른 다량의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전송, 처리하기 위하여 접속경로 변경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고 결코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CP의 접속경로 변경행위는 합리적 의사결정에 따른 것으로 영업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 있을 여지도 다분하다. 전기통신사업법은 2020. 6. 9. 법률 제17352호로 개정되면서 제22조의7이 신설되었는데, 위 조항은 이용자 수, 트래픽 양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부가통신사업자는 이용자에게 편리하고 안정적인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서비스 안정수단의 확보, 이용자 요구사항 처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위임에 따라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30조의8 제2항은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를 위한 구체적 조치사항으로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트래픽의 과도한 집중, 기술적 오류 등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와 트래픽 양 변동 추이를 고려한 서버 용량, 인터넷 연결의 원활성 확보 및 트래픽 경로의 최적화 등을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법이 개정된 이유는 이용자의 보호를 위한 것인데,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7이 신설되기 이전에는 CP의 일방적인 접속경로 변경행위에 대한 규제 또는 규율의 법적 공백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Ⅲ. 평석 1. 이용 제한 해당 여부 2018. 3. 21. 방통위 처분으로 시작된 접속경로 변경 분쟁은 5년 7개월 만에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메타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전기통신사업법령에서 금지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 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행위’ 중 ‘이용의 제한’에 해당하는지와 전기통신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이다. 이에 대해 1심은 메타의 접속경로 변경이 이용 제한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터넷 이용은 가능하나, 인터넷 이용이 지연되거나 불편할 수는 있으나 이용은 가능했기 때문에 ‘제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접속경로를 ‘우회’하도록 한 것은 이용 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용 제한이란 ‘이용은 가능하지만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를 곤란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다만, 다른 요건인 이용자들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상고심은 ‘이용의 ‘제한’을 ‘이용 자체는 가능하나 이용에 영향을 미쳐 이용에 다소간의 지연이나 불편을 초래하게 하는 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에 반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1심은 이용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2심은 이용 제한에 해당하나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이 아니라고 보았으며, 상고심은 1심의 결론을 지지했다. 이처럼 ‘이용 제한’의 개념에 대한 심급별 판단이 달랐다. 그러나 2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제한은 금지에 이르지 않지만 곤란, 불편, 장애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본건 인터넷 응답속도 저하는 제한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음 현저성에 관한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은 명백히 전기통신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저성의 요건은 정도나 수준의 문제라기보다 방식, 수단, 형태에 관한 판단이 필요한데, 1심과 2심 모두 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재판부에서 판단한 것처럼 ‘CP인 원고로서는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하여 서비스 품질이 어느 정도까지 저하될 것인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거대 CP인 메타는 접속경로를 스스로 설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특정 접속경로를 통해 흐르는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따라서 접속경로를 일시에 다량 변경하는 경우, 병목현상 등으로 인해 접속장애가 발생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접속경로를 변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방식이나 형태의 현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현저성을 수준이나 정도로 본다고 하여도 이용자 이익 저해 현저성은 상대적 개념으로 특정 국제기준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구체적, 개별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해외의 낮은 기준으로 국내 이용자가 겪은 접속지연이 현저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은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기대를 고려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2. 시사점 위 판결에서 법원은 인터넷 응답속도 등 인터넷 접속서비스의 품질은 기본적으로 ISP가 관리,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지, 원고와 같은 CP가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법원도 CP의 접속경로 변경 등으로 접속속도가 저하되어 전기통신서비스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명문의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입법 필요성을 강조한 점을 보면, CP의 망 품질 제어 가능성은 인정하였다. 이와 관련 방통위는 2019년 말 ‘공정한 인터넷망 이용계약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망 이용자의 지위에 불과했던 CP들에게 트래픽 관리를 포함한 이용자 보호책임을 인정하였다. 이후 정부는 상고심이 지적한 바와 같이 CP에게도 망 품질 관리책임을 인정하는 입법을 하게 된다. 이 법 적용 대상은 직전년도 3개월간 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0만 명 이상이면서 국내 발생 트래픽 총량의 1% 이상을 차지한 사업자인데, 구글, 넷플릭스, 메타, 네이버, 카카오가 대상이 되었다. 결국 이 사건 판결로 인해 인터넷 응답속도 등 인터넷 접속 서비스의 품질은 ISP가 관리,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지, CP가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던 관점이 변경되었다. 또한 부가통신사업자에 불과하였던 CP에게도 인터넷 생태계에서 책임과 의무를 인정하는 입법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이 판결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엽 교수(고려대)·법학박사
페이스북
접속경로변경
방통위
네트워크
전기통신
이성엽 교수(고려대)·법학박사
2024-02-24
행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⑥ 독서실 남녀좌석 구분을 강제하는 조례의 위헌성
대상판례는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대한 한계(기준)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Ⅰ. 사실관계 원고는 전주시에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및 같은 법 시행령에 따른 ‘학습장소로 제공되는 학원인 시설’에 해당하는 독서실을 등록하여 운영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 독서실 등록 당시 이 사건 조례 제3조의3 제2호에 따라 남녀 좌석이 구분 배열된 열람실 배치도를 제출하였다. 피고는 이 독서실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하여 열람실의 남녀좌석 구분 배열이 준수되지 않고, 남녀 이용자가 뒤섞여 있는 것을 적발하였다. 피고는 2017. 12. 6. 원고에 대하여 학원법 제17조, 이 사건 조례 조항에 따라 10일간 교습정지를 명하는 처분(‘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교습정지처분이 근거한 조례가 위헌, 위법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 처분은 취소되어야 한다며 이 사건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전라북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제3조의3】 법 제8조에 따른 학원의 단위시설별 시설기준은 다음과 같다. 2. 열람실 : 열람실은 60제곱미터 이상으로 하되, 1제곱미터당 수용인원이 0.8명 이하가 되도록 하고,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되도록 배열할 것. Ⅱ.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 조례 조항은 학원법상 학원으로 등록된 독서실의 운영자로 하여금 열람실의 남녀 좌석을 구분하여 배열하도록 하고 위반 시 교습정지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독서실 운영자는 자신의 영업장소인 독서실 열람실 내의 좌석 배열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므로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받는다. 한편 독서실 이용자는 독서실 열람실 내에서 성별의 구분 없이 자유롭게 좌석을 선택하는 등 학습방법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므로 자기결정권을 제한받는다. 먼저 목적의 정당성이 있는지 보면, 이 사건 조례조항은 독서실 내에서 이성과 불필요한 접촉을 차단하여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성범죄를 예방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하지만 열람실의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습효과를 높인다는 것은 독서실 운영자와 이용자의 자율이 보장되어야 하는 사적 영역에 지방자치단체가 지나치게 후견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수단의 적합성 역시 같은 열람실 내에서 남녀좌석을 구별하는 것이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인지는 의문이다. 열람실 자체를 분리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열람실에서 남녀의 좌석 배열만 구별하는 경우, 남녀가 바로 옆자리에 앉을 수 없을 뿐 앞뒤의 다른 열 책상에는 앉을 수 있고, 동일한 출입문을 사용하므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다.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역시 이 사건 조례 조항은 독서실 운영자에게 남녀좌석을 구분 배열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별도의 경고 조치 없이 바로 10일 이상의 교습정지 처분을 하면서도, 독서실의 운영 시간이나 열람실의 구조, 주된 이용자의 성별과 연령, 관리감독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여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 반면, 독서실의 남녀좌석을 구분 배열함으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면학분위기 조성이나 성범죄 예방이라는 효과는 불확실하거나 미미하다. Ⅲ. 평석 1. 법원의 명령, 규칙, 조례에 대한 부수적 규범통제 명령·규칙이나 조례가 개별 사건의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 문제된 명령·규칙이나 조례가 모법에 위배되는지 여부 등에 대한 위법 심사, 평등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나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등 위헌 심사를 행한다. 처분은 법령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데, 처분의 취소 등을 구하는 항고소송에서 법원은 근거법률에 위헌의 합리적 의심이 있으면 헌재에 심판제청을 하여야 하지만(헌법 제107조 제1항), 명령, 규칙, 조례 등의 위헌, 위법 여부는 직접 심사를 하게 되고(헌법 제107조 제2항), 심사결과 대통령령 등이 위헌, 위법이라고 판단되면 그러한 행정입법과 조례 등은 효력이 없고, 일반적인 효력을 부정하는 설도 있으나 통상 당해 사안의 적용 배제에 그친다는 설이 다수설이다. 대통령령 등은 대법원 판결로 위헌·위법이 확정되어야 관보에 게재된다(행정소송법 제6조) 그에 근거한 처분 또한 위헌, 위법한 처분이 된다. 2. 자기결정권과 자기책임의 원리 자기결정권은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의 자기의 운명에 관한 결정·선택권을 존중하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하는 자기책임의 원리에서 비롯된다. 개인이 자유의사에 따라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만 원칙적으로 자기결정에 따른 책임과 위험부담이 부과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은 사람의 자기의 운명에 대한 결정·선택을 존중하되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한다. 자기책임의 원리는 이와 같이 자기결정권의 한계논리로서 책임부담의 근거로 기능하는 동시에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부담의 범위도 스스로 결정한 결과 내지 그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분에 국한됨을 의미하는 책임의 한정원리로 기능한다. 이러한 자기책임의 원리는 법치주의에 당연히 내재하는 원리로서, 자기책임의 원리에 반하는 제재는 그 자체로서 위헌이다(헌재 2001헌가25).”라고 판시하여 자기책임의 원리는 자기결정권의 한계 논리 내지 책임부담의 근거일 뿐만 아니라 책임의 한정 원리로 기능한다고 보고 있다. 3. 국가 후견주의의 한계 국가 후견주의의 구체적인 유형 구분은 학자마다 상이하나, 결국에는 자기 결정권의 제약원리로서 개인의 자율영역에서 자신의 이익이나 보호를 위하여 자기 결정권에 대해 국가권력이 개입·간섭하는 경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드워킨은 후견주의와 관련하여 “강제를 받는 사람의 복지, 행복, 필요, 이익 또는 가치와 관계하는 이유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과 같은 어떤 사람의 행동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파인버그는 강한 후견주의와 약한 후견주의로 구분하고 있는데 강한 후견주의는 개입·간섭을 받는 자의 선택이나 행동이 완전히 임의적이라 하더라도 개입·간섭을 하는 데 반해, 약한 후견주의는 개입·간섭을 받는 자가 어떤 이유에 의해 적절한 판단 능력을 결여하여 실질적으로 비자발적이거나 그렇다고 추정될 경우에만 간섭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또한 데블린은 신체적·물질적 후견주의와 정신적·도덕적 후견주의로 구분하기도 한다. 결국, 자기결정권에도 내재적 한계가 있으므로 인격적 자율 그 자체를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영속적으로 해치는 경우 국가가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견주의라는 명목하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 지나치게 확대됨은 경계하여야 한다. 4. 평등원칙 위반 대상판결에서 검토된 것은 아니나, 이 사건 조례조항은 평등원칙위반 소지도 있다. 1970년 10월부터 시행된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 시행령부터 “남녀공용인 독서실에 있어서는 열람실을 남녀별로 구분하고, 출입문도 따로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다가 1985.5. 해당 조항은 없어졌으며 1996.1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부터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되도록 배열할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후 2007.3. 시행된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규정이 삭제되었고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열람실 남녀 구분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사설 열람실의 경우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인인 경우라도 남녀좌석을 의무적으로 구분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 할 경우 교습정지 등 행정처분의 대상이 된다. 반면 스터디카페, 공공도서관, 공동주택 독서실 등은 남녀좌석을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사설 열람실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여기서 평등원칙 위반의 소지가 발생하는데, 스터디카페, 공공도서관, 공동주택 독서실 등도 면학분위기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학원법에 따라 등록된 열람실과 실질적으로 차이는 없다. 그런데 위 공간들은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운영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는 반면 이 사건 조례조항에 따르면 남녀좌석을 구분하여 운영할 의무를 부과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회 적발시 10일간 교습정지, 2회 적발시 폐쇄명령을 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백히 차별 대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평등원칙이 의미하는 상대적 평등, 즉 실질적으로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 5. 결론 급변하는 사회상을 반영하여 법령을 적시에 변경할 필요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조례조항은 1970.10.27.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규정된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여 유지해 왔다. 대상판결은 사적 공간에서 학습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타인의 법익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므로 이용자 각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 미성년 학생이라도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힘으로써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한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가 후견주의가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헌법상 보장된 자기결정권의 본질을 침해해서는 아니되며, 필요 최소한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사건 조례조항은 학원법에서 규율하는 장소를 스터디카페 등 학원법에서 규율하지 않는 장소와 비교하여 볼 때 실질적인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다. 이 사건 판결로 유사 조항을 두고 있는 다른 지자체의 지방자치단체의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역시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추후 관련 소송이나 조례 개정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판례는 학교 밖의 교육영역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우선적으로 결정할 것이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개입할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 등의 후견적 간섭에 대한 한계(기준)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성중탁 교수(경북대 로스쿨)
남녀구분
과잉금지원칙
독서실
열람실
성중탁 교수(경북대 로스쿨)
2023-08-30
행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③ 이의신청에 대한 거부와 항고소송의 대상적격
대상판결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과 관계없이 당사자의 신청을 새로운 신청으로 선해하여 그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자적 처분성을 인정하는 판례의 연장선에서 위 판례의 적용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특히 당사자가 법률에서 정한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도 사안에 따라서는 그에 대한 기각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도 있음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원고는 당진시에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다. 피고(당진시장)는 「지적재조사에 관한 특별법」(이하 ‘지적재조사법’)에 따라 지적재조사사업을 실시하고 토지의 경계를 확정하며 면적 증감에 따른 조정금을 산정하여 토지 소유자에게 징수하거나 지급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지적소관청이다. 2. 피고는 지적재조사사업에 따라 원고 소유 토지의 지적공부상 면적이 감소되었음을 이유로, 당진시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원고에게 조정금 62,865,000원의 수령을 통지하였다(‘1차 통지’). 3. 원고가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이의신청 기간 내에 조정금에 대하여 이의를 신청하였으나, 피고는 원고에게 당진시 지적재조사위원회가 재감정을 거쳐 심의·의결한 내용을 첨부하여 기존과 동일한 액수의 조정금을 수령할 것을 통지하였다(‘2차 통지’). 4. 원고는 충청남도행정심판위원회에 2차 통지의 취소재결을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다가 기각되자, 2차 통지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Ⅱ. 대법원 판결 요지 1. 수익적 행정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있은 후 당사자가 다시 신청을 한 경우에는 신청의 제목 여하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라면 관할 행정청이 이를 다시 거절하는 것은 새로운 거부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어떠한 처분이 수익적 행정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해당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의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로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의 통보를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다. 2. ① 조정금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는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법률상 절차이므로 그에 관한 절차적 권리는 법률상 권리로 볼 수 있는 점, ② 원고가 이의신청을 하기 전에는 조정금 산정결과 및 수령을 통지한 1차 통지만 존재하였고 원고는 신청 자체를 한 적이 없으므로 원고의 이의신청은 새로운 신청으로 볼 수 있는 점, ③ 2차 통지서의 문언상 종전 통지와 별도로 심의·의결하였다는 내용이 명백하고, 단순히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정금에 대하여 다시 재산정, 심의·의결절차를 거친 결과, 그 조정금이 종전 금액과 동일하게 산정되었다는 내용을 알리는 것이므로, 2차 통지를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는 점, ④ 피고가 1차 통지 시에 이의신청 절차만을 안내하고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에 대하여는 안내하지 않았으며 행정심판절차에서 심판청구의 대상적격에 대하여 전혀 다투지 아니한 이상 원고도 2차 통지를 행정소송의 대상인 처분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2차 통지는 1차 통지와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다. Ⅲ.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1. 이의신청의 의미 이의신청이란 넓게는 행정작용에 대하여 행정부 내부에 제기하는 불복절차를 통칭하는 것이지만, 이의신청을 일반행정심판 및 특별행정심판에 해당하지 않는 간이한 불복절차로 좁게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24일 시행된 행정기본법 제36조는 행정처분을 대상으로 하여 처분청에 불복하는 이의신청 절차의 원칙적 구조를 정한 일반법이다. 그러나, 제36조의 시행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법률에서 다양한 모습의 이의신청 절차를 두고 있다. 지적재조사법에 따른 이의신청도 그중 하나다. 2.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판례의 변천 (1)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 부인 대상판결의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이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12년 대법원판결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구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거부처분에 대하여 제기하는 이의신청이 문제 된 사건에서 이의신청 기각결정이 “종전의 거부처분을 유지함을 전제로 한 것에 불과”하여 “이의신청인의 권리·의무에 새로운 변동을 초래하는 공권력의 행사나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 그런데, 위 판결에 따르면, 이의신청은 행정심판과 성질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행정심판청구를 거친 경우 행정심판재결서 정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단서는 이의신청을 거쳐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이의신청의 결과를 기다리다 종전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이 지나버리면 이의신청인은 어떠한 불복도 불가능하게 된다. 종전 처분에 대한 취소의 소는 제소기간을 도과하였고,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한 취소의 소는 대상적격이 부인되어 부적법하기 때문이다. 판례의 이러한 태도는 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단서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방해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2)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한 판례의 등장 대법원은 이후 위와 같은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대법원은 2016년, 피고(LH공사)가 생활대책대상자 부적격통보에 대한 이의신청을 재심사하여 재심사 결과로도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재심사통보’를 한 사건에서, 위 재심사통보가 단순히 종전 처분을 유지하는 의사를 표시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청에 대한 처분으로서 항고소송의 대상적격이 인정된다고 보았다(비교판례 1, 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5두58645 판결). 위 사건에서는 ① 피고가 원고들의 신청 없이 직권으로 원고들에게 최초의 처분을 하였고, 원고들이 이의신청을 통하여 비로소 생활대책대상자 지정 신청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 ② 피고가 원고들이 새로이 제출한 자료를 고려하여 선정기준 충족 여부를 다시 심사하였다는 점, 그리고 ③ 피고가 재심사통보에 대하여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취지로 불복방법을 고지하였기에 위 고지에 따른 원고들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되었다. 대법원은 2019년 및 2021년, “거부처분이 있은 후 당사자가 다시 신청을 한 경우에는 신청의 제목 여하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라면 행정청이 이를 다시 거절하는 것은 새로운 거부처분”으로 본다는 일반적인 법리를 근거로 ‘이의신청’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거부를 새로운 거부처분으로 보는 두 건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첫 번째는 예방접종 피해보상 기각결정을 받은 원고가 피고(질병관리본부장)의 내부절차에 따라 이의신청을 하였다가 기각된 사안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그 시행령 등에 이의신청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고 권리 행사기간의 제한에 관한 규정도 없으므로 원고가 언제든지 재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점, ② 원고의 이의신청이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상 이의신청기간이 도과된 후에야 제기되어 위 법률에 따른 이의신청으로 볼 수도 없는 점 등을 들어 원고의 이의신청을 새로운 피해보상신청으로 보았다(비교판례 2, 대법원 2019. 4. 3. 선고 2017두52764 판결). 두 번째는 이주자택지공급대상자 선정 신청이 거부된 원고가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이의신청 또한 기각된 사안이다. 대법원은 ① 공급대상자 선정 신청기간을 제한하는 특별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규정이 있더라도 재신청이 신청기간을 도과하였는지 여부는 본안에서 재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적법한가를 판단하는 단계에서 고려할 요소이지 소송요건 심사단계에서 고려할 요소가 아닌 점, ② 피고 스스로도 이의신청을 수용하지 아니하는 결정이 별도의 처분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에 따른 불복절차를 안내한 점을 들어 이의신청 불수용처분의 처분성을 인정하였다(비교판례 3,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 3. 대상판결이 주는 함의 대상판결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과 관계없이 당사자의 신청을 새로운 신청으로 선해하여 그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자적 처분성을 인정하는 판례의 연장선에서 위 판례의 적용범위를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이의를 찾을 수 있다. 비교판례 1, 2, 3은 모두 수익적 처분의 발급을 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인정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원고들의 신청은 ‘이의신청’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종전 처분에 대해 불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적 처분의 발급을 구하는 새로운 신청을 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원고들이 이전에 신청권을 행사한 적이 없거나(비교판례 1), 이미 이의신청기간이 도과하였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신청으로 볼 수밖에 없거나(비교판례 2), 원고가 신청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피고에게 새로운 심사를 촉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피고도 그에 따른 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보고 불복방법을 안내하였다는 점(비교판례 3)이 근거가 되었다. 이와 달리 대상판결에서는 원고에게 조정금의 지급을 신청할 법률상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지적재조사법은 지적소관청이 직권으로 지적재조사지구를 지정하고, 경계를 결정하고, 조정금을 산정하여 지급 또는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는 단지 지적소관청의 조정금산정 결과에 대해 이의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원고의 이의신청을 그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의신청이 아닌 별개의 신청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피고가 최초의 조정금산정 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조정금을 재산정하고 필요한 절차를 거쳤다는 점이 비교판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대상판결은 법률에서 정한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도 종전 처분과 동일한 심사절차를 거쳤다면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을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다고 선언한 셈이다. 대상판결은 2012년 판결이 가져온 불합리한 결과를 완화하고 원고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판결로 보인다. 대법원이 2012년 판결에서 제시한,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은 종전의 거부처분을 유지함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별도의 처분으로 볼 수 없다는 법리가 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비교판례에서 대상판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위 법리의 적용범위를 상당부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4. 보론: 행정기본법상 이의신청 제도와 대상판결의 관계 행정기본법 제36조가 시행됨에 따라 이의신청절차를 거쳐 불복하는 경우의 제소기간 문제는 해결되었다. 제4항에서 이의신청인이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를 통지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이의신청이 기각된 이후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다툼의 대상을 특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굳이 이의신청 기각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할 필요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행정심판위원회나 법원으로서는 석명권을 적절히 행사하거나 종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것으로 원고의 의사를 선해하는 등으로 청구취지의 특정에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처분청으로서도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를 통지할 때에 불복의 대상을 명확히 특정함으로써 이에 관한 논란을 방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박현정 교수(한양대 로스쿨)
이의신청기각결정
이의신청
지적재조사
박현정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4-26
행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① 행정쟁송에서 집행정지의 종기를 둘러싼 법적 쟁점
한국행정법학회가 법률신문 독자들을 위해 주요 행정사건 판례를 분석한 행정판례평석을 연재합니다. 김용섭 회장을 시작으로 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계·실무계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I. 사실관계 1. 원고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 정한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을 영위하는 주식회사이다. 피고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인 군수이다. 피고는 2015. 6. 8. 원고에 대하여 각 화물자동차를 불법증차하였다는 이유로 구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2021. 7. 27. 법률 제1835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9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60일(2015. 7. 13.부터 2015. 9. 10.까지)의 운행정지 처분을 하고, 각 화물자동차를 불법증차하고도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유가보조금을 지급받았다는 이유로 같은 법률 제44조의2 제1항 제5호에 따라 6개월(2015. 7. 13.부터 2016. 1. 13.까지)의 유가보조금 지급정지 처분을 하였다. 2.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관할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다. 행정심판위원회는 2015. 7. 13. 위 각 처분의 집행을 행정심판 청구 사건의 재결이 있을 때까지 정지하는 내용의 이 사건 집행정지결정을 하였다가 2015. 8. 31. 유가보조금 지급정지 처분의 취소 청구는 기각하고, 위 운행정지 기간은 30일로 감경하는 이 사건 재결을 하였다(이하 위 유가보조금 지급정지 처분과 위와 같이 감경되고 남은 운행정지 처분을 합하여 ‘선행처분’이라 한다). 원고는 선행처분에 대하여 법원에 별도로 취소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3. 피고는 2015. 9. 22. 선행처분의 집행을 피고와 A주식회사 사이의 이와 유사한 사건의 관할 행정법원 2015구합1245 판결 시까지 유예한다는 내용의 이 사건 유예 통지서를 작성하여 원고에게 발송하였다. 관할 행정법원은 2016. 1. 13. 위 사건에 관하여 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는 2020. 3. 5. 원고에게 선행처분과 동일한 사유로 각 화물자동차에 관하여 30일(2020. 3. 6.부터 2020. 4. 4.까지)의 운행정지, 6개월의 유가보조금 지급정지를 하겠다고 통보하였다(이하 ‘이 사건 통보’라 한다). Ⅱ. 대법원 판결 요지 1. 행정소송법 제23조에 따른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은 결정 주문에서 정한 종기까지 존속하고, 그 종기가 도래하면 당연히 소멸한다. 따라서 효력기간이 정해져 있는 제재적 행정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서 법원이 본안소송의 판결 선고 시까지 집행정지결정을 하면, 처분에서 정해 둔 효력기간(집행정지결정 당시 이미 일부 집행되었다면 그 나머지 기간)은 판결 선고 시까지 진행하지 않다가 판결이 선고되면 그때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이 소멸함과 동시에 처분의 효력이 당연히 부활하여 처분에서 정한 효력기간이 다시 진행한다. 이는 처분에서 효력기간의 시기(始期)와 종기(終期)를 정해 두었는데, 그 시기와 종기가 집행정지기간 중에 모두 경과한 경우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법리는 행정심판위원회가 행정심판법 제30조에 따라 집행정지결정을 한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행정심판위원회가 행정심판 청구 사건의 재결이 있을 때까지 처분의 집행을 정지한다고 결정한 경우에는, 재결서 정본이 청구인에게 송달된 때 재결의 효력이 발생하므로(행정심판법 제48조 제2항, 제1항 참조) 그때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이 소멸함과 동시에 처분의 효력이 부활한다. 2. 효력기간이 정해져 있는 제재적 행정처분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도 행정청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방에 대한 별도의 처분으로써 효력기간의 시기와 종기를 다시 정할 수 있다. 이는 당초의 제재적 행정처분이 유효함을 전제로 그 구체적인 집행시기만을 변경하는 후속 변경처분이다. 이러한 후속 변경처분도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의사표시에 관한 일반법리에 따라 상대방에게 고지되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위와 같은 후속 변경처분서에 효력기간의 시기와 종기를 다시 특정하는 대신 당초 제재적 행정처분의 집행을 특정 소송사건의 판결 시까지 유예한다고 기재되어 있다면, 처분의 효력기간은 원칙적으로 그 사건의 판결 선고 시까지 진행이 정지되었다가 판결이 선고되면 다시 진행된다. 다만 이러한 후속 변경처분 권한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초의 제재적 행정처분의 효력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인정된다. 당초의 제재적 행정처분에서 정한 효력기간이 경과하면 그로써 처분의 집행은 종료되어 처분의 효력이 소멸하는 것이므로(행정소송법 제12조 후문 참조), 그 후 동일한 사유로 다시 제재적 행정처분을 하는 것은 위법한 이중처분에 해당한다. Ⅲ.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 1. 집행부정지 원칙과 집행정지제도 행정심판법 제30조와 행정소송법 제23조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집행이 정지되지 않는다는 집행부정지 원칙을 표방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나 프랑스처럼 집행부정지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집행정지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어느 제도를 채택할 것인지는 각국의 실정에 따른 입법정책의 문제이다. 행정소송에서의 집행부정지 원칙은 남소를 억제하여 행정의 원활한 집행과 행정목적 달성을 위한 현 상태(status quo)의 존속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행정쟁송을 통하여 제재적 행정처분을 다투려고 하는 당사자는 그 제재적 처분기간이 경과하면 일반적으로 본안에서 소각하 판결을 받을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당사자는 가구제의 일종인 집행정지제도를 활용하여 본안판결의 실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2. 실무관행과 대상 판결의 문제점 현행 행정심판법이나 행정소송법에서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관해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행정법원의 일반적 실무 관행은 “본안판결 선고시까지”로 하고 있다. 법원은 개별적인 사건을 고려하여 “본안판결 확정시까지” 또는 “본안판결 선고일부터 1월까지” 등으로 신축적으로 재량에 따라 집행정지결정을 내리고 있다. 한편, 행정심판위원회의 경우에는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재결이 있을 때까지로 하는 것이 실무관행이고, 재결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관한 실무관행과 판례의 법리에 따르면 당사자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본안에서 승소하였음에도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인 판결선고일에 집행정지결정의 효력이 소멸함과 동시에 처분의 효력이 당연히 부활하여 처분에서 정한 효력기간이 다시 진행하게 된다. 따라서 법원에서 직권으로 집행정지 결정을 하지 않으면 판결선고일에 영업정지처분의 효력이 되살아나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영업을 중단하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본안에서 패소한 경우 당사자는 영업중단에 대비하는 조치를 곧바로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판결선고시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 도래로 곧바로 종전 처분의 효력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선 처분청은 별도의 의사표시로 처분의 시기와 종기를 다시 정하고 심지어 집행정지의 효과를 지니는 처분까지 행하는 실정이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편법을 정당화해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상판결은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가 판결선고일인 경우 처분에서 정해 둔 효력기간은 판결 선고일까지 진행하지 않다가 선고일 다음 날부터 다시 진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법리는 행정심판위원회가 행정심판법 제30조에 따라 집행정지결정을 한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다만, 대상판결은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재결시로 한 경우 그 시점은 재결을 한 날이 아니라 재결서 정본이 청구인에게 송달된 때로 보고 있다.(행정심판법 제48조 제2항, 제1항 참조) 그러나 이러한 행정심판법의 법문을 확장하는 대법원의 해석은 당사자의 권익을 고려하는 측면이 있지만, 재결서의 정본이 청구인에게 송달된 시점을 행정청이 정확히 알기 어려워 처분 효력의 재개 시점이 불명확하여 행정처분의 원활한 집행을 통한 공익실현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 3.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관한 입법방향 가. 입법론과 비판 : 학계 일각에서 법원의 실무관행인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판결선고시까지’로 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판결확정시까지’로 행정소송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목할 만한 입장이 개진된 바 있다. (류광해, “행정처분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대한 검토”, 인권과 정의 통권 제446호, 2014. 65-77면, 제20대 국회 오제세의원 대표발의 행정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참고). 그런데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판결확정시까지로 법제화할 경우에는 법원이 집행정지제도를 보다 신중하고 엄격하게 운영하게 되어 당사자인 국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판결확정시로 정하는 경우 승소한 원고를 보호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으나, 승패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에 있어서 1심법원이 항소심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권한을 선취하는 결과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행정소송법에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를 판결확정시 까지로 명문화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나. 결론 및 대안 : 따라서 행정소송의 경우 판결선고 후 30일까지로, 행정심판의 경우 재결 후 30일까지로 각각 실무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적 검토사항이다. 집행정지 결정의 종기에 관하여 법제화하려면 국민의 권익구제와 원활한 행정목적 실현의 조화 측면에서 행정소송의 경우 판결선고 후 30일까지로, 행정심판의 경우 재결 후 30일까지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 김용섭 교수 (전북대 로스쿨)
집행정지
행정소송
김용섭 교수 (전북대 로스쿨)
2023-02-16
행정사건
이의신청기각결정의 법적 성질 문제
Ⅰ. 사안 1. 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 甲은 A 시장에게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신청을 하였으나, A 시장은 2008년 7월 31일 이를 불허가하였다(이하 '이 사건 제1처분'이라고 한다.). 甲은 2008년 10월 27일 A에게 민원법에 따라 이 사건 제1처분의 취소와 함께 위 주택건설사업계획의 승인을 구하는 내용의 이의신청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A는 2008년 11월 25일 甲에게 이 사건 이의신청을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통지하였다(이하 '이 사건 제2처분'이라고 한다). 이 사건 제2처분은 독립된 항고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2.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 B 공사가 2017년 7월 28일에 乙에 대하여 이주대책 대상자 제외결정(1차결정)을 통보하면서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또한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하였고, 이에 乙이 이의신청을 하자 2017년 12월 6일에 乙에게 다시 이주대책 대상자 제외결정(2차결정)을 통보하면서 '다시 이의가 있는 경우 본 처분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하였다. 2차결정이 1차결정과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는가? 3.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두53894 판결 C 시장이 丙 소유 토지의 경계확정으로 지적공부상 면적이 감소되었다는 이유로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丙에게 조정금 수령을 2018년 1월 9일에 통지하자(1차 통지), 丙이 구체적인 이의신청 사유와 소명자료를 첨부하여 이의를 신청하였으나, C 시장이 지적재조사위원회의 재산정심의·의결을 거쳐 종전과 동일한 액수의 조정금 수령을 2018년 6월 12일에 통지한(2차 통지) 사안에서, 새로운 처분으로서 2차 통지는 1차 통지와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Ⅱ. 제 판결의 주요요지 1. 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0두8676 판결 구 민원사무처리법 제18조 제1항에서 정한 거부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이하 '민원 이의신청'이라 한다)은 행정청의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이나 부작위로 침해된 국민의 권리 또는 이익을 구제함을 목적으로 하여 행정청과 별도의 행정심판기관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도록 한 절차인 행정심판과는 달리 민원사무처리법에 의하여 민원사무처리를 거부한 처분청이 민원인의 신청 사항을 다시 심사하여 잘못이 있는 경우 스스로 시정하도록 한 절차이다. 이에 따라 민원 이의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이의신청 대상인 거부처분을 취소하지 않고 바로 최초의 신청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처분을 하여야 하지만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에는 다시 거부처분을 하지 않고 그 결과를 통지함에 그칠 뿐이다. 따라서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취지의 기각 결정 내지는 그 취지의 통지는 종전의 거부처분을 유지함을 전제로 한 것에 불과하고 또한 거부처분에 대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의 제기에도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결국 민원 이의신청인의 권리·의무에 새로운 변동을 가져오는 공권력의 행사나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할 수 없어 독자적인 항고소송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2. 대법원 2021. 1. 14. 선고 2020두50324 판결 수익적 행정처분을 구하는 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은 당사자의 신청에 대하여 관할 행정청이 이를 거절하는 의사를 대외적으로 명백히 표시함으로써 성립된다. 거부처분이 있은 후 당사자가 다시 신청을 한 경우에는 신청의 제목 여하에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새로운 신청을 하는 취지라면 관할 행정청이 이를 다시 거절하는 것은 새로운 거부처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관계 법령이나 행정청이 사전에 공표한 처분기준에 신청기간을 제한하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이상 재신청을 불허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설령 신청기간을 제한하는 특별한 규정이 있더라도 재신청이 신청기간을 도과하였는지는 본안에서 재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이 적법한가를 판단하는 단계에서 고려할 요소이지, 소송요건 심사단계에서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 3. 대법원 2022. 3. 17. 선고 2021두53894 판결 구 지적재조사법 제21조의2가 신설되면서 조정금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가 법률상 절차로 변경되었으므로 그에 관한 절차적 권리는 법률상 권리로 볼 수 있는 점, 丙이 이의신청을 하기 전에는 조정금 산정결과 및 수령을 통지한 1차 통지만 존재하였고 丙은 신청 자체를 한 적이 없으므로 丙의 이의신청은 새로운 신청으로 볼 수 있는 점, 2차 통지서의 문언상 종전 통지와 별도로 심의·의결하였다는 내용이 명백하고 단순히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정금에 대하여 다시 재산정, 심의·의결절차를 거친 결과, 그 조정금이 종전 금액과 동일하게 산정되었다는 내용을 알리는 것이므로 2차 통지를 새로운 처분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2차 통지는 1차 통지와 별도로 행정쟁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에도 2차통지의 처분성을 부정한 원심판단에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립된 처분성과 관련해 판례가 적잖이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행정기본법이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 통지받을 날’을 권리구제의 기산점으로 규정한 이상, 권리구제의 공백은 앞으로 생길 수가 없다. 대법원 판결이 조화될 수 없게 병존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이 시급하다. Ⅲ. 문제의 제기 - 혼재된 판례 상황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결정의 독립된 처분성 문제와 관련하여 판례가 적잖이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일찍이 대법원 2010두8676 판결은 부인하였는데, 최근의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과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은 대법원 2010두8676 판결과 다른 논거를 내세우면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판례상으로 긍정설과 부정설이 혼재하고 있는 셈이다. 정반대의 상황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사안과 법제의 차원에서 양자 사이에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왕의 판례를 변경하는 절차를 밟아 새로운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은 대법원 2010두8676 판결과 다른 접근을 나름의 근거로 정당화시켰고 이것이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에 이어졌다(긍정하는 문헌으로 임재남, 한국행정판례연구회 제380차 월례발표회 발표문, 2022. 10. 21.) Ⅳ.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의 논증의 타당성 여부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은 원심(서울고법 2020누30162판결)이 원용한 대법원 2010두8676 판결이 구 민원사무처리법 제18조에 근거한 '이의신청'에서 접근한 것을 문제 삼아, 대법원 2010두8676 판결의 사안에서는 행정청이 기각결정에 대하여 행정쟁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불복방법 안내를 하지 않았던 것과 대비시켜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의 사안에서는 불복방법 안내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이런 차이에 의거하여 대법원 2010두8676 판결을 원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의 사안에서의 이의신청은 일종의 임의적이다. 그것에 대한 기각결정에서의 불복방법의 안내가 기각결정의 법적 성질을 결정적으로 가늠한다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 행정청의 친절이 기각결정을 새로운 독립된 처분으로 접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인데, 불복방법의 안내의 존재가 처분성을 인정하는 착안점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은 대상행위의 처분성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수범자에게 유리하게'라는 권리구제에 친화적 해석의 방법에 따른 것이다. 이미 당초결정의 처분성이 확고한 이상, 불복방법의 안내의 존재로 기각결정을 새로운 2차결정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한편 "우리 공사의 이의신청 불수용처분에 대하여 다시 이의가 있으신 경우 행정소송법에 따라 본 처분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알려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구와 관련해서,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의 논증과는 달리 이 불복안내의 문구는 '본처분'인 1차결정에 관한 것이지, 결코 이의신청기각결정인 2차결정에 관한 것이 아니다. Ⅴ.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의 논증의 타당성 여부 원심(대전고등법원 2021. 9. 30. 선고 2021누10048 판결)이 2차 통지가 1차 통지의 조정금 수령통지를 재차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1심(대전지방법원 2020. 12. 17. 선고 2019구합101143 판결)과는 달리 독립된 처분성을 부인한 데 대해서,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은 2차 통지를 독립된 새로운 거부처분으로 접근하였다.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의 논증 가운데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구 지적재조사법 제21조의2가 신설되면서 조정금에 대한 이의신청절차가 법률상 절차로 변경되었으므로 그에 관한 절차적 권리는 법률상 권리로 볼 수 있는 점"이다. 이의신청절차의 법정화가 이의신청절차를 새로운 신청절차로 보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매우 회의적이다. 한편 지적재조사법상으로 조정금의 수령통지 또는 납부고지는 지적소관청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해지고 결코 신청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따라서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이 이의신청을 -기왕의 신청과 구분된 의미에서의- 새로운 신청절차로 접근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Ⅵ. 맺으면서 - 조화될 수 없는 병존에 대한 문제 인식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과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이 기왕의 대법원 2010두8676 판결과 다른 접근을 강구하기 위해 전개한 논증은 이상에서 본 대로 수긍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접근이 가져다줄 정(+)의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의신청의 기각결정이 내려진 시점에 이미 1차결정에 대해 불가쟁력이 발생하여 권리구제의 공백이 빚어진 상황이 타개될 수 있다.그런데 행정기본법 제36조 제4항이 이의신청에 대한 결과 통지받을 날을 권리구제의 기산점으로 규정한 이상,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과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이 염려한 듯한권리구제의 공백은 앞으로 생길 수가 없다. 변화된 법상황에서 대법원 2010두8676 판결, 대법원 2020두50324 판결과 대법원 2021두53894 판결이 조화될 수 없게 병존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인식이 시급하다.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이의신청기각결정
이의신청
지적재조사
김중권 교수(중앙대 로스쿨)
2022-11-17
부동산·건축
행정사건
도시계획시설사업에 따른 협의취득의 당연무효와 환매권의 행사 가능 여부
1. 대상판결 개관 가. 사실관계 ○○시장은 1997년 11월 5일 도시계획시설인 '유원지'를 신설하는 내용의 도시계획시설결정이 내려진 ○○시 일대에서 주거시설, 골프장, 의료시설, 상업시설, 스포츠센터 등을 갖춘 휴양형 주거단지 개발사업(이하 '이 사건 사업'이라 한다)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시장은 2005년 11월 14일 이 사건 사업에 관하여 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2007. 1. 19. 법률 제825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6조 및 제88조에 따라 피고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하고 실시계획을 인가·고시하였다(이하 사업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 인가를 합하여 '이 사건 인가처분'이라 한다). 피고는 사업시행지 내의 토지소유자들과 사업부지의 협의매수를 진행하였고, 2006년 5월 18일 원고와 사이에 원고 소유의 토지(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 및 지장물을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토지에 관하여 2006년 5월 19일 피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고, 피고는 그 무렵 원고에게 매매대금을 지급하였다. 그 후 이 사건 사업을 위하여 토지를 수용당한 토지소유자들이 이 사건 사업의 시행을 위하여 이루어진 이 사건 인가처분 등 총 15개의 처분에 대하여 무효확인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그 소송의 제1심 법원은 2017년 9월 13일 이 사건 인가처분 등 위 15개의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항소심 법원이 2018년 9월 5일 항소기각 판결을, 대법원이 2019년 1월 31일 상고기각 판결을 함으로써 제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이하 '관련사건'이라 한다). 원고는 2016년 4월 20일 관련사건에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로 확인되었음을 들어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환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나. 소송의 경과 이 사건의 쟁점은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인 경우 그 협의취득도 효력이 없다고 볼 것인지 여부와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당초의 토지소유자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이라 한다)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제1심 법원과 원심 법원은 이 사건 사업이 원시적인 불능인 경우에도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의 요건인 '해당 사업의 폐지', '필요 없게 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의 환매권 행사를 받아들였다(제1심 판결 : 원고 청구 인용, 원심 판결 : 항소기각).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에 해당하는 이상 그 협의취득도 무효로 보아야 하고, 협의취득이 무효인 경우 협의취득일 당시의 토지소유자가 소유권에 근거하여 등기 명의를 회복하는 방식 등으로 권리를 구제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는 판결을 하였다. 2.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인 경우 협의취득의 효력 토지보상법에 따른 수용은 재산권의 공권력적·강제적 박탈임에 반하여 협의취득은 사업시행자와 토지 등 소유자 간의 사법상 매매계약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되고 있고, 대법원도 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대표적으로 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6두51719 판결). 대법원은 그 논리적 귀결로 협의취득으로 인한 사업시행자의 소유권 취득은 승계취득이고(위 2016두51719 판결), 당사자 간의 합의로 토지보상법에서 정한 손실보상의 기준에 의하지 않는 매매대금을 정할 수도 있으며(대법원 1998. 5. 22. 선고 98다2242, 2259 판결), 일방 당사자의 채무불이행에 대하여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 또는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7다265389 판결). 그런데 협의취득의 실질을 들여다보면, 협의취득을 사법상 매매계약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게 하는 속성을 찾게 된다. 첫째, 토지 등 소유자가 사업시행자와 협의를 하게 되는 배경에는 꽤나 강력한 심리적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시행자가 토지 등 소유자와 협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사업시행자는 사업인정을 받아 곧바로 수용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토지보상법 제20조, 제30조, 제45조). 토지 등 소유자로서는 토지 등을 스스로 내어 놓지 않으면 강제로 빼앗기게 되는 셈이다. 'Take it or Leave it' 상황에서 한 선택을 온전히 자발적 또는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둘째, 토지보상법 시행령 제8조에서는 협의의 절차 및 방법 등을 규율하고 있고, 토지보상법 제29조에서는 협의가 성립된 경우 사업시행자가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의 협의성립 확인을 받아 재결과 같은 법적 효과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협의취득의 경우에도 그 사업이 폐지·변경되어 토지 등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경우 환매권을 인정한다(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 이처럼 협의취득에도 여러 공법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이를 사법적 규율의 영역에 머물게 하는 것은 자칫 관련 문제의 해결에 있어 구체적 타당성을 흠결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정책적인 측면에서 사법상 매매계약의 형식을 빌려 필요 이상의 과다한 토지 등을 취득하는 등 재산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협의취득을 사적 자치의 영역에 온전히 맡겨둘 수는 없다고 새기는 것이 헌법상 재산권 보장의 이념에 부합한다(헌법재판소 1994. 2. 24. 선고 92헌가15 내지 17, 20 내지 24 결정). 결국 토지보상법에 따른 협의취득은 공법적 규율을 받아야 하고,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가 되더라도 그 협의취득은 어디까지나 사법상 매매계약일 뿐이므로 그 처분의 당연무효가 매매계약의 효력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를 구성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에서는 협의취득의 경우에도 공익적 필요성이 있고, 법률에 의거하여야 하며,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위 요건을 결한 경우 그 협의취득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협의취득이 사업시행자가 아닌 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법률에 의거하여야 한다는 요건을,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라는 것은 공익적 필요성 요건을 각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처분이 당연무효이므로 협의취득도 무효라는 법리가 아니라 헌법상 공용수용의 정당화 기제에 준하여 협의취득의 요건을 구성하고서 그 요건을 흠결하였기 때문에 협의취득이 무효로 된다는 법리를 구축한 것은 협의취득의 공법적 성격을 잘 살려낸 것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나.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환매권의 행사 가능 여부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는 공익사업의 폐지·변경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취득한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 없게 된 경우에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에는 환매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본 대상판결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타당하다. 첫째, 문리해석의 관점에서 '폐지'나 '필요 없게 된'은 처음에는 필요하던 것이 후발적인 사유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이들 어휘는 그 자체로 '사정변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협의취득 당시와 환매권 행사 당시에 사정의 변경이 없이 애당초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에는 이들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새기는 것이 문언에 충실한 해석이다. 나아가 '그 밖의 사유'는 같은 항 제2호에 따라 사업의 완료를 전제로 하므로,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여지도 없다. 둘째, 권리구제의 관점에서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토지소유자는 계속 보유하고 있는 소유권에 기하여 등기명의를 회복하거나 점유를 이전받을 수 있어 환매권의 이론상 근거인 공평의 원칙을 거론할 필요가 없고, 환매권의 불인정이 토지소유자의 권리구제에 공백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셋째, 법관념의 측면에서도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는 소유권이전등기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 효력이 없는 경우와 같다고 볼 것인데, 이러한 경우에 소유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자가 소유권을 돌려받는 환매계약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어색하고 지나치게 의제적이다. 다. 대상판결의 의의 토지보상법에 따른 협의취득은 실질적으로 수용의 전단계로서의 공법적 의미를 갖는다. 대상판결에서 이 점을 확인하고 협의취득의 요건을 공용수용의 헌법상 정당화 기제에 기반하여 구성한 것은 자칫 '당사자의 자유의사'라는 도그마에 갇혀 제대로 걸러내지 못할 우려가 있는 '협의취득의 남용'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정기상 고법판사(수원고법)
토지
토지보상
환매권
도시계획시설
정기상 고법판사(수원고법)
2022-05-02
행정사건
국민건강보험법 부당이득의 징수규정이 과연 재량규정인가
Ⅰ. 판결요지 구 국민건강보험법(2011년 12월 31일 법률 제11141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52조 제1항은 "공단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자 또는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급여 또는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라고 규정하여 문언상 일부 징수가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다. 위 조항은 요양기관이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비용을 지급청구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바람직한 급여체계의 유지를 통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러나 요양기관으로서는 부당이득징수로 인하여 이미 실시한 요양급여에 대하여 그 비용을 상환받지 못하는 결과가 되므로 침익적 성격이 크다. 법 규정의 내용, 체재와 입법 취지, 부당이득징수의 법적 성질 등을 고려할 때,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이 정한 부당이득징수는 재량행위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기관의 개설명의인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Ⅱ. 논의현황 통상적으로 기속규정인지 재량규정인지 여부는 가능규정(Kann-Vorschriften)인지 의무규정(Muß-Vorschriften)인지 여부에 따른다. 그런데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 부당이득의 징수 규정은 '징수한다'고 하여 논란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 입법 취지, 입법 목적, 행위의 성질을 고려하여 재량행위, 기속행위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박균성, 행정법론(상), 2021, 328면), 다른 한편으로는 판례가 법정외 거부사유에 따른 거부가능성을 인정하는 상황을 기속재량행위로 받아들여 요양급여처분, 그 거부처분과 환수처분을 기속재량행위로 보고서, 요양급여 기준 위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예외적 정당화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그 초과한 금액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징수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견해(선정원, 행정법연구 제29호, 2011, 19면)가 있으며, '속임수 기타 부당한 방법'을 형식적·기계적으로 해석하는 상황에서 기속행위로 본다면, 형평과 정의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어서 '일부 징수'의 차원에서 재량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견해(현두륜, 의료법학 제8권 제2호, 2007, 108면~109면)도 있다. Ⅲ. 대상판결의 재량적 접근 및 그에 대한 비판 대상판결은 해당 규정이 일부 징수의 가능성을 두고 있으며, 부당이득의 징수 자체가 침익적 성격이 크다는 점이 든다. 그밖에 법 규정의 내용, 체제와 입법취지를 드는데, 구체적인 논거는 문현호(48·사법연수원 33기) 부장판사의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문 부장판사의 글(사법 제54호, 2020, 846면 이하)에서 전개된 논의를 중심으로 검토한다. ⅰ) 먼저 문언적 해석의 차원에서 구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의 '일부'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상 재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전액 징수만 가능하다면 굳이 '일부'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는데, 과연 '일부 징수'의 가능성을 지적하였다고 이를 재량의 논거를 삼을 수 있는지 수긍하기 힘들다. '부당이득의 징수'를 규정한 실정법의 현황을 보면, 부당이득의 징수를 의무로 설정할 때 징수권이 부당이득에 한하여 행사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면 그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속행위로 접근하는 것이 '일부'의 어의와 배치된다는 지적도 수긍하기 힘들다. 그리고 여기서의 '징수한다'의 표현을 중립적이라 지적하는데, 오히려 종래 민사적 방법으로 부당이득환수를 도모하는 것을 공법적으로 대체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ⅱ) 체계적 해석의 차원에서 동 규정은 적용 범위가 넓은 일반조항이기에 실질적 부당이득징수사유를 포착하기 위해서 재량규정이어야 함을 내세우는데, 이는 실제적인 부당이득이 되는지 여부의 문제이고 부당이득의 적정성의 물음이기에, 재량규정의 논거가 될 수 없다. ⅲ) 목적론적 해석의 차원에서 요양급여비용 중 일부 금액만 부당하면 그 금액만큼 행정청의 증명책임이 경감되는데, 만약 기속행위로 보면 부당한 일부 금액 특정의 증명책임까지 행정청이 부담하여 엄격하게 보면 처분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지적하였는데, 과연 이것이 목적론적 해석의 접근방식인지 의문스럽다. ⅳ) 엄격해석의 차원에서 요양급여비용이 유상급부에 대한 대가이어서 그것의 징수는 무상 보조금 환수보다 침익성이 가장 강하기에 재량이라는 것인데, 통상적으로 침익행위를 애써 재량행위가 아닌 기속행위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논증이다. 침익성이 크기에 행정청의 자의가 기속행위의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개재될 가능성이 큰 재량행위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있다. ⅴ) 합헌적 해석의 차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에서 재량행위로 보아야 한다면서 헌재 2014헌바298 등의 결정이유(심판대상조항들은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당이득으로 징수하도록 정하고 있어, 구체적 사안에 따라 그 금액 전부의 징수가 부당한 경우에는 일부만 징수할 수 있으므로, 부당이득금 징수처분으로 인한 의료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가 해당 규정을 재량행위설을 전제로 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일부'의 의미와 관련해서 헌법재판소가 수급한 요양급여비용 가운데 부당이득에 해당하는 것만을 징수하도록 입법자가 배려한 것임을 지적한 데 불과하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더해서 다양한 일률적인 전액징수가 불공평 또는 책임초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절차적·형식적 규정만 위반한 경우에는 요양급여기준위반보다 징수금액이 더 크게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회생파산절차에 의한 면책이 불가능한 의사들이 경제적 불능상태에 삐지게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을 든다. 그런데 과도한 징수의 경우는 기속행위인 과세처분에서 일부취소와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부당결부와 같은, 이런 식의 논증이 과연 재량행위적 접근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든다. ⅵ) 다른 법령과의 비교에서 부당이득 성격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기속행위로 볼 수는 없고, 입법정책적 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는 동 규정의 재량행위성 여부의 논거와는 무관하다. 재량행위라도 전부 징수가 가능하며, 부당이득의 징수(박탈)의 성격이 징수의 재량행위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과연 본 사안에 통용될 수 있는 논증인지 의문스럽다. Ⅳ. 맺으면서-결과적으로 사무장병원이 사실상 용인된 셈이다 대상판결이 해당규정을 재량규정으로 접근하기 위해 내세운 논거 모두가 전혀 수긍하기 힘들다. 비록 익숙한 규정방식(…하여야 한다)을 취하지 않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법 규정의 내용, 체재와 입법취지(동 규정의 원형은 일본 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이다. 일본의 경우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기속행위로 접근하는데, 이는 '할 수 있다'의 의미를 일종의 권한규정의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다)를 감안할 때 부당이득의 징수규정은 기속규정일 수밖에 없다. 징수(환수)처분규정을 기속규정으로 둔 것은 입법자가 연금지급의 적법성을 다른 여지 없이 실현하기 위함이다. 침익적 처분을 재량에 맡겼을 때 생길 수 있는,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법집행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기 위함이다. 부당이득 징수제도의 정당성을 고려하면, 애써 그것을 이익형량의 틀속에서 징수권자의 자의가 개재될 가능성이 있는 재량행위로 접근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대상판결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사무장병원을 사실상 용인한 셈이다(김중권, 행정판례연구 제26집 제1호(2021.6.30.), 3면 이하). 법령에서 규정하지 않은 장애를 바람직스럽지 않게 예시적 접근으로 등록장애종류로 확대 인정한 대법원 2019. 10. 31. 선고 2016두50907 판결이 보여주듯이 최근 법원은 사회보장행정 분야에서 권리구제확대를 내세워 이해하기 힘든 전개를 한다(김중권, 사법 제55호(2021. 3. 15.), 955면 이하). 아무리 사회보장행정법이 일반행정법의 실험장인 동시에 혁신의 원동력이라 하더라도, 민주적 법치국가원리를 넘어갈 수는 없고, 사회적인 것 그 자체가 결코 민주적 법치국가원리의 예외를 정당화시키지도 않는다.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의사
병원
사무장병원
불법행위
요양급여
김중권 교수 (중앙대 로스쿨)
2021-09-30
노동·근로
행정사건
수권규정의 법률유보원칙 위반과 법외노조 통보제도의 적법성
I. 대상판결의 개요 1. 처분의 경위 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교원노조법')에 따라 설립된 노동조합이다. 교원노조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을 폭넓게 준용하고 있는데, 구 노동조합법(2020년 6월 9일 법률 제174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4호 단서 라.목(이하 '본건 조항')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원고는 설립 당시부터 해직 교원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허용하는 취지의 규약을 두고 있었다. 피고 고용노동부는 2차에 걸쳐 원고에게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규약을 시정할 것을 명하였으나, 원고는 이에 응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피고는 2013년 10월 24일 교원노조법 제14조 제1항, 구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라.목,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이하 ‘본건 시행령’)에 근거하여 '원고를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는 취지의 통보(이하 '법외노조 통보')를 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8인의 다수의견으로 본건 시행령이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한 것으로서 무효이고 이에 기초한 법외노조 통보 역시 위법하다는 취지의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이 각 별개의견을, 대법관 이기택, 이동원이 반대의견을 제기하였고, 대법관 박정화 등 5인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제시하였다.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중대한 침익적 처분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인 단결권의 본질적 사항을 규율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법률의 위임 없이 법외노조 통보 권한을 규정한 본건 시행령은 법률유보원칙 및 의회유보원칙 위반으로 위법·무효라는 것이다. 각 별개의견은 본건 시행령의 적법성을 인정하였으나, 처분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였다. ① 대법관 김재형은 원고가 법률에 의하여 곧바로 법외노조로 '간주'되는 이상 본건 시행령은 법률의 효력을 집행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규정'으로서 적법·유효하나, 단결권 보장을 위하여 본건 조항을 합헌적으로 축소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② 대법관 안철상은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 법리에 따라 피고에게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 처분을 철회할 권한이 유보되어 있는 이상 본건 시행령은 적법하나, 피고의 법외노조 통보에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이 있어 취소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반대의견은 본건 시행령 및 이에 근거한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에 의하여 직접 발생한 권리관계를 구체적·확정적인 것으로 선언하는 행정작용으로서 유효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본건 조항의 문언해석상 원고가 법외노조임은 명백하고, 노동조합법의 목적 및 처분의 경위를 고려할 때 헌법합치적 축소해석 등을 통하여 원고를 보호할 필요성도 없다고 보았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대상판결의 쟁점 법외노조 통보를 둘러싼 쟁점은 다양하다. 그 범위는 법외노조 통보의 처분성에서부터 해직 교원의 단결권이라는 헌법적 쟁점에까지 미친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선결 쟁점인 '법외노조 통보의 수권근거'를 부정하는 것으로 판단을 종결하였고, 그 결과 사안의 실체적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본건 조항의 당부 및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구체적 타당성은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에서만 다루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대상판결의 각 의견은 모두 독자적인 의의를 지니나, 본 평석에서는 다수의견의 쟁점이었던 '법외노조 통보의 수권근거'에 한정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2. 법외노조 통보의 법률적 성격과 수권근거 다수의견은 법외노조 통보가 형성적 처분이라는 데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본건 조항은 정의 규정으로서 노동조합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고, 노동조합 지위의 변동은 행정청의 형성적 처분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은 위 법률이 '간주 규정'의 형식을 취한 이상 원고의 지위는 법률에 의하여 직접 변동하고,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에 의하여 형성된 권리관계를 통보하는 행정작용에 불과하다고 본다. 생각건대, 노동조합법의 문언 및 행정관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후자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볼 여지가 크다. 그러나 본건 조항에 의하여 원고의 지위가 직접 변동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곧바로 본건 시행령의 수권근거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의하여 종국적·포괄적인 법해석 권한을 위임받은 법원과 달리, 행정관청은 법률로써 위임받은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형성적 처분뿐 아니라 확인적 처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입법자는 행정관청에게 법률에 의하여 형성된 노동조합의 지위를 확인·통보할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고, 이와 달리 종국적 법해석자인 법원을 통하여서만 노동조합의 지위를 확인하도록 규정할 수도 있다. 입법자가 행정관청에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행정관청의 처분은 그 내용이 실체적 법률에 합치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아무런 효력이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본건 조항이 '간주 규정'이라는 점을 근거로 본건 시행령의 수권근거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대법관 김재형의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3. '수익적 행정행위의 직권철회' 법리와 노동조합 설립신고제도 법외노조 통보가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로서 유효하다는 주장은 각 별개의견 및 반대의견에서 모두 등장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는 '수리를 요하는 신고'이므로, 피고는 원처분청으로서 그 효력을 사후적으로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노동조합법 개정 당시 입법자에게 행정관청의 일방적 결정으로 노동조합 지위를 박탈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자 하는 의사가 추단되는 이상 수익적 처분의 직권철회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서는 학설의 대립이 있으나, 행정관청에 설립신고 반려 권한이 유보된 점(노동조합법 제12조 제3항), 행정관청의 심사권이 실질적 요건에까지 미치는 점(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두6998 판결)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운용되고 있다고 보인다. 한편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는 확립된 판례이며, 행정기본법 제19조 제1항을 통하여 명문의 법률로 규정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법외노조 통보가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의 직권철회로서 유효하다는 주장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면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를 적용하지 아니한 다수의견의 판단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현재 노동조합 설립신고 제도가 사실상 '수리를 요하는 신고'로 운용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헌법적 정당성은 견고하다고 보기 어렵다. 현행 노동조합 설립신고 제도는 결사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제21조 제2항과 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협약)'에 위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단결권 보장을 위하여 설립신고를 '자기완결적 신고'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이렇듯 노동조합 설립신고 수리를 '수익적 처분'으로 단정할 헌법적 근거가 약한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행정관청의 직권철회 권한까지 인정하는 것은 심대한 단결권 침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둘째, 노동조합 해산제도를 폐지한 뒤 대체 제도를 전혀 마련하지 않은 노동조합법의 입법연혁을 볼 때, 입법자가 행정관청에 의한 사후적 지위 변동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단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 셋째, 노동조합에 대한 사후적 심사 제도는 단결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입법 절차를 통해 국민의 여론과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대한 공익적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사용된 수익적 처분 직권철회 법리를 원용하기보다는 구체적인 근거 규정의 마련을 촉구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행정청에 의하여 임의로 형성된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효력을 부정하고, 입법부에 대하여 노동조합 사후심사제도를 새롭게 형성할 책무를 지웠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충분한 숙고와 의견 수렴 없이 행정청에 의하여 임의로 형성된 제도라는 점에서 분명한 문제를 가진다. 법원이 그 위법성을 지적하지 아니하였다면 법외노조 통보 제도 및 그에 내재된 위험성은 그대로 고착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상판결로 인하여 법외노조 통보 제도의 효력이 상실된 이상, 국회와 행정부는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노동조합 사후심사제도를 새롭게 형성할 책무를 진다. 이러한 점에서 다수의견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한 편의주의적 판단'이라는 각 별개의견의 비판은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다수의견은 행정관청의 사후심사 권한을 배제함으로써 단결권을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곽신재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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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외노조
노동조합법
곽신재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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