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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12)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의 의미
[ 요 약 ] 원고는 2017년 3월 8일, 대구광역시 서구청장을 상대로 대구 서구에 위치한 지정된 부지에 동물장묘시설을 신축하기 위한 개발행위허가신청을 포함한 건축허가신청을 제출했다. 이 신청은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을 준수해야 했으며, 이에 따르면 건축물 또는 공작물을 설치하는 부지는 도시 또는 군 계획도로에 접속해야 하며, 특히 개발규모가 5000㎡ 미만일 경우 진입도로의 최소 폭은 4미터 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원고는 충분한 자료 등을 제공하지 못했고, 이를 근거로 2019년 4월 10일 피고는 신청을 거부했다. 이 거부처분에 대한 법적 분쟁에는 국토계획법과 시행령이 쟁점이 됐다. 국토계획법 제58조와 시행령 제56조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지역의 특성, 개발 상황, 기반시설의 현황 등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은 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대구고등법원은 원심 판결에서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에 따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지침이 법규명령의 효력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지침이 내부적인 지침에 불과하며 대외적인 구속력은 없다고 판단,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대상판결은 상위법령인 시행령의 ‘세부 검토기준’의 구체화 권한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그렇다면 상위법령 입법자의 의사를 ‘위임’으로 보고, 이 사건 지침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했어야 마땅하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수임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대상판결은 결국 규범통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원고는 2017. 3. 8. 피고(대구광역시 서구청장)에게 대구 서구 (주소 생략) 외 1필지(이하 ‘이 사건 신청지’라고 한다) 지상에 동물장묘시설 1동을 신축하기 위하여 개발행위허가신청 등이 포함된 복합민원 형태의 건축허가신청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신청’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 훈령인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이하 ‘이 사건 지침’이라고 한다) 3-3-2-1에서는 도로에의 접속 및 도로확보기준에 관하여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공작물을 설치하는 부지는 도시·군계획도로 등에 접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에 따라 개설(도로확장 포함)하고자 하는 진입도로의 폭은 개발규모 5000㎡ 미만은 4m 이상으로서 개발행위규모에 따른 교통량을 고려하여 적정 폭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9. 4. 10. 이 사건 신청에 대해 피고는 거부처분을 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교통 관련: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 중 3-3-2-1에 근거한 진입도로 확보와 관련한 자료 불충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이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라고 한다) 제58조 제1항, 제3항에서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은 지역의 특성, 지역의 개발상황, 기반시설의 현황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1항 [별표 1의2] ‘개발행위허가기준’은 국토계획법 제58조 제3항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대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규명령에 해당한다. 한편,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4항에서는 “국토교통부장관이 제1항의 개발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국토교통부장관이‘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을 뿐이므로, 그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이 이 사건 지침은 상급행정기관인 국토교통부장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하급행정기관에 대하여 개발행위허가업무와 관련하여 국토계획법령에 규정된 개발행위허가기준의 해석·적용에 관한 세부 기준을 정하여 둔 행정규칙에 불과하여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 Ⅲ. 판례평석 1. 대상판결의 의미와 문제점 대상판결의 원심판결인 대구고등법원 2020. 6. 26. 선고 2019누5237 판결에서는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의 단계적 위임에 따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지침은 법규명령의 효력을 갖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대상판결은 ‘위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지침이‘국토계획법령에 규정된 개발행위허가기준의 해석·적용에 관한 세부 검토기준’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 법규성을 부정하였다. 대상판결이 이 사건 지침을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개발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기준”은 위임 없이도 행정이 당연히 그 권한 범위 내에서 행정규칙으로 구체화할 수 있고, 국토계획법 제56조 제4항은 단지 이를 확인적으로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고,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4항의 규정이 ‘구체적 위임’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일관되지 못하다면 그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은 성문법원의 하나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法院이 판단하기 전에 그 법원성 여부는 충분히 예측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2.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관련 판례 분석 대법원은 대법원 1987. 9. 29. 선고 86누484 판결 [양도소득세부과처분취소]에서 최초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개념을 인정하였다. 동 판결에서 설시한 법리에 따르면,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위 법령이 권한행사의 절차나 방법을 특정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특정행정기관에 대해 ‘그 법령내용의 구체적 사항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수임행정기관이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그 법령의 내용이 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된다. 즉, 상위법령은 행정규칙에 대해 상위법령 내용의 구체화 권한을 부여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 대해 대법원은 사안에 따라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대법원 2003. 9. 5. 선고 2001두403 판결에서는 소득금액조정 합계표 작성요령이 “법률의 위임을 받은 것이기는 하나 법인세의 부과징수라는 행정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절차적 규정으로서 단순히 행정규칙의 성질을 가지는 데 불과하다”고 하였고, 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두39297 판결에서는 위임명령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이 예시적 규정에 불과한 이상 그 위임에 따른 고시는 행정규칙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법리에 따르면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도, 하위 행정규칙이 상위 위임법령의 위임범위를 일탈했다는 이유로 아예 그 대외적 구속력을 바로 부정해 버리는 판례를 다수 양산해 왔다. 즉, “행정 각부의 장이 정하는 고시가 비록 법령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규정 내용이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일 경우에는 법규명령으로서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1987. 9. 29. 선고 86누484 판결, 대법원 1999. 11. 26. 선고 97누13474 판결, 대법원 2006. 4. 28.자 2003마715 결정 등). 대법원으로서는 절차적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나치게 많이 제정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사전에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을 수 있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행정규칙에 위임하는 경우가 빈번할 뿐 아니라, 위임하는 이유 또한 법규명령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상위법령의 ‘위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따라 그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해 온 것일 수 있다. 이상덕, 할당관세 적용 추천이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2017. 9. 21. 선고 2016두34417 판결: 공2017하, 2003), 대법원판례해설, 제114호(2017년 하), 27-29쪽. 하지만, 아무리 선해하더라도 대법원의 판례법리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위임이 지나치게 빈번’하다면 적절한 범위 내에서 위임이 되도록 법원은 규범통제를 했어야 한다. 요컨대, 최소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법원에 대해 ‘법’이 무엇인지는 예측가능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법원은 위임의 방식이나 위임의 내용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상위 위임법령이나 수임규칙에 대한 규범통제를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 포괄위임금지 원칙은 현재의 입법상황이나 세계적 입법례에 맞지 않으므로 헌법상 국회 입법권의 보장 및 침해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4차 산업혁명 대응 입법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포괄위임금지를 완화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박균성, 행정법 연구방법론의 모색, 2024년 한국공법학회 신진학자대회 ‘공법의 새로운 동향 탐색과 미래 공법의 조망’ 발표문, 43-44쪽 참조. Ⅳ. 맺음말 대상판결은 상위법령인 시행령의 ‘세부 검토기준’의 구체화 권한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그렇다면 상위법령 입법자의 의사를 ‘위임’으로 보고, 이 사건 지침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했어야 마땅하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수임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대상판결은 결국 규범통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에서는 법령에서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에 대해 하위 고시 등에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위임에 따른 행정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이 인정된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러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 제정과정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입법론적으로는, 행정입법의 절차적 정당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행정부 주도로 경제개발·사회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국회는 행정부에서 마련해 온 법률안에 대한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과정을 소홀히 한 채 통과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위임입법이 양산된 것이 헌정의 현실이기도 하다. (헌재 1998. 5. 28. 96헌가1 결정). 앞으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인정범위를 법령상 명확히 해나가는 논의와 함께, 행정규칙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다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미형 교수 (충남대 로스쿨)
개발행위허가
위임입법
행정규칙
법령보충
우미형 교수 (충남대 로스쿨)
2024-04-14
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금융·보험
민사일반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노동·근로
민사일반
파산·회생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파견법상 권리에 미치는 영향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1. 사안의 개요 A 회사는 1993. 9. 17. 설립되어 원청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및 그 자회사인 D 회사로부터 광산 채광업무를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고, 근로자 갑은 2012. 3. 1. A 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당시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2013. 10. 17. 회생절차개시결정, 2014. 3. 18. 회생계획인가결정을 각 받았다.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고용청구권 및 금전채권(파견법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회생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의 관리인 역시 원고를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하였다.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는 2015. 3. 6. 종결되었다. 한편 B회사는 2008. 5. 22. 컴프레서 운전용역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역시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로부터 원청 사업장 내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의 운전 및 점검업무 등을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다. 근로자 을은 2008. 6. 1. 에, 근로자 병은 2014. 12. 26.에, 근로자 정은 2016. 8. 13.에 각각 B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와 더불어, 원청 소속의 비교대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한 것이 파견법 제21조 제1항의 차별에 해당하고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근로자 을, 병, 정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 및 고용의무 불이행(즉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다만, 원고 정의 경우 위 직접고용청구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소일부취하 하였다. 이하 위 근로자 갑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대상판결’이라 한다. )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석 주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 및 사실관계는 요약 내지 생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2020나1108 등 판결)은, 위 파견근로자들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청구권이기는 하지만 재산상의 청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에 기해 직접고용청구권이 불성립하거나 소멸한다는피고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회생절차 종결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면 파견근로자는 다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시행령 제2조의2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을 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같은 법리에 기해 대법원은, 1) 원고 을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기 전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파견근로자이므로 위 원고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해 소멸하였고, 더 이상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직접고용의무에 터잡아 회생절차개시 후의 직접고용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고, 2)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의 성립요건은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 충족되었으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3) 다만 원고 정은 회생절차가 종결된 후인 2016. 8. 13.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였으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가 적용되지 않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원고 정에게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갑의 경우 항소심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의 권리소멸 등 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의 직접고용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다만 사용사업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파견근로자가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이는 구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차별적 처우를 해소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한다고 전제한 다음,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상기 손해배상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채권 또는 동법 제181조의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본안전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3. 평석 가. 파견법 제6조의2의 권리장애 및 권리소멸 효과 현행 파견법 제6조의2 조항은 2006. 12. 21.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본래 1998년 제정된 파견법(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고용관계를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제조항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위 개정법 시행일인 2007. 7. 1. 이후부터는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여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위 개정법의 적용 대상인 파견근로자는 직접고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같은 권리는 청구권인가 형성권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학계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사용사업주는 물론 파견근로자 역시도 아래에서 살펴볼 이른바 ‘10년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 청구권설을 지지하는 듯하다. 다만 이같은 파견법상 권리가 청구권이라면 다른 일반채권과 마찬가지로 이행의 문제가 남게 되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고용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을 포함한 파견근로자의 제 권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바, 적어도 대상판결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필자가 알기로는 이에 대한 학계 및 실무상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파견근로자의 고용청구권 자체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즉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각호의 사유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 이전부터 있었다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에 기해 회생채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 원심은 직접고용청구권은 단순히 근로계약관계 형성의 법률효과를 가져올 뿐인 점,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직접고용청구권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채권양도인인 회생채무자에 대해 채권양수인이 갖는 양도통지 이행청구권(대법원 2016마5082 결정), 골프회원권(대법원 89다카4113 판결)과 같은 계약상 급여청구권(비금전채권)에 대해서도 회생채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점,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는 고용의무가 이행된 후 그에 터잡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금채권이 공익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선행하는 고용청구권 자체의 성질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는 직접고용청구권이 회생채무자의 재산감소와 직결되는 권리임을 더욱 명확히 보여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는 직접고용청구권 자체의 회생절차상 취급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한 조항이라고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위 파견법 조항이 직접고용의무의 예외규정을 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용사업주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책적 고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앞서 살핀 바와 같이 ①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②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고 ③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요컨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의 직접고용청구권에 대해서는 권리장애적 항변이 되고, 회생개시 이전에 이미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용사업주는 위 조항을 근거로 권리소멸 항변을 할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나. 회생개시결정 전부터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차별이 반복되어 온 경우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 한편 고용청구권 자체의 법적 성질과는 별개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부터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해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고용의무 또는 동법 제21조의 차별이 계속되어 온 경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채권 또는 개시후기타채권(채무자회생법 제181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파견법이 제정된 1998년 당시만 해도 하청 소속 근로자들은 주로 원청과의 묵시적 근로관계(소위 위장도급)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파견법에 기한 권리주장은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06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고용 의제가 아닌 고용의무 규정이 도입되자, 이에 착안해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비교대상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별(불법행위)을 원인삼아 파견근로기간 동안 차별받은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법원은 이미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239024 등 판결)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에는 다소의 의문이 있다. 파견근로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권리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침해된 법익이 없는 바, 이같은 경우에도 불법행위와의 경합을 인정한다면 계약법 영역과의 준별이 분명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부터 사용사업주의 재산상 청구권(즉 고용의무 또는 차별해소의무)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관계에 있는 때에는 그 계속으로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말하는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4. 11. 12.선고2002다53865 판결 참조) 이 문제에 대해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은,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 온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그 차별적 처우를 해소할 의무를 부담하고,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원고 갑의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은, 앞서 본 원고 을, 병의 고용의무가 소멸하거나 발생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파견근로자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를 고용의무 불이행(채무불이행)에서 찾든 차별해소의무 위반(불법행위)에서 찾든 간에, 그 요건사실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다면 청구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 갑과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간의 근로자파견관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전에 성립해 그 이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았음에도, 회생절차 관리인이 위 원고를 차별 처우한 것이 회생절차 이전의 차별과 별개인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바, 이 부분 판시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 본문에서 이른바 실권제도를 둔 것은, 절차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였음에도 절차에 참여하지 아니한 권리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과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권리자로 인하여 회생계획의 수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정은 하청업체인 A, B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다만 당초에는 묵시적 근로관계 주장에 집중한 나머지 파견법상 권리주장에 소홀하였던 것이므로,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보아도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다. 보론 - 파견법위반(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및 소멸시효 백보를 양보하여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계속된 파견관계에 기해 그 후에도 임금을 차별한 것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는 사용사업주가 당연히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회생절차개시 여부를 불문하고, 사용사업주가 파견법 제21조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사안이라면 일반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용사업주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지려면 파견관계 내지 임금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또는 관리인)의 귀책사유 내지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를 청구권원으로 삼는다면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파견근로자에게 있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파견근로자의 권리주장은 점차 직고용에서 손해배상청구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용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의제된 경우에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 범위 내에서 임금차액 자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고용의무 내지 차별금지의무에 터잡아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라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의 범위 내에서 소급해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 즉 파견근로자는 동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도과만 면한다면, 계약상 권리보다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구 파견법에 기해 고용관계가 의제된 파견근로자조차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위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의 원심에서는,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전의 기간에 발생한 원고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로 인해 소멸하였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다. 원심 및 대상판결은 원고 갑이 위 소제기일로부터 3년 전 당시에 차별적 처우를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피고 회사의 위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기는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파견법위반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법 제766조 제2항의 장기 소멸시효 규정까지 적용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10년간의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법률에 특별히 그보다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찰 담합을 원인으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만, 장기 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으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결론 및 향후 과제 그간의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주로 원청과 하청, 하청근로자 간의 법률관계가 진성 도급관계인지 아니면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특히 원청회사 사업장 내에서 원청의 일을 도급주는 형태인 소위 사내하청이 파견관계인지 여부, 컨베이어벨트 바깥의 이른바 간접공정에 속한 경우에도 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자주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므로 산업분야 및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원청 회사에서 파견으로 볼 만한 기준 내지 요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생산라인 내지 인력구조 자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내도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라면 앞으로도 불법파견에 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파견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 권리행사의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 및 실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은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 파견법상 권리 역시 변경 내지 소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비단 대상판결의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뿐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완성차업계 및 조선업계 등에서는 장기간 업황부진 등으로 회생을 면하기 어려운 회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청구권 및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파견법 제21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지, 특히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파견법위반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의 장기 소멸시효는 무엇인지 여부는 향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파견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 및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소멸시효
임금채권
임금차별
불법파견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2023-08-13
형사일반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②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과 위법성 판단
Ⅰ. 판례평석의 배경과 쟁점의 소재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많은 자유에 대한 제한 현상이 행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를 둘러싼 자유의 제한과 처벌이 강화되고 있다. 동법상의 역학조사거부에 대한 대법원과 원심의 판결을 소개하고, 역학조사의 성격과 위법성 판단기준 등과 관련하여 비판적인 판례평석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대상판결은 형사법원의 처분 등에 대한 선결문제 심사문제를 담고 있으며, 형사법과 행정법의 학문접경지대의 간학문적인 영역에 위치하여 행정법적 쟁점을 많이 담고 있다. 소송물이론과 비례의 원칙, 행정절차 등 쟁점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점들을 제대로 규명하고 있지 못한 대법원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Ⅱ. 사실관계 '○○○○○ 센터'(이하 '이 사건 센터'라고 한다)는 △△△△△회(명칭 생략)가 운영하는 수련시설이다. 2020년 11월 27일부터 2020년 11월 28일까지 이 사건 센터에서 '□□□□□□ 역량 개발 행사'(이하 '이 사건 행사'라고 한다)가 개최되었는데, 이 사건 행사에 참석한 공소외 1이 2020년 12월 3일 대구광역시 ◇◇구보건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라고 한다) 양성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센터 시설을 관리하던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3일 상주시의 코로나19 관련 역학조사 담당자인 공소외 2로부터 이 사건 행사 기간에 이 사건 센터 시설에 출입한 자들의 명단과 해당 시설에 종사하는 자들의 명단(위 각 명단을 합하여 이하 '이 사건 명단'이라고 한다)을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아울러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4일 이 사건 명단을 제출해 달라는 상주시장 명의의 공문을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상주시장의 '역학조사를 거부'하였다. 결국 피고인들은 역학조사 거부로 인한「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이라고 한다) 위반죄로 기소되어 유무죄 판결에 대한 심리를 받게 되었다.[1] [각주1] 저자가 공소사실의 취지를 요약하였음을 밝힌다.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충실하되,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여 판결할 수 있도록 심리방식과 내용을 개선하여야 한다. Ⅲ. 대법원 판결요지[2] 1. 침익적 행정행위와 행정형벌의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해석의 원칙[3] 헌법은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범죄와 형벌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3조 제1항).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그중에서도 특히 형벌에 관한 법률은 국가기관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지 않도록 명확하여야 한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결정해 나가기에 충분한 기준이 될 정도의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형벌법규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 될 수 있으므로[4], 불명확한 규정을 헌법에 맞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해석금지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5] [각주2] 대법원 2022. 11. 17. 선고 2022도7290 판결 [각주3]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저자가 역시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부기하였음을 밝힌다. [각주4] 헌법재판소 2016. 11. 24. 선고 2015헌가2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각주5] 대법원 2021. 1. 28. 선고 2020도2642 판결 참조 2. 감염병예방법의 역학조사에 관한 구성요건과 행정형벌 규정의 해석의 범위 감염병예방법상의 문언과 체계 등을 종합하면, 감염병예방법상 ‘역학조사’는 일반적으로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에서 정의한 활동을 말하고, 여기에는 관계자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실시하는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활동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수범자의 예견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 범위가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따라서 형벌법규의 구성요건적 요소에 해당하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의 ‘역학조사’는,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의 정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제29조,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주체, 시기, 대상,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활동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6] [각주6] 필요한 범위 내의 판결요지만 적시하기로 한다. ‘요구나 제의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을 뜻하는 ‘거부’의 사전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나 그의 공범에 대하여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가 실시되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원심판결의 하자에 대한 법리상의 검토 (1) 원심판결인 대구지법 2022. 5. 26. 선고 2021노3395 판결은 상주시장 측의 위와 같은 요청을 거부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7] [각주7] 저자가 원심판결을 축약하였다. (2) 그러나, 쟁점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에 해당하여야 한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역학조사의 주체, 시기,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한 다음, 그 결과를 토대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그런데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의 의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Ⅳ.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 1. 행정형벌에서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가부 (1) 형사법원에서 처분의 위법성 판단가능성과 선결문제 형사법원이 처분의 위법성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는지 선결 문제가 걸려있다. 다수설에 의하면 처분의 구성요건적 효력으로 논의된다. 행정소송법 제11조에서 형사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이 없지만, 다수설과 판례는 처분의 위법성을 심사하여 형벌부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8] [각주8] 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4도12230 판결, 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4도16109 판결, 대법원 1992. 8. 18. 선고 90도1709 판결 등 (2) 범죄의 개방적 구성요건 행정형벌의 요건은 개방적 구성요건이다. 행정형벌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형벌의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행정법적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 역학조사 명령이 위법하다면 거부하더라도 무죄를 판결하여야 하고, 반대로 역학조사 명령이 적법하다면 이에 대한 거부는 유죄로 판결하여야 할 것이다. (3) 처분의 소송물과 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심사 범위에 대한 비판 처분의 위법성에 관한 소송물은 견해의 대립이 있지만,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라고 보는 것이 다수설과 판례[9]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심리함에 있어서 처분의 위법성일반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은 소송물에 관한 오해를 하고 있다. 행정소송의 소송물은병합 사건이라 하더라도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므로 대법원은 역학조사의 위법성 전반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였어야 한다. [각주9] 대법원 2004. 3. 18. 선고 2001두194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7. 5. 16. 선고 96누8796 판결, 대법원 1990. 3. 23. 선고 89누5386 판결, 대법원 1989. 4. 11. 선고 87누647 판결 등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역학조사 명령의 위법성을 다음과 같이 검토해 보았어야 한다. 대법원은 보다 행정법과 연결된 문제 있어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할 수 있도록 성숙하게 발전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2.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을 위한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 심사기준 (1) 역학조사의 성격 역학조사는 행정법상 행정조사에 해당한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약칭: 감염병예방법) 제18조에 의하면 역학조사는감염병이 발생하여 유행할 우려가 있거나, 감염병 여부가 불분명하나 발병원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행정청이 지체 없이 역학조사를 하여야 하도록 하고 있다. 역학조사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임의조사가 아니라 권력적 사실행위인 강제조사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동법 제18조 제3항에 의하면 1호상의 정당한 사유 없이 역학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 2호상의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3호상의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 등에 대하여는 동법 제79조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그 자체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수인하명과 순수사실행위가 결합된 합성행위로서 전체적으로 행정소송법 제2조의 처분과 동일한 성격에 해당하는 기타 행정작용에 속한다. 역학조사를 명령의 형태로 발부하는 경우에는 행정청의 행정행위로서 처분에 해당하게 된다. (2) 역학조사의 내용상의 위법성과 비례의 원칙 등 역학조사와 같은 행정조사는 실정법상으로는 「행정조사기본법」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행정조사는 법률의 우위원칙상 동 법 등을 위반해서는 안 되고, 나아가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만 하는 법률유보의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역학조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18조에 규정이 있다. 그밖에도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행정조사가 과잉조사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동법은 제4조 제1항에서 행정조사는 조사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실시하여야 하도록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동 규정은 다른 목적 등을 위하여 조사권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되도록 목적구속성의 원칙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나 원심은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역학조사의 절차상의 위법성과 감염병예방법 및 행정조사기본법 준수 등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 제9조 내지 제13조상의 다양한 조사방법으로 수행될 수 있다. 「행정조사기본법」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제17조상의 서면에 의한 사전통지, 제24조 등에 의한 조사결과의 통지 등의 절차준수가 적법절차의 원리상 요구된다. 대법원이나 원심은 역시 이 부분을 포함하여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걸쳐 심리하였어야 한다. Ⅴ. 결론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 임하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하며,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대법원이나 원심이나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보다 행정법적으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성봉근 교수(서경대)
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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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조사
성봉근 교수(서경대)
2023-03-09
금융·보험
민사일반
민법 제923조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과 민법 제974조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부양의무
1. 사실관계 및 대법원의 판결 소외 망 A는 1993년 피고와 혼인하여 자녀로 B(1993년생)와 C(1997년생)를 둔 뒤 1998년 이혼하였는데, A가 2011년 추락 사망하여 피고는 2012. 6. 27. B, C의 친권자로서 A의 사망보험금으로 약 1억7000만 원을 원고(보험회사)로부터 수령하였다. 그 후 A가 자살한 것으로 밝혀져 원고는 피보험자의 고의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보험계약 내용에 따라 2012. 12. 27. B와 C를 상대로 보험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2015년 원고 승소판결이 확정되었고, 원고는 그 직후 채무자 B와 C, 제3채무자 피고, 피압류채권 ‘B와 C의 피고에 대한 보험금반환청구권’으로 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으며, 위 명령은 피고에게 송달되었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추심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은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행사상의 일신전속권이므로 피압류채권으로서 적격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추심명령이 무효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항소심은 제1심과 마찬가지로 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일신전속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B는 성년이 된 후 피고의 반환의무를 면제하였거나 B(자녀)의 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고, C의 보험금은 피고가 모두 소비하였으므로 반환할 보험금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원고가 상고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원심의 부가적·가정적 판단 부분은 수긍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 가. 부모와 성년 자녀 사이의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가 민법 제974조 제1호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대법원 1994. 6. 2.자 93스11 결정,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다96932 판결, 대법원 2013. 8. 30.자 2013스96 결정, 대법원 2017. 8. 25.자 2017스5 결정). 그런데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에 대하여는 친권자의 의무라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직계혈족간 부양의무를 규정한 민법 제974조 제1호라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민법 제975조와 관계에서 ‘부양을 받을 미성년 자녀가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부모가 부양의무를 이행할 책임이 있는지’가 문제 된다. 이런 이유로 종래 민법 제974조 제1호가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라고 해석하는데 망설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 친권자는 자녀가 그 명의로 취득한 특유재산을 관리할 권한이 있는데(민법 제916조), 그 재산 관리 권한이 소멸하면 자녀의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을 하여야 한다(민법 제923조 제1항). 여기서 관리의 계산이란 자녀의 재산을 관리하던 기간의 그 재산에 관한 수입과 지출을 명확히 결산하여 자녀에게 귀속되어야 할 재산과 그 액수를 확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 친권자가 자녀의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을 하는 경우 그 자녀의 재산으로부터 수취한 과실은 그 자녀의 양육, 재산관리의 비용과 상계한 것으로 본다는 민법 제923조 제2항의 규정을 고려하면, 대법원이 이 사건 판결에서 지적하다시피 친권자는 자녀의 특유재산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임의로 사용할 수 없음은 물론 자녀의 통상적인 양육비용으로도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 원칙이고, 친권자가 자신의 자력으로는 자녀를 부양하거나 생활을 영위하기 곤란한 경우 또는 친권자의 자산, 수입, 생활 수준, 가정 상황 등에 비추어 볼 때 통상적인 범위를 넘는 현저한 양육비용이 필요한 경우 등과 같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자녀의 특유재산을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라. 결국 부모는 부양받을 미성년 자녀가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부양의무가 발생하는데, 그 근거는 민법 제974조 제1호 직계혈족 간 부양의무라고 봄이 타당하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특별 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 민법 제923조 규정이 우선 적용되므로 민법 제975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판시를 한 것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의도하지 않은 성과라 할 만하다.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3. 피압류 적격에 관한 판단 : 일신전속권인지 여부 가. 친권자의 특유재산반환의무는 민법 제923조 제1항의 계산 의무 이행 여부를 불문하고 그 재산 관리 권한이 소멸한 때 발생하고, 이에 대응하는 자녀의 친권자에 대한 반환청구권은 재산적 권리로서 일신전속적인 권리가 아니므로 자녀의 채권자가 그 반환청구권을 압류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 나.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사건은 가사소송법이나 가사소송규칙 그 밖의 법률에서 가정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는 가사사건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민사사건으로 지방법원에서 심리 재판해야 한다.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 아니라는 판시만 한 것은 법률심으로서 대법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방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고, 간접적으로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밝히는 데 일조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4. 피압류채권의 존부에 관한 판단 가. 직권조사사항 :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의 소는 추심채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하여야 할 것(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23888 판결 등)이므로 당사자적격에 관한 사항은 소송요건에 관한 것으로서 직권조사사항이고(대법원 1994. 9. 30. 선고 93다27703 판결 등) 변론주의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 나. B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의 존부 (1) 대법원은 B가 2012. 8. 22. 성년에 달한 후 묵시적으로 특유재산반환의무를 면제하거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원심의 판단을 근거로 B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채권을 대상으로 한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2) 그러나, B가 성년에 달하기 2개월 전에 피고가 법정대리인(친권자)으로서 보험금을 수령한 점, B가 성년에 달하고 4개월 후 원고가 B와 미성년자인 C를 상대로 보험금 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한 점을 고려하면 B가 특유재산반환의무를 면제하거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 것은 원고의 보험금을 회수하려는 일련의 노력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 다. C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의 존부 (1) 대법원은 C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과 관련하여 A가 사망한 2011년부터 2017년 군입대 전까지 C는 피고 및 피고의 재혼 남편 X와 함께 살아온 점, 피고가 소득활동을 하였으나 교육비, 생활비를 포함하여 C의 양육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보험금에서 충당한 점, 피고의 재혼 남편 X가 C의 2017년 1학기 대학등록금을 대신 지급한 점 등을 종합하여 C가 성년에 달하여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발생한 2017. 7. 2. 무렵에는 피고가 C의 양육비 등으로 보험금을 모두 소비하여 C에게 반환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2) 민법 제974조 제1호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이란 며느리와 시부모 관계, 사위와 장인·장모 관계, 계친자 관계(계부와 처의 자녀 사이, 계모와 남편의 자녀 사이)를 의미한다. 물론 직계혈족간은 부모자식간, 조부모와 손자녀간 등 직계혈족 사이를 의미한다. 한편, 민법 제833조는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당사자간에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 피고의 재혼 남편 X는 피고의 남편으로서 C와는 민법 제974조 제1호에서 정한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에 해당하여 서로 부양의무가 있다. 만약 피고가 사망하였다면 배우자 관계가 소멸하여 (X가 재혼하지 않는 이상) X와 B, C는 단순 인척 관계에 불과하므로 X는 B, C와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하여 부양의무가 발생하지만(대법원 2013. 8. 30.자 2013스96 결정), 피고가 생존해 있는 한 X는 B, C와 생계를 같이 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이므로 부양의무가 발생한다. 한편, X는 피고의 남편으로서 부부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X와 피고가 공동으로 부담하므로 X가 C를 부양한 것은 민법상 부양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C는 부당이득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피고는 자신의 재혼 남편 X가 C를 부양한 것을 이유로 C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의무의 면책을 주장할 수는 없다. 5. 결론 특유재산반환청구사건은 가사사건이 아니라 일반 민사사건이므로 대법원이 상고기각으로 자판을 할 것이 아니라 파기환송하여 사실심에서 B와 C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권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인 사실 심리를 한 후 판단하도록 했어야 한다.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적속권이 아니라는 판시만 한 것은 법률심으로서 대법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방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고, 간접적으로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밝히는 데 일조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반환청구권
재산관리
친권자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2022-12-18
민사일반
후순위저당권자는 소멸시효 원용할 수 없는가?
[사실관계]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이번 평석이 필요한 한도에서 간추리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A는 B에 대한 대여금채권의 담보로 B 소유의 부동산에 가등기를 경료받고, 나아가 이 거래에 적용이 있는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이 요구하는 청산금의 지급 없이 위 가등기에 기하여 본등기를 경료하였다. 그 후 원고가 채무자 B와의 대위변제약정에 기하여 위 차용금을 변제하였다. 그럼에도 A는 B와의 합의 아래 C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고, 피고는 C로부터 근저당권을 설정받았다. 피고의 근저당권에 기하여 행하여진 경매절차에서 피고에게 일정액을 배당하는 배당표가 작성되었으나, 원고가 이에 배당이의를 함으로써 이 사건 소송에 이르렀다. 원고 청구를 일부 인용한 원심판결에 대하여 쌍방이 상고하였다. 피고의 상고이유는 원고의 B에 대한 채권은 시효소멸하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부분 주장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시요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이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시효로 채무가 소멸되는 결과 직접적인 이익을 받는 사람에 한정된다. 후순위담보권자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담보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이 증가할 수 있지만, 이러한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담보권의 순위 상승에 따른 반사적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판례공보 2021년 상권, 673면). [평석] 1. 이 사건에서 원고는 B와의 약정에 기하여 B의 채무금을 변제함으로써 변제자대위에 기하여 담보가등기권을 당연히 취득하였다(변제자대위 및 그로 인하여 원고가 취득하는 채권의 범위에 관한 판시가 원고 상고이유에 대한 주요 부분을 이룬다). 그리하여 애초 그보다 늦게 설정된 피고의 근저당권은 원고의 권리에 열후하는 말하자면 제2순위의 담보권이 된다. 그 경우에 선순위인 담보가등기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을 위와 같이 후순위담보권을 가지는 피고가 할 수 있는가? 즉 피고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하여 시효원용권을 가지는가? 2. 종전에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우리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고 이해되어 왔다(최근에도 송덕수, 민법총칙, 제4판(2018), 505면은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어느 시점부터 대법원은 시효원용권자의 범위를 획정하는 작업을 정면으로 수행하여, 시효소멸을 소송상 주장하였음에도 그에게 시효원용권을 부정하여 시효소멸의 주장을 배척하는 구체적인 재판례를 축적하여 갔다. 이로써 판례는 상대적 소멸설로 입장을 전환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에는 그것이 과연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한 법률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하는 데 필요한 절차(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단서 제3호), 즉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거쳤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이 점에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3.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상대적 소멸설의 입장을 전제로 하더라도, 후순위담보권자는 이에 해당하여 시효원용권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하에서는 저당권을 염두에 두고 논의하기로 한다. (1) 선순위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소멸하는 경우에 그 저당권의 당연 소멸로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상승하는 것은 후순위저당권자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향유하는, 그리하여 어떻게 보더라도 현실인 이익이다. 그 경우 후순위저당권자는 그러한 순위의 상승을 단순히 기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의문이 없는 저당권에 관한 법리, 즉 '순위상승의 원칙'(우선 곽윤직·김재형, 물권법, 제8판[전면개정] 보정판(2015), 453면 참조)의 적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그야말로 법적인 이익인 것이다. 이것을 '반사적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법논의에서 극력 피하여야 할 언어의 오용이 아닐까? 만일 그것이 단순한 기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 저당권이 설정된 목적물의 제3취득자가 그 피담보채권의 시효소멸로 누리게 되는 저당권의 당연 소멸, 그리하여 이러한 법적 부담으로부터의 해방도 역시 '단순한 기대'에 그친다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제3취득자도 역시 통상적으로는 저당권 등의 존재를 알면서(적어도 등기부를 통하여 알 수 있었으면서) 이를 물적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하여 목적물을 취득하였을 것임에도 그 후 위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그러한 '반사적 이익'을 얻는 것에 불과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대법원 1995. 7. 11. 선고 95다12446판결(공보 2761면)은 이 사건에서와 같이 가등기담보권이 설정되어 있던 사안에서 제3취득자의 시효원용권을 긍정한다. 시효이익 포기의 상대효를 다루는 근자의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5다200227판결(공보 하, 976면)도 제3취득자의 시효원용권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2) 시효원용권 인정 여부의 법문제에 대하여 우리 판례는 일본의 그것에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판시는 최고재 1999(平成 11). 10. 21. 판결(민집 53-7, 1190)의 태도와 일치하고, 그 이유 설시도 위 일본 판결("선순위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로써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의 증가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저당권의 순위 상승에 의하여 초래되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로부터 그대로 따왔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제2차 대전 이전, 특히 1920년대 말까지의 엄격한 해석을 1945년부터의 최고재가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애초 대심원의 판례상 시효원용권이 모두 부정되었던 물상보증인, 담보부동산의 제3취득자 및 사해행위의 수익자 등에 대하여 모두 1960년대 중반부터 하나씩 긍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시효원용권자 여하에 관한 판례의 흐름은 위와 같이 일찍부터 채택되어온 [직접성] 공식의 실질적 해체의 역사이다. 그 공식은 그 기원(起源)에 있어서는 일정한 자를 제외한다는 의미를 가졌었으나, 현재는 전에 부정되었던 자 전부에 시효원용권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판례의 변경은 다른 법문제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金山直樹, 時效における理論と解釋(2009), 319면 이하). 이러한 입장 전환을 선도한 것은 다름아닌 일본 법학자 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인데, 그 주장의 요지는 "시효의 원용이 시효로 인한 권리의 득상이라는 일반적 법률효과와 개인의 의사 사이의 조화를 도모하는 제도라고 한다면, 이들 관계자 각자에게 원용의 자유를 인정하고 시효의 효과를 상대적·개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그 목적에 적합하다"고 전제한 다음, "시효에 의하여 직접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면하는 자 외에도 이 권리 또는 의무에 기하여 다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자도 포함한다고 봄이 옳다"는 것이다(新訂 民法總則(1965), 445면 이하. 이는 "抵當不動産の第三取得者の時效援用權"이라는 1936년 논문으로 소급될 수 있다). 위와 같은 흐름을 반영하여 후순위저당권에 대하여도 이를 긍정하는 학설이 유력하였다(川島武宜, 幾代通 등). 그럼에도 최고재의 위 1999년 판결은 이를 부정한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학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예를 들면 金山直樹, 前揭書, 320면 이하[처음 발표는 2000년]. 위 판결에 대한 평석의 목록은 森田宏樹, "時效の援用權者", 民法判例百選 제1권, 제8판(2018), 86면 이하를 보라). 한편 일본은 2017년의 민법개정(시행은 금년 4월부터)으로 시효의 원용에 관한 제145조에서 시효원용권자를 "당사자(소멸시효에 있어서는 보증인, 물상보증인, 제3취득자 기타 및 권리의 소멸에 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지는 자)"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개정 전과 같이 그 구체적인 범위를 해석에 맡기는 취지라고 한다. 4. 후순위담보권자에게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의 시효원용권을 부정한 것은 종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판단으로서 하급심이나 거래실무 등에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러한 입장에는 쉽사리 찬성할 수 없다. 애초 시효소멸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받는지, 간접적으로만 미치는지의 구분 자체가 그야말로 형식적 기준이므로(법논의에서 드물지 않은 그 가장이유(假裝理由, Scheinbegrundung)!), 그 적용은 가급적 피하여야 할 것이다.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소멸시효
근저당권
후순위저당권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2021-05-03
헌법사건
헌법재판소가 군정법령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가?
[사실관계 및 헌법재판소의 판단] 헌법소원 청구인들은 2016년 11월 24일 울산 중구 소재 이 사건 토지를 경매절차에서 낙찰 받아 그 소유권을 취득하고 2017년 4월 3일 울산광역시 중구를 피고로 하여 아무런 권원 없이 이 사건 토지를 도로 포장 등의 방법으로 점유·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로 인한 부당이득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토지의 전 소유자가 1945년 8월 10일 재조선 일본인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고 1945년 9월 7일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는데 1945년 9월 25일 공포된 미군정청 법령 제2호에서 일본인의 모든 재산권 이전 행위를 금지하고 1945년 8월 9일 이후에 체결한 재산권 이전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무효로 하였으며 1945년 12월 6일 공포된 미군정청 법령 제33호가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인의 모든 재산은 미군정청이 취득한다고 규정한 점 등을 이유로 청구인들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청구인들은 위 소송 계속 중 위 미군정청 법령들에 대하여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자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위 군정법령은 헌법소원대상성 및 재판의 전제성이 모두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본안에서는 이는 소급입법금지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검토] 1. 헌법제정 전의 법률도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가? 위 결정은 위 법령들은 각 군정장관의 명의로 공포된 것으로 법령(Ordinance)의 형식을 가졌지만 오늘날 법률로 제정되어야 할 입법사항을 규율하고 있으므로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고 제헌 헌법 제100조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법질서 내로 편입되었으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의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다. 과거 헌법위원회는 1954년 2월 27일 마찬가지로 군정법령인 1947년 12월 15일 공포된 남조선과도정부 행정명령 제9호에 대해 합헌결정을 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는 남조선과도정부 시절의 구 국방경비법에 대하여 성립절차상의 하자가 없다고 하였으며(헌재 2001. 4. 26. 선고 98헌바79·86, 99헌바36 결정) 대법원은 1960년 2월 5일 경향신문 폐간 사건에서 군정법령 제88호에 대해 헌법위원회에 위헌제청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어떤 규범이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헌법재판소에 의한 위헌법률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 군정법령들은 미군 군정청이 발령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입법부나 공권력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므로 입법자의 권위 보호를 위하여 그 위헌 여부의 판단을 굳이 헌법재판소에 독점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제헌 헌법 제100조가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였다고 하여 군정법령이 대한민국의 법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헌법재판소가 위헌심사를 할 수 있다면 일제 강점기의 법률의 위헌 여부도 법원은 판단할 수 없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하여야 하는가? 독일에서는 독일 헌법 시행 전의 법률(vorkonstitutionelles Recht)에 대하여는 일반 법원이 그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1900년 시행된 독일 민법 제1300조는 흠 없는 약혼녀는 약혼자와 동침하였으면 약혼이 해제된 때에는 재산적 손해가 없더라도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1992년 뮌스터 구법원(Amtsgericht)은 위 규정은 헌법에 위반되므로 적용할 수 없다고 하였고(NJW 1993, 1720) 연방헌법재판소도 구법원의 이러한 판단이 타당하다고 하였다(BeckRS 1993, 01691). 2. 한국의 사법부가 군정법령에 대하여 위헌심사를 할 수 있는가? 군정법령의 제정 자체는 미국의 주권에 기한 것이다(헌재 2017. 5. 25. 선고 2016헌바388 결정 참조). 그런데 한국의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우리나라의 헌법에 비추어 군정법령 자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가? 만일 위 법령을 위헌이라고 한다면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2차대전 후에 연합국 점령군이 공포한 직접적 점령법률(unmittelbares Besatzungsrecht) 자체는 연방헌법재판소의 심사대상인 연방법률이나 주 법률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BVerfGE 3, 368 ff). 다만 1948년 정부 수립 후에 한국이 위 군정법령을 적용하였다면 그 적용에 대하여는 헌법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위 군정법령이 적용된 것은 1945년의 일이므로 이에 대하여 우리 헌법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헌법 시행 전에 공포되고 적용이 완료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현행 헌법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 위 군정법령은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 공포되고 그 적용이 완료되었다. 그런데 그 위헌 여부를 현행 헌법에 의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헌법재판소는 1971년에 제정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 제4항에 근거하여 1977년에 이루어진 수용처분이 문제된 사건에서 위 규정이 위헌이라고 하면서 1987년의 현행 헌법 제76조와 제77조를 원용하였고(헌재ㅤ1994. 6. 30. 선고 92헌가18 결정) 위 특별조치법 제11조 제2항 중 제9조 제1항에 근거하여 1982년에 확정된 유죄판결이 문제된 사건에서 위 규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현행 헌법 제33조 제1·2항을 들고 있다(헌재 2015. 3. 26. 선고 2014헌가5 결정). 그러나 현행 헌법 시행 전에 제정되었고 그 적용도 그 전에 완료된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그 제정 또는 적용 당시의 헌법이 위헌 여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후의 현행 헌법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당시에는 합헌이었던 것이 현행 헌법 시행 후에 소급적으로 위헌인 것이 될 수 있어서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치게 된다. 물론 현행 헌법 시행 전에 제정되었더라도 현행 헌법 시행 후에 적용된 법률에 대하여는 현행 헌법을 기준으로 하여 위헌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례들이 현행 헌법 전에 제정되었고 그 적용도 완료된 사건들에 대하여 현행 헌법을 적용하여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은 문제가 있다(윤진수, 상속관습법의 헌법적 통제, 헌법학연구 23권 2호, 2017, 175면 이하 참조). 다만 과거의 법률이 현재의 헌법이나 그 이념에 비추어 볼 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부당한 경우에는 현재의 헌법에 따라 재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윤진수, 위헌인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 민사법학 81호, 2017, 138면 이하 참조). 실정법의 정의에 대한 위반이 참을 수 없는(unerträglich) 정도에 이르면 부정의한 법은 정의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라드부르흐). 남아프리카 헌법재판소가 1996년 선고한 두 플레시스 판결{Du Plessis and Others v De Klerk and Another, 1996 (3) SA 850}도 그러한 취지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위 군정법령이 공포되었을 당시에는 아예 대한민국 헌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는 현행 헌법 제13조 제2항은 제헌헌법에는 없었고 1962년 헌법에서야 제11조 제2항으로 비로소 도입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위 군정법령이 실정법의 정의에 대한 위반이 참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건 헌재 결정도 1945년 8월 9일 당시 재조선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일본의 패망과 미군정의 수립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소유·관리하던 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이나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신뢰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신뢰가 헌법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급입법의 금지를 명하는 위 헌법 규정이 헌법 제정 전에 적용이 완료된 이 사건에 소급적용될 수는 없다.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소급입법
군정법령
헌법소원
윤진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02-15
민사일반
부동산·건축
채권자와 채무자간에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채권자대위소송에서 제3채무자가 그 확정판결에 대하여 다시 다툴 수 있는가
Ⅰ. 대상 판결의 요지 가. 사실관계 원고는 소외 甲 등으로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 있던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는 내용의 제1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원고는 토지거래허가를 배제하거나 잠탈할 목적으로 소외 乙에게 요청하여 乙 명의로 다시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고 乙 명의로 토지거래허가를 받아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 후 이 사건 토지에 대한 토지거래허가는 해제되었으며 피고는 소외 乙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한 후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원고는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소외 乙에 대하여는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의 소를, 소외 甲 등에 대하여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이 소송에서 2014년 11월 13일 '원고에게 甲 등은 각 그 소유지분에 관하여 2014년 11월 13일자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고 원고는 위 甲 등에 대하여 위 2014년 11월 13일자 매매계약 및 이 사건 제1매매계약의 이행불능, 집행불능 등으로 인한 매매대금 반환이나 손해배상 청구 등 일체의 금전적 청구를 포기한다'는 내용으로 조정(이하 '이 사건 화해'라고 한다)이 성립하였고 이후 소외 乙에 대하여는 원고의 청구가 인용되어 확정되었다. 나. 대상 판결의 요지 원고는 이 사건 화해에서 취득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피보전채권으로 삼아 소외 甲 등을 대위하여 피고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는 피보전채권이 부존재한다는 본안전항변을 하였으나 원심은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함에 있어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그 보전되는 청구권에 기한 이행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면 제3채무자는 그 청구권의 존재를 다툴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피고의 본안전항변을 배척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 화해는 토지거래허가제에 관한 강행법규 위반으로 확정적으로 무효가 된 이 사건 제1매매계약에 따른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려는 목적에서 단지 재판상 화해의 형식을 취하여 위 매매계약의 이행을 약정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이므로 피보전채권이 부존재한다고 판단하면서 그 이유를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그 보전되는 청구권에 기한 이행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청구권의 발생원인이 되는 사실관계가 제3채무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청구권의 취득이 채권자로 하여금 채무자를 대신하여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와 같이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볼 수 있는 경우 등에는 위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채권자대위소송의 제3채무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피보전권리가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위 확정판결 또는 그와 같은 효력이 있는 재판상 화해조서 등이 재심이나 준재심으로 취소되지 아니하여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는 그 판결이나 화해가 무효라는 주장을 할 수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Ⅱ. 대상 판결의 평석 1. 종래 판례의 태도와 최근의 변화 종래 판례는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하여 피보전채권에 관하여 승소확정을 받은 바 있으면 피보전채권의 존재가 입증되었으므로 채권자가 제3채무자를 상대로 한 채권자대위소송에서 더 이상 피보전채권의 존재를 다툴 수 없다는 판시를 계속하여 왔었다(대법원 1988. 2. 23. 선고 87다카961 판결, 대법원 1995. 12. 26. 선고 95다18741 판결, 대법원 2007. 5. 10. 선고 2006다82700,82717 판결 등 참조). 그런데 대법원 2015. 9. 24. 선고 2014다74919 판결에서 기존의 판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피보전채권이 존재한다는 확정판결이 있어도 그 채권의 취득이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인 경우에 제3채무자가 이를 다툴 수 있다고 판시하여 처음으로 예외를 인정하였다. 위 판례는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하여 그 보전되는 청구권에 기한 이행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면 제3채무자는 그 청구권의 존재를 다툴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원칙이나 그 청구권의 취득이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신탁법 제6조가 유추적용되어 무효인 경우 등에는 제3채무자는 그 존재를 다툴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대상 판결은 위 2014다74919 판결의 취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제3채무자가 피보전채권의 존재에 대하여 확정판결이 있어도 이를 다툴 수 있는 예외적 경우를 판시하고 있다. 위 2014다74919 판결은 피보전채권의 취득이 소송신탁을 금지하는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인 경우이고 대상 판결은 피보전채권의 취득이 토지거래허가제도에 관한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인 경우이다. 2. 종래 판례에 대한 해석론 가. 피보전채권에 관한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채권자대위소송에서 선결문제로 작용하게 되므로 전소의 기판력이 후소에 확장되는 경우라고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전소의 기판력이 후소에 선결문제로 작용하기 위하여는 전소와 후소 사이에 당사자의 동일성이 인정되어야 함은 민사소송법 제2018조 1항의 취지상 당연하다. 피보전채권에 관한 소의 당사자와 채권자대위소송의 당사자가 다르므로 전소의 기판력이 후소의 선결문제로 작용할 수 없다. 나. 피보전채권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그 판결의 반사적 효력이 채권자대위소송에 미친다고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 판결의 반사적 효력이란 기판력이 미치는 소송당사자가 아닌 소송당사자의 일방과 실체법상 특별한 의존관계에 있을 때 그 판결의 효력이 제3자에게 반사적으로 유리 또는 불리하게 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반사적 효력은 민사소송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고 판례도 반사적 효력에 대하여 부정적이라는 점에서(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4다228099 판결 참조), 종래 판례를 반사적 효력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 종래 판례를 확정 판결의 증명효 문제로 접근하는 견해(윤진수, 민법논고 7, 박영사, 2015, 434 이하 참조)가 있는데 이 견해가 타당하여 보인다. 확정판결의 증명효란 확정된 판결의 이유에서 확정한 사실관계는 후소송에서 동일한 사실관계가 문제될 경우에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이를 뒤집지 못하는 효력을 말한다(대법원 1990. 5. 22. 선고 89다카33944 판결, 대법원 2010. 8. 19. 2010다26745·26752 판결 등 참조). 이 견해에 의하면 피보전채권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인정되었다고 하더라고 채권자대위소송과정에서 제3채무자가 새로운 증거방법을 제출하여 피보전채권의 존재를 다툴 수 있게 된다. 3. 대상 판결의 의의 가. 종래 판례는 피보전채권의 존재에 관하여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이를 채권자대위소송에서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는 판시를 하고 있어 그에 대한 근거로 기판력의 확장이론이나 판결의 반사적 효력론이 제기되어 왔었다. 그런데 위 2014다74919 판결과 이를 계승한 대상 판결에서는 예외적으로 피보전채권의 취득행위가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인 경우에는 채권자대위소송에서 제3채무자가 피보전채권의 존재를 다툴 수 있다고 있다고 판시하였다. 위 2014다74919 판결 및 대상 판결에서 제3채무자는 피보전채권의 취득행위가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이므로 피보전채권이 부존재하였다는 점을 입증하였는데, 피보전채권의 부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방법을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취득한 사실'로 국한 시킬 이유는 없다. 즉 채권자대위소송에서 제3채무자는 피보전채권의 취득행위가 강행법규에 위반되어 무효인 경우 외에도 피보전채권이 부존재한다는 모든 사유를 들어 그 존재를 다툴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3채무자가 채권자대위소송에서 피보전채권의 부존재를 어떻게 입증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게 된 셈이다. 다만 피보전채권의 존재는 전소의 확정판결이라는 유력한 증거에 의하여 입증되었으므로 제3채무자는 전소의 확정판결에 의하여 인정된 피보전채권의 발생원인사실이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나. 대상 판결은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는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그 보전되는 청구권에 기한 이행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청구권의 발생원인이 되는 사실관계가 제3채무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하여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확장되거나 반사효가 미치는 경우가 아니라 증명효가 미치는 경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신병동 교수(충북대 로스쿨)
토지거래허가
토지
채권자대위
신병동 교수(충북대 로스쿨)
2021-02-01
민사소송·집행
조세·부담금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에 있어서 원천징수세액의 처리
Ⅰ. 서론 원천징수란 소득금액을 지급하는 자(원천징수의무자)가 그 상대방(원천납세의무자)으로부터 세액을 과세관청을 대신하여 징수하는 것을 말한다. 원천납세의무자는 국가에 대하여 조세법상의 법률관계를 갖지 않으나 원천징수를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따라서 원천징수의무자가 소득금액을 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면 원천징수의무자의 원천납세의무자에 대한 채무는 모두 변제로 소멸한다(대법원 2001. 7. 10. 선고 2001다16449 판결). 원천납세의무자가 원천징수의무자로부터 지급받은 소득이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 확정된 경우 원천납세의무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 범위가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실제 수령금액인지,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인지에 대한 다툼이 있다. 이는 잘못 징수·납부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과도 관련된 문제다. Ⅱ. 원천징수와 부당이득 반환 1. 원천납세의무자의 부당이득반환의무 범위 원천납세의무자에게 지급된 소득이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경우 그 반환은 근본적으로 부당이득 반환이다. 원천납세의무자는 실제로 지급받은 돈을 반환하면 되고 원천징수세액으로 공제된 돈에 대하여는 아무런 이득을 취득하지 않았으므로 반환의무가 없다. 이는 변제자가 채무자를 대위하여 채무자의 제3자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였는데 그 채무가 존재하지 아니하여 대위변제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 채무자에게 변제금원 반환의무가 없는 것과 같다.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8다290436 판결은 주식회사가 법률상 원인 없이 대표이사에게 특별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를 지급하였다가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액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한 사안에서 대표이사는 원천징수세액을 제외하고 실제 지급받은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2. 원천징수세액의 처리 가. 국가의 부당이득반환의무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납세의무자로부터 원천징수대상이 아닌 소득에 대하여 세액을 징수·납부하였거나 징수하여야 할 세액을 초과하여 징수·납부하였다면 국가는 원천징수의무자로부터 이를 납부 받는 순간 아무런 법률상의 원인 없이 그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부당이득을 보유하게 된다(대법원 2002. 11. 8. 선고 2001두8780 판결). 따라서 국가는 원천징수의무자에게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한다. 나. 환급청구권의 귀속 관계 국세기본법은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징수하여 납부한 세액에서 환급받을 환급세액이 있는 경우 그 환급액은 그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징수하여 납부하여야 할 세액에 충당하고 남은 금액을 환급하되 그 원천징수의무자가 그 환급액을 즉시 환급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나 원천징수하여 납부하여야 할 세액이 없는 경우에는 즉시 환급한다고 정하고(제51조 제5항) 환급금은 납세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고 정하면서(제51조 제6항) '납세자'란 납세의무자와 세법에 따라 국세를 징수하여 납부할 의무를 지는 자를 말한다고 정하고 있다(제2조 제10호). 이에 따르면 잘못 징수·납부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은 납세자인 원천징수의무자에게 귀속되고 원천납세의무자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대법원도 원천징수의무자가 원천납세의무자로부터 잘못 징수·납부한 원천징수세액에 대한 환급청구권은 원천납세의무자가 아닌 원천징수의무자에게 귀속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02. 11. 8. 선고 2001두8780 판결). Ⅲ. 원천징수와 가지급물 반환 1. 대상판결: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5다35270 판결 가. 사안 지급자가 제1심의 가집행선고에 따라 임의로 지연손해금 100을 가지급하면서 원천징수세액 20(기타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세율 20%)을 공제한 나머지 80을 실제로 지급하였는데 상소심에서 지연손해금 70이 의무 없는 것으로 확정되고 그 부분에 대한 가집행선고가 취소됨에 따라 가지급물 반환범위가 문제된 사안이다. 나. 판시요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지연손해금의 현실적인 지급은 원천징수의무가 발생하는 소득금액의 지급에 해당하고 지급자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라 지연손해금을 실제로 지급하면서 공제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 2. 평석 가. 가지급물 지급과 원천징수의무 1) 대상판결의 판시요지 수급자가 가집행선고 판결에 의하여 지급자로부터 실제로 지연손해금에 상당하는 금전을 수령하였다면 비록 본안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의 실현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정도로 성숙·확정된다고 해야 하므로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지연손해금의 현실적인 지급은 원천징수의무가 발생하는 소득금액의 지급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제된 원천징수세액 20을 포함한 지연손해금 100이 가지급물이다. 2) 검토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임의지급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천징수세액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을 실제로 지급하여야 하고 소득세액 징수는 본안판결 확정 후 다른 절차를 통해야 한다는 것은 원천징수세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상판결의 판시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하여는 판례평석이 공간되었고 실무상 대상판결의 적용에 의문이 없다. 나. 가집행선고의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과 원천징수세액 1) 가지급물 반환의 법적 성질 가집행선고에 따른 변제의 효력은 그 가집행선고가 취소되는 것을 해제조건으로 발생한다(대법원 1995. 12. 12. 선고 95다38127 판결). 따라서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라 금원을 지급받았다가 그 가집행선고가 실효됨에 따라 금원의 수령자가 부담하게 되는 원상회복의무는 성질상 부당이득 반환채무다(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1다81320 판결). 2) 대상판결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방법 가지급물 액수가 100(= 실제로 지급된 소득 80 + 원천징수세액 20)이므로 이 금액에서 정당한 지연손해금 30(= 실제로 지급된 소득 중 정당한 24 + 납부된 원천징수세액 중 정당한 6)을 뺀 나머지 70이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라 법률상 원인이 없게 되는데 이 70은 실제로 지급된 소득 56(= 80-24)과 과다하게 납부된 원천징수세액 14(=20-6)로 구성된다. 따라서 수급자가 실제로 지급받은 가지급물 중 56을, 국가가 원천징수세액으로 납부된 가지급물 중 14를 각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 대상판결에서는 지급자가 원천징수세액 14를 국가로부터 환급받기로 하여 가지급물 반환신청에서 제외한 까닭에 이 부분 가지급물 반환주체에 관하여는 명시적인 판시가 없었다. 3) 검토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만을 지급하더라도 전체 소득금액 지급채무에 대한 변제로 유효하고(대법원 2001. 7. 10. 선고2001다16449 판결) 이는 가집행선고에 따른 지급이라 하여 달리 볼 것이 아니다. 따라서 원천징수세액 20을 포함한 전체 소득금액이 지급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때 원천징수세액 20은 실제로 지급된 것이 아니라 지급된 것으로 인정될 뿐이므로 그 인정효과가 상실되었을 때 실제로 지급된 것과는 달리 취급된다. 대위변제가 성립하지 않은 경우 채무자가 아니라 변제금원을 수령한 제3자가 변제자에 대하여 부당이득 반환의무를 부담하는 것처럼(대법원 1990. 6. 8. 선고 89다카20481 판결) 가집행선고가 취소되어 가지급물 지급의 변제효과가 상실된 경우 원천징수세액을 실제로 수령한 국가가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공제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고 하여 수급자에게 공제된 원천징수세액에 대하여도 가지급물 반환의무가 발생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대상판결은 원천징수세액 부분도 가지급물 지급의 효력이 있고 가집행선고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대상이 된다고 본 것이고 이를 종래의 대법원판결에 비추어보면 지급자에 대한 원천징수세액 상당의 가지급물 반환의무(세액환급의무)는 국가에게 있음을 전제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상판결이 별다른 설명 없이 "공제한 원천징수세액도 가지급물에 포함된다", "피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라고 설시한 까닭에 수급자의 가지급물 반환의무가 공제된 원천징수세액에까지 미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어 아쉽다. Ⅳ. 결론 수급자가 지급자로부터 지급받은 소득을 법률상 원인이 없는 부당이득으로 반환하여야 할 경우 원천징수세액을 공제한 실제 수령금액을 반환하면 되고 이는 가집행선고의 취소에 따른 가지급물 반환에 있어서도 같다. 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5다35270 판결은 가집행선고 판결에 따른 수급자에 대한 실제 금원의 지급과 국가에 대한 원천징수세액의 납부가 모두 가지급물 지급에 해당하고 가집행선고 판결이 취소된 경우 가지급물 반환의무로 수급자는 실제로 받은 돈을, 국가는 납부된 원천징수세액을 지급자에게 반환(환급)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정훈 고법판사(서울고법)
원천징수세액
가지급물반환
가집행선고취소
이정훈 고법판사(서울고법)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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