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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12)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의 의미
[ 요 약 ] 원고는 2017년 3월 8일, 대구광역시 서구청장을 상대로 대구 서구에 위치한 지정된 부지에 동물장묘시설을 신축하기 위한 개발행위허가신청을 포함한 건축허가신청을 제출했다. 이 신청은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을 준수해야 했으며, 이에 따르면 건축물 또는 공작물을 설치하는 부지는 도시 또는 군 계획도로에 접속해야 하며, 특히 개발규모가 5000㎡ 미만일 경우 진입도로의 최소 폭은 4미터 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원고는 충분한 자료 등을 제공하지 못했고, 이를 근거로 2019년 4월 10일 피고는 신청을 거부했다. 이 거부처분에 대한 법적 분쟁에는 국토계획법과 시행령이 쟁점이 됐다. 국토계획법 제58조와 시행령 제56조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지역의 특성, 개발 상황, 기반시설의 현황 등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은 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대구고등법원은 원심 판결에서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에 따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지침이 법규명령의 효력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지침이 내부적인 지침에 불과하며 대외적인 구속력은 없다고 판단,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대상판결은 상위법령인 시행령의 ‘세부 검토기준’의 구체화 권한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그렇다면 상위법령 입법자의 의사를 ‘위임’으로 보고, 이 사건 지침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했어야 마땅하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수임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대상판결은 결국 규범통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원고는 2017. 3. 8. 피고(대구광역시 서구청장)에게 대구 서구 (주소 생략) 외 1필지(이하 ‘이 사건 신청지’라고 한다) 지상에 동물장묘시설 1동을 신축하기 위하여 개발행위허가신청 등이 포함된 복합민원 형태의 건축허가신청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신청’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 훈령인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이하 ‘이 사건 지침’이라고 한다) 3-3-2-1에서는 도로에의 접속 및 도로확보기준에 관하여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공작물을 설치하는 부지는 도시·군계획도로 등에 접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에 따라 개설(도로확장 포함)하고자 하는 진입도로의 폭은 개발규모 5000㎡ 미만은 4m 이상으로서 개발행위규모에 따른 교통량을 고려하여 적정 폭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9. 4. 10. 이 사건 신청에 대해 피고는 거부처분을 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교통 관련: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 중 3-3-2-1에 근거한 진입도로 확보와 관련한 자료 불충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이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라고 한다) 제58조 제1항, 제3항에서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은 지역의 특성, 지역의 개발상황, 기반시설의 현황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1항 [별표 1의2] ‘개발행위허가기준’은 국토계획법 제58조 제3항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대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규명령에 해당한다. 한편,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4항에서는 “국토교통부장관이 제1항의 개발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국토교통부장관이‘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을 뿐이므로, 그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이 이 사건 지침은 상급행정기관인 국토교통부장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하급행정기관에 대하여 개발행위허가업무와 관련하여 국토계획법령에 규정된 개발행위허가기준의 해석·적용에 관한 세부 기준을 정하여 둔 행정규칙에 불과하여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 Ⅲ. 판례평석 1. 대상판결의 의미와 문제점 대상판결의 원심판결인 대구고등법원 2020. 6. 26. 선고 2019누5237 판결에서는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의 단계적 위임에 따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지침은 법규명령의 효력을 갖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대상판결은 ‘위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지침이‘국토계획법령에 규정된 개발행위허가기준의 해석·적용에 관한 세부 검토기준’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 법규성을 부정하였다. 대상판결이 이 사건 지침을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개발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기준”은 위임 없이도 행정이 당연히 그 권한 범위 내에서 행정규칙으로 구체화할 수 있고, 국토계획법 제56조 제4항은 단지 이를 확인적으로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고,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4항의 규정이 ‘구체적 위임’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일관되지 못하다면 그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은 성문법원의 하나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法院이 판단하기 전에 그 법원성 여부는 충분히 예측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2.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관련 판례 분석 대법원은 대법원 1987. 9. 29. 선고 86누484 판결 [양도소득세부과처분취소]에서 최초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개념을 인정하였다. 동 판결에서 설시한 법리에 따르면,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위 법령이 권한행사의 절차나 방법을 특정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특정행정기관에 대해 ‘그 법령내용의 구체적 사항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수임행정기관이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그 법령의 내용이 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된다. 즉, 상위법령은 행정규칙에 대해 상위법령 내용의 구체화 권한을 부여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 대해 대법원은 사안에 따라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대법원 2003. 9. 5. 선고 2001두403 판결에서는 소득금액조정 합계표 작성요령이 “법률의 위임을 받은 것이기는 하나 법인세의 부과징수라는 행정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절차적 규정으로서 단순히 행정규칙의 성질을 가지는 데 불과하다”고 하였고, 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두39297 판결에서는 위임명령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이 예시적 규정에 불과한 이상 그 위임에 따른 고시는 행정규칙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법리에 따르면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도, 하위 행정규칙이 상위 위임법령의 위임범위를 일탈했다는 이유로 아예 그 대외적 구속력을 바로 부정해 버리는 판례를 다수 양산해 왔다. 즉, “행정 각부의 장이 정하는 고시가 비록 법령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규정 내용이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일 경우에는 법규명령으로서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1987. 9. 29. 선고 86누484 판결, 대법원 1999. 11. 26. 선고 97누13474 판결, 대법원 2006. 4. 28.자 2003마715 결정 등). 대법원으로서는 절차적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나치게 많이 제정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사전에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을 수 있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행정규칙에 위임하는 경우가 빈번할 뿐 아니라, 위임하는 이유 또한 법규명령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상위법령의 ‘위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따라 그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해 온 것일 수 있다. 이상덕, 할당관세 적용 추천이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2017. 9. 21. 선고 2016두34417 판결: 공2017하, 2003), 대법원판례해설, 제114호(2017년 하), 27-29쪽. 하지만, 아무리 선해하더라도 대법원의 판례법리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위임이 지나치게 빈번’하다면 적절한 범위 내에서 위임이 되도록 법원은 규범통제를 했어야 한다. 요컨대, 최소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법원에 대해 ‘법’이 무엇인지는 예측가능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법원은 위임의 방식이나 위임의 내용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상위 위임법령이나 수임규칙에 대한 규범통제를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 포괄위임금지 원칙은 현재의 입법상황이나 세계적 입법례에 맞지 않으므로 헌법상 국회 입법권의 보장 및 침해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4차 산업혁명 대응 입법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포괄위임금지를 완화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박균성, 행정법 연구방법론의 모색, 2024년 한국공법학회 신진학자대회 ‘공법의 새로운 동향 탐색과 미래 공법의 조망’ 발표문, 43-44쪽 참조. Ⅳ. 맺음말 대상판결은 상위법령인 시행령의 ‘세부 검토기준’의 구체화 권한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그렇다면 상위법령 입법자의 의사를 ‘위임’으로 보고, 이 사건 지침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했어야 마땅하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수임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대상판결은 결국 규범통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에서는 법령에서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에 대해 하위 고시 등에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위임에 따른 행정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이 인정된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러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 제정과정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입법론적으로는, 행정입법의 절차적 정당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행정부 주도로 경제개발·사회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국회는 행정부에서 마련해 온 법률안에 대한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과정을 소홀히 한 채 통과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위임입법이 양산된 것이 헌정의 현실이기도 하다. (헌재 1998. 5. 28. 96헌가1 결정). 앞으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인정범위를 법령상 명확히 해나가는 논의와 함께, 행정규칙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다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미형 교수 (충남대 로스쿨)
개발행위허가
위임입법
행정규칙
법령보충
우미형 교수 (충남대 로스쿨)
2024-04-14
행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⑩ 복수의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에 적용될 법리
대상판결은 관할 행정청이 인지한 복수의 위반행위 중 일부를 쪼개어 우선 과징금을 부과한 후 나머지 위반행위에 대해 차후에 별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는 없고, 다만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 후에야 그 부과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비로소 인지한 경우에 한하여 그에 대한 과징금의 별도·추가 부과를 허용하되 그 양정상 한도액에는 사후적 경합범에 관한 형사법리와 유사한 법리를 적용할 것을 선언한 최초 판례이다. Ⅰ. 사실관계 1. 원고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이고, 피고(안성시장)는 경기도지사로부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하 ‘여객자동차법’이라 한다)상 과징금 부과처분 권한을 위임받은 행정청이다. 2. 피고는, 원고가 2008. 1. 1.부터 2017. 5. 31.까지 구 여객자동차법에 따른 인가받지 않은 노선을 운행한 점, 2016. 9. 1.부터 2017. 5. 31.까지 인가받지 않은 정류소에 정차한 점을 이유로 2018. 2. 28. 원고에게 과징금 5,000만 원을 부과하였다. 3. 한편 경기도지사는 2017. 9. 12. 피고에게, 원고가 2016. 3. 1.부터 2017. 9. 11.까지 종점과 정차지 변경 신고 없이 연장 운행을 한 점을 이유로 원고에 대한 행정처분을 요청하였고, 이에 피고는 2018. 4. 19. 원고에게 위 위반행위를 이유로 구 여객자동차법령을 적용하여 과징금 5,000만 원을 부과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Ⅱ. 대법원판결 요지 1. 위반행위가 여러 가지인 경우에 행정처분의 방식과 한계를 정한 관련 규정들의 내용과 취지에다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자가 범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관할 행정청이 구 여객자동차법 제85조 제1항 제12호에 근거하여 사업정지처분을 하기로 선택한 이상 각 위반행위의 종류와 위반 정도를 불문하고 사업정지처분의 기간은 6개월을 초과할 수 없는 점을 종합하면, 관할 행정청이 사업정지처분을 갈음하는 과징금 부과 처분을 하기로 선택하는 경우에도 사업정지처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1회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은 5,000만 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관할 행정청이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의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인지하였다면 전부에 대하여 일괄하여 5,000만 원의 최고한도 내에서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인지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 중 일부에 대해서만 우선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차후에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인지하여 그 전부에 대하여 일괄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이 가능하였음에도 임의로 몇 가지로 구분하여 각각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보게 되면,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의 최고한도액을 정한 구 여객자동차법 시행령 제46조 제2항의 적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관할 행정청이 여객자동차운송사업자가 범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 중 일부만 인지하여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였는데 그 후 과징금 부과처분 시점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인지하여 이에 대하여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의 대상이 된 위반행위와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대상이 된 위반행위에 대하여 일괄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여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처분양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행정청이 전체 위반행위에 대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경우에 산정되었을 정당한 과징금액에서 이미 부과된 과징금액을 뺀 나머지 금액을 한도로 하여서만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수 있다. 행정청이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언제 인지하였느냐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처분상대방에게 부과되는 과징금의 총액이 달라지는 것은 그 자체로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Ⅲ. 대상 판결에 대한 평석 1. 복수의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의 일괄 부과 시 최고 한도액 먼저 1회 부과 가능한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에 관하여, 대상판결은 위반행위가 여러 가지인 경우에 행정처분의 방식과 한계를 정한 구 여객자동차법령의 내용과 취지와 함께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한 사업정지처분 기간의 상한은 6개월인 점 등을 종합하여, 여러 가지 위반행위에 대하여 1회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은 5,000만 원이라고 판시하였다. 과징금 부과처분이 사업정지처분을 대체·갈음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사업정지처분의 상한과 마찬가지로 과징금에 관해서도 부과 가능한 총액의 최고한도가 정해져 있다고 볼 것인 점, 구 여객자동차법 제88조 제1항, 구 여객자동차법 시행령 제46조 제2항 단서에 의하여 (여러 위반행위를 전제로 한)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을 5,000만 원으로 명시하여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1회 부과 가능한 과징금 총액의 최고한도액에 관한 대상판결의 판시 내용은 타당하다. 2. 복수의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 별도 부과의 허용성과 양정 다음으로 관할 행정청이 인지한 여러 가지 위반행위 중 일부를 쪼개어 우선 과징금 부과처분을 한 후 나머지 위반행위에 대해 차후에 별도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관할 행정청이 이미 인지한 여러 위반행위 모두에 대해 과징금을 일괄하여 부과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위반행위를 쪼개어 과징금을 별도·분리 부과처분을 하는 것은 최고한도액 규정을 잠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한꺼번에 제재처분(과징금 부과처분)을 받고 조기에 불이익 처분 절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처분상대방의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어서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제시한 ‘이미 인지한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 일괄 부과 원칙’은 타당하다. 마지막으로 대상판결에서는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을 한 후에야 부과처분 시점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비로소 인지하여 별도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경우에는 그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금액은 ‘전체 위반행위에 대하여 하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할 경우에 산정되었을 정당한 과징금액 - 이미 부과된 과징금액’을 한도로 하여 부과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관할 행정청이 다른 위반행위를 인지한 시점상 과징금의 일괄 부과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일괄 부과 원칙의 예외는 인정하되, 일괄 부과되었을 경우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처분 상대방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추가 과징금 부과처분의 처분양정의 한계를 위와 같이 선언한 대상판결은 역시 타당하다. 예를 들어 A위반행위에 대하여 과징금 2,000만 원이 부과된 후 관할 행정청이 A위반행위 무렵의 다른 B위반행위를 비로소 인지하여 이에 대해 과징금 부과처분을 하려면, A, B위반행위 전체에 대하여 하나의 과징금을 부과하였을 경우를 가정할 때의 정당한 과징금 3,000만 원을 산출한 후, 거기서 이미 A위반행위에 대하여 부과된 과징금 2,000만 원을 뺀 과징금 1,000만 원을 한도로 B위반행위에 대한 추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3. 대상 판결의 의미 구 여객자동차법령에 의한 과징금 부과처분은 사업(영업)정지처분에 갈음하여 부과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결정재량과 과징금액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재량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재량행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재량적인 과징금 부과처분에 있어서 과징금을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부과할 것인지에 관한 재량에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대상판결은 선언하고 있다. 즉, 대상판결은 과징금 부과처분에 관한 재량권 일탈·남용의 세부 척도로서, ① 관할 행정청이 이미 여러 가지 위반행위를 인지한 이상 일부 위반행위별로 쪼개어 편의적으로 과징금을 별도로 분리하여 부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② 이미 이루어진 과징금 부과처분을 기준으로 관할 행정청이 그 부과처분 이전에 발생한 다른 위반행위를 그 부과처분 이후에 인지하여 불가피하게 과징금의 별도·분리 부과처분이 이루어지게 되더라도, 모든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의 일괄 부과처분이 이루어질 경우에 준수해야 할 (가정적인) 정당한 부과 금액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원칙을 선언한 것이다. 위 ①의 원칙은, 검사가 범죄사실의 전부를 알면서도 수사 기법상 사후에 누락된 사건을 기소하였다면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공소권 남용이론과 유사한 면이 있다. 또한 위 ②의 원칙은 형사재판에서 「형법」 제39조 제1항에 의하여 사후적 경합범(「형법」 제37조 후단)에 대한 형의 양정을 하는 법리와 유사하다. 다만, 행정제재처분에 관하여 형사법리를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는 향후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대상판결은 수회 경합된 위반행위에 대하여 1회 부과 가능한 과징금 최고한도액에 관한 종전 판례(대법원 1995. 1. 24. 선고 94누6888 판결)의 태도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관할 행정청이 인지한 복수의 위반행위 중 일부를 쪼개어 우선 과징금을 부과한 후 나머지 위반행위에 대해 차후에 별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는 없고, 다만 종전 과징금 부과처분 후에야 그 부과 이전에 이루어진 다른 위반행위를 비로소 인지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과징금의 별도·추가 부과를 허용하되, 그 양정상 한도액에는 사후적 경합범에 관한 형사법리와 유사한 법리를 적용할 것을 선언한 최초 판례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은상 교수(서울대 로스쿨)
여객자동차법
복수의위반행위
과징금
사업정지처분
이은상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12-17
민사일반
부동산·건축
무단임대행위 후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후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이와 같이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그러나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등을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단임대행위 등 당시 유치권자와 새로운 소유자 간에는 아무런 권리의무관계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1. 사안의 요지 A는 부산 부산진구 일대 주상복합 아파트 신축 분양 사업의 시행자이다. A는 2003. 3.경 B를 시공사로 선정하여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B는 피고를 포함한 18업체에 공정별로 하도급을 주었다. B는 2005. 10.경 기성고율 92.41% 상태에서 부도가 났다. 피고는 공사비를 직접 부담하며 2006. 7.경 공사를 모두 마쳤고 2006. 12.경부터 위 주상복합 아파트 제1305호(이하 “본건 부동산”)를 포함한 6세대에 대하여 유치권을 행사하였다. A는 2006. 2. 23.경 본건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였다. 이후 2010. 3. 12. C, 2013. 2. 23. D, 2013. 6. 28. F, 2018. 5. 21. 원고 순으로 본건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각 이루어졌다. 한편, 피고는 2007. 10. 4.부터 2012. 2. 3.까지 A, C의 동의 없이 G에게 본건 부동산을 무단 임대하였다가 2012. 2. 4.부터 다시 본건 부동산을 직접 점유하였다. 2. 본건의 쟁점 본건의 쟁점은 2018. 5. 21. 본건 소유권을 취득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2007. 10. 4.부터 2012. 2. 23.까지 이루어진 피고의 무단 임대행위를 이유로, 민법 제324조 제3항에 의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3. 소송의 경과 가.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피고가 G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임차한 것은 2007. 10. 4.부터 2012. 2. 3.까지이므로, 2018. 5. 21.에 이 사건 부동산을 취득한 원고에게는 위 사유로 인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다(부산지방법원 2019나46459 판결, 선고일자는 생략하였음, 이하 같음). 나.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원심판결과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324조 제2항을 위반한 임대행위가 있고 난 뒤에 유치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제3자도 유치권소멸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였다. 4.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민법 제324조 유치권자의 선관의무 유치권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유치물을 점유하여야 하고, 채무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보존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사용하거나 대여 또는 담보제공을 할 수 없다(민법 제324조 제1, 2항). 유치권자가 제324조 제2항을 위반하여 채무자의 승낙 없이 유치물을 사용, 대여, 담보제공 등을 한 경우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24조 제3항). 나. 채무자에 유치물 소유자도 포함되는지 민법 제324조는 “채무자”라고만 규정하고 있어서, 유치물 소유자도 위 채무자에 포함되는지를 견해 대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민법 제324조 제2, 3항은 통상 채무자와 소유자가 동일한 경우를 예상하여 규정된 것일 뿐이고, 채무자와 소유자가 다를 경우에는 오히려 사용, 수익, 처분 권한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만이 사용 승낙을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며 소유자도 민법 제324조의 채무자에 포함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0다94700 판결 참조). 다. 소유권 변동시 새로운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유치권자가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유치물을 사용, 대여 등을 하였으나 그 이후에 소유권의 변동이 발생하면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다시 얻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대법원 판례는 확인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유치권자가 소유권변동 사실을 알 수 없어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거나, 유치권자가 소유권변동을 알게 된 후 곧바로 유치물의 사용 등을 중단하거나, 새로운 소유자의 유치권 소멸청구가 신의칙에 위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유치권자는 종전 소유자의 승낙을 기초로 새로운 소유자에 대항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며, 원칙적으로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9나2006117 판결). 라. 유치권소멸청구권의 발생 시기 민법 제324조 제3항은 “유치권자가 전2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에는 채무자는 유치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문리해석하면,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가 같은 조 제2항의 의무를 위반한 때 발생한다고 할 것이다. 마.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채무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형성권(形成權)이다[민법 물권 제3권, 김용덕, 한국사법행정학회(2019. 5.) 제529쪽]. 다만 민법은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법률에 존속기간의 정함이 없는 민사상 형성권에 관하여 그 존속기간을 10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88다카25342 판결, 대법원 90다카4409 판결 등 참조). 이에 민사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은 10년이라 할 것이다. 한편 상사유치권의 경우 민법상 유치권 규정이 준용될 것이므로(상법 제1조) 상사유치권에 대하여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상법상 형성권은 상법 제64조를 유추적용하여 제척기간을 5년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9다271661 판결). 상법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은 5년이라 할 것이다. 바. 대상판결에 대한 의견 1)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할 법률상 근거와 논리에 대한 의문점 대상판결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와 논리가 무엇인가이다. 대상판결은 민법 제324조가 유치물의 소유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새로운 소유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치물의 소유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민법 제324조의 입법취지가 될 수 있을지라도 이것만으로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위반행위 당시 유치권자는 새로운 소유자에게 의무를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관계’란 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물건 사이의 관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법률관계의 핵심은 권리와 의무인데 원칙적으로 권리와 의무는 상응한다. 일반적으로 법률은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 일방이 이를 위반하였을 시 그 의무의 수혜자인 상대방에게 해제권, 취소권, 손해배상청구권 등의 권리를 인정한다. 본 사안에서 유치권자인 피고는 무단임대행위를 할 당시 원고에게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였고, 원고도 유치물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었다. 앞서 인용한 ‘서울고등법원 2019나2006117 판결’은 소유자의 변경 시 유치권자로 하여금 새로운 소유자의 승낙을 얻도록 하였는데,이는 유치권자와 종전 소유자 사이에 성립되었던 권리의무관계가 새로운 소유자에게 승계되지 않고 소유권 취득시부터 유치권자가 새로운 소유자에 대해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위반행위 당시 피고가 원고와의 관계에서 의무위반을 하지 아니하였음에도 어떠한 법리에 의해 원고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2) 새로운 소유자의 유치권소멸청구권 취득방법과 이에 관련된 의문점 대상판결은 새로운 소유자가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원시취득하는 것인지 아니면 종전 소유자로부터 승계취득이라는 것인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판시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의 정확한 입장을 알 수 없지만, 원시취득으로 본다면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 앞서 기재한 바와 같이,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가 민법 제324조 제2항의 의무를 위반한 때” 발생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소유자가 소유권을 취득한 때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원시취득)은 민법 제324조 제3항의 문언에도 반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유치권소멸청구권은 형성권으로서 제척기간은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한 날로부터 10년(민사) 또는 5년(상사)이다. 원시취득으로 본다면, 새로운 소유자는 소유권을 취득한 날에 유치권소멸청구권이 발생하므로 소유권 취득시부터 10년 또는 5년 동안 유치권소멸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소유자가 변경될 때마다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제척기간이 계속 연장되므로 부당하다. 그런데 승계취득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괄승계와 승계취득으로 나눠서 생각해보자. 포괄승계는 당사자 지위 승계를 위한 유치권자, 채무자(또는 종전 소유자), 새로운 소유자 3인의 합의가 없거나 상속, 합병,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 지위 승계 등과 같은 법률상 근거가 없으면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정승계로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새로운 소유자에게 이전된다는 논리를 구성한다면, 먼저 형성권인 유치권소멸청구권이 특정승계 방식으로 양도가능한 지부터가 문제된다. 특정승계가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대상판결과 원심판결을 보면 무단임대행위 당시 소유자인 A, C가 양수인 D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의 양도의사표시를 하였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종전 소유자가 새로운 소유자에게 양도의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유치권소멸청구권이 승계된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3) 사견 대상판결은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였지만, 민법 제324조 입법취지만 근거로 들고 있을 뿐 이외 다른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하여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물론 대법원이 대상판결이 기재하지 아니한 다른 법률적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법 제324조 제3항의 해석상 유치권소멸청구권은 유치권자의 무단임대행위 등을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무단임대행위 등 당시 유치권자와 새로운 소유자 간에는 아무런 권리의무관계가 없다는 점, 위에서 서술한 여러 가지 의문점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소유자에게 유치권소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판결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된다.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유치물
무단임대
유치권소멸청구
배상현 변호사(OCI홀딩스 주식회사)
2023-11-09
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Ⅰ. 서론 대법원은 2003. 사업자등록명의를 대여해 준 형식상 수입신고 명의인이 관세납부의무자인 ‘물품을 수입한 화주’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면서 관세법에도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된다고 판시한 이래(대판 2003. 4. 11. 2002두8442), 실질과세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은 관세법에도 동 원칙이 적용됨을 거듭 밝혀왔다(대판 2010. 4. 15. 2009두21260, 2016. 9. 30. 2015두58591 등). 실질과세 원칙이 헌법상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을 조세법률관계에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대판 2012. 1. 19. 2008두8499) 조세법률관계의 일종인 관세법률관계에도 적용됨은 당연하다. 최근 대법원은 관세의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에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하여 과세가격을 재구성한 판결(대판 2022. 11. 17. 2018두47714. 이하 ‘대상판결’)을 선고하였는바, 이를 살펴본다. 이하 필자의 사견임을 밝힌다. 대상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을 관세법상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 결정에 적용한 많지 않은 판결 중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으나, 본건 물품의 무상계약으로서의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함으로써, 대법원이 그간 거듭 밝혀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에 벗어난 판시를 한 아쉬움이 있다. Ⅱ.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1. 사실관계 의약품 원료 등을 수입하여 의약품을 제조·판매하는 원고는 2004년 일본법인 A사와 효소계 원료의약품에 관한 독점구매계약(이하 ‘본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연간 기준물량 이상을 구매하면 구입물량의 일정비율을 ‘무료샘플(Free Sample)’로 무상제공 받는 특약(이하 ‘본건 특약’. 원고는 그 후 4차에 걸쳐 무료샘플 제공 수량을 변경하는 내용으로 본건 특약을 갱신하였다.)을 하고, 2014년 무상제공 받은 원료의약품(이하 ‘본건 물품’)에 관하여 임의의 가격인 5000엔/BU(Billion Unit)을 수입신고가격으로 하여 수입신고를 하였다. 피고는 2015년 원고에 대한 관세조사 후 본건 물품이 무상 수입물품으로서 관세법 제30조 제1항의 ‘우리나라로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위 수입신고가격을 부인하고, 동법 제31조에 따라 유상구매한 원료의약품의 거래가격을 과세가격으로 하여 원고에 대하여 관세 등 합계 1억8291만4840원을 경정, 고지하였다(이하 ‘본건 과세처분’). 원고는, 본건 계약이 1년 단위로 잠정적인 기본가격을 설정하고 일정 수량 이상을 구입한 경우 사후적으로 할인물량을 추가 공급함으로써 최종 가격이 결정되는 연간 구매계약이고, 본건 특약은 ‘가격조정약관’으로서 ‘수량할인’을 규정한 것으로서, 본건 물품의 실제지급가격은 유상구매물량의 대가인 ‘총 지급액’을 유상구매물량과 무상제공물량(본건 물품)을 합한 ‘총 구매물량’으로 나눈 금액을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본건 과세처분에 불복하였다. 2. 원심판결(서울고판 2018. 5. 11. 2017누82446)의 요지 세계관세기구 관세평가기술위원회 예해 4.1이 규정하는 가격조정약관은, 수입물품의 가격결정 요소인 생산소요비용 등이 사후 변경되어 ‘수입물품의 대가’가 변경되는 경우로서 과세가격의 임의적인 변경을 방지하기 위해 수입 전에 계약상 그 취지가 명시되어 있어야 하는데, 본건 계약상 유상물품의 ‘기본가격(Base Price)’은 한화로 정하고‘실제가격(actual price)’은 기본가격에 발주 당시 환율을 적용한 일본 엔화로 계산하기로 약정하였을 뿐 기본가격이 구입물량에 따라 조정 가능함을 약정하지 않은 점, 그에 따라 유상 수입물품의 실제가격이 수입신고 되었을 뿐 가격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원고는 본건 물품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임의의 가격인 5000엔을 거래가격으로 수입신고한 점, 본건 물품의 무상제공으로 총 지급액이 낮아지더라도 이는 본건 특약에 따른 결과일 뿐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본건 특약은 가격조정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관세기구 관세평가기술위원회 권고의견 15.1에 의하면 수량할인은 판매자가 기준연도 동안의 구매수량에 따라 물품가격에서 공제하기로 허용한 금액으로 고정가격표에 따라 물품가격을 책정한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인정되는데, 본건 특약상 무료샘플 수량을 제외한 연간 구매수량을 기준으로 무료샘플 제공 수량을 정한 점, 본건 계약상 실제가격이 발주 당시 환율로 계산한 일본 엔화로 확정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본건 특약이 수량할인을 규정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에 더하여 본건 특약이 본건 물품을 ‘무료샘플’로 표현하여 당사자 간 무상제공에 관하여 합의한 것으로 보이는 점, 본건 계약 무렵 본건 특약에 따라 무료샘플 공급과 선택적·병행적으로 판매사원들에게 무상 일본관광이 제공된 점 등을 보면, 본건 물품을 무상 수입물품으로 보고 관세법 제31조에 따라 동종·동질물품인 유상 구매물품의 수입신고가격으로 과세가격을 결정한 본건 과세처분은 적법하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본건 특약은 연간 구매수량이 1688 BU 미만인 경우 연간 구매수량의 10% 또는 11%, 그 이상인 경우 구간별로 더 큰 비율로 추가 공급함을 규정하여 반드시 일정 비율의 물품이 추가 공급됨을 예정하고 있어 본건 계약은 원고 주장과 같은 실제지급가격 산정 방식을 내용을 하는 연간 구매계약에 해당하고, 추가공급 물품이 연간 구매수량의 10% 이상으로 적지 않아 본건 물품이 대가 없이 공급된 무상 수입물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심판결에는 무상성, 실질과세 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Ⅲ. 평석 1. 관세법상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과세가격 결정방법 관세의 과세표준은 수입물품의 가격 또는 수량으로 하고(관세법 제15조), 수입물품의 과세가격은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대하여 구매자가 실제로 지급하여야 할 가격에 구매자가 부담하는 수수료 등을 더하여 조정한 거래가격으로 한다(동법 제30조). 무상 수입물품은 우리나라에 수출하기 위하여 판매되는 물품에 포함되지 않는바(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호), ‘판매(sell)’는 대가를 지급하는 유상계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상 수입물품은 과세가격 결정의 원칙을 규정한 관세법 제30조가 아닌 동법 제31조부터 제35조까지에서 규정한 과세가격 결정방법을 순차적으로 적용하여 과세가격을 결정한다. 2. 본건 계약의 실질 내용 국세기본법 제14조 제2항은 “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은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그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한다”고 규정하는바, 관세법 중 ‘과세표준의 계산에 관한 규정’인 동법 제30조 이하의 규정, 특히 무상 수입물품인지 여부가 쟁점인 본건과 관련하여 동법 제30조, 동법 시행령 제17조 제1호의 규정은 본건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본건 계약의 실질 내용에 따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은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과 관련하여, 납세의무자가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법률관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가장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과세관청으로서는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함을 거듭 밝혀 왔는바[대판 1991. 5. 14. 90누 3207, 2009. 4. 9. 2007두26629, 2012. 1. 19. 2008두8499(전합) 등],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대상판결처럼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에 따라 납세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될 수 있는 본건에서도 달리 볼 이유는 없으므로 위 판결 취지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본건 특약상 본건 물품은 ‘무료샘플’로서 원고가 이에 대하여 별도의 대가도 지급하지 않았는바, 본건 특약이 형식상 무상 수입물품에 관하여 규정한 것임은 다툼의 여지가 있기 어렵다. 원심판결이 인정한 앞서 본 사실관계에 더하여 원고가 본건 계약 당시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무상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 부과 쟁점을 제외하고는, 원심판결처럼 본건 물품을 무상으로 보 든 대상판결처럼 유상으로 보든 원고의 총 지급액은 차이가 없어 원고가 달성하고자 하는 경제적 목적이 동일한 점을 고려할 때, 본건 계약 내지 특약의 실질 내용 역시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임이 명백하다 할 것이다. 아울러 의료법과 약사법은 2010. 경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을 제공한 의약품공급자와 더불어 이를 받은 의료인 등까지 처벌하도록 한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하면서도 ‘견본품 제공’ 등에 대하여는 예외를 인정하였고(의료법 제23조의5, 제88조, 약사법 제47조, 제94조), 본건 무렵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제약기업에 의한 천문학적 액수의 무료샘플 제공이 이루어졌는바, “무료샘플藥, 결국은 약가부담 가중 ‘부메랑’”, 약업신문 2014. 4. 24.자 참조. 무료샘플의 제공이 제약업계의 오랜 관행임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한편, 원고가 선택하였음이 명백한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를 부인하면서 본건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하는 판단을 하였는바, 이는 대법원이 그간 거듭 천명해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법리에 반하는 판단으로 보여진다. 3. 본건 물품의 과세가격 결정 위와 같이 본건 계약은 형식으로나 실질 내용으로나 본건 물품을 무상제공하는 법률관계임이 명백하므로, 원심이 적절히 설시한 바와 같이 가격조정약관 또는 수량할인의 법리를 적용하여 본건 물품을 유상물품이라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관세법 제31조에 따라 동종·동질물품인, 본건 계약에 따라 공급된 유상물품의 거래가격을 기초로 과세가격을 정하여 한 본건 과세처분은 적법하다고 보아야 한다. Ⅳ. 결론 헌법상 기본이념인 평등의 원칙은 관세법률관계에서도 구현되어야 하므로 관세법에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대상판결은 실질과세 원칙을 관세법상 과세표준인 수입물품의 가격 결정에 적용한 많지 않은 판결 중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으나, 본건 계약의 문언 및 이행 과정 등에서 드러난 본건 물품의 무상제공 계약으로서의 실질을 고려하지 않고 본건 특약의 이행에 따른 사후적 결과만을 중시함으로써, 대법원이 그간 거듭 밝혀 온 납세의무자가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한다는 실질과세 원칙의 적용 기준에 벗어난 판시를 한 아쉬움이 있다. 이상욱 법무담당관(관세청·변호사)
수입
관세
무료샘플
실질과세
이상욱 법무담당관(관세청·변호사)
2023-05-21
가사·상속
이혼·남녀문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예외적 허용 사유의 구체적 판단기준 및 방법
[대상판결] 1. 사실관계 가. 원고와 피고는 2010년 3월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이고 그 사이에 2010년 12월 출생한 딸인 사건본인이 있다. 나. 원고는 피고와의 지속된 갈등으로 2011년에는 부부상담을 받고 2013년에는 이혼소송 준비 중 피고의 사과를 받고 철회하였으나 그 후에도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2016년 5월 집을 나가 피고를 상대로 이혼 등 청구소송(이하 '종전 이혼소송'이라 한다)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2017년 7월 원고에게 혼인파탄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피고는 종전 이혼소송 제기 직후 위자료 및 재산분할청구권 보전을 위한 채권가압류를 하였으나 본안소송은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종전 이혼소송에서는 이혼에 반대하였다. 다. 원고는 종전 이혼소송 패소 확정 후 여전히 피고와 별거 중이나 양육비는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 계속 지급하고 있고 피고와 사건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취득하여 그 담보대출금을 계속 변제하고 있다. 라. 피고는 원고에게 사건본인을 만나려면 자신에게 연락하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요구하였고 아파트의 잠금장치를 변경한 후 열쇠 교부를 거절하면서 원고가 먼저 집에 들어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관계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원고는 피고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였다. 마. 원고는 2019년 9월 이 사건 이혼청구 소를 제기하였고 피고는 일관하여 이혼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2. 제1,2심의 경과 제1,2심은 원고가 종전 이혼소송에서 패소판결을 받은 후 가정에 복귀하지 않고 혼인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 없이 판결선고 후 2년 만에 다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점, 피고가 이혼의사가 절대로 없음을 밝히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였다. 3. 대상 판결의 판단 대상 판결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원심이 ① 혼인생활의 전 과정 및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드러난 피고의 언행 및 태도, 피고와 사건본인이 처해 있는 구체적 정황, 혼인관계의 회복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하여 피고에게 혼인계속의사가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지 않은 채 그 혼인계속의사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 기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만 판단하고 ② 과거 원고의 이혼청구가 기각되었어도 그 후 피고 역시 혼인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 혼인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반면 피고 및 사건본인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짐으로써 유책배우자의 유책성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원·피고의 분쟁상황을 고려할 때 혼인관계의 유지가 미성년자인 사건본인의 정서적 상태와 복리를 저해하고 있는지 및 그 정도 등을 심리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청구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특별한 사정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은 민법 제840조 제6호의 해석 및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관한 법리오해 및 심리미진으로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대상 판결은 기존의 유책주의를 재확인하면서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의 예외적 허용사유의 판단기준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완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대상 판결을 통하여 앞으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추후 파탄주의가 인정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탄주의의 도입은 사회적 변화뿐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 사회적 여건 마련 등 국민적 합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어 보다 신중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한 점에서 대상 판결은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유책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준을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연구] 1.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지 여부 및 범위에 관한 기존 판례의 변천 가. 민법 제840조 제6호의 이혼사유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와 관련하여 혼인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라면 그러한 혼인파탄에 대하여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 즉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될 수 있을 것인가가 위 조항의 해석론으로 논의되어 왔다. 나. 대법원은 일찍부터 민법 제840조는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제6호 이혼사유에 관하여도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 밝히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불허해왔다(대법원 1965. 9. 21. 선고 65므37 판결, 대법원 1971. 3. 23. 선고 71므41 판결 등). 다. 이후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불허하면서 상대방 배우자도 이혼의 반소를 제기하였거나 오로지 오기나 보복의 감정에서 표면적으로만 이혼에 불응하고 실제로는 혼인의 계속과 양립 불가능한 행위를 하는 등 혼인유지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예외사유 ①)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라도 인용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여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하였다(대법원 1987. 4. 14. 선고 86므28 판결 등). 라. 한편 이후 대법원은 원고가 가출 후 장기간 별거 중 사실혼 관계에서 혼외자를 낳은 사안에서 피고의 책임이 경합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세월의 경과에 따라 원고의 유책성도 약화되고, 원고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유책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법적 평가가 달라지게 되는 등으로 혼인제도의 추구 목적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하더라도 원고의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중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민법 제840조 제6호의 이혼사유를 인정하여(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므2130 판결, 대법원 2010. 6. 24. 선고 2010므1256 판결) 기존의 유책주의를 조금 더 완화하기도 하였다. 2. 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의 내용 이에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으나 7인의 다수의견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불허하는 종래 대법원 입장을 유지하면서 그 예외적 허용 사유를 확장하여 기존의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계속의사가 없는 경우(예외사유 ①) 외에도 그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로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약화되어 쌍방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해진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 파탄의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예외사유 ②)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의 예외적 허용 여부는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태양·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연령,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기간, 부부간의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의 상황,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하여 판단하도록 하였다. 3. 대상 판결의 구체적 내용 및 의의 가. 대상 판결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는 예외사유 ①과 관련하여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의 판단기준 및 방법을 구체화하여 제시하였다. 즉 대상 판결은 (1)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를 인정하려면 소송과정 중 그 배우자가 표명한 주관적 의사뿐 아니라 혼인생활의 전 과정 및 소송과정 중 드러난 상대방 배우자의 언행 및 태도를 종합하여 그 배우자가 악화된 혼인관계를 회복하여 원만한 공동생활을 영위하려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혼인유지에 협조할 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상대방 배우자가 원만한 혼인관계 복원을 위한 협조 없이 일방 배우자를 비난하고 대화와 소통을 거부하는 경우 이혼소송 중 가정법원이 권유하는 부부상담 등 혼인관계 회복을 위한 조치에 불응하는 경우에는 혼인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어 혼인계속의사를 인정함에 신중하여야 한다 (2) 다만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의 계속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언행을 하더라도 그 이혼거절의사가 이혼 후 자신 및 미성년 자녀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에 대한 우려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때에는 혼인계속의사가 없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였다. 나. 또한 대상 판결은 일방 배우자가 과거 이혼소송에서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받은 기각판결 확정 후 다시 이혼소송을 제기하였어도 아래와 같은 경우에는 일방 배우자의 유책성이 상당히 희석되어 예외사유 ②에 해당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대상 판결은 이 경우 과거 기각판결 확정 이후 상대방 배우자도 일방 배우자의 유책성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고 일방 배우자의 전면적 양보만 요구하거나 민·형사소송 등 혼인관계 회복과 양립하기 어려운 사정을 정리하지 않은 채 장기간의 별거가 고착화된 경우 이미 혼인관계가 와해되었고 회복될 가능성도 없으며 협의에 의한 이혼도 불가능해진 상태까지 이르렀다면 종전 이혼소송에서 현저하였던 일방 배우자의 유책성이 상당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이는 현재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다. 나아가 대상 판결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혼인의 유지가 그 자녀의 복리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과 더불어 파탄된 혼인관계의 유지가 미칠 부정적인 영향까지 모두 심리·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4. 결어 대상 판결은 기존의 유책주의를 재확인하면서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의 예외적 허용사유의 판단기준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완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대상 판결을 통하여 앞으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추후 파탄주의가 인정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탄주의의 도입은 사회적 변화뿐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 사회적 여건 마련 등 국민적 합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어 보다 신중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한 점에서 대상 판결은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유책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준을 제시한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혼인파탄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경미한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도 아울러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유경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유책
이혼
파탄주의
이유경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2022-08-15
민사일반
지식재산권
특허침해소송과 권리범위확인 심판 법리의 혼선
1. 판결의 요지 (1) 대상판결의 사안과 판지 자체는 매우 간단하다. 즉, 원고가 A 상표에 대해 선출원(2014. 9. 5.), 선등록(2014. 12. 18.)을 마친 상태에서 피고가 A와 유사한 상표를 그와 유사한 지정상품에 후출원(2016. 8. 10.) 후등록(2017. 8. 8.) 받아 사용하고 있다면, 피고의 행위는 비록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하는 것이라 해도 원고의 선출원 등록상표에 저촉되고 그 자체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2) 대상판결은 나아가 위와 같은 저촉과 침해의 법리가 특허법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분명히 하면서(보충의견) 그 근거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바, 대상판결의 의의는 정작 이 부분에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 대상판결의 판시 중 특허권 저촉관계의 법률효과 부분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① 특허법 제98조의 해석 특허법 제98조는, '후출원 특허발명이 선출원 특허발명과 이용관계에 있는 경우, 비록 후출원 발명이 특허를 받았다 하더라도 선출원 특허권자의 허락 없는 실시는 침해를 구성한다'고 하고 있으나 선, 후출원 발명이 서로 동일한 저촉관계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위 규정에는 본래 이용과 저촉의 경우 모두 선출원 권리자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었다가 1986년 법 개정 시 이용만 남겨두고 저촉이 삭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삭제가 저촉관계에서 선출원 권리자의 동의 없는 실시를 정당한 것으로 하려는 반성적 고려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고, 특허법 등에서 선, 후출원 경합 시 선출원에 우선권을 주는 것은 기본적 법리이므로 결국 이용 외에 저촉관계의 경우에도 선출원 권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석되며, 동의 없는 실시는 선출원 특허권의 침해가 된다. ② 중용권(특허법 제104조)와의 관계 특허권의 저촉으로 인해 후출원 특허가 무효로 되는 경우, 후출원 특허권자는 특허법 제104조에 의한 통상실시권(중용권)을 가지게 되지만, 위 중용권은 후출원 특허발명의 실시가 침해를 구성함을 전제로 한 항변에 해당하며 그 성립요건이 온전히 주장·증명된 경우에 한해 인정되는 것이므로 중용권의 성립 가능성과 후출원 특허의 침해 인정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2. 검토 가. 특허법 제98조의 해석에 관한 기존 논의 저촉관계인 후출원 특허발명의 실시가 선출원 특허발명의 침해를 구성하는지를 두고는 침해설과 비 침해설이 대립하고 있다. 침해설의 주된 논거는, ① 선출원 특허발명을 단지 이용하는 데 불과한 후출원 특허발명이 침해라면 선출원 특허발명과 동일한 후출원 특허발명을 실시함은 당연히 침해로 보아야 한다는 것, ② 선행권리 우선 취급은 지적재산권법 전반에서 기본원리이므로 당연히 특허권의 저촉관계에서는 별도의 무효심판이 없더라도 선출원 권리를 우선시 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반면 비침해설은 ① 특허법 제98조에서 명시적으로 제외된 저촉을 포함시키는 것은 해석의 범위를 넘는다는 것, ② 중용권과의 관계에서, 후출원 특허가 등록무효 되기 전에는 침해를 구성하였다가 등록무효로 된 이후에는 중용권에 기해 침해를 구성하지 않게 되어 논리에 어긋난다는 것, ③ 종래 판례가 등록특허 사이의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며 다만 이용발명의 경우에만 예외로 하고 있다는 것 등을 논거로 한다. 나. 대상판결의 입장 및 권리범위확인 심판과의 관계 대상판결은 비 침해설의 논거 중 ①, ②를 침해설의 입장에서 명백히 배척하고 있는 반면(다만, 그 당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③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후출원 특허발명의 실시가 무효심판 등을 거치지 않고도 선출원 특허발명의 침해가 된다는 대상판결의 판지는 "권리 대 권리 간의 적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 청구는 상대방의 등록권리를 등록무효절차 없이 사실상 부인하는 것이 되어 부적법하다"는 확고한 판례들(대법원 1986. 3. 25. 선고 84후6 판결 외 다수)과 맞지 않는다. 결국 대상판결은 특허 침해소송과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적용되는 법리가 서로 상충하는 '또 하나의' 국면을 창출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런 부조화 상황은 이미 다른 국면에서도 있어 왔다. 침해소송에서는 특허발명의 진보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대법원 2012. 1. 19. 선고 2010다95390 전원합의체 판결),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는 특허발명의 진보성을 판단하여 그 권리범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 그 예이다(대법원 2014. 3. 20. 선고 2012후4162 전원합의체 판결).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은 그 결론이 선행 판결과 모순됨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편, 권리범위 판단과 침해 판단의 차별 취급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입론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대개 현실에서 권리범위확인 심판이 침해소송의 전제로 혹은 그와 병행해서 활용되고, "권리범위에는 속하나 침해는 아니다"라거나 "권리범위에는 속하지 않지만 침해이다"라는 말은 실시권의 존재 등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납득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 방향성과 혼란 상황 이처럼 대법원이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는 특허권의 실체적 효력 유무에 대한 판단을 제한하면서 침해소송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배경에는, 권리범위확인 심판이 장기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할 제도로서, 무효심판이나 침해소송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위상이나 영향력을 부여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판례해설 제100호, 제108호, 사법지 제57호 등에서 발견되는 해당 판례들에 대한 재판연구관들의 해설 참조).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인식의 실효성이나 일관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판례들도 혼재한다. 그런 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대법원 2014. 3. 20. 선고 2012후4162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은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진보성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하여 권리범위확인 심판의 역할을 축소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초래하기 쉽다. 어떤 발명에 진보성이 없어 무효라고 믿는 이해관계인이라면 어차피 소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을 청구하기보다는 궁극적·대세적으로 특허권을 부정할 수 있고 훨씬 높은 협상력을 주는 무효심판 청구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진보성 판단을 허용치 않는다면, 특허권자로서는 자유롭게 심판을 청구하더라도 그 절차에서 진보성 부재 판단을 받을 위험이 사라지고, 이는 해당 심판절차를 이용하는 강한 매력요인이 될 것이다. 그 결과 위 판결은 무효심판 절차의 유지·활성화에 기여하는 면보다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의 활성화에 봉사하는 면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②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6후366 판결 등: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피고는 특허권 침해소송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기술의 항변을 통해 권리범위를 부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실질적으로 해당 발명에 진보성 부재로 인한 무효사유가 있다는 항변과 다르지 않은바, 이로써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진보성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한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입지를 다시 스스로 축소한 셈이 되었다. ③ 대법원 2014. 3. 20. 선고 2011후3698 전원합의체 판결: 상표의 사용에 의한 식별력 획득이 쟁점이 된 사안에서, 등록 당시 식별력이 없던 상표이더라도 권리범위확인 심결 시까지 사용에 의해 식별력을 획득하였다면 권리범위를 가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식별력 부재로 무효사유가 명백한 상표를 근거로 권리행사를 하는 경우 상대방이 권리남용의 항변을 할 수 있거니와(대법원 2012. 10. 18. 선고 2010다103000 전원합의체 판결), 어차피 무효로 될 상표임에도 그 식별력 판단 시점을 굳이 심결 시까지로 늦추어 권리범위를 인정함으로써 권리범위확인 심판제도의 독자성을 필요 이상 강조하고 분쟁의 1회적 해결을 도외시 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3. 결론 대상판결은 저촉관계에 관한 특허법 제98조의 해석기준을 제시한 외에, 침해소송과 권리범위확인 심판의 위상 차별화를 암묵적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극복해야 할 법리상 난점을 안고 있는 데다가, 상충하는 여러 판례들이 뒤섞여 일관성이 희석되고 실효성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① 대법원이 권리범위확인 심판의 역할 축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면, 이를 명확히 표현하고 침해판단과 구별 취급할 합당한 법리를 제시하는 한편, 그 방향성과 충돌하는 판례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②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침해소송과 권리범위확인 심판에서 모두 자유기술의 항변이 가능하다고 한 예처럼 통일된 법리를 적용해 나가는 한편, 대상판결의 취지와 어긋나는 종전 판례들(등록 특허 사이에 적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은 부적법하다는 것들)도 모두 대상판결의 취지대로 변경하는 편이 합당해 보인다. 조영선 교수(고려대 로스쿨)
특허법
상표권
상표
특허
상표권침해
조영선 교수(고려대 로스쿨)
2022-07-11
부동산·건축
행정사건
도시계획시설사업에 따른 협의취득의 당연무효와 환매권의 행사 가능 여부
1. 대상판결 개관 가. 사실관계 ○○시장은 1997년 11월 5일 도시계획시설인 '유원지'를 신설하는 내용의 도시계획시설결정이 내려진 ○○시 일대에서 주거시설, 골프장, 의료시설, 상업시설, 스포츠센터 등을 갖춘 휴양형 주거단지 개발사업(이하 '이 사건 사업'이라 한다)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시장은 2005년 11월 14일 이 사건 사업에 관하여 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2007. 1. 19. 법률 제825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6조 및 제88조에 따라 피고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하고 실시계획을 인가·고시하였다(이하 사업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 인가를 합하여 '이 사건 인가처분'이라 한다). 피고는 사업시행지 내의 토지소유자들과 사업부지의 협의매수를 진행하였고, 2006년 5월 18일 원고와 사이에 원고 소유의 토지(이하 '이 사건 토지'라 한다) 및 지장물을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토지에 관하여 2006년 5월 19일 피고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고, 피고는 그 무렵 원고에게 매매대금을 지급하였다. 그 후 이 사건 사업을 위하여 토지를 수용당한 토지소유자들이 이 사건 사업의 시행을 위하여 이루어진 이 사건 인가처분 등 총 15개의 처분에 대하여 무효확인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그 소송의 제1심 법원은 2017년 9월 13일 이 사건 인가처분 등 위 15개의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항소심 법원이 2018년 9월 5일 항소기각 판결을, 대법원이 2019년 1월 31일 상고기각 판결을 함으로써 제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이하 '관련사건'이라 한다). 원고는 2016년 4월 20일 관련사건에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로 확인되었음을 들어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환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나. 소송의 경과 이 사건의 쟁점은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인 경우 그 협의취득도 효력이 없다고 볼 것인지 여부와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당초의 토지소유자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이라 한다)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제1심 법원과 원심 법원은 이 사건 사업이 원시적인 불능인 경우에도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의 요건인 '해당 사업의 폐지', '필요 없게 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의 환매권 행사를 받아들였다(제1심 판결 : 원고 청구 인용, 원심 판결 : 항소기각).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이 사건 인가처분이 당연무효에 해당하는 이상 그 협의취득도 무효로 보아야 하고, 협의취득이 무효인 경우 협의취득일 당시의 토지소유자가 소유권에 근거하여 등기 명의를 회복하는 방식 등으로 권리를 구제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 정한 환매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는 판결을 하였다. 2.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가.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인 경우 협의취득의 효력 토지보상법에 따른 수용은 재산권의 공권력적·강제적 박탈임에 반하여 협의취득은 사업시행자와 토지 등 소유자 간의 사법상 매매계약이라고 일반적으로 설명되고 있고, 대법원도 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대표적으로 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6두51719 판결). 대법원은 그 논리적 귀결로 협의취득으로 인한 사업시행자의 소유권 취득은 승계취득이고(위 2016두51719 판결), 당사자 간의 합의로 토지보상법에서 정한 손실보상의 기준에 의하지 않는 매매대금을 정할 수도 있으며(대법원 1998. 5. 22. 선고 98다2242, 2259 판결), 일방 당사자의 채무불이행에 대하여 민법에 따른 손해배상 또는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0. 5. 28. 선고 2017다265389 판결). 그런데 협의취득의 실질을 들여다보면, 협의취득을 사법상 매매계약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게 하는 속성을 찾게 된다. 첫째, 토지 등 소유자가 사업시행자와 협의를 하게 되는 배경에는 꽤나 강력한 심리적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시행자가 토지 등 소유자와 협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사업시행자는 사업인정을 받아 곧바로 수용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토지보상법 제20조, 제30조, 제45조). 토지 등 소유자로서는 토지 등을 스스로 내어 놓지 않으면 강제로 빼앗기게 되는 셈이다. 'Take it or Leave it' 상황에서 한 선택을 온전히 자발적 또는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둘째, 토지보상법 시행령 제8조에서는 협의의 절차 및 방법 등을 규율하고 있고, 토지보상법 제29조에서는 협의가 성립된 경우 사업시행자가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의 협의성립 확인을 받아 재결과 같은 법적 효과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협의취득의 경우에도 그 사업이 폐지·변경되어 토지 등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경우 환매권을 인정한다(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 이처럼 협의취득에도 여러 공법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이를 사법적 규율의 영역에 머물게 하는 것은 자칫 관련 문제의 해결에 있어 구체적 타당성을 흠결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정책적인 측면에서 사법상 매매계약의 형식을 빌려 필요 이상의 과다한 토지 등을 취득하는 등 재산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협의취득을 사적 자치의 영역에 온전히 맡겨둘 수는 없다고 새기는 것이 헌법상 재산권 보장의 이념에 부합한다(헌법재판소 1994. 2. 24. 선고 92헌가15 내지 17, 20 내지 24 결정). 결국 토지보상법에 따른 협의취득은 공법적 규율을 받아야 하고,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도시계획시설사업의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가 되더라도 그 협의취득은 어디까지나 사법상 매매계약일 뿐이므로 그 처분의 당연무효가 매매계약의 효력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논리를 구성할 수는 없다. 대상판결에서는 협의취득의 경우에도 공익적 필요성이 있고, 법률에 의거하여야 하며,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위 요건을 결한 경우 그 협의취득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협의취득이 사업시행자가 아닌 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법률에 의거하여야 한다는 요건을, 실시계획인가가 당연무효라는 것은 공익적 필요성 요건을 각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협의취득의 근거가 된 처분이 당연무효이므로 협의취득도 무효라는 법리가 아니라 헌법상 공용수용의 정당화 기제에 준하여 협의취득의 요건을 구성하고서 그 요건을 흠결하였기 때문에 협의취득이 무효로 된다는 법리를 구축한 것은 협의취득의 공법적 성격을 잘 살려낸 것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나.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환매권의 행사 가능 여부 토지보상법 제91조 제1항에서는 공익사업의 폐지·변경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취득한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 없게 된 경우에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에는 환매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본 대상판결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타당하다. 첫째, 문리해석의 관점에서 '폐지'나 '필요 없게 된'은 처음에는 필요하던 것이 후발적인 사유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이들 어휘는 그 자체로 '사정변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협의취득 당시와 환매권 행사 당시에 사정의 변경이 없이 애당초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에는 이들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새기는 것이 문언에 충실한 해석이다. 나아가 '그 밖의 사유'는 같은 항 제2호에 따라 사업의 완료를 전제로 하므로,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여지도 없다. 둘째, 권리구제의 관점에서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 토지소유자는 계속 보유하고 있는 소유권에 기하여 등기명의를 회복하거나 점유를 이전받을 수 있어 환매권의 이론상 근거인 공평의 원칙을 거론할 필요가 없고, 환매권의 불인정이 토지소유자의 권리구제에 공백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셋째, 법관념의 측면에서도 협의취득이 당연무효인 경우는 소유권이전등기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 효력이 없는 경우와 같다고 볼 것인데, 이러한 경우에 소유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자가 소유권을 돌려받는 환매계약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어색하고 지나치게 의제적이다. 다. 대상판결의 의의 토지보상법에 따른 협의취득은 실질적으로 수용의 전단계로서의 공법적 의미를 갖는다. 대상판결에서 이 점을 확인하고 협의취득의 요건을 공용수용의 헌법상 정당화 기제에 기반하여 구성한 것은 자칫 '당사자의 자유의사'라는 도그마에 갇혀 제대로 걸러내지 못할 우려가 있는 '협의취득의 남용'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정기상 고법판사(수원고법)
토지
토지보상
환매권
도시계획시설
정기상 고법판사(수원고법)
2022-05-02
민사일반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의 소송요건
I. 사건의 개요 및 경과 소외 1은 2010년 8월 15일 건국훈장 4등급 애국장 포상대상자로 결정되었다. 소외 1의 자녀로는 장남 소외 4, 장녀 소외 2, 차녀 소외 5가 있었다. 장남 소외 4와 그의 배우자 및 자녀들, 차녀 소외 5와 그의 배우자는 위 포상대상자 결정일 이전에 모두 사망하였고, 소외 5의 자녀로는 소외 6이 유일하게 생존해 있었다. 원고는 소외 4의 손자이자 소외 1의 증손자이다. 소외 6은 2010년 8월 30일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소외 1의 손자로서 구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2012. 2. 17. 법률 제1133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이라고 한다)에 따른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하였다. 광주지방보훈청장은 2011년 11월 24일 소외 6을 독립유공자 선순위 유족으로 등록하는 결정을 하였다. 한편 소외 3은 2011년 11월 25일 광주지방보훈청장에게 자신이 소외 1의 장녀 소외 2의 자녀로서 소외 1의 손자녀 중 선순위자라고 주장하면서 독립유공자 유족등록신청을 하였으나, 광주지방보훈청장은 2011년 11월 30일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소외 3은 광주지방보훈청장을 상대로 독립유공자등록거부취소의 소를 제기하여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다. 위 판결은 이후 항소 및 상고를 거쳐 그대로 확정되었다. 원고는 검사를 상대로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법원은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은 원고에게 당사자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의 소를 각하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내용 대상판결에서는 원고가 소외 1과 친족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 되었다. 다수의견은 종전의 판례와 달리, 민법 제777조 소정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법률상 이해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별개의견은 판례 변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다수의견과 같이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의 원고적격을 엄격하게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Ⅲ. 분석 및 검토 1. 판례 변경의 배경 민법 제865조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는 친생관계존부확인의 소'라는 표제 아래, 제1항에서 "제845조, 제846조, 제848조, 제850조, 제851조, 제862조와 제86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여 친생자관계존부의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제865조가 인용하고 있는 민법의 조문들은 대부분 친자관계의 당사자 또는 그의 직계존속·직계비속에 대하여 원고적격을 인정한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제3자가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되는 경우는 제862조의 '이해관계인'이 유일하다. 이해관계인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친자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친생자관계에 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지거나 넓어질 수 있다. 종전의 판례는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의 원고적격을 판단할 때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달리 취급하여 왔다. 제777조 소정의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그와 같은 신분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소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하여, 소송요건의 문턱을 낮추어놓았다(대법원 1981. 10. 13. 선고 80므6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8. 10. 20. 선고 97므1585 판결). 반면 그러한 친족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는 친생자관계 존부의 확정판결에 의해 특정한 권리를 얻거나 특정한 의무를 면하게 되는 등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어야만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소송요건의 문턱을 높여놓았다(대법원 1976. 7. 27. 선고 76므3 판결; 대법원 1990. 7. 13. 선고 90므88 판결). 제777조에서 정한 친족이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었던 구 인사소송법이 폐지된 뒤에도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유지되었다(대법원 2004. 2. 12. 선고 2003므2503 판결).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제777조 소정의 친족이 그와 같은 신분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였다. 이 점에 관하여는 별개의견도 견해를 같이하였다. 이러한 대상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종전 대법원 판례의 근거가 되었던 구 인사소송법 제35조 및 제26조는 폐지되었고, 그밖에 제777조 소정의 친족을 달리 취급할 근거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2.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에 관한 '이해관계'의 내용과 정도 이 사건의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게 되면 자신이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른 독립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원고의 기대와 달리, 위와 같은 확인을 받더라도 원고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없었다.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 요구되는 이해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아가 이 사건의 원고에게 그러한 이해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지를 두고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다수의견은 제865조의 이해관계인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친생자관계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일정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등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원고는 소외 1과 소외 2 사이의 친생자관계에 관하여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별개의견은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 판결을 통해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를 바로잡아야 할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이 있어야' 이해관계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별개의견은 원고적격을 판단하는 단계에서 원고가 구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라 독립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심리할 것은 아니고, 판결 결과에 따라 독립유공자 유족 등록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면 이해관계인으로서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추상적인 법리 차원에서 보면, 다수의견이 말하는 '법률상 이해관계'와 별개의견이 말하는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 사이에 큰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판단 기준을 실제로 적용하는 국면에서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큰 차이를 보였다. 다수의견은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의 결과에 따라 원고의 법적 지위가 달라질 수 있는 정도의 확실하고 중대한 이해관계를 요구하였다. 반면 별개의견은 소송의 결과가 원고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연성 내지 가능성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필자는 다수의견이 별개의견보다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확인의 이익의 일반 이론에 비추어, 이해관계인은 사실상의 이해관계 혹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또한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의 심리가 친자관계 당사자에게 미칠 수 있는 불이익한 영향을 고려하면, 이해관계의 의미를 더욱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별개의견이 제시한 판단 기준에 따르면,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 요건이 소송요건으로서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에서는 해당 친생자관계의 존부에 관하여 친자관계의 당사자 사이, 혹은 그 소송의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있을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별개의견과 같이 그 소송의 결과가 원고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다소 불확실한 개연성만으로 확인의 이익을 긍정하게 되면, 확인의 이익이 없어 소가 각하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입해 보면, 다수의견의 타당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건에서 소외 2가 소외 1의 친생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그 결과 원고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다. 어차피 원고는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소외 1과 소외 2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는다고 하여, 원고가 부양의무를 면하게 된다거나 상속관계에서 유리하게 된다는 등의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친자관계의 당사자인 소외 1과 소외 2는 이미 사망하였고, 원고는 소외 1의 증손자에 불과하다. 소외 1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바로잡고자 하는 원고의 희망이 '법률상 이해관계' 혹은 '법률상 보호할 가치 있는 이익'에 이른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원고에게 이해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 소를 각하한 다수의견의 결론에 찬성한다. 이소은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친족관계
친생자관계존부확인소송
민법
친생자관계
이소은 임상교수(서울대 로스쿨)
2021-09-23
민사일반
후순위저당권자는 소멸시효 원용할 수 없는가?
[사실관계]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이번 평석이 필요한 한도에서 간추리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A는 B에 대한 대여금채권의 담보로 B 소유의 부동산에 가등기를 경료받고, 나아가 이 거래에 적용이 있는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이 요구하는 청산금의 지급 없이 위 가등기에 기하여 본등기를 경료하였다. 그 후 원고가 채무자 B와의 대위변제약정에 기하여 위 차용금을 변제하였다. 그럼에도 A는 B와의 합의 아래 C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고, 피고는 C로부터 근저당권을 설정받았다. 피고의 근저당권에 기하여 행하여진 경매절차에서 피고에게 일정액을 배당하는 배당표가 작성되었으나, 원고가 이에 배당이의를 함으로써 이 사건 소송에 이르렀다. 원고 청구를 일부 인용한 원심판결에 대하여 쌍방이 상고하였다. 피고의 상고이유는 원고의 B에 대한 채권은 시효소멸하였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부분 주장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시요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이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시효로 채무가 소멸되는 결과 직접적인 이익을 받는 사람에 한정된다. 후순위담보권자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담보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이 증가할 수 있지만, 이러한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담보권의 순위 상승에 따른 반사적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판례공보 2021년 상권, 673면). [평석] 1. 이 사건에서 원고는 B와의 약정에 기하여 B의 채무금을 변제함으로써 변제자대위에 기하여 담보가등기권을 당연히 취득하였다(변제자대위 및 그로 인하여 원고가 취득하는 채권의 범위에 관한 판시가 원고 상고이유에 대한 주요 부분을 이룬다). 그리하여 애초 그보다 늦게 설정된 피고의 근저당권은 원고의 권리에 열후하는 말하자면 제2순위의 담보권이 된다. 그 경우에 선순위인 담보가등기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하여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주장을 위와 같이 후순위담보권을 가지는 피고가 할 수 있는가? 즉 피고는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에 관하여 시효원용권을 가지는가? 2. 종전에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우리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고 이해되어 왔다(최근에도 송덕수, 민법총칙, 제4판(2018), 505면은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어느 시점부터 대법원은 시효원용권자의 범위를 획정하는 작업을 정면으로 수행하여, 시효소멸을 소송상 주장하였음에도 그에게 시효원용권을 부정하여 시효소멸의 주장을 배척하는 구체적인 재판례를 축적하여 갔다. 이로써 판례는 상대적 소멸설로 입장을 전환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에는 그것이 과연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한 법률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하는 데 필요한 절차(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단서 제3호), 즉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거쳤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이 점에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3.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상대적 소멸설의 입장을 전제로 하더라도, 후순위담보권자는 이에 해당하여 시효원용권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하에서는 저당권을 염두에 두고 논의하기로 한다. (1) 선순위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소멸하는 경우에 그 저당권의 당연 소멸로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상승하는 것은 후순위저당권자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향유하는, 그리하여 어떻게 보더라도 현실인 이익이다. 그 경우 후순위저당권자는 그러한 순위의 상승을 단순히 기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의문이 없는 저당권에 관한 법리, 즉 '순위상승의 원칙'(우선 곽윤직·김재형, 물권법, 제8판[전면개정] 보정판(2015), 453면 참조)의 적용에 의하여 발생하는 그야말로 법적인 이익인 것이다. 이것을 '반사적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법논의에서 극력 피하여야 할 언어의 오용이 아닐까? 만일 그것이 단순한 기대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 저당권이 설정된 목적물의 제3취득자가 그 피담보채권의 시효소멸로 누리게 되는 저당권의 당연 소멸, 그리하여 이러한 법적 부담으로부터의 해방도 역시 '단순한 기대'에 그친다고 말하여야 할 것이다. 제3취득자도 역시 통상적으로는 저당권 등의 존재를 알면서(적어도 등기부를 통하여 알 수 있었으면서) 이를 물적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하여 목적물을 취득하였을 것임에도 그 후 위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그러한 '반사적 이익'을 얻는 것에 불과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대법원 1995. 7. 11. 선고 95다12446판결(공보 2761면)은 이 사건에서와 같이 가등기담보권이 설정되어 있던 사안에서 제3취득자의 시효원용권을 긍정한다. 시효이익 포기의 상대효를 다루는 근자의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5다200227판결(공보 하, 976면)도 제3취득자의 시효원용권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2) 시효원용권 인정 여부의 법문제에 대하여 우리 판례는 일본의 그것에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판시는 최고재 1999(平成 11). 10. 21. 판결(민집 53-7, 1190)의 태도와 일치하고, 그 이유 설시도 위 일본 판결("선순위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소멸하면 후순위저당권의 순위가 상승하고 이로써 피담보채권에 대한 배당액의 증가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배당액 증가에 대한 기대는 저당권의 순위 상승에 의하여 초래되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로부터 그대로 따왔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제2차 대전 이전, 특히 1920년대 말까지의 엄격한 해석을 1945년부터의 최고재가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애초 대심원의 판례상 시효원용권이 모두 부정되었던 물상보증인, 담보부동산의 제3취득자 및 사해행위의 수익자 등에 대하여 모두 1960년대 중반부터 하나씩 긍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시효원용권자 여하에 관한 판례의 흐름은 위와 같이 일찍부터 채택되어온 [직접성] 공식의 실질적 해체의 역사이다. 그 공식은 그 기원(起源)에 있어서는 일정한 자를 제외한다는 의미를 가졌었으나, 현재는 전에 부정되었던 자 전부에 시효원용권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판례의 변경은 다른 법문제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金山直樹, 時效における理論と解釋(2009), 319면 이하). 이러한 입장 전환을 선도한 것은 다름아닌 일본 법학자 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인데, 그 주장의 요지는 "시효의 원용이 시효로 인한 권리의 득상이라는 일반적 법률효과와 개인의 의사 사이의 조화를 도모하는 제도라고 한다면, 이들 관계자 각자에게 원용의 자유를 인정하고 시효의 효과를 상대적·개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그 목적에 적합하다"고 전제한 다음, "시효에 의하여 직접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면하는 자 외에도 이 권리 또는 의무에 기하여 다시 권리를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자도 포함한다고 봄이 옳다"는 것이다(新訂 民法總則(1965), 445면 이하. 이는 "抵當不動産の第三取得者の時效援用權"이라는 1936년 논문으로 소급될 수 있다). 위와 같은 흐름을 반영하여 후순위저당권에 대하여도 이를 긍정하는 학설이 유력하였다(川島武宜, 幾代通 등). 그럼에도 최고재의 위 1999년 판결은 이를 부정한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학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예를 들면 金山直樹, 前揭書, 320면 이하[처음 발표는 2000년]. 위 판결에 대한 평석의 목록은 森田宏樹, "時效の援用權者", 民法判例百選 제1권, 제8판(2018), 86면 이하를 보라). 한편 일본은 2017년의 민법개정(시행은 금년 4월부터)으로 시효의 원용에 관한 제145조에서 시효원용권자를 "당사자(소멸시효에 있어서는 보증인, 물상보증인, 제3취득자 기타 및 권리의 소멸에 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지는 자)"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개정 전과 같이 그 구체적인 범위를 해석에 맡기는 취지라고 한다. 4. 후순위담보권자에게 선순위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의 시효원용권을 부정한 것은 종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판단으로서 하급심이나 거래실무 등에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러한 입장에는 쉽사리 찬성할 수 없다. 애초 시효소멸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받는지, 간접적으로만 미치는지의 구분 자체가 그야말로 형식적 기준이므로(법논의에서 드물지 않은 그 가장이유(假裝理由, Scheinbegrundung)!), 그 적용은 가급적 피하여야 할 것이다.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소멸시효
근저당권
후순위저당권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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