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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12)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의 의미
[ 요 약 ] 원고는 2017년 3월 8일, 대구광역시 서구청장을 상대로 대구 서구에 위치한 지정된 부지에 동물장묘시설을 신축하기 위한 개발행위허가신청을 포함한 건축허가신청을 제출했다. 이 신청은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을 준수해야 했으며, 이에 따르면 건축물 또는 공작물을 설치하는 부지는 도시 또는 군 계획도로에 접속해야 하며, 특히 개발규모가 5000㎡ 미만일 경우 진입도로의 최소 폭은 4미터 이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원고는 충분한 자료 등을 제공하지 못했고, 이를 근거로 2019년 4월 10일 피고는 신청을 거부했다. 이 거부처분에 대한 법적 분쟁에는 국토계획법과 시행령이 쟁점이 됐다. 국토계획법 제58조와 시행령 제56조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지역의 특성, 개발 상황, 기반시설의 현황 등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은 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대구고등법원은 원심 판결에서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에 따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지침이 법규명령의 효력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지침이 내부적인 지침에 불과하며 대외적인 구속력은 없다고 판단,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대상판결은 상위법령인 시행령의 ‘세부 검토기준’의 구체화 권한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그렇다면 상위법령 입법자의 의사를 ‘위임’으로 보고, 이 사건 지침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했어야 마땅하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수임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대상판결은 결국 규범통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원고는 2017. 3. 8. 피고(대구광역시 서구청장)에게 대구 서구 (주소 생략) 외 1필지(이하 ‘이 사건 신청지’라고 한다) 지상에 동물장묘시설 1동을 신축하기 위하여 개발행위허가신청 등이 포함된 복합민원 형태의 건축허가신청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신청’이라고 한다). 국토교통부 훈령인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이하 ‘이 사건 지침’이라고 한다) 3-3-2-1에서는 도로에의 접속 및 도로확보기준에 관하여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공작물을 설치하는 부지는 도시·군계획도로 등에 접속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에 따라 개설(도로확장 포함)하고자 하는 진입도로의 폭은 개발규모 5000㎡ 미만은 4m 이상으로서 개발행위규모에 따른 교통량을 고려하여 적정 폭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9. 4. 10. 이 사건 신청에 대해 피고는 거부처분을 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교통 관련: 개발행위허가운영지침 중 3-3-2-1에 근거한 진입도로 확보와 관련한 자료 불충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이다. Ⅱ. 대상판결의 요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이라고 한다) 제58조 제1항, 제3항에서는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은 지역의 특성, 지역의 개발상황, 기반시설의 현황 등을 고려하여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1항 [별표 1의2] ‘개발행위허가기준’은 국토계획법 제58조 제3항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대외적으로 구속력 있는 법규명령에 해당한다. 한편,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4항에서는 “국토교통부장관이 제1항의 개발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국토교통부장관이‘세부적인 검토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을 뿐이므로, 그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이 이 사건 지침은 상급행정기관인 국토교통부장관이 소속 공무원이나 하급행정기관에 대하여 개발행위허가업무와 관련하여 국토계획법령에 규정된 개발행위허가기준의 해석·적용에 관한 세부 기준을 정하여 둔 행정규칙에 불과하여 대외적 구속력이 없다. Ⅲ. 판례평석 1. 대상판결의 의미와 문제점 대상판결의 원심판결인 대구고등법원 2020. 6. 26. 선고 2019누5237 판결에서는 국토계획법 및 시행령의 단계적 위임에 따라 개발행위허가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 사건 지침은 법규명령의 효력을 갖는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대상판결은 ‘위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채 이 사건 지침이‘국토계획법령에 규정된 개발행위허가기준의 해석·적용에 관한 세부 검토기준’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 법규성을 부정하였다. 대상판결이 이 사건 지침을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개발행위허가기준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기준”은 위임 없이도 행정이 당연히 그 권한 범위 내에서 행정규칙으로 구체화할 수 있고, 국토계획법 제56조 제4항은 단지 이를 확인적으로 규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고, 국토계획법 시행령 제56조 제4항의 규정이 ‘구체적 위임’이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일관되지 못하다면 그 자체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은 성문법원의 하나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法院이 판단하기 전에 그 법원성 여부는 충분히 예측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2.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관련 판례 분석 대법원은 대법원 1987. 9. 29. 선고 86누484 판결 [양도소득세부과처분취소]에서 최초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개념을 인정하였다. 동 판결에서 설시한 법리에 따르면,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위 법령이 권한행사의 절차나 방법을 특정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특정행정기관에 대해 ‘그 법령내용의 구체적 사항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수임행정기관이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그 법령의 내용이 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으면 된다. 즉, 상위법령은 행정규칙에 대해 상위법령 내용의 구체화 권한을 부여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 대해 대법원은 사안에 따라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대법원 2003. 9. 5. 선고 2001두403 판결에서는 소득금액조정 합계표 작성요령이 “법률의 위임을 받은 것이기는 하나 법인세의 부과징수라는 행정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절차적 규정으로서 단순히 행정규칙의 성질을 가지는 데 불과하다”고 하였고, 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두39297 판결에서는 위임명령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이 예시적 규정에 불과한 이상 그 위임에 따른 고시는 행정규칙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법리에 따르면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도, 하위 행정규칙이 상위 위임법령의 위임범위를 일탈했다는 이유로 아예 그 대외적 구속력을 바로 부정해 버리는 판례를 다수 양산해 왔다. 즉, “행정 각부의 장이 정하는 고시가 비록 법령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규정 내용이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일 경우에는 법규명령으로서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1987. 9. 29. 선고 86누484 판결, 대법원 1999. 11. 26. 선고 97누13474 판결, 대법원 2006. 4. 28.자 2003마715 결정 등). 대법원으로서는 절차적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나치게 많이 제정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사전에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을 수 있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행정규칙에 위임하는 경우가 빈번할 뿐 아니라, 위임하는 이유 또한 법규명령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상위법령의 ‘위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따라 그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해 온 것일 수 있다. 이상덕, 할당관세 적용 추천이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2017. 9. 21. 선고 2016두34417 판결: 공2017하, 2003), 대법원판례해설, 제114호(2017년 하), 27-29쪽. 하지만, 아무리 선해하더라도 대법원의 판례법리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위임이 지나치게 빈번’하다면 적절한 범위 내에서 위임이 되도록 법원은 규범통제를 했어야 한다. 요컨대, 최소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법원에 대해 ‘법’이 무엇인지는 예측가능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법원은 위임의 방식이나 위임의 내용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상위 위임법령이나 수임규칙에 대한 규범통제를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다. 포괄위임금지 원칙은 현재의 입법상황이나 세계적 입법례에 맞지 않으므로 헌법상 국회 입법권의 보장 및 침해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으며, 4차 산업혁명 대응 입법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포괄위임금지를 완화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박균성, 행정법 연구방법론의 모색, 2024년 한국공법학회 신진학자대회 ‘공법의 새로운 동향 탐색과 미래 공법의 조망’ 발표문, 43-44쪽 참조. Ⅳ. 맺음말 대상판결은 상위법령인 시행령의 ‘세부 검토기준’의 구체화 권한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부여하였다. 그렇다면 상위법령 입법자의 의사를 ‘위임’으로 보고, 이 사건 지침의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했어야 마땅하다.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에서 상위법령의 ‘위임’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수임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을 부정하는 대상판결은 결국 규범통제에 대한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에서는 법령에서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에 대해 하위 고시 등에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위임에 따른 행정규칙의 대외적 구속력이 인정된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러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 제정과정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다. 입법론적으로는, 행정입법의 절차적 정당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행정부 주도로 경제개발·사회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국회는 행정부에서 마련해 온 법률안에 대한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과정을 소홀히 한 채 통과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위임입법이 양산된 것이 헌정의 현실이기도 하다. (헌재 1998. 5. 28. 96헌가1 결정). 앞으로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의 인정범위를 법령상 명확히 해나가는 논의와 함께, 행정규칙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다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미형 교수 (충남대 로스쿨)
개발행위허가
위임입법
행정규칙
법령보충
우미형 교수 (충남대 로스쿨)
2024-04-14
헌법사건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⑦ 위임입법의 형식과 한계
현대사회의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Ⅰ. 사실관계 1. 금융감독위원회는 ○○생명보험 주식회사(이하 ‘○○생명’이라 한다)에 대해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을 근거로 ‘경영상태를 실사한 결과부실금융기관으로 결정하고, 자본감소 등을 명령했다. 위 회사의 이사인 청구인들 및 ○○생명은 서울행정법원에 부실금융기관 결정 및 감자명령 등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다음, 그 소송에 적용될 수 있는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 가목, 제10조 제1항 제2호, 제2항 및 제12조 제2항 내지 제4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제청신청을 해 기각되자,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2. 입법권자가 위임법률을 제정하면서 입법사항을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아닌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러한 위임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이며, 재판의 전제성 등 다른 쟁점들도 있으나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론하지 아니한다. Ⅱ. 결정요지 1. 오늘날 의회의 입법독점주의에서 입법중심주의로 전환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행정입법을 허용하게 된 동기가 사회적 변화에 대응한 입법수요의 급증과 종래의 형식적 권력분립주의로는 현대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헌법 제40조와 헌법 제75조, 제95조의 의미를 살펴보면, 국회입법에 의한 수권이 입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게 법률 등으로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에 관해서는 당해 행정기관에게 법정립의 권한을 갖게 되고, 입법자가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도 있다 할 것이므로,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입법의 형식은 예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법률이 행정규칙에 위임하더라도 그 행정규칙은 위임된 사항만을 규율할 수 있으므로, 국회입법의 원칙과 상치되지도 않는다. 2. 행정규칙은 법규명령과 같은 엄격한 제정 및 개정절차를 요하지 아니하므로, 재산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작용을 하는 법률이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법규명령에 위임함이 바람직하고,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시와 같은 형식으로 입법위임을 할 때에는 적어도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2항 단서에서 정한 바와 같이 법령이 전문적·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그러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상 법률의 위임은 반드시 구체적·개별적으로 한정된 사항에 대해 행해져야 한다. Ⅲ. 판례평석 1. 대상결정의 의미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04. 10. 28. 선고 99헌바91 결정에서 법률이 입법사항을 고시와 같은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위임하는 것이 헌법 제40조, 제75조와 제95조 등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이 결정은 20년 정도 지난 다소 오래된 판례이나 그 의미나 중요성에 비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이 기회에 그 결정의 의미와 향후 전망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법령보충행정규칙 이론의 정립과정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란 법령의 위임에 근거해 법령의 내용을 구체화한 행정규칙으로, 행정규칙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 실질내용은 근거가 되는 법령의 규정과 결합해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갖는 경우를 말한다. 대상판결이 내려지기 오래전부터 행정실무를 비롯한 법실무에서는 광범하게 소위 행정규칙 형식에 해당하는 고시, 훈령 등에 법령을 보충하는 내용의 입법을 위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에 관한 리딩케이스에 해당하는 대법원 1987.9.29. 선고 86누484 판결은 국세청장의 훈령이 상위 법령과 결합해 일체가 되는 한도에서 상위법령의 일부가 됨으로써 대외적 구속력이 발생된다고 보아 이러한 행정실무와 법실무의 관행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위 판결 이후로 대법원은 다수의 사건에서 법령의 위임에 따라 법령의 내용을 보충하는 행정규칙, 특히 고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판시를 했고, 이는 현재 ‘법령보충적 행정규칙(고시)’이론으로 자리잡아 판례가 인정하는 위임형식이자 규범형식의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론에 대한 평가 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을 긍정하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입법권을 가진 입법권자의 의사를 중시해,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입법권자는 필요에 따라서 입법사항을 고시, 훈령 등의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반해 부정하는 견해는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은 준별되는 개념 범주이므로 입법사항을 위임하는 경우에도 법규명령으로 제정되어야 하고, 우리 헌법상 행정권이 제정할 수 있는 법규명령의 형식은 헌법 제75조, 제9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에 한정된다고 본다.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현대사회에서 광범한 입법수요가 존재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 의회가 입법을 독점할 수 없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 현대적 권력분립론은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기능적 권력분립론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시하면서, 입법권을 가진 입법자는 그 규율의 형식도 선택할 수 있으므로 헌법 제75조, 제95조의 행정입법의 형식을 예시적인 것이라 판시하였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법규명령의 형식이 헌법상으로 확정되어 있고 구체적으로 법규명령의 종류·위임범위·요건·절차 등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있으므로 그 이외의 법규명령의 종류를 법률로써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법률은 행정규칙에 법규사항을 위임해서는 아니 된다 할 것이다.”고 설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에서 소수의견은 ‘법규’ 개념을 기준으로 의회의 입법사항과 행정의 입법사항을 구분하고, 행정에 의해 제정되는 구속력 있는 규범은 전적으로 의회의 입법권이 위임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보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만 발해질 수 있다고 보는 독일 헌법 및 공법의 해석론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헌법을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헌법은 독일과 달리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 개념을 직접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헌법 어디에서도 ‘법규’ 개념을 전제한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법규’나 ‘법규명령’ 개념은 독일 공법의 역사에서 비롯된 독일의 고유한 개념으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은 이러한 관념이 없으며, 헌법상 법규명령 정립권에 관한 규정의 편장도 독일과 우리나라가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1] 우리 헌법 규정을 독일 헌법 규정과 동일하게 해석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2] [각주1]독일은 의회 입법권의 장에 두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의 장에 두고 있다. 즉 독일은 법규명령의 제정을 ‘전적으로’ 의회입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주2] 독일에서 전통적인‘법규’ 개념은 의회 입법사항과 행정의 권한을 가르는 핵심 개념이었으나, 기본법 제80조가 적용되는 법규명령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법규 개념의 본래적 기능이 상실되고 이를 법률유보이론이 대체했다. 그러나 여전 ‘법규명령’이라는 용어가 유지되어 법규명령으로 제정된 사항만이 구속력 있는 법규로 관념된다. 독일의 ‘법규’ 개념의 역사와 현재적 유용성, 그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의 행정의 규범제정의 현황에 관해 자세히는 박정훈,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 ‘법규’개념 및 형식/실질 이원론의 극복을 위하여 -”, 행정법학 제5호, 2013.09. 참조. 박정훈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문제의 쟁점을 근본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동 교수는 법규명령, 행정규칙 개념이 모순에 처한 근본이유는 ‘법규’ 개념의 기능이 변하고 상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규’ 개념을 전제로 한 ‘법규명령’의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행정이 정립하는 규범의 성질과 구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법규명령 또는 행정규칙이라는 형식/실질의 이분론을 폐기하고 형식과 실질을 종합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는 매우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Ⅳ. 맺음말 법령보충적 행정규칙 이론은 우리 법제 실무의 혼란을 판례가 실천적으로 수용한 개념이며, 대상판결에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의회와 행정의 관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고, 현대사회에서 규범제정에서 행정의 역할은 의회의 보충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이 Rule을 제정하는 것, 그 자체가 주요한 행정작용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입법자에 의한 규율형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이로써 행정의 다양한 규범제정의 가능성을 열어 둔 판결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이 정립하는 다양한 형식의 규범과 Rule들에는 그 내용과 실질에 부합하는 적절한 통제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행정의 입법 내지 규범제정 영역에 놓인 학문과 실무의 과제라 할 것이다.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행정규칙
위임입법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제2조
정호경 교수(한양대 로스쿨)
2023-09-28
금융·보험
민사일반
표의자의 중과실 있는 착오와 상대방의 악의 등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요약하기로 한다. 1. 원고 증권회사(이 사건 소 제기 후에 파산하여 파산관재인이 소송을 수계하였으나,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싱가포르 법인인 피고 회사 등과의 사이에 인터넷을 통하여 파생상품거래를 하였다. 원고는 이를 위하여 다른 소프트웨어 제작회사로부터 시스템거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다음, 그 회사의 직원으로 하여금 이자율 등 변수를 입력하고 그 입력된 조건에 따라 호가(呼價)가 자동적으로 생성 및 제출되도록 하였다. 2. 2013년 12월 어느 날 파생상품시장 개장 전에 위 직원이 입력할 변수 중 이자율 계산을 위한 설정값을 잘못 입력하였고, 원고는 그로써 생성된 호가를 그대로 제출하였다. 그에 따라서 피고와의 사이에 코스피 200옵션에 대하여 매우 많은 수의 주가지수옵션매수거래가 성립되었고, 그 대금 584억원이 종국적으로 피고에게 지급되었다. 3.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위 매매를 취소하는 의사표시를 하고 그 대금 중 우선 100억원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제1심법원(서울남부지법 2015. 8. 21. 선고 2014가합3413 판결)은 원고의 중과실로 인한 착오라는 것 등을 이유로 하여 그 청구를 기각하였다. 원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7. 4. 7. 선고 2015나2055371 판결)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원고의 이 사건 의사표시가 그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이를 취소할 수 없다고 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피고가 “피고가 상대방의 착오를 이용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된 알고리즘 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착오로 인한 호가 제출 사실을 아는 피고 직원이 개입하여 원고의 착오를 유발하거나 그의 중과실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가 체결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상고를 기각하였다(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판결 취지] “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같은 항 단서에서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재판례들 인용]. 한편 위 단서 규정은 표의자의 상대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에는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표의자는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대법원 1955. 11. 10. 선고 4288민상321 판결,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 판결 등 참조). 다만 한국거래소가 설치한 파생상품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상품거래와 관련하여 상대방 투자중개업자나 그 위탁자가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고 계약이 체결되는 방식, 당시의 시장상황이나 거래관행, 거래량, 관련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거래형태와 호가 제출의 선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단순히 표의자가 제출한 호가가 당시 시장가격에 비추어 이례적이라는 사정만으로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 석] 1. 착오에 관한 민법의 규정 (1) 어떠한 경우에 의사표시의 착오를 이유로 계약 기타 법률행위(이하에서는 그 중 계약만을 다루기로 한다)의 효력을 다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법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제기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새롭다. 우리 민법이 정면으로 정하는 바는 네 가지다. 첫째, 착오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있는 경우에만 그 효력이 다투어질 수 있다(제109조 제1항 본문). 여기에는, 세상사가 무릇 그러하듯이, 어떠한 잘못 또는 실수는 이를 범한 이가 그 귀결을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배경에 있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서 민법은 예외적으로 효력을 다툴 수 있게 하는 ‘본질적 착오’의 유형을 열거하는 스위스채무법 제24조와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둘째, 그 경우에도 표의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착오를 들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동항 단서). 셋째, 이상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표의자는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선택권을 가질 뿐이고, 애초부터 무효인 것은 아니다. 즉 계약은 표의자에게 취소권을 부여한다. 넷째, 표의자가 그 취소권을 행사하여 계약을 무효로 돌리더라도, 그 효력은 선의의 제3자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제한된다(동조 제2항). (2) 이러한 입법적 태도는 예를 들어 독일민법에서의 착오에 관한 입법과정(이에 대하여는 양창수, “독일민법전 제정과정에서의 법률행위 규정에 대한 논의 ― 의사흠결에 관한 규정을 중심으로”, 동 민법연구 제5권(1999), 49면 이하 참조)에 비교하여 보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 크게 탓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독일민법의 착오 규정이 우리 민법의 그것과 크게 다른 점은 거기서는 착오자의 중과실을 착오 취소의 소극요건으로 하지 않고 여전히 취소권을 착오자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지하는 대로 착오 취소자에게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을 부과한다(제122조). 이 책임은 착오자에게는 그의 유책사유를 요구하지 않고 인정되는데, 다만 상대방이 “취소의 원인을 알았거나 또는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경우”에는 이를 배제한다(동조 제2항). 그만큼 상대방의 악의 또는 과실은 착오법리의 범위 안에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태’는 입법적 차원에서 이미 그 한도에서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참조를 삼을 만한 것이 스위스법의 태도이다. 스위스채무법 제26조 역시 착오 취소자에게 “계약의 효력불발생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의 배상책임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 요건에서는 독일민법과 달리 착오자의 과실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착오자를 알았거나 알았어야 하는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배제한다.(이상 동조 제1항) 한편 여기서는 예외적으로 “형평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그 외의 손해의 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동조 제2항) 결국 이들 나라에서는 착오 취소자는 물론이고 나아가 상대방의 사정을 다양하게 고려하여 착오법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2. 상대방의 착오 ‘유발’의 문제 (1) 그렇지만 민법 소정의 여러 제도가 흔히 그러하듯 실제의 사건 맥락은 입법자가 예상하지 아니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요한 하나가 상대방의 ‘행태’를 고려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 내지 ‘야기’된 경우에도 위에서 본 요건이 갖추어져야만 표의자는 취소할 수 있는가? 그가 표의자를 착오로 빠뜨릴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다면, 물론 이는 ‘사기’(민법 제110조)의 문제가 될 것이다(여기서는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이나 표의자의 중과실 등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러한 의도가 없이 그렇게 하였다면 어떠한가? 예를 들어 상대방이 사실이라고 잘못 알면서 표의자에게 사실 아닌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표의자가 이를 믿고 의사표시를 하게 되었다면?(이는 이른바 공통착오 중에서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된 유형에 해당한다). 또 나아가 표의자의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강화’(이에도 여러 가지 정도가 있을 것이다)한 경우는 어떠한가? (2)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이와 같이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을 다룬 것은 대판 1978.7.11., 78다719(집 26-2, 209)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그 전에 귀속재산매각처분의 효력이 다투어진 행정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단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한 대판 1970.2.24., 69누83(집 18-1, 행 36)이 있다). 이 판결은 귀속해제된 토지임에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피고(대한민국)에게 증여한 사안에서,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할 것이나,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피고 산하 관계 공무원이었고, 그러한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몇 십 년 경작해 온 상당한 가치의 본건 토지를 선뜻 피고에게 증여하지는 않았을 것인즉 그 동기는 본건 증여행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를 인용하였다(상고기각). 여기서는 동기착오이면서도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는 판단틀이 채택되고 있음이 주의를 끈다. 그 후에도 대판 1987. 7. 21., 85다카2339(집 35-2, 284)(이에 대한 평석으로서 양창수, “주채무자의 신용에 관한 보증인의 착오”, 동, 민법연구, 제2권(1991), 1면 이하가 있다. “채권자에 의한 착오의 유발과 보증인의 취소권”이라는 제목의 그 제3장이 종전에 별로 의식되지 아니하던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유형을 새로운 문제관점에서 제시하였다); 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공보 1276); 대판 1992. 2. 25., 91다38419(공보 1141); 대판 1993. 8. 13., 93다5871(공보 2419); 대판 1994. 9. 30., 94다11217(공보 하, 2841); 대판 1995. 11. 21., 95다5516(공보 1996상, 47), 대판 1996. 3. 26., 93다55487(공보 상, 1363); 대판 1997. 8. 26., 97다6063(집 45-3, 112); 대판 1997. 9. 30, 97다26210(공보 3286) 등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많은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재판례가 일반적으로 착오 취소를 긍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유로, 문제의 착오가 동기착오인 경우에라도 ―동기착오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그 ‘표시’의 여부 등은 논의하지 아니하고― 그 착오가 상대방에 의하여 야기되었다는 사정을 들고서 바로 또는 다른 사정을 함께 그것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따라서 표의자는 계약을 적법하게 취소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표의자의 중과실 유무 등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지만, 한편 앞의 대판 97다6063사건에서와 같이 “표의자로서는 그와 같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고, 보통 일반인도 표의자의 처지에 섰더라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중요 부분’의 의미에 관한 판례 준칙을 그 중간항(中間項)으로 드는 예도 물론 있기는 하다. (3) 이러한 상대방에 의한 착오 ‘유발’의 사안유형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지지한다. 그것은 “착오 취소의 요건은 표의자와 상대방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인데, 표의자의 동기착오를 유발한 상대방의 보호가치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판례의 태도는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고 하거나(지원림, 민법강의, 제20판(2023), 77면), 상대방에 의한 그 유발의 경우에 “그 착오의 위험을 생성 또는 실현케 한 상대방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김상중, “동기의 착오에 관한 판례법리의 재구성을 위한 시론적 모색”, 사법(私法)질서의 변동과 현대화(김형배 교수 고희 기념)(2004), 15면). 한편 드물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행태를 기초로 취소의 위험을 부담시킬 수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109조가 아니라 민법 제110조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정성헌, “착오에 대한 민법상 규율의 재구성 ― 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3다49794판결을 계기로”, 민사법학 제73호(2015), 265면 이하). 3. 상대방이 악의인 경우 ― 착오의 ‘이용’ (1)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맥락에서 상대방의 ‘악의’, 즉 표의자가 착오에 빠졌음을 안다는 사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다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민법(채권법)개정검토위원회」가 2009년에 발간한 『채권법 개정의 기본방침』(별책 NBL 126호)은 (i)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있는 때, (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 중과실 있는 때, (iii) 상대방이 그 착오를 일으킨 때, (iv) 상대방도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를 하고 있는 때에는, 표의자에게 중과실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동 방침, 28면 이하. 당시 고려되는 착오의 법률효과는 무효로 정해져 있었다). 이는 대체로 2017년 일본민법 개정에 반영되어(시행은 2020년 4월), ‘상대방이 표의자에게 착오 있음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제95조 제3항 제1호) 또는 ‘상대방이 표의자와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는 때’(동항 제2호)에는 표의자에 중과실 있는 경우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앞 (iii)의 착오 유발에는 언급이 없다). 위 개정 후의 일본민법 제95조는 제1항에서, 우선 행위착오 외에도 동기착오 중에서는 ‘표의자가 법률행위의 기초로 한 사정에 관하여 그 인식이 진실에 반하는’ 것(앞의 1.에서 든 스위스채무법 제24조 제1항의 제4호에서 정하는 “표의자에 의하여 신의성실에 비추어 계약의 불가결한 기초라고 여겨진 사정”에 관한 착오, 즉 기초착오(Grundlagenirrtum)를 연상시킨다. 이 점은 독일민법에서 2017년 대개정 후에 동기착오 중에서 “거래상 본질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물건의 성상(性狀)에 관한 착오”를 내용착오로 보는 제119조 제2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을 고려되는 착오로 정한 다음, 나아가 ‘그 착오가 법률행위의 목적 및 거래상의 사회통념에 비추어 중요한 것인 때’에만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리고 제3항은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표의자의 중과실의 경우에는 착오 취소가 배제된다고 하면서도, 동항의 위 두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취소할 수 있음을 정하는 것이다. (2) 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공보 2015상, 9)은 대상판결의 취지와 같이 판시하였다(이 판결은 ‘참조’로서 60년쯤 전의 대판 1955.11.10. 4288민상321을 인용한다. 그 제1심도, 항소심도 버젓이 인용하고 있는 이 판결에 접근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재판례의 ‘공개’ 내지 ‘접근가능성’이라는 ―민법 연구자인 나로서는 꽤나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는 양창수, “『법고을』 유감”, 동, 민법산책(2006), 274면 이하 참조 : “그것들이 재판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나아가 변호사의 직무에 도움이 안 될 리 없고, 또 법학교수가 법을 연구하는 데 자료가 되지 않을 리 없다”). 위 판결은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원고 증권회사의 직원이 파생상품(미화달러 선물(先物)스프레드 1만 5000개) 계약의 매수주문을 개장 전에 입력하면서 0.80원이라고 할 것을 그 100배인 80원이라고 찍음으로써 결국 피고 증권회사와의 사이에 그 내용으로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안에 대한 것이다. 원심판결은 그 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고 원고의 매매대금반환청구를 인용하였는데,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그 이유로 우선 자본시장법상의 금융투자상품시장에서 일어나는 증권이나 파생상품의 거래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09조가 적용됨을 선언한 데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아가 착오 취소에 관하여는 대상판결과 같은 법리를 설시한 다음, 구체적으로는 원고 측의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지만 “피고가 주문자의 착오로 인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다른 매도자들보다 먼저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시가와의 차액을 얻을 목적으로 단시간 내에 여러 차례 매도주문을 냄으로써 이 사건 거래를 성립시켰으므로” 원고의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대상판결은 표의자의 중과실에도 불구하고 의사표시의 취소를 긍정하는 추상적인 법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굳이 저 60년 전의 대법원판결과 합하지 않더라도 이제 최근 두 개의 대법원판결만으로 그 법리는 이제 우리 민법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법리는 착오 취소의 제한 요소로서의 표의자의 중과실을 ―법률 밖에서(praeter legem), 즉 법규정에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다시 제한하여 착오 취소의 범위를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이 점을 제시하여 의식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가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위의 두 선례는 단지 상대방의 악의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의자의 착오를 ‘이용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인가, 아니면 실제로 입증되어야 하는 취소 허용의 요건인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의 착오를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거래를 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 착오 취소를 부인하는 종국적인 이유인데, 그 ‘이용’ 여부를 단지 의례적인 장식 문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제3자의 채권침해가 논의되는 사안유형 중 문제의 행위로 채무자의 책임재산이 감소된 경우에 대하여 대판 2007. 9. 6., 2005다25021(공보 1526) ; 대판 2019. 5. 10., 2017다239311(공보 1207) 등이 그 위법성 요건에 관하여 설시하는 대로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한 채권자의 존재 및 그 채권의 침해사실을 아는 것’ 외에도 ‘채무자와 적극 공모하거나 채권 행사를 방해할 의도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는 등’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위의 두 판결은 모두 인터넷금융거래에서 증권회사의 ‘피용자’가 입력을 잘못하여 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정하여진 사안임에도 그 결론을 달리하여, 2014년 판결은 표의자의 착오 취소를 허용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인하였다. 그 차이의 이유를 위 사건의 어떠한 사실관계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상론하지 아니하기로 한다. 다만 하나만 지적하자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피고도 이 사건 매매거래 전부터 미리 정하여진 일정한 시스템거래 방식으로 기계적 호가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중대한과실
착오
파생삼품
양창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8-20
노동·근로
민사일반
파산·회생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파견법상 권리에 미치는 영향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1. 사안의 개요 A 회사는 1993. 9. 17. 설립되어 원청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및 그 자회사인 D 회사로부터 광산 채광업무를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고, 근로자 갑은 2012. 3. 1. A 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당시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2013. 10. 17. 회생절차개시결정, 2014. 3. 18. 회생계획인가결정을 각 받았다.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에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고용청구권 및 금전채권(파견법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회생채권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피고의 관리인 역시 원고를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아니하였다.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의 위 회생절차는 2015. 3. 6. 종결되었다. 한편 B회사는 2008. 5. 22. 컴프레서 운전용역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역시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로부터 원청 사업장 내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의 운전 및 점검업무 등을 하청받아 수행한 회사이다. 근로자 을은 2008. 6. 1. 에, 근로자 병은 2014. 12. 26.에, 근로자 정은 2016. 8. 13.에 각각 B회사에 입사해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위한 파견업무를 수행하였다. 근로자 갑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와 더불어, 원청 소속의 비교대상 근로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한 것이 파견법 제21조 제1항의 차별에 해당하고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근로자 을, 병, 정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에 기한 직접고용청구 및 고용의무 불이행(즉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 제기하였다. (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 관련 소송의 개요, 다만, 원고 정의 경우 위 직접고용청구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소일부취하 하였다. 이하 위 근로자 갑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함께 ‘대상판결’이라 한다. )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석 주제와 직접 관련없는 당사자 및 사실관계는 요약 내지 생략하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이 사건의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 2020나1108 등 판결)은, 위 파견근로자들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형성권이 아닌 청구권이기는 하지만 재산상의 청구권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고,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에 기해 직접고용청구권이 불성립하거나 소멸한다는피고 주장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었더라도 이후 회생절차 종결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면 파견근로자는 다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파견근로자가 명시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같은 조 제1항의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그 시행령 제2조의2는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을 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바, 그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같은 법리에 기해 대법원은, 1) 원고 을은 주식회사 삼표시멘트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기 전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 파견근로자이므로 위 원고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해 소멸하였고, 더 이상 회생절차개시 전에 발생한 직접고용의무에 터잡아 회생절차개시 후의 직접고용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고, 2)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의 성립요건은 피고에 대한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 충족되었으므로 위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원고 병의 직접고용청구권은 발생하지 않고, 이를 전제로 한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3) 다만 원고 정은 회생절차가 종결된 후인 2016. 8. 13.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였으므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가 적용되지 않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원고 정에게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원고 갑의 경우 항소심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의 권리소멸 등 주장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아니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이에 대한 석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의 직접고용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다만 사용사업주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를 알 수 있었는데도 파견근로자가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이는 구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대법원은, 이러한 사용사업주에 대해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차별적 처우를 해소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한다고 전제한 다음,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상기 손해배상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채권 또는 동법 제181조의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본안전 항변을 배척한 원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3. 평석 가. 파견법 제6조의2의 권리장애 및 권리소멸 효과 현행 파견법 제6조의2 조항은 2006. 12. 21.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된 것이다. 본래 1998년 제정된 파견법(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은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고용관계를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의제조항에 대해 사용사업주의 계약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에 위 개정법 시행일인 2007. 7. 1. 이후부터는 사용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를 직접고용‘하여야 한다’는 고용의무 규정이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위 개정법의 적용 대상인 파견근로자는 직접고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같은 권리는 청구권인가 형성권인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학계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현재는 사용사업주는 물론 파견근로자 역시도 아래에서 살펴볼 이른바 ‘10년 손해배상’을 주장하기 위해 대부분 청구권설을 지지하는 듯하다. 다만 이같은 파견법상 권리가 청구권이라면 다른 일반채권과 마찬가지로 이행의 문제가 남게 되고,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고용의무 이행이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을 포함한 파견근로자의 제 권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바, 적어도 대상판결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필자가 알기로는 이에 대한 학계 및 실무상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먼저 파견근로자의 고용청구권 자체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발생한 것이라면 (즉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 각호의 사유가 회생절차 개시결정일 이전부터 있었다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에 기해 회생채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 원심은 직접고용청구권은 단순히 근로계약관계 형성의 법률효과를 가져올 뿐인 점,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가 공익채권에 해당하는 점 등을 근거로 직접고용청구권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미 채권양도인인 회생채무자에 대해 채권양수인이 갖는 양도통지 이행청구권(대법원 2016마5082 결정), 골프회원권(대법원 89다카4113 판결)과 같은 계약상 급여청구권(비금전채권)에 대해서도 회생채권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점, 사용자의 임금지급의무는 고용의무가 이행된 후 그에 터잡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임금채권이 공익채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보다 선행하는 고용청구권 자체의 성질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이는 직접고용청구권이 회생채무자의 재산감소와 직결되는 권리임을 더욱 명확히 보여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부분 원심의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개정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 동법 시행령 제2조의2 제1호는 직접고용청구권 자체의 회생절차상 취급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한 조항이라고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위 파견법 조항이 직접고용의무의 예외규정을 둔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용사업주에 대하여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하게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책적 고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앞서 살핀 바와 같이 ①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② 회생절차개시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회생절차개시결정으로 인하여 직접고용청구권이 소멸하고 ③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리하였다. 요컨대 파견법 제6조의2 제2항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의 직접고용청구권에 대해서는 권리장애적 항변이 되고, 회생개시 이전에 이미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용사업주는 위 조항을 근거로 권리소멸 항변을 할 수 있음이 명확해졌다.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영향도 검토해야 나. 회생개시결정 전부터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차별이 반복되어 온 경우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 한편 고용청구권 자체의 법적 성질과는 별개로,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부터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해 파견법 제6조의2 제1항의 고용의무 또는 동법 제21조의 차별이 계속되어 온 경우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회생채권 또는 개시후기타채권(채무자회생법 제181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파견법이 제정된 1998년 당시만 해도 하청 소속 근로자들은 주로 원청과의 묵시적 근로관계(소위 위장도급)를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파견법에 기한 권리주장은 묵시적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한 예비적 주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2006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고용 의제가 아닌 고용의무 규정이 도입되자, 이에 착안해 고용의무 불이행 또는 비교대상 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 차별(불법행위)을 원인삼아 파견근로기간 동안 차별받은 임금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법원은 이미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로 하여금 비교대상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하고 이러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 파견법 제21조 제1항을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239024 등 판결)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파견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에는 다소의 의문이 있다. 파견근로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권리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외에 달리 침해된 법익이 없는 바, 이같은 경우에도 불법행위와의 경합을 인정한다면 계약법 영역과의 준별이 분명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부터 사용사업주의 재산상 청구권(즉 고용의무 또는 차별해소의무)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할 관계에 있는 때에는 그 계속으로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발생하고 있는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말하는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문제되는 것이다. (대법원 2004. 11. 12.선고2002다53865 판결 참조) 이 문제에 대해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은,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 온 사용사업주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 관리인은 그 차별적 처우를 해소할 의무를 부담하고, 함으로써 위법행위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차별적 처우를 계속하는 것은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며 그 손해는 날마다 발생하는 것이므로, 관리인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파견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제179조 제1항 제5호의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에 해당하므로 공익채권이라는 이유로, 원고 갑의 손해배상채권이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또한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29601 판결)은, 앞서 본 원고 을, 병의 고용의무가 소멸하거나 발생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는 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회생채권 내지 개시후기타채권에 해당한다는 피고의 본안전 항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파견근로자 손해배상청구권의 근거를 고용의무 불이행(채무불이행)에서 찾든 차별해소의무 위반(불법행위)에서 찾든 간에, 그 요건사실인 근로자파견관계가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성립해 있었다면 청구권의 주요한 발생원인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 갑과 주식회사 삼표시멘트 간의 근로자파견관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전에 성립해 그 이후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았음에도, 회생절차 관리인이 위 원고를 차별 처우한 것이 회생절차 이전의 차별과 별개인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바, 이 부분 판시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 본문에서 이른바 실권제도를 둔 것은, 절차참여의 기회를 보장하였음에도 절차에 참여하지 아니한 권리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과 뒤늦게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권리자로 인하여 회생계획의 수행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주식회사 삼표시멘트가 회생절차에 돌입한 사정은 하청업체인 A, B 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다만 당초에는 묵시적 근로관계 주장에 집중한 나머지 파견법상 권리주장에 소홀하였던 것이므로, 구체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보아도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 다. 보론 - 파견법위반(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요건 및 소멸시효 백보를 양보하여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개시 이전부터 계속된 파견관계에 기해 그 후에도 임금을 차별한 것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는 사용사업주가 당연히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회생절차개시 여부를 불문하고, 사용사업주가 파견법 제21조의 차별금지를 위반한 사안이라면 일반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용사업주가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 책임을 지려면 파견관계 내지 임금 차별에 대해 사용사업주(또는 관리인)의 귀책사유 내지 고의·과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특히 불법행위를 청구권원으로 삼는다면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하게도 피해자인 파견근로자에게 있다. 한편 전술한 바와 같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파견근로자의 권리주장은 점차 직고용에서 손해배상청구로 그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용사업주와의 고용관계가 의제된 경우에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 범위 내에서 임금차액 자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지만, 고용의무 내지 차별금지의무에 터잡아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 제2항에 따라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의 범위 내에서 소급해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 즉 파견근로자는 동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도과만 면한다면, 계약상 권리보다 불법행위책임을 추궁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게 된다. (심지어는, 구 파견법에 기해 고용관계가 의제된 파견근로자조차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위 3년 이전에 발생한 임금 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1다213477 판결)의 원심에서는, 이 사건 소제기일로부터 역산하여 3년 이전의 기간에 발생한 원고 갑의 손해배상청구권이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로 인해 소멸하였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다. 원심 및 대상판결은 원고 갑이 위 소제기일로부터 3년 전 당시에 차별적 처우를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취지로 피고 회사의 위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하기는 하였다. 다만 대상판결은 파견법위반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법 제766조 제2항의 장기 소멸시효 규정까지 적용된다고 판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제21조, 민법 제750조를 근거로 10년간의 임금차액 상당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단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법률에 특별히 그보다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을 정한 경우에는 그 단기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찰 담합을 원인으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되지만, 장기 소멸시효는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으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4. 결론 및 향후 과제 그간의 불법파견 소송에서는 주로 원청과 하청, 하청근로자 간의 법률관계가 진성 도급관계인지 아니면 근로자파견관계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고, 특히 원청회사 사업장 내에서 원청의 일을 도급주는 형태인 소위 사내하청이 파견관계인지 여부, 컨베이어벨트 바깥의 이른바 간접공정에 속한 경우에도 파견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자주 문제되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인정의 문제이므로 산업분야 및 사업장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원청 회사에서 파견으로 볼 만한 기준 내지 요소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생산라인 내지 인력구조 자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내도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중견기업 및 대기업이라면 앞으로도 불법파견에 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파견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그 권리행사의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계 및 실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대상판결은 사용사업주가 회생절차를 개시한 경우 파견법상 권리 역시 변경 내지 소멸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비단 대상판결의 주식회사 삼표시멘트뿐 아니라, 불법파견이 문제되는 완성차업계 및 조선업계 등에서는 장기간 업황부진 등으로 회생을 면하기 어려운 회사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청구권 및 그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법적 성질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판단하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만 파견법 제21조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지, 특히 회생절차에서 선임된 관리인의 고의·과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파견법위반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채권의 장기 소멸시효는 무엇인지 여부는 향후 해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상판결을 계기로, 파견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 및 그 효과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소멸시효
임금채권
임금차별
불법파견
변재휘 변호사(법무법인 동헌)
2023-08-13
부동산·건축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와 관리단의 소송상 관계
1. 사실 및 쟁점 상가의 관리단인 원고는 피고 1 과 피고들의 피상속인 소외 1 이 이 사건 상가의 공용부분을 정당한 권원 없이 점유·사용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들은 이 사건 상가의 구분소유자 일부가 이미 피고 1 과 소외 1 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제1심에서 패소하였고 항소하였다가 소를 취하하였으므로 원고의 이 사건 소가 재소금지 규정의 적용을 받아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피고들의 주장은 정당한가. 2. 대법원판결이유의 요지 정당한 권원 없는 사람이 집합건물의 공용부분이나 대지를 점유·사용함으로써 이익을 얻고, 구분소유자들이 해당 부분을 사용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는 법률관계는 구분소유자의 공유지분권에 기초한 것이어서 그에 대한 소송은 1차적으로 구분소유자가 각각 또는 전원의 이름으로 할 수 있다. 한편 관리단은 집합건물에 대하여 구분소유 관계가 성립되면 건물과 그 대지 및 부속시설의 관리에 관한 사업의 시행을 목적으로 당연히 설립된다. 관리단은 건물의 관리 및 사용에 관한 공동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구분소유자의 권리와 의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 행사하거나 이행하여야 하고, 관리인을 대표자로 하여 관리단 집회의 결의 또는 규약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공용부분의 관리에 관한 사항에 관련된 재판상 또는 재판 외의 행위를 할 수 있다(집합건물법 제16조 , 제23조, 제23조의2 , 제25조 참조). 따라서 관리단은 관리단 집회의 결의나 규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집합건물의 공용부분이나 대지를 정당한 권원 없이 점유하는 사람에 대하여 부당이득의 반환에 관한 소송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관리단이 집합건물의 공용부분이나 대지를 정당한 권원 없이 점유·사용하는 사람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하는 것은 구분소유자의 공유지분권을 구분소유자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행사하는 것으로 구분소유자가 각각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하는 것과 다른 내용의 소송이라 할 수 없다. 관리단이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효력은 구분소유자에게도 미치고(제218조 제3항),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분소유자가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부분에 관한 효력도 관리단에게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관리단의 이러한 소송은 구분소유자 공동이익을 위한 것으로 구분소유자가 자신의 공유지분권에 관한 사용수익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소송과 목적이 다르다. 구분소유자가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뒤에 소를 취하하였더라도 관리단이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새로운 권리보호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제267조 제2항의 재소금지 규정에 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3. 논점의 전개 (1) 집합건물상 공용부분에 관한 구분소유자와 관리단 (가) 1동의 건물 중 구조상 구분된 여러 개의 부분이 독립한 건물로서 사용될 수 있을 때에는 그 각 부분은 집합건물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각각 소유권의 목적으로 할 수 있어 이를 건물의 구분소유라고 하고(집합건물법 제1조), 그 구분소유를 가지는 자를 구분소유자라고 한다(위 법제2조 2호). 구분소유권의 목적인 건물부분을 전유부분이라 하고(위 법제2조3호), 전유부분이외의 건물부분, 전유부분에 속하지 아니하는 건물의 부속물 및 규약으로 공용부분으로 된 부속건물을 공용부분이라고 한다. 공용부분은 원칙적으로 구분소유자 전원의 공유에 속하여(위 법 제10조제1항 본문) 각 공유자는 공용부분을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위 법 제11조). 한 편 건물에 대하여 구분소유관계가 성립되면 구분소유자 전원을 구성원으로 하여 건물과 그 대지 및 부속시설의 관리에 관한 사업의 시행을 목적으로 하는 관리단이 설립되는데(위법 제23조 제1항) 관리단은 건물의 관리 및 사용에 관한공동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구분소유자의 권리와 의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행사하거나 이행하여야 하고(위법제23조의 2), 구분소유자가 10인 이상일 때에는 관리단을 대표하고 관리단의 사무를 집행할 관리인을 선임하여야 한다(위 법제24조 제1항). 관리단은 관리인을 대표로 하여 관리단 집회의 결의또는 규약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공용부분의 사업 시행과 관련된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행위를 할 수 있다(위 법제25조 제1항). (나) 집합건물법의 위와 같은 규정에 의하면 집합건물의 공용부분에 관해서 각 공유자, 즉 구분소유자는 자기 고유의 권한으로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고, 집합건물과 그 대지 및 부속시설의 관리에 관한 사업의 시행을 목적으로 집합건물법에 의하여 설립된 관리단은 집합건물의 관리 및 사용에 관한 공동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구분소유자의 권리와 의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행사하거나 이행하기 위하여 관리인을 대표로 하여 공용부분의 사업시행과 관련된 재판상 또는 재판외의 행위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관리단의 지위는 각 공유자의 법률상 대리인이라고 하기 보다는 관리단의 이름으로 소송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정 소송담당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판 2016. 12. 15. 2014다87885, 87892은 집합건물의 관리단이 관리비의 부과·징수를 포함한 관리업무를 위탁관리회사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경우에 위탁관리회사가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체납관리비를 추심하기 위하여 직접 자기 이름으로 관리비에 관한 재판상 청구를 하는 것은 임의적 소송신탁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므로 그러한 소송수탁을 임의적으로 할 수 있는 관리단의 재판상 행위는 소송담당자의 행위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관리단은 (법정)소송담당자이고 위탁관리회사는 (임의적) 복 (復)소송담당자의 지위에 있다. 따라서 대상판결이 판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관리단이 공용부분의 사업시행과 관련된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효력은구분소유자에게도 미치고(제218조 제3항),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분소유자가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부분에 관한 효력도 관리단에게 미친다고 보아야 한다. (2) 각 공유자의 공용부분 사용권과 관리단의 소송담당권 (가) 법정소송담당의 일반원리에 의한다면 공용부분에 관하여 구분소유자가 소송을 제기한 이상 그 부분에 관한 관리단의 소송제기는 중복제소금지에 해당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이 경우에 관리단의 이러한 소송은 구분소유자의 공동이익을 위한 것으로 구분소유자가 자신의 공유지분권에 관한 사용수익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소송과 목적이 다르므로 구분소유자가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뒤에 소를 취하하였더라도 관리단이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새로운 권리보호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제267조 제2항의 재소금지 규정에 반하지 않는다고 볼수 있다고 판시한다. 이것은, 공용부분은 원칙적으로 구분소유자 전원의 공유에 속하여(위 법 제10조제1항 본문) 각 공유자가 자신의 공유지분권에 관한 사용수익을 목적으로 공용부분을 그 용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위 법 제11조)는 법적 근거에 터 잡아 제소하였다가 제1심 종국판결의 선고 뒤에 소를 취하하였더라도 관리단이 구분소유자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다시 소를 제기하였다면 이는 새로운 권리보호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써 중복제소금지규정에 반하지 않는다는 취지인 것이다. (나) 결국 관리단의 구분소유자 공용부분 사용권에 대한 소송담당권은 구분소유자의 공동이익을 위한 경우에 한정되므로 이에 관한 관리단의 소송은 구분소유자의 집합건물법제11조에 터 잡은 자신의 공유지분권에 관한 사용수익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소송과는 별개의 다른 소송이 된다. 대상판결은 이를 ‘새로운 권리보호 이익의 발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 제267조 제2항의 재소(再訴)금지 취지는, 기판력의 모순·저촉을 방지하자는 중복된 재소의 금지(제259조)와 달리 당자가가 소의 이익이 없어도 법원의 종국판결을 농락한 데 대한 재제에 있다. 따라서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후 소를 취하한 자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규정의 취지에 반하지 아니하고 소제기를 필요로 하는 정당한 사정이 있다면 다시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판 1993.8.24.93다22074. 1998.3.13. 95다48599·48605 등 참조). 대상 판결도 기존 판례의 취지에 따라 ‘관리단이 구분소유자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제소’한 것을 권리보호의 필요가 있는 정당한 사정이 있다고 하여 재소의 이익을 인정하였다. 4. 결론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거생활은 집합건물인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에 관한 우리 판례의 정립이 절실해지고 있다.대상판결은 우리나라의 집합건물에서 구분소유자의 권익과 관리단의 사무집행 조화를 위해서 양 쪽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대상판결에 대한 보다 상세한 평석은 졸저, 민사소송법(8판)의 QR코드로 된 판례 평석 100선의 [102]부분을 스캔하여 볼 수 있다. 강현중 고문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전 사법정책연구원장)
집합건물
공유부분
구분소유
강현중 고문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전 사법정책연구원장)
2023-03-09
형사일반
[한국행정법학회 행정판례평석] ②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과 위법성 판단
Ⅰ. 판례평석의 배경과 쟁점의 소재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많은 자유에 대한 제한 현상이 행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를 둘러싼 자유의 제한과 처벌이 강화되고 있다. 동법상의 역학조사거부에 대한 대법원과 원심의 판결을 소개하고, 역학조사의 성격과 위법성 판단기준 등과 관련하여 비판적인 판례평석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대상판결은 형사법원의 처분 등에 대한 선결문제 심사문제를 담고 있으며, 형사법과 행정법의 학문접경지대의 간학문적인 영역에 위치하여 행정법적 쟁점을 많이 담고 있다. 소송물이론과 비례의 원칙, 행정절차 등 쟁점이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점들을 제대로 규명하고 있지 못한 대법원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Ⅱ. 사실관계 '○○○○○ 센터'(이하 '이 사건 센터'라고 한다)는 △△△△△회(명칭 생략)가 운영하는 수련시설이다. 2020년 11월 27일부터 2020년 11월 28일까지 이 사건 센터에서 '□□□□□□ 역량 개발 행사'(이하 '이 사건 행사'라고 한다)가 개최되었는데, 이 사건 행사에 참석한 공소외 1이 2020년 12월 3일 대구광역시 ◇◇구보건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라고 한다) 양성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센터 시설을 관리하던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3일 상주시의 코로나19 관련 역학조사 담당자인 공소외 2로부터 이 사건 행사 기간에 이 사건 센터 시설에 출입한 자들의 명단과 해당 시설에 종사하는 자들의 명단(위 각 명단을 합하여 이하 '이 사건 명단'이라고 한다)을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아울러 피고인 1은 2020년 12월 4일 이 사건 명단을 제출해 달라는 상주시장 명의의 공문을 받고도 피고인 2와 공모한 대로 이 사건 '명단의 제출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상주시장의 '역학조사를 거부'하였다. 결국 피고인들은 역학조사 거부로 인한「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이라고 한다) 위반죄로 기소되어 유무죄 판결에 대한 심리를 받게 되었다.[1] [각주1] 저자가 공소사실의 취지를 요약하였음을 밝힌다.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충실하되,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여 판결할 수 있도록 심리방식과 내용을 개선하여야 한다. Ⅲ. 대법원 판결요지[2] 1. 침익적 행정행위와 행정형벌의 구성요건에 대한 엄격해석의 원칙[3] 헌법은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범죄와 형벌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3조 제1항).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법률, 그중에서도 특히 형벌에 관한 법률은 국가기관이 자의적으로 권한을 행사하지 않도록 명확하여야 한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결정해 나가기에 충분한 기준이 될 정도의 의미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는 형벌법규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 될 수 있으므로[4], 불명확한 규정을 헌법에 맞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해석금지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5] [각주2] 대법원 2022. 11. 17. 선고 2022도7290 판결 [각주3]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저자가 역시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부기하였음을 밝힌다. [각주4] 헌법재판소 2016. 11. 24. 선고 2015헌가23 전원재판부 결정 등 참조 [각주5] 대법원 2021. 1. 28. 선고 2020도2642 판결 참조 2. 감염병예방법의 역학조사에 관한 구성요건과 행정형벌 규정의 해석의 범위 감염병예방법상의 문언과 체계 등을 종합하면, 감염병예방법상 ‘역학조사’는 일반적으로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에서 정의한 활동을 말하고, 여기에는 관계자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 실시하는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활동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는 수범자의 예견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 범위가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따라서 형벌법규의 구성요건적 요소에 해당하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의 ‘역학조사’는, 감염병예방법 제2조 제17호의 정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제29조,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주체, 시기, 대상,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 활동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6] [각주6] 필요한 범위 내의 판결요지만 적시하기로 한다. ‘요구나 제의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을 뜻하는 ‘거부’의 사전적 의미 등을 고려하면,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나 그의 공범에 대하여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가 실시되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3. 원심판결의 하자에 대한 법리상의 검토 (1) 원심판결인 대구지법 2022. 5. 26. 선고 2021노3395 판결은 상주시장 측의 위와 같은 요청을 거부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7] [각주7] 저자가 원심판결을 축약하였다. (2) 그러나, 쟁점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려면,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에 해당하여야 한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상주시장 측의 이 사건 명단 제출 요구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1항, 제2항과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4항의 위임을 받은 구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정한 역학조사의 주체, 시기, 내용, 방법 등의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심리한 다음, 그 결과를 토대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그런데도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 제1호에서 정한 '역학조사를 거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에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 제3항에서 정한 ‘역학조사’의 의미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Ⅳ. 이 사건 판결에 대한 평석 1. 행정형벌에서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가부 (1) 형사법원에서 처분의 위법성 판단가능성과 선결문제 형사법원이 처분의 위법성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는지 선결 문제가 걸려있다. 다수설에 의하면 처분의 구성요건적 효력으로 논의된다. 행정소송법 제11조에서 형사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직접적인 규정이 없지만, 다수설과 판례는 처분의 위법성을 심사하여 형벌부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8] [각주8] 대법원 2017. 9. 21. 선고 2014도12230 판결, 대법원 2016. 12. 29. 선고 2014도16109 판결, 대법원 1992. 8. 18. 선고 90도1709 판결 등 (2) 범죄의 개방적 구성요건 행정형벌의 요건은 개방적 구성요건이다. 행정형벌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형벌의 요건이 되는 처분의 위법성에 대한 행정법적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 역학조사 명령이 위법하다면 거부하더라도 무죄를 판결하여야 하고, 반대로 역학조사 명령이 적법하다면 이에 대한 거부는 유죄로 판결하여야 할 것이다. (3) 처분의 소송물과 법원의 처분의 위법성 심사 범위에 대한 비판 처분의 위법성에 관한 소송물은 견해의 대립이 있지만,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라고 보는 것이 다수설과 판례[9]의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심리함에 있어서 처분의 위법성일반을 전반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은 소송물에 관한 오해를 하고 있다. 행정소송의 소송물은병합 사건이라 하더라도 처분의 위법성일반이므로 대법원은 역학조사의 위법성 전반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였어야 한다. [각주9] 대법원 2004. 3. 18. 선고 2001두194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7. 5. 16. 선고 96누8796 판결, 대법원 1990. 3. 23. 선고 89누5386 판결, 대법원 1989. 4. 11. 선고 87누647 판결 등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역학조사 명령의 위법성을 다음과 같이 검토해 보았어야 한다. 대법원은 보다 행정법과 연결된 문제 있어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할 수 있도록 성숙하게 발전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2.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 판단을 위한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 심사기준 (1) 역학조사의 성격 역학조사는 행정법상 행정조사에 해당한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약칭: 감염병예방법) 제18조에 의하면 역학조사는감염병이 발생하여 유행할 우려가 있거나, 감염병 여부가 불분명하나 발병원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행정청이 지체 없이 역학조사를 하여야 하도록 하고 있다. 역학조사는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임의조사가 아니라 권력적 사실행위인 강제조사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동법 제18조 제3항에 의하면 1호상의 정당한 사유 없이 역학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 2호상의 거짓으로 진술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 3호상의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행위 등에 대하여는 동법 제79조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그 자체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수인하명과 순수사실행위가 결합된 합성행위로서 전체적으로 행정소송법 제2조의 처분과 동일한 성격에 해당하는 기타 행정작용에 속한다. 역학조사를 명령의 형태로 발부하는 경우에는 행정청의 행정행위로서 처분에 해당하게 된다. (2) 역학조사의 내용상의 위법성과 비례의 원칙 등 역학조사와 같은 행정조사는 실정법상으로는 「행정조사기본법」의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행정조사는 법률의 우위원칙상 동 법 등을 위반해서는 안 되고, 나아가 법률의 규정이 있어야만 하는 법률유보의 원칙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역학조사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18조에 규정이 있다. 그밖에도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행정조사가 과잉조사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동법은 제4조 제1항에서 행정조사는 조사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실시하여야 하도록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한 동 규정은 다른 목적 등을 위하여 조사권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되도록 목적구속성의 원칙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이나 원심은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3) 역학조사의 절차상의 위법성과 감염병예방법 및 행정조사기본법 준수 등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 제9조 내지 제13조상의 다양한 조사방법으로 수행될 수 있다. 「행정조사기본법」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역학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제17조상의 서면에 의한 사전통지, 제24조 등에 의한 조사결과의 통지 등의 절차준수가 적법절차의 원리상 요구된다. 대법원이나 원심은 역시 이 부분을 포함하여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걸쳐 심리하였어야 한다. Ⅴ. 결론 대법원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법치주의에 임하는 자세를 견지하여야 하며, 보다 행정법과 보건·위생법 등 개별분야에 대하여 법리검토의 전문성을 심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대법원이나 원심이나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역학조사거부죄의 유무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역학조사명령이 있었는지 여부만 심리해서는 안 되고, 역학조사의 위법성 일반에 관하여 보다 행정법적으로 전문적인 법리를 검토하여 유무죄를 판단하였어야 한다. 성봉근 교수(서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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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조사
성봉근 교수(서경대)
20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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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사건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 제공요청 규정의 위헌성
1. 사안의 개요 청구인들은 검사 또는 군수사기관의 장을 포함한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요청에 따라 자신들이 가입한 전기통신사업자가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 등의 통신자료를 제공하였음을 알게 되자 1) 위 수사기관 등의 각 통신자료 취득행위(이하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라 한다)와 2) 그 근거법률인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중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을 포함한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한 정보수집을 위한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관한 부분(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결정의 요지 헌법재판소는 1)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에 관한 심판청구는 각하하였고, 2)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는 2023. 12. 31.을 시한으로 잠정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3. 평석 가. 결정의 배경 헌법재판소는 2012년 유사한 사건에서 통신자료 취득행위와 구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관하여 모두 각하결정을 한 바 있다(헌재 2012. 8. 23. 2010헌마439). 그러나 그 이후에도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도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한 수사기관 등(여기에는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수사처 등이 포함된다)의 통신자료 취득에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계속하여 제기되었다. 대상결정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2016년 및 2022년 청구된 합계 4건의 헌법소원심판 사건을 병합하여 판단에 이른 것이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이 통신자료 제공 이후에도 정보주체에게 이를 통지하는 절차를 두고 있지 않아 적법절차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다. 심판대상조항이 적법절차원칙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은 타당하나 대상결정에 따른 후속입법에 있어서는 쟁점이 되었던 다른 위헌사유들도 진지하게 검토하여 헌법적으로 최적화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 적법요건 대상결정은 적법요건에 관한 중요 쟁점을 몇 가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먼저 이에 관하여 본다. 헌법재판소는 우선 이 사건 통신자료 취득행위 부분은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고 이 점은 2012년 결정과 같은 취지이다.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의 고권적 작용으로 인하여 청구인의 법률관계 내지 법적 지위를 불리하게 변화시켜야 하는데 통신자료를 제공요청하고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이를 자발적으로 제공받은 것은 임의수사에 불과하여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만 권리보호이익 흠결을 이유로 각하해야 한다는 별개의견도 제시되었다). 2012년 결정과 달라진 부분은 통신자료 제공과 취득의 근거규정인 심판대상조항의 직접성에 관한 판단으로서 이로 인하여 대상결정의 본안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헌법소원의 적법요건 중 기본권침해의 직접성만큼 논란이 많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 외에 경우에 따라서는 판례의 태도에서 일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다고 보인다. 법률조항은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그 자체에 의하여 자유의 제한, 의무의 부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의 박탈을 일으키는 경우 그 직접성이 인정될 수 있다. 사안에서는 공권력주체인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제공요청과 사적 행위자인 전기통신사업자의 제공행위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 집행행위의 실행이 있어야 비로소 기본권 제한이 발생하므로 원칙적으로는 기본권침해의 직접성이 없게 된다. 2012년 선행결정은 특히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 제공행위가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취지로 판시하였다. 그러나 ‘사인(私人)의 행위’는 공권력작용이 아니므로 집행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례들(가령 헌재 1996. 4. 25. 95헌마331)에 비추어 보더라도 직접성 판단에 있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반면 대상결정은 적어도 영장주의나 사후통지 등 절차와 관련하여서는 법률에서 그 제도를 두지 않아 기본권 침해가 직접 문제 된다고 할 수 있고, 집행행위로 인하여 비로소 기본권 제한이 발생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통신자료 취득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불복수단이 존재하는지가 불분명”하고, “이용자는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제공요청의 직접적인 상대방이 아니어서 다른 절차를 통해 권리구제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직접성의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아 기존 판례를 변경하였다. 공권력작용과 사인의 행위가 결합된 형태의 집행행위에 이러한 법리가 향후 일관되게 적용될 것인지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일부 청구인들은 통신자료 취득시점으로부터 1년이 도과한 이후에 심판청구를 하였으나, 사후통지를 받지 못한 이상 기간도과에 청구인들이 책임질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본 점도 눈에 띈다. 다. 기본권 침해 여부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에 의하여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제한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심판대상조항의 통신자료는 정보주체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기입일·해지일’을 뜻하므로 사안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제한이 발생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청구인들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외에 통신의 비밀 제한도 발생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이에 관하여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이는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자료가 “구체적인 통신관계의 발생으로 야기된 모든 사실관계, 특히 통신관여자의 인적 동일성·통신장소·통신횟수·통신시간 등 통신의 외형을 구성하는 통신이용의 전반적 상황(헌재 2018. 6. 28. 2012헌마538)”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일 수 있으나 더 명시적인 논거와 판단기준이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심판대상조항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는 명확성원칙, 과잉금지원칙, 영장주의, 적법절차원칙을 기준으로 검토되었다. 명확성원칙과 관련하여서는 심판대상조항 중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부분만이 문제 되었으나 일반인도 그 취지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보아 명확성원칙 위반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과잉금지원칙과 관련하여서는 통신자료로서 제공되는 정보의 범위, 제공요청의 사유, 통신자료의 사전·사후 관리 등이 집중적으로 고려되었는데, 법정의견은 이 모든 사항과 관련하여 필요 이상의 기본권 제한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반면, 별개의견(재판관 이종석)은 통신자료로서 ‘만능키’와 같은 주민등록번호도 수집할 수 있고, 개인정보에 관한 보관기간이나 폐기절차 등 사후관리방법도 부재하는 이상 과잉금지원칙 위반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필자는 선행정보가 후속정보의 대규모 수집,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오늘날의 정보통신환경을 고려할 때 별개의견이 제시한 논거들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상결정은 절차적 통제원칙들인 적법절차원칙과 영장주의의 관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적법절차원칙의 ‘절차적’ 요청으로 적절한 고지와 의견 및 자료 제출의 기회 부여를 들고 있고 제도와 사안에 따라 그 구체적 요구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이 사전고지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 것은 물론, 통신자료 제공 이후 사후통지절차조차 두고 있지 않아 적법절차원칙상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타당하다고 평가된다. 재판관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영장주의에 관하여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상결정은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통신자료 제공요청은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헌재 2018. 6. 28. 2012헌마191)과 달리 임의수사에 불과하여 영장주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간략히 판시하는 데 그쳤으나, 기실 이는 상당한 논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특히 대상결정이 나오기 이전에 통신자료 취득에 관하여 영장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상당수 발표되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오동석, 황성기, 차진아, 임규철. 반대견해로는 이기수, 유주성). 영장주의 적용론은 정보제공 여부를 결정할 지위에 있는 전기통신사업자가 당해 개인정보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과 제3자인 전기통신사업자조차 정보제공 여부의 타당성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2다105482 판결 참조)을 주된 논거로 한다. 위와 같은 논쟁의 배경에 행정상의 인신구속 등에 관하여도 영장주의의 적용이 검토되고 있는 상황(헌재 2020. 9. 24. 2017헌바157 등 보충의견 참조)을 더하여 보면, 대상결정 중 영장주의에 관한 판시와 논증은 충분치 못하였다고 보인다. 통신자료의 취득이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등 보다 강력한 기본권제한조치들과 빈번하게 결부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라. 향후의 과제 대상결정은 사후통지절차의 흠결에 초점을 두고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는바, 적용시한인 2023. 12. 31. 이전에 개정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기통신사업법에 관한 개정안은 이미 수차례 제안된 바 있고 전기통신사업법 자체의 전면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입법자는 개정과정에 있어 헌법재판소가 직접적인 헌법불합치사유로 거론한 ‘최소한의 사후통지절차’를 마련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통신자료의 범위, 적절한 사전적 통제수단의 필요성, 보관기간이나 절차의 마련 등 대상결정에서 검토되었던 다른 위헌사유들을 진지하게 검토하여 헌법적으로 최적화된 대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조동은 교수(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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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은 교수(서울대 로스쿨)
2023-02-01
금융·보험
민사일반
민법 제923조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과 민법 제974조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부양의무
1. 사실관계 및 대법원의 판결 소외 망 A는 1993년 피고와 혼인하여 자녀로 B(1993년생)와 C(1997년생)를 둔 뒤 1998년 이혼하였는데, A가 2011년 추락 사망하여 피고는 2012. 6. 27. B, C의 친권자로서 A의 사망보험금으로 약 1억7000만 원을 원고(보험회사)로부터 수령하였다. 그 후 A가 자살한 것으로 밝혀져 원고는 피보험자의 고의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보험계약 내용에 따라 2012. 12. 27. B와 C를 상대로 보험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2015년 원고 승소판결이 확정되었고, 원고는 그 직후 채무자 B와 C, 제3채무자 피고, 피압류채권 ‘B와 C의 피고에 대한 보험금반환청구권’으로 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으며, 위 명령은 피고에게 송달되었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추심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은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행사상의 일신전속권이므로 피압류채권으로서 적격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추심명령이 무효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항소심은 제1심과 마찬가지로 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일신전속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B는 성년이 된 후 피고의 반환의무를 면제하였거나 B(자녀)의 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이고, C의 보험금은 피고가 모두 소비하였으므로 반환할 보험금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제1심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원고가 상고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원심의 부가적·가정적 판단 부분은 수긍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였다. 2.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 가. 부모와 성년 자녀 사이의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가 민법 제974조 제1호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대법원 1994. 6. 2.자 93스11 결정, 대법원 2012. 12. 27. 선고 2011다96932 판결, 대법원 2013. 8. 30.자 2013스96 결정, 대법원 2017. 8. 25.자 2017스5 결정). 그런데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에 대하여는 친권자의 의무라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직계혈족간 부양의무를 규정한 민법 제974조 제1호라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민법 제975조와 관계에서 ‘부양을 받을 미성년 자녀가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부모가 부양의무를 이행할 책임이 있는지’가 문제 된다. 이런 이유로 종래 민법 제974조 제1호가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라고 해석하는데 망설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 친권자는 자녀가 그 명의로 취득한 특유재산을 관리할 권한이 있는데(민법 제916조), 그 재산 관리 권한이 소멸하면 자녀의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을 하여야 한다(민법 제923조 제1항). 여기서 관리의 계산이란 자녀의 재산을 관리하던 기간의 그 재산에 관한 수입과 지출을 명확히 결산하여 자녀에게 귀속되어야 할 재산과 그 액수를 확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 친권자가 자녀의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을 하는 경우 그 자녀의 재산으로부터 수취한 과실은 그 자녀의 양육, 재산관리의 비용과 상계한 것으로 본다는 민법 제923조 제2항의 규정을 고려하면, 대법원이 이 사건 판결에서 지적하다시피 친권자는 자녀의 특유재산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임의로 사용할 수 없음은 물론 자녀의 통상적인 양육비용으로도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 원칙이고, 친권자가 자신의 자력으로는 자녀를 부양하거나 생활을 영위하기 곤란한 경우 또는 친권자의 자산, 수입, 생활 수준, 가정 상황 등에 비추어 볼 때 통상적인 범위를 넘는 현저한 양육비용이 필요한 경우 등과 같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자녀의 특유재산을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라. 결국 부모는 부양받을 미성년 자녀가 자기의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하여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부양의무가 발생하는데, 그 근거는 민법 제974조 제1호 직계혈족 간 부양의무라고 봄이 타당하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부양의무는 특별 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 민법 제923조 규정이 우선 적용되므로 민법 제975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판시를 한 것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의도하지 않은 성과라 할 만하다.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3. 피압류 적격에 관한 판단 : 일신전속권인지 여부 가. 친권자의 특유재산반환의무는 민법 제923조 제1항의 계산 의무 이행 여부를 불문하고 그 재산 관리 권한이 소멸한 때 발생하고, 이에 대응하는 자녀의 친권자에 대한 반환청구권은 재산적 권리로서 일신전속적인 권리가 아니므로 자녀의 채권자가 그 반환청구권을 압류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 나. 자녀의 특유재산반환청구사건은 가사소송법이나 가사소송규칙 그 밖의 법률에서 가정법원의 전속관할에 속하는 가사사건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민사사건으로 지방법원에서 심리 재판해야 한다.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전속권이 아니라는 판시만 한 것은 법률심으로서 대법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방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고, 간접적으로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밝히는 데 일조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4. 피압류채권의 존부에 관한 판단 가. 직권조사사항 : 채권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있으면 제3채무자에 대한 이행의 소는 추심채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고 채무자는 피압류채권에 대한 이행소송을 제기할 당사자적격을 상실한다고 하여야 할 것(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다23888 판결 등)이므로 당사자적격에 관한 사항은 소송요건에 관한 것으로서 직권조사사항이고(대법원 1994. 9. 30. 선고 93다27703 판결 등) 변론주의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 나. B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의 존부 (1) 대법원은 B가 2012. 8. 22. 성년에 달한 후 묵시적으로 특유재산반환의무를 면제하거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원심의 판단을 근거로 B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채권을 대상으로 한 압류 및 추심명령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2) 그러나, B가 성년에 달하기 2개월 전에 피고가 법정대리인(친권자)으로서 보험금을 수령한 점, B가 성년에 달하고 4개월 후 원고가 B와 미성년자인 C를 상대로 보험금 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한 점을 고려하면 B가 특유재산반환의무를 면제하거나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 것은 원고의 보험금을 회수하려는 일련의 노력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 다. C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의 존부 (1) 대법원은 C의 특유재산반환청구권과 관련하여 A가 사망한 2011년부터 2017년 군입대 전까지 C는 피고 및 피고의 재혼 남편 X와 함께 살아온 점, 피고가 소득활동을 하였으나 교육비, 생활비를 포함하여 C의 양육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보험금에서 충당한 점, 피고의 재혼 남편 X가 C의 2017년 1학기 대학등록금을 대신 지급한 점 등을 종합하여 C가 성년에 달하여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발생한 2017. 7. 2. 무렵에는 피고가 C의 양육비 등으로 보험금을 모두 소비하여 C에게 반환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2) 민법 제974조 제1호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이란 며느리와 시부모 관계, 사위와 장인·장모 관계, 계친자 관계(계부와 처의 자녀 사이, 계모와 남편의 자녀 사이)를 의미한다. 물론 직계혈족간은 부모자식간, 조부모와 손자녀간 등 직계혈족 사이를 의미한다. 한편, 민법 제833조는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당사자간에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 피고의 재혼 남편 X는 피고의 남편으로서 C와는 민법 제974조 제1호에서 정한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에 해당하여 서로 부양의무가 있다. 만약 피고가 사망하였다면 배우자 관계가 소멸하여 (X가 재혼하지 않는 이상) X와 B, C는 단순 인척 관계에 불과하므로 X는 B, C와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하여 부양의무가 발생하지만(대법원 2013. 8. 30.자 2013스96 결정), 피고가 생존해 있는 한 X는 B, C와 생계를 같이 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이므로 부양의무가 발생한다. 한편, X는 피고의 남편으로서 부부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으면 부부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비용은 X와 피고가 공동으로 부담하므로 X가 C를 부양한 것은 민법상 부양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C는 부당이득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피고는 자신의 재혼 남편 X가 C를 부양한 것을 이유로 C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의무의 면책을 주장할 수는 없다. 5. 결론 특유재산반환청구사건은 가사사건이 아니라 일반 민사사건이므로 대법원이 상고기각으로 자판을 할 것이 아니라 파기환송하여 사실심에서 B와 C의 피고에 대한 특유재산반환청권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인 사실 심리를 한 후 판단하도록 했어야 한다. 특유재산반환청구권이 일신적속권이 아니라는 판시만 한 것은 법률심으로서 대법원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방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친권 소멸 후 자녀 재산에 대한 관리의 계산에 대해 명확히 판단하고, 간접적으로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의 법적 근거를 밝히는 데 일조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본다.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반환청구권
재산관리
친권자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
2022-12-18
민사일반
부동산·건축
공인중개사의 개입하에 장래 계약서 작성이 예정된 경우 계약서를 작성해야 매매계약이 성립하는지 여부
1. 판결 요지 공인중개사의 전달로 당사자 사이에 매매계약의 주요 사항이 합의된 후 가계약금을 주고받은 사안의 매매계약의 성립 여부에 관하여 법원은 ① 송금한 돈이 가계약금으로 명시된 점, ② 공인중개사는 매매 중개를 위임받았을 뿐이고, 매매계약 체결 권한을 위임받은 것은 아닌 점, ③ 공인중개사가 전달받은 매매계약의 매매대금 및 지급기일에 관한 사항을 당사자에게 전달하고 이를 통하여 당사자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주요 사항에 관한 교섭이 이루어진 것에 불과한 점, ④ 공인중개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연락하였을 뿐 직접 연락한 사실이 없고, 당사자들이 참석하여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점을 종합하면, 매매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매매계약을 성립시키겠다는 의사였다고 보이고, 이러한 모습이 공인중개사를 통한 부동산 매매의 일반적인 거래관행에도 부합하는 점을 들어 매매계약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2.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면 원칙적으로 부동산 매매계약의 성립을 부정해야 할 것이다 가. 신중한 접근 우리 삶에서 부동산과 그 매수자금은 제1호 재산이거나 유일한 재산인 경우가 많다. 부동산을 사고파는 것은 실로 결혼만큼 인생에서 어마어마한 일이다. 살면서 그렇게 큰돈이 오고가는 일은 흔치 않다. 이 점만으로도 공인중개사의 개입하에 장래 계약서 작성이 예정된 있는 경우 부동산 매매계약의 성립 여부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 주관적 측면 : 당사자의 의사 1) 직접 대면을 통한 신원확인절차 동산과 달리 부동산의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는 우리나라 민법에서 부동산 매매계약은 거액을 지급하고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계약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사자는 상대방과의 직접 대면을 통해 그 사람이 부동산등기사항증명서상 소유자와 일치한지, 그 사람에게 정당한 대표권이나 대리권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이른바 ‘신원확인절차’가 보장되어야 하고 이런 기회도 없이 가계약금이 송금된 사정(주요 사항의 합의 이후)을 가지고 곧바로 매매계약이 성립했다고 본다면 그 의사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 결국 당사자는 중개사사무실에서 상대방의 신원확인절차를 염두에 두었다고 할 것이다. 2) 계약서 작성을 통한 계약 성립 실제 부동산 매매 거래에서는 장래 ‘계약서 작성일’을 정해 두고 미리 가계약금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장차 ‘계약서 작성일’을 별도로 설정한 것은 결정적인 대목이고 묵직한 울림을 던지고 있다. 그 함축된 의사를 중개사사무실에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는 각 당사자에게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다.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사적 자치를 대원칙으로 하는 우리 민법에서 계약체결의 자유 중 계약체결방식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다’라는 묵직한 논거로 논란거리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당사자의 의사를 강력하게 반영함으로써 비록 주요 사항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낙성계약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의사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3) 공인중개사의 중개행위의 성격 만약 가계약금 송금 당시 구두로 매매계약이 성립되었다고 새기면, 장래 계약서 작성은 이미 구두 합의된 것을 단순히 문서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국 공인중개사의 가교 역할만으로 계약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셈인데, 이는 ‘알선’이라는 사실행위를 하는 공인중개사에게 ‘법률행위의 대리권’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부당하다. 더군다나 공인중개사법은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대상물의 확인·설명의무(공인중개사법 제25조)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중개의뢰인은 부동산전문가로부터 매물에 대한 확인·설명을 들은 연후에 계약체결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의사로 공인중개사를 개입시켰을 것이다. 4) 폭넓은 계약교섭 단계의 인정 : ‘negotiated’가 아닌 ‘negotiating’ 그리고 비록 주요 사항에 대하여 합의가 있었을지라도 낙성계약의 개념을 맹목적으로 순종하기보다는 우리 민법상 계약체결의 자유(소극적으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유)라는 대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당사자 의사를 엄격히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장차 중개사사무실에서 당사자 참석하에 계약서 작성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 이전까지는 매도조건 또는 매수조건 등 계약조건의 교섭 단계에 불과하다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주요 사항에 합의가 있었다고 성급히 더 이상의 협상 자체를 원천 봉쇄시키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종적·확정적 합의로 매듭졌다고 보면 별도로 계약서 작성일을 설계한 당사자 의도 및 관행과 정면 충돌한다. 오히려 중개사사무실에서 만나 계약서에 최종적으로 서명 또는 날인을 마칠 때까지는 당사자가 민사법 질서를 주도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용인해야 할 것이다. 사적자치 원칙이 지탱하고 있음에도 부동산 가치가 급등락했을 때, 혹은 소유권이전이나 제한물권의 설정 등으로 이미 권리관계가 변동되었거나 상대방이 아무런 권한이 없는 제3자임을 간파했음에도 중개사사무실에서 그와 계약서 작성을 거부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사적자치라는 민법상 대원칙을 제한할 때는 낙성계약이라는 개념에 함몰되어서는 안 되며 더 엄격한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매매계약뿐만 아니라 매매예약이라는 멍에를 덧씌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계약서가 없다면 매매예약 성립도 부정해야 할 것이다. 다. 객관적 측면 : 거래관행 및 거래안전 1) 거래관행 거래관행에 견주어 보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의 계약서 작성행위를 이미 성립한 구두계약과 일치함을 확인하거나 그 구두계약을 문서화하는 증빙서류 쯤으로 여기는 것은 도리어 본말이 전도되는 파격적인 판단이다. 이러한 법리 구성은 기교적이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처음 만져 보는 총만큼이나 매우 조심스러운 느낌이다. 반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 신원확인절차를 거친 후 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비로소 계약이 성립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처분문서의 개념을 살리고 거래 실체를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어서 훨씬 자연스럽고 간단 명쾌한 해석이 된다. 2) 거래안전 우리 민법은 법률행위에 따른 부동산 물권변동은 등기하여야 한다는 이른바 형식주의를 취하고 있다(민법 제186조). 부동산등기법에 따라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해야 하고, 만약 첨부정보인 「등기원인을 증명하는 정보」(매매계약서)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등기신청이 각하된다(부동산등기법 제29조 제9호). 매매계약서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매수인은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장차 중개사사무실에 계약서 작성을 예정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그 이전 단계에서 낙성계약을 쉽게 긍정한다면 모름지기 판결에 의한 등기(부동산등기법 제23조 제4항)를 하기 위해 등기소송이 남발될 수 있으며 그 판결 여하에 따라 부동산 거래안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이러한 거래 안전 측면에서도 계약서 작성 유무가 계약 성립 여부를 판가름 짓는 잣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계약서’라는 개념이 가지는 숙명(거래안전을 위해서 태어난)일지도 모른다. 매매계약서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매수인은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장차 중개사사무실에 계약서 작성을 예정하고 있음에도법원이 그 이전 단계에서 낙성계약을 쉽게 긍정한다면 모름지기 판결에 의한 등기를 하기 위해 등기소송이 남발될 수 있으며 그 판결 여하에 따라 부동산 거래 안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이러한 거래 안전 측면에서도 계약서 작성 유무가 계약 성립 여부를 판가름 짓는 잣대가 되어야 한다. 3. 결어 ‘인간의 생명은 그 개개인에 있어서는 하나의 우주이고,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라고 한다(헌법재판소 1996. 11. 28. 선고 95헌바1 사형제도 사건). 지구보다 무거운 생명에 못지않게 서민에게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 등 주택과 그 매수자금은 우주보다 무거운 재산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재산을 처분함에 있어서 당사자가 직접 만나거나 통화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직접적인 교섭행위를 한 적이 없고 오로지 공인중개사로부터 간접적으로 계약의 주요 사항을 전달받고 가계약금을 주고받은 후 장차 중개사사무실에서 계약서 작성을 예정하고 있다면, 매매계약의 성립 여부에 신중하고도 엄격한 판단이 요망된다. 이런 이치에서 '전주지방법원 2021나6726 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김상철 변호사(법무법인 규원)
부동산
공인중개사
가계약
계약서
김상철 변호사(법무법인 규원)
2022-10-31
헌법사건
개성공단 사업 중단조치와 공용제한 문제
1. 서론 개성공단에서 사업하려는 사업자에게 정부가 중단조치를 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까? 사업자의 손실은 보상해야 할까 혹은 개성공단은 북한 지역에 위치한 특수성이 있으므로 언제든지 사업이 중단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보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검토함에 있어 중단조치를 한 주체별로 그리고 피해 유형별로 구분하여 보상 문제를 검토해 보면서 최근의 헌법재판소 결정을 평석한다. 2. 사안의 개요와 결정 요지 청구인은 북한 내 개성공업지구에서 상업시설 신축 및 분양, 임대 등의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기 위하여 2007년 6월 25일 한국토지공사로부터 상업업무용지의 토지이용권을 분양받고, 통일부장관으로부터 협력사업자 승인 및 영업소 설치 승인을 각 얻었으며,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로부터 근린생활시설 신축에 관한 건축허가를 받았다. 청구인은 이 사건 사업부지 지상 시설에 관한 설계비로 1억 원을 지급하였다. 2010년 3월 26일 해군 소속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부장관은 2010년 5월 24일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및 진행 중인 사업의 투자확대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대북조치(5.24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로 인해 청구인은 토지이용권을 사용·수익할 수 없게 되자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 패소판결을 받은 후 보상입법을 제정하지 아니한 입법부작위가 청구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16년 2월 3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의 청구를 아래와 같은 이유로 각하하였다. "이 사건 대북조치는 개성공단 내에 존재하는 토지나 건물, 설비, 생산물품 등에 직접 공용부담을 가하여 개별적, 구체적으로 이용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개성공단이라는 특수한 지역에 위치한 사업용 재산이 받는 사회적 제약이 구체화된 것일 뿐이므로, 공익목적을 위해 이미 형성된 구체적 재산권을 개별적,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헌법 제23조 제3항 소정의 공용 제한과는 구별된다. 또한 이 사건 대북조치로 인한 재산권 제한에 대하여 보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하여야 할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입법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는 아니하다…북한에 대한 투자는 그 본질상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변화하는 남북관계에 따라 불측의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당초부터 있었고, 경제협력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들은 이러한 사정을 모두 감안하여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의 판단으로 사업 여부를 결정하였다고 볼 것이다." 3. 공용제한 해당 여부 공용제한이란 공공필요를 위하여 재산권에 가해지는 공법상의 제한을 말한다. 재산권자가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 점에서 공용수용과 구별되며, 행정주체가 타인의 재산권을 사용하는 공용사용과도 구별된다. 또한 공용제한은 공공필요를 적극 실현하기 위해 가해지는 제한이라는 점에서 소극적인 질서유지를 위하여 가해지는 경찰상의 제한(위험건축물의 사용금지 등)이나 재정목적을 위한 재정상의 제한(강제징수를 위한 재산압류로 인한 처분제한 등)과 구별된다. 서울고등법원(2013. 5. 3. 선고 2012나34247 손실보상등 사건)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이 일정한 공익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공용침해'라 하는데, 이러한 공용침해는 공용수용, 공용사용, 공용제한으로 분류된다. '공용제한'이란 특정한 공익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개인의 재산권에 과하여지는 공법상의 제한을 말하는 것이다"고 했다. 위 판례는 해상시험사격이라는 특정한 조건하에서는 어업이 제한되는 것을 공용제한으로 본 것인바, 이 사건에서 국가안보위기상황에서 신규투자자의 현장출입을 제한한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이 사건에서 통일부가 취한 조치는 '이미 개성공업지구 내에 토지이용권을 취득하고 건축허가를 받은 경우에도 건축공사의 착공과 이를 위한 자재의 반입을 사실상 억제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청구인은 토지이용권을 전혀 사용·수익할 수 없게 되었다. 청구인에 대한 이 사건 조치는 국가안보라는 공공필요를 위하여 청구인의 토지이용권이라는 재산권에 가하는 공법상의 제한이다. 이 사건 조치는 북한의 위협 조치에 대응하는 정책수단이란 점에서 '공공필요를 위하여' 행해진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미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사업에 대해 토지이용권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재산권에 가해지는 공용제한이다. 4. 개성공단 사업 중단의 유형별 검토 주체별로 그리고 사업단계별로 유형을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북한에 의한 제한인 경우이다. 개성공단은 북한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바, 재산권 제한이 북한의 조치로 생길 수 있다. 2013년 개성공단 중단 사태의 경우 북한에 의한 출입제한 조치로 수개월간 조업이 중단된 경험이 있었는데, 이런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헌법상 공용제한이 문제되는 경우에 제한의 주체는 국가 등인바, 남한 헌법의 적용영역에서 북한을 공용제한행위의 주체로 볼 여지는 없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남한 정부에 손실보상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이런 경우는,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한 사회적 제약이라고 볼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언급한 '개성공단이라는 특수한 지역에 위치한 사업용 재산이 받는 사회적 제약이 구체화된 것일 뿐이므로'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적합하다. 다음으로, 남한에 의한 제한인 경우이다. 개성공단 사업을 계획하고 기반시설을 구축한 것은 남한 정부이며, 현지기업은 남한의 기업이나 개인이 출자하여 설립한 북한법인이다. 개성공단의 지리적 특성상 그리고 국가안보적 특성상 정치적 이유로 공단운영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공단운영을 제한할 경우에 손실보상이 필요한지 여부를 단계별로 검토한다. 첫째, 기왕에 현지기업을 설립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사업자 유형이다. 만일 정부가 현지기업의 사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이는 '공익목적을 위해 이미 형성된 구체적 재산권을 개별적,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공용제한'에 해당할 것이다. 둘째, 신규 투자를 위해 토지이용권을 매수하고 건축허가 등 행정절차를 거친 사업자 유형으로 이 사건 청구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경우도 상당한 자금이 투입되었고, 행정절차도 거친 상황이므로 구체적 재산권이 형성되었다 할 것이다. 만일 남한 내의 산업단지에 토지를 구입하고 건축허가를 받았는데 감염병 등의 사유로 출입자체를 제한하여 재산권 행사가 장기간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면 손실보상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셋째, 신규 투자를 모색하고 준비하는 사업자 유형이다. 이 경우는 통일부장관의 사업승인 등 구체적인 권리가 형성되지 않은 단계인바, 이 단계에서 개성공단 사업이 중단되었다면 이는 재산권의 사회적 제약에 해당할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재산권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손실보상이 문제될 여지도 없다. 5. 평석 가. 이 사건 조치는 청구인에게 공용제한임 이 사건 조치는 이미 발생한 청구인의 구체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고, 그 제한의 이유는 국가안보라는 공공필요다. 또한 행위의 주체는 남한 정부이므로 공용제한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따라서 이 사건 조치는 공용제한이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나. 이 사건 조치는 법률에 의한 것이 아님 이 사건 조치의 근본 문제는 법률의 근거도 없이 행해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공용제한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법률이 있어야 함에도 법률의 근거 없이 이 사건 조치가 행해졌다. 따라서 다음 단계인 보상 법률에 대한 규정도 없다. 이 사건을 심리함에 있어 헌법재판소는 법률적 근거 없는 공권력행사로 피해를 입은 청구인의 권리보호에 소홀하였다. 향후 남북경협이 재개될 경우에는 남한 정부의 사업중단조치 및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업자에 대한 보상절차를 규정하는 입법적인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성공단 사업뿐만 아니라 북한지역에서 행해지는 남북경협 사업 전반에서 예상되는 공용침해를 유형별로 구분하고 각 경우별로 공용침해의 요건과 절차, 손실보상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 보상에 대한 입법적인 조치가 없는 입법부작위는 위헌임 헌법재판소의 선례(1998. 12. 24. 선고 89헌마214)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사건 조치로 인해 청구인이 입은 피해는 보상이 필요하다. 선례의 기준인 '실질적으로 사용·수익을 전혀 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도 아무런 보상없이 이를 감수하도록 하고 있는 한,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어 당해 토지소유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은 이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6. 결론 5.24 조치 이후 대북경협을 하던 다수의 사업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하였다. 법원은 손해배상의 요건인 위법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업자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한편 손실보상 청구에 대하여는 손실보상에 관한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결국 사업자들은 경협중단의 위험을 자신들이 전부 부담하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법적 판단이다. 사법부에 의한 권리구제가 어렵게 되자, 사업자들은 입법부에 손실보상을 포함하는 법률을 제정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아직까지 입법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개성공단지원법에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는 근거조항을 추가하는 정도의 소폭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필자는 헌법이 정한 공용제한의 법리를 남북경협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입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대북사업과 관련하여 헌법이 정한 공용침해의 유형을 구분하고, 각 유형별로 보상의 기준과 절차를 정한 입법을 해야 한다. 당초 개성공단이 만들어질 때 논의했어야 할 문제지만 지금이라도 제정해야 한다.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향후 남북경협이 재개될 경우에 대비한 입법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권은민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북한
개성공단
손실보상
남북경제협력
권은민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20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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