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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사건의 개요] 1. 사실관계 ① 해상운송업을 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인 원고는 2008년 4월 13일 파나마 법인으로 선박보유회사인 피고와 캄보디아에 등록된 선박의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bareboat charter with hire purchase, BBCHP)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용선료는 1일당 일화 130,000엔이고, 용선기간(50개월) 종료 후 인도대금 38,000,000엔을 피고에게 지급한다. 용선기간 만료 후 피고는 원고에게 소유권을 이전한다. ② 원고는 42회차부터 용선료를 지연하여 분할 납부하였고, 46회차분 이후는 매월 3,000,000엔을 지급하였다. 원고가 2013년 6월 27일까지 지급한 용선료 총액은 217,100,000엔이다. ③ 원고가 용선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아니하고 용선기간 만료일(2012. 6. 12.) 이후 계속 사용하였음에도 피고는 이 사건 선박을 회수하지 않았다. ④ 이 사건 선박은 2013년 7월 12일 항해 중 폭발 사고로 침몰하였다. ⑤ 원고에게 선박의 관리를 위탁받은 B 회사는 A 보험회사와 선체보험계약이 포함된 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⑥ 사고 발생 후 원고와 피고가 각각 자신이 정당한 보험금청구권자라며 보험금의 지급을 구하자, A 보험회사는 채권자 불확지를 이유로 보험금을 변제공탁하였다. 2. 사건의 경과 ① (본소) 원고는 용선료 대부분을 피고에게 지급하여 이 사건 선박의 사실상 소유자의 지위에 있으므로 보험계약의 피보험이익이 원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탁금의 출급청구권자가 원고라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② (반소) 피고는 용선료 및 선박인도대금을 전액 납입하지 않은 이상 선박의 소유권자는 피고이므로 피보험이익은 피고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탁금의 출급권자가 피고라는 확인을 구하고, 미지급 용선료 15,000,000엔의 지급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3. 대상판결 대법원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한 원심의 판결이유를 그대로 원용하였다. 원심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은 원고가 피고에게 약정 용선료 등(50개월간 1일당 130,000엔의 용선료 + 선박인도금 38,000,000엔)을 모두 지급하면 피고가 원고에게 선박의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소유권유보부매매와 유사한 성격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격은 용선기간 종료 후 소유권취득 조건이 부가된 선박임대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연구 및 평석] Ⅰ. 선체용선계약의 의의와 법적 성질 1. 선체용선계약의 의의 선체용선계약은 통상 ① 선박 임대차계약, ② 운용형 선체용선계약, ③ 금융형 선체용선계약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상법상 선체용선계약이 민법상 임대차계약과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운용형 선체용선계약(Operating Bareboat Charters)의 경우, 용선자가 용선기간 중 선박의 점유와 지배·관리권을 행사하므로, 선박소유자는 선박 인도시 용선계약에 따른 감항능력을 구비한 선박을 인도해야 할 주의의무를 부담할 뿐이다. 금융형 선체용선계약(Financing Bareboat Charters)은 용선기간 동안 선박의 소유권은 금융제공자가 보유하지만, 이는 자신의 대여금채권의 담보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뿐 선박에 대한 지배·관리권은 용선자에게 이전된다는 의미에서 용선자는 ‘선박의 사실상 소유자(the de facto owner)’라고 볼 수 있다. 해운실무상 선체용선계약은 자금이 부족한 해상기업주체의 선박 획득에 필요한 물적 금융의 수단으로서 BBCHP계약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2.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의 핵심 요소 선체용선계약의 핵심 요소는 '선박소유자로부터 용선선박의 점유와 지배·관리권이 용선자에게 이전된다'는 점에 있다. 해운실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표준 선체용선계약서식인 BARECON 2017의 규정을 종합해 보면, 표준적 BBCHP계약의 핵심 요소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① 선체용선계약에 ‘소유권취득조건’이 부가되어 있어야 한다. BARECON 2017의 관련 규정에서 이는 용선자가 가지는 선박의 구매에 대한 선택권(Option)이다. 용선자는 약정된 시일에 선박의 구매를 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고, 이러한 선택권의 행사에 따라 선박소유권의 이전이 발생한다. ② 용선자는 선박소유권을 이전받기 위해 약정된 선박의 대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추가적인 금전의 지급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이러한 추가적 금전지급을 완료하여야 선박소유권이 이전된다. 이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박의 매매가격이라고 할 것이다. 선박소유자는 금융제공액의 원리금 상당을 용선자로부터 회수하여야 할 것이므로, 용선자가 지급하는 금전의 총액이 선박소유자의 금융제공액과 근사할 경우에는 해당 계약의 법적 성질을 BBCHP계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Ⅱ.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1.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이전과 준거법 원심은 우리 법제상 소유권유보부매매의 개념을 원용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외국적 요소가 있어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하여야 할 것이고, 국제사법 제19조에 따르면 물권의 변동은 매매계약의 준거법과 달리 물권변동의 준거법에 의하여 규율된다. 국제사법 제60조는 선박의 소유권에 관한 사항은 선적국법에 의하도록 특칙을 두고 있다. 이 사건의 경우 당사자 사이에 선박소유권이전의 원인이 되는 선체용선계약의 준거법과 소유권이전에 관한 물권적 합의의 준거법은 달리 결정할 문제이다. 이 사건 선박은 캄보디아에 선적을 두고 있으므로, 설령 원심과 대법원과 같이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대한민국 법상 소유권유보부매매로 인정하더라도, 선박의 소유권이전을 위해 물권적 합의가 필요한지, 나아가 물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소유권이전행위가 요구되는지 여부는 이 사건 선박의 선적국인 캄보디아국 법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2. 선박 소유권이전을 위한 별도의 소유권이전 행위의 요부와 이 사건 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이 사건 선박의 물권변동의 준거법이 대한민국 법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다음 문제가 제기된다. ① 본소 원고는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BBCHP계약으로서, ‘소유권유보부매매’라고 주장하였다. 원심은 소유권유보부매매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을 뿐이다. 즉 원심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소유권유보부매매와 유사할 뿐 소유권유보부매매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을 뿐이므로,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도 아니라고 볼 근거는 없다. 오히려 BARECON 2017 BBCHP 제1조 및 제2조에 따르면,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 제5조의 ‘선박반선(Re-delivery)’ 및 선박소유권이전에 관한 규정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이 전형적인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② 원심은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 제5조에 의하면 용선기간이 만료될 경우 자동적으로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이 원고에게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소유권 이전행위가 요구되므로, 이 사건 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은 소유권유보부매매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선체용선계약서식인 BARECON 2017은 BBCHP계약상 용선자의 소유권취득을 위해서는 별도의 소유권이전행위를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과 원심의 판시에 따르면, BARECON 2017의 BBCHP의 준거법이 대한민국 법인 경우에는 그 법적 성질을 소유권취득조건부 선체용선계약이 아닌 소유권취득조건이 부가된 선박임대차계약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이러한 해석은 당사자의 의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③ 원심은 소유권유보부매매는 동산의 매도인이 매매대금을 다 수령할 때까지 그 대금채권에 대한 담보의 효과를 취득·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매도인은 이 사건 선박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매수인에게 해주지 않음으로써 대금채권에 대한 담보 기능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소유권유보부매매의 개념을 원용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박에 대한 공시제도로서 선박등기제도를 두고 있고, 선박에 대한 소유권이전은 등기를 하여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으므로(상법 제743조), BBCHP계약을 체결한 선박소유자는 용선자의 원리금상환이 완료될 때까지는 자신의 채권의 보전수단으로서 용선선박의 소유권을 보유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선박에 대한 등기가 피고 명의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 사건 선체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이 BBCHP계약이라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결론] 사적자치의 원칙상 BBCHP계약의 계약당사자는 선박가격을 균등분할방식으로 지급할 수도 있지만, 용선기간 중 일정한 시기에 선박가격 중 상당한 액수를 일시불로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등 다양한 상환설계를 하는 것도 가능하고, 선박금융 실무도 동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 판례의 태도는 BBCHP계약 및 위 계약을 선박금융의 주된 수단으로 활용하는 선박금융의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선체용선계약
선박
소유권유보부매매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2022-07-11
금융·보험
항공·해상
영국 해상보험법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고찰
1. 들어가며 해상보험계약은 국제적 성질이 강하다. 세계 해상보험실무의 경우 영국의 런던보험자협회가 제정한 보험증권 및 표준약관들이 통용되고 있다. 국내 해상보험실무에서 영국의 1906년 해상보험법(Marine Insurance Act, 1906)은 중요한 법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해상보험계약에서 영국법 준거약관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내국인 간의 해상보험계약에서도 대한민국법이 아닌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영국법 준거약관을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영국 해상보험법의 주요 법리와 우리나라 보험법 법리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으므로 국내 실무가 등에게 생소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 대법원은 내국인이 계약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영국법 준거약관이 포함된 해상보험계약과 관련한 사건에서 영국 해상보험법상 몇 가지 주요 법리에 관한 판시를 한 바 있다. 이 사건의 쟁점 법리들은 우리 상법의 해상 보험계약의 법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위의 판결에서 쟁점이 되었던 영국 해상보험법의 주요 법리에 관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2. 기초사실 및 주장요지 원고는 해상여객운송사업 등에 종사하는 법인으로 131톤 규모의 기선 선샤인호의 소유자이고, 피고는 한국해운조합법에 따라 설립되어 조합원인 해운업자의 공제사업을 수행하는 법인이다. 이 사건 선박에는 공제계약기간을 2012년 1월 13일부터 2013년 1월 13일까지, 보험기간 동안 선박이 운항하지 아니한 채 항내 계선 유지가 조건인 선박공제계약이 체결되어 있었다. 이 사건 선박은 군산항에 정박 중이던 선박의 선미가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기관실 전체가 침수된 것이 2012년 1월 26일 오전 8시경 발견되어 원고 측이 선체 인양 후 폐수 9만3500리터를 배출하였다. 원고는 군산항의 잔교 밑바닥의 준설 문제와 조수 및 북서풍 등의 기상상황으로 인해 이 사건 선박이 침수되었으므로 이 사건 공제계약의 부보대상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피고는 균열 등 기관실 수밀조치 해태와 같은 관리소홀로 인해 해수가 선내로 유입되어 침수한 것으로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3. 판결요지 ① 이 사건 선박공제계약을 이루는 공제증권과 표준선박보험약관 적용 특별약관에서 명시한 영국 협회기간약관에 영국법 준거조항과 부보위험이 열거되어 있으므로 보험자의 책임문제는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② 영국 해상보험법에 의하면 손해가 담보위험을 근인(proximate cause)으로 하는지 여부가 보험자의 책임 유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데, 근인이란 손해의 발생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원인(proximate in efficiency)을 말한다. 무엇이 근인이 되는가는 전반적인 관점에서 광범위한 상식에 따른 법원의 사실인정 문제이다. ③ 영국 협회선박기간보험약관에서 부보위험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해상 고유의 위험(perils of the seas)'이란 해상에서 보험의 목적에 발생하는 모든 사고 또는 재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상에서만(of the seas) 발생하는 우연한 사고 또는 재난만을 의미한다. ④ 영국 해상보험법과 관습에 의하면 손해가 그 부보위험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증명책임은 피보험자가 부담한다. 피보험자는 비일상적인 기상조건 등 우연한 사고로 인하여 선박이 침수되었음을 증명하여야 한다. 증명의 정도는 피보험자와 보험자가 서로 상반된 사실이나 가설을 주장할 경우 그 양자의 개연성을 비교하여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에 의한 증명으로 충분하다. 이는 보험사고가 부보위험에 의하여 일어났을 개연성이 그렇지 않을 개연성보다 우월할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보험사고의 근인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경우에는 피보험자가 증명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심은 원고의 주장(가설)은 기본적 증명이 미비한 전제사실들의 연쇄적·우연적 조합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이 사건 선박의 수리 경위, 침수 전력, 초기조사 결과 등에 비추어 제시된 가설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이를 배척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서 이 사건 공제계약의 부보위험인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사고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누락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하였다. 4. 판례평석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① 이 사건 공제계약에서 정한 보험자의 보상사유 중 하나인 '해상 고유의 위험'이 사건 발생 당시 존재했는지, ②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발생한 것인지, ③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발생한 것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누가 증명책임을 부담하는지, 그리고 증명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느 정도로 증명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영국 해상보험법 제1부칙 '보험증권의 해석규정' 제7조는 "'해상 고유의 위험'이라는 용어는 오로지 우연한 사고 또는 그로 인한 재해에 관한 것으로, 통상적인 바람과 파도의 작용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영국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해상 고유의 위험은 외연의 한계를 일의적으로 규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영국 판례에 따르면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보험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보험목적에 대한 손해가 해상에서 발생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손해발생의 '우연성(fortuity)'이 증명되어야 한다. 원고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당시 서해상의 기상상황의 악화를 들고 있다. 그러나 사고 당시 해상의 기후 내지 파도와 바람의 상태만을 기준으로 해상 고유의 위험이 존재하였는지 여부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 사건에서 쟁점화 되지는 않았지만 검토의 여지가 있는 것은 원심이 확정한 이 사건 선박에 대한 해수유입 경로를 감안할 때 손해가 선체 등의 '숨은 하자(latent defect)'로 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사건 선박의 균열이 '통상적 마모(ordinary wear and tear)'가 아니라 숨은 하자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영국법상 숨은 하자로 인한 손해의 보상을 위해서는 선박관리 등에 관한 '상당한 주의 의무(a due diligence)' 위반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선박소유자 등의 상당한 주의의무위반에 대한 증명책임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사건에서 오로지 한 가지 원인만이 손해의 발생에 실질적이고 유효한 영향을 미쳤다기 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거나 존재한 다양한 사실이 손해발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볼 여지가 없지 않다. 해상 고유의 위험으로 인한 손해로 인정되기 위해 반드시 예외적인 기상조건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영국 판례에 의하면 원고의 주장과 같이 이 사건이 파도와 해풍의 영향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으며, 원심이 확정한 이 사건의 기초사실만으로는 이 사건의 근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영국 판례와 학계는 인과관계의 존부 판단은 해상사업에 종사하는 일반인의 상식적 시각에서 판단하여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피고의 보상책임은 이 사건의 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어느 정도의 증명이 되어야 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영국법이 해상보험계약의 준거법인 경우 해상고유의 위험의 존재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보험보상을 청구하는 원고가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따라서 원고는 손해의 발생사실 및 인과관계에 관해서도 소위 'prima facie case(당사자의 충분한 증거제출로 인해 법관이나 배심원이 요증사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상태, 또는 당사자의 주장이 사실일 것이라는 추정이 생긴 상태)'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증명을 하여야 하며, 원고가 이와 같은 정도의 증명을 다하지 못한 경우 보험자는 별도의 항변을 할 필요도 없다. 즉 손해가 해상고유의 위험으로 인해 발생하였는지 여부가 원고의 주장과 증명에도 불구하고 명확하지 않을 경우, 해상고유의 위험의 부존재 등을 누구의 불이익으로 돌릴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증명책임의 소재 및 그 증명의 정도의 문제가 발생한다. 소송실무적 측면에서 증명책임의 분배기준에 관해서는 우리 민사소송법과 영국법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의 법에 따라 소송당사자 사이에 증명책임을 분배하더라도 결론이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인 경우에도 소송상 증명의 정도의 법적 성질은 절차법적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증명의 정도에 관한 준거법이 무엇인지는 실무상 중요한 문제이다. 일련의 해상보험사건에서 대법원은 별도의 설명 없이 증명의 정도에 대해, 영국법에 따라 '증거의 우월'에 의한 증명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민사소송상 증명의 정도를 절차법적 문제로 파악한다면 증명의 정도에 관해서는 우리 민사소송법을 적용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해상보험
영국
해상보험법
이정원 교수(부산대 로스쿨)
2021-07-26
조세·부담금
행정사건
계약의 해약으로 지급받은 선박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
I. 대상판결의 개요 1. 사실관계의 요지와 처분의 경위 국내조선사들은 2007년 5월경부터 2011년 1월경까지 외국선주사들로부터 총 12척의 선박건조를 도급받는 계약(이하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위 계약에는 외국선주사들은 선박건조 완료 전에 국내조선사들에게 선박대금 일부를 선수금으로 지급하고, 국내조선사들은 자신들의 사유로 계약이 종료되면 외국선주사들에게 선수금 및 그에 대한 연 6~7%의 이자를 환급하여야 하며, 그 경우 쌍방의 상대방에 대한 모든 의무 및 책임이 면제되고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원고는 국내금융기관으로서 2007년 7월경부터 2011년 3월경까지 위 국내조선사들의 외국선주사들에 대한 선수금 및 그 이자의 지급채무를 보증하였다(이하 '이 사건 보증계약'이라고 한다). 그 후 외국선주사들은 국내조선사들의 선박인도 등이 지연되자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을 해제하였고, 원고는 2009년 6월경부터 2011년 7월경까지 외국선주사들에게 국내조선사들이 수령한 선수금과 그 이자(이하 '쟁점 선수금' 및 '쟁점 선수금이자'라고 한다)를 지급하였다. 피고는 쟁점 선수금이자가 구 법인세법(2011년 12월 31일 법률 제1112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3조 제10호 (나)목 및 구 법인세법 시행령(2010년 12월 30일 대통령령 제22577호로 개정된 것) 제132조 제10항 등(이하 '쟁점 조항'이라고 한다)이 규정하는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데도 원고가 그에 대한 원천징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2009 내지 2011 사업연도 원천징수법인세 및 이에 대한 가산세를 징수·부과하였다(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쟁점 조항이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는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손해배상으로서 그 명목 여하에 불구하고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 또는 기타 물품의 가액'에 관하여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위약금과 배상금이 계약상대방의 채무불이행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의 실제 감소액에 대한 배상으로서 순자산의 증가가 없는 경우에는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에 해당하여 이를 기타소득으로 볼 수 없지만, 이를 초과하여 위약금과 배상금을 지급받았다면 이는 손해의 전보를 넘어 새로운 수입이나 소득을 발생시키므로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서 과세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다음,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통상 부담하게 되는 금융비용과 계약체결 과정에서 지출하게 된 비용 등에 대한 전보로서 지급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선박대금 선지급에 따라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의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으므로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실제로 입은 손해를 회복시키는 손해배상금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Ⅱ. 대상판결의 평석 1. 문제의 소재와 이 사건 쟁점 전세계소득에 대해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내국법인과 달리 외국법인은 법인세법에서 규정하는 국내원천소득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납세의무를 부담한다. 구 법인세법 제93조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의 종류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쟁점 조항은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인하여 지급받는 손해배상으로서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 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을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고 있다. 쟁점 선수금이자는 선박건조계약에 따라 수령한 선수금을 반환하는 경우에 가산하여 지급되는 금액으로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소득의 지급자인 원고가 원천징수의무를 부담하게 되므로 쟁점 선수금이자가 쟁점 조항의 외국법인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 된다. 2. 선박건조계약과 선수금이자의 성격 선박건조에는 장기간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통상 선주사는 선박의 자산가치 등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여 조선사에게 선수금을 지급하는데, 선박건조 과정에서 일정한 문제가 생기면 조선사는 선수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선수금반환의무는 조선사의 요청을 받은 금융기관이 외국선주사와 선박선수금환급보증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담보된다. 조선사와 금융기관은 선수금 반환시에 선수금이자를 가산하여 지급한다. 선수금이자는 선주사가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선박금융비용 등과 연계되어 변동이율 등에 따라 산정된다. 선수금과 선수금이자가 반환되면 선박건조계약상 당사자들은 모두 면책된다. 3.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의 의미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재산권에 관한 계약의 위약 또는 해약으로 지급받는 손해배상금이어야 한다는 '해약배상 요건' 및 본래의 계약내용이 되는 지급 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 배상받는 금전이어야 한다는 '초과배상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대법원은 외국법인이 고등훈련기 양산참여권의 포기대가로 금전을 받은 사안에서, 위 금전은 해약배상 요건을 충족하고 외국법인 장차 양산사업에 참여하였을 경우 얻은 기대이익에 대한 배상금이므로 초과배상 요건도 해당하여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7두19447 판결).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은 소득세법에서 기타소득으로 규정하는 위약금, 배상금과 거의 동일하게 정의되어 있다(소득세법 시행령 제41조 제8항). 헌법재판소는 위 초과배상에 관하여 계약상대방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의 실제 감소액(적극적 손해)을 넘는 것, 즉 채무가 이행되었더라면 얻었을 재산의 증가액(소극적 손해)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헌법재판소 2010. 2. 25. 선고 2008헌바79 전원재판부 결정). 대법원은 이행지체로 인한 변제기 이후의 지연손해금은 기타소득에 해당하지만(대법원 1997. 3. 28. 선고 95누7406 판결) 법정해제나 약정해제권의 행사에 따른 민법 제548조 제2항의 법정이자는 기타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고(대법원 2014. 12. 11.자 2014두41145 판결), 매매계약의 합의해제에 따라 기지급 금액을 넘는 금원을 지급받는 사안에서는 구체적 내용에 따라 현실적 손해 보전의 경우인지를 따져 기타소득 해당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10두11979 판결, 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8두33470 판결). 대법원은 초과배상 요건에 관하여 일의적 잣대를 택하지 않고 사안에 따라 순자산 증가 여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4. 쟁점 선수금이자가 쟁점 조항의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의 준거법인 영국법에 따르면 쟁점 선수금이자는 영국법상 손해배상예정을 의미하는 Liquidated Damages로서 쟁점 선수금과 그 이자를 환급하는 경우 국내조선사들은 외국선주사들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이 면제되므로 '해약배상'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다툼이 없는 반면 '초과배상' 해당 여부에 대해서는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하고 있다. 긍정설은 외국선주사들은 선박건조계약의 해제로 인하여 국내조선사들에 지급하였다가 돌려 받지 못한 쟁점 선수금 자체의 적극적 손해는 원고로부터 쟁점 선수금 상당액을 지급받으면서 배상받은 것이지만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쟁점 선수금을 다른 곳에 사용하지 못하여 입게 되는 이자 상당액의 소극적 손해를 배상하기 위하여 지급된 것이므로 쟁점 선수금이자는 지급자체에 대한 손해를 넘어서는 금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부정설은 일반적인 선박금융구조에 비추어 쟁점 선수금이자는 외국선주사들이 쟁점 선수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부담하는 금융비용 등을 전보하기 위한 금원으로 실제로 입은 손해는 넘어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 순자산감소를 회복시키는 것이고 가사 쟁점 선수금이자 중 재산상 감소액을 초과하여 손해를 배상하는 금액이 포함되어 있어 이를 기타소득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입증책임은 과세관청이 있으므로 피고가 이를 특정하여 입증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처분 전부가 위법하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의 입장이기도 하다. 5. 대상판결에 대한 평가 대상판결은 선박건조계약의 해제에 따라 원고가 외국선주사들에게 지급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선주사들의 순자산 감소를 회복시키는 손해배상금으로서 초과배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국내원천 기타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최초의 선례이다. 쟁점 선수금이자의 기타소득 해당 여부를 외국선주사들과 국내조선사들 사이의 거래를 포함하여 선박금융 과정에서 체결되는 모든 거래를 고려하여 원천납세의무자에 해당하는 외국법인의 순자산 증가의 관점에서 쟁점 선수금이자의 성격을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소득과세원칙에 입각하여 국내원천 기타소득의 법리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된다. 또한, 절차적 측면에서 쟁점 선수금이자가 외국법인의 순자산을 증가시켰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이 과세관청에 있다고 판단한 부분도 입증책임원칙에 충실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선박금융의 구조에 비추어 쟁점 선수금이자는 일응 순자산감소에 대한 전보로 파악할 수 있지만 유사사건에서는 순자산감소에 대한 회복여부와 입증의 문제는 구체적 사정을 들여다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대상판결의 논거와 결론에 동의한다. 백제흠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인세
원천징수
기타소득
외국법인
백제흠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2021-06-28
금융·보험
상사일반
선하증권상 미국 COGSA 지상약관은 준거법의 분할지정이다
- 500달러 책임제한은 유효함 (대법원 2018.3.29.선고 2014다41469판결) - I. 사실관계 甲 운송인은 미국 화주와 미국에서 한국까지 유화화물을 운송하는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준거법은 영국법). 甲은 용선자인 송하인에게 선하증권을 발행하여주었다. 선하증권에는 용선계약을 편입한다는 내용과 책임제한에는 미국법을 적용한다는 지상약관이 아래와 같이 존재하였다. 만일 이 선하증권이 선적항 또는 하역항(양륙항)이 미국 해상화물운송법(COGSA)(중략)이 시행되는 지역 내에 있다는 이유로, 1936 미국 COGSA(중략)가 적용되는 권원증권인 경우에, 이 선하증권은 COGSA(중략)에 따라 효력을 가지고, 위 법률 규정은 이 선하증권에 편입된 것으로 간주되며, 이 선하증권의 어느 부분도 위 법률 규정에 따른 운송인의 권리나 면책의 포기 또는 책임의 증가로 간주되지는 아니한다(선하증권 후문) 화물이 손상되자 선하증권을 취득한 수하인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는 보험자 대위권을 행사, 운송인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이에 피고 운송인은 지상약관은 준거법의 부분지정이라고 주장, 책임제한액은 미국 COGSA의 포장당 500달러가 된다고 하였다. 원고는 이는 실질법적 지정으로서, 500달러 책임제한액수는 영국법상 운송인의 책임제한액보다 낮아서 화주를 불리하게 하므로 영국법상 강행규정에 위반하여 무효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원심(부산고법 2014. 5. 22. 선고 2012나10751)은 피고의 주장을 수용하여 톤당 미화 500달러로 운송인의 책임을 제한하였다. 원고는 상고하였다. II. 대법원의 판시내용 국제계약에서 준거법 지정이 허용되는 것은 당사자 자치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 선하증권에 일반적인 준거법에 대한 규정이 있음에도 운송인의 책임범위에 관하여 국제협약이나 그 국제협약을 입법화한 특정 국가의 법을 우선 적용하기로 하는 이른바 지상약관이 준거법의 부분지정(분할)인지 해당 국제협약이나 외국 법률 규정의 계약 내용으로의 편입인지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의 문제이다. 일반적 준거법 조항이 있음에도 운송인의 책임범위에 관하여 국제협약을 입법화한 특정 국가의 법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그것이 해당 국가 법률의 적용요건을 구비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송인의 책임제한에는 그 국가의 법을 준거법으로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한다.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다. 가) 이 사건 선하증권 전문에 따라 이 사건 해상운송계약상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규정한 조항이 선하증권에 편입되었으므로, 선하증권의 일반적 전체적 준거법은 영국법이다. 나) 이 사건 선하증권 후문은 명시적으로 운송인인 피고의 책임범위를 미국 COGSA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 준거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하여 특정 국가의 법으로 정하도록 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의사는 운송인의 책임제한에 미국 COGSA를 준거법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 이 사건 선하증권 후문의 해석상 이 사건 화물의 선적항이 미국 프리포트 항이고 미국 COGSA는 “선적항이나 양륙항이 미국 내에 있는 모든 국제해상화물운송계약에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선하증권에 기한 피고의 책임제한에 관한 준거법은 미국 COGSA이다. 미국 COGSA를 준거법으로 적용할 경우에 앞서 본 적용요건 이외에는 법정지 국가의 법에서 선적항 소재지 법률을 준거법으로 적용하여야 하는 등의 다른 요건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미국 COGSA상 책임제한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요건도 충족되지 아니한다. 라) (중략) 마)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제한에 관한 준거법인 미국 COGSA에 따라 피고의 책임은 톤당 500달러로 제한된다. 원심의 판단에 (중략) 잘못이 없다. III. 평석 선하증권에는 법률관계를 처리하기 위한 일반준거법규정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준거법과 관련된 지상약관이 있어서 둘 사이의 관계가 문제된다. 1. 선하증권의 일반적 준거법 선하증권 이면에 명시적으로 준거법을 한국법 혹은 영국법으로 명기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용선계약 하에서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용선계약의 준거법을 선하증권에 편입하는 경우도 있다. 항해용선계약에서 정한 준거법이 정당하게 선하증권에 편입된 것으로 원심에서 판단되어 영국법이 선하증권의 법률관계를 정하는 일반준거법이 되었고 대법원에는 다투어지지 않았다. 2. 지상약관 선하증권에 들어있는 지상약관은 통상 다른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상약관에 있는 내용이 우선한다는 취지의 약정이다. 본 사안에 추가된 지상약관은 미국 COGSA를 운송인의 면책과 책임제한에 적용한다는 취지였다. 이 지상약관은 다른 준거법 약정과 관련하여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준거법을 각각 따로 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일반 준거법약정에도 불구하고, 책임제한 등과 관련하여서는 지상약관이 부분적으로 준거법으로 지정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준거법의 분할이 일어난다. 우리 국제사법도 이를 인정하고(제25조 제2항), 관련 대법원 판례도 있다(2016. 6. 23. 선고 2015다5194판결). 둘째는 지상약관은, 준거법은 그대로 있으면서, 당사자들이 외국 법률 규정을 계약 내용으로의 편입(실질법적 지정)을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반적 준거법의 아래에서 책임제한에 대하여만 적용할 법률을 특별히 약정한 것이 된다. 이 약정은 일반적 준거법상의 강행규정에 위반할 수 없다. 3. 본 사안의 경우 선하증권상 일반준거법은 용선계약이 편입되어 영국법으로 결정되었다. 지상약관을 저촉법적 부분지정으로 보면 지상약관의 효력에 따라 미국 COGSA의 책임제한액 500달러가 적용되게 된다. 반면 실질법적 지정으로 보면 이는 영국법의 강행규정에 위반되어 무효가 될 여지가 있게 된다. 미국법에 의하면 책임제한액이 미화 500달러이지만 영국법에 의하면 그 포장당 미화 1000달러 혹은 Kg당 2SDR로 책임제한액수가 대폭 상향되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실질법적 지정으로 지상약관을 보면 미국 COGSA의 책임제한액 500달러는 일반준거법인 영국법의 강행규정에 위반하므로 책임제한액수는 영국법 하의 훨씬 높은 금액(최소 약 1000달러)로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운송인인 피고 측은 첫째와 같이 준거법이 분할이 일어난 것으로 인정받아야 책임제한액이 포장당 500달러로 인정받을 수 가 있게 된다. 원심과 대법원은 본 사안에 외국적 요소가 있는 만큼 우리나라 국제사법의 규정에 따라서 준거법을 정하였다. 국제사법 제24조 제1항의 당사자 자치의 원칙에 따라 선하증권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를 탐구하였다. 대법원은 준거법의 부분지정을 인정하여 일반적 준거법외에 책임제한에 대한 준거법이 별도로 지정된 것으로 보면서 준거법의 분할지정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설시한 다음, 원심에서 제시한 근거를 모두 인정하였다. 결국 미국법 지상약관이 있는 경우 이는 준거법의 부분지정으로 되었고, 피고 운송인이 주장하는 책임제한액이 유효하게 되었다. 대법원이 설시한 여러 근거 중 논점과 관련하여 적합한 근거는 위 ‘나)’이다. 책임제한에 관하여는 미국 COGSA를 준거법으로 적용하기로 하는 약정이 있다고 하였다. 준거법의 부분지정을 인정한 대목이다. 지상약관을 통하여 미국 COGSA의 책임제한제도의 적용을 당사자가 합의한 것은 쉽게 인정이 된다. 그렇지만, 그 합의는 강행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니 만큼, 강행규정이 적용되어 합의가 무효가 될 수 없도록 하는 준거법의 분할지정까지 하였다는 근거로 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원심은 지상약관의 말미에 있는 “선하증권의 내용이 책임제한액수의 증가로 간주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에 주목하여 실질법적 지정이라면 영국법 강행규정에 의해 영국법의 훨씬 높은 책임제한액수가 적용되므로 당사자가 지상약관을 삽입한 의도에 반한다고 하였다. 대법원은 이를 언급하지 않았고, '특정국가의 법'이 지정된 경우는 준거법의 분할이 인정이 된다는 취지로 설시하였다. 특정국가의 법률이 아닌 것이 지정된 경우, 예컨대 1924년 헤이그규칙이 지정된 경우에는 실질법적 지정이 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석광현, '해사국제사법의 몇가지 문제점', 한국해법학회지, 제31권 제2호, 102면 참조), 헤이그 규칙하의 책임제한약정은 일반준거법의 강행규정위반이므로 무효가 되는지 의문이다.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함에 있어 준거법의 지정형태가 준거법기준이면 저촉법적 지정이고, 효과기준이면 실질법적 지정이라는 견해도 있다(이성웅, 선하증권상 지상약관에 의한 준거법의 분할지정, 통상법률 제2008-2, 105면). 본 사안의 미국 COGSA 지상약관은 책임제한에 대하여만 준거법이 지정된 것으로 보아 운송인의 책임과 의무는 일반적 준거법인 영국법이 적용되었다. 공정한 기회원칙에 위배된다면 운송인은 책임제한을 할 수 없고 이것이 인정된 미국의 판례도 많이 있지만 다투어지지 않은 점은 아쉬운 점이다. 불법행위책임의 준거법은 운송계약의 경우와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다. 김인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선하증권
보험금
COGSA
화물운송
김인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2018-11-29
민사일반
준거법의 범위와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 대상판결: 대법원 2016.3.24. 선고 2013다81514 판결 - I. 대상판결의 요지 당사자자치의 원칙에 비추어 계약 당사자는 어느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거나 그중 특정 조항이 당해 계약에 적용된다는 합의를 할 수 있고 그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소송절차에서 비로소 당해 사건에 적용할 규범에 관하여 쌍방 당사자가 일치하는 의견을 진술하였다고 해서 이를 준거법 등에 관한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II. 국제협약이 준거법의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서는 계약의 당사자가 국제협약을 준거법으로 하는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국제사법 제25조 제1항에서는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상인법(lex mercatoria 또는 law merchant)과 같은 국제적 관습, UNIDROIT 국제상사계약규칙(UNIDROIT Principles of International Commercial Contracts 1980)과 같은 법원칙 또는 국제물품매매협약(UN 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과 같은 국제협약 등 비국가적 규범도 포함되는지 문제된다. 2. 논의의 실효성 비국가적 규범이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있다면 이는 ‘저촉법적 지정’이 되지만, 만일 준거법으로서 지정될 수 없다면 당사자의 합의는 그러한 비국적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실질법적 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저촉법적 지정은 준거법의 지정이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국제적 강행규정만이 적용된다. 그러나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규범을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법정지의 단순한 강행규정의 경우에도 적용이 배제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계약이 체결된 후에 법이 개정되었다면 개정된 법이 적용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개정되기 전의 법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그 적용이 배제된다. 또한 저촉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법원이 규범의 내용을 직권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실질법적 지정의 경우에는 편입된 법규가 계약의 내용이 되므로 당사자가 편입된 법규의 내용에 대하여 주장하고 증명할 책임을 부담한다. 3.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준거법은 특정국가의 법에 한정된다고 본다. 국제사법의 전반에서 언급하고 있는 ‘법’의 전통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는 특정국가의 법이고, 제5조에서 ‘법원은 이 법에 의하여 지정된 외국법’이라고 규정하고 제7조나 제33조 등에서 ‘대한민국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여 보면 준거법은 외국법이거나 대한민국법으로서 특정국가의 법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준거법의 분열의 한계와 관련하여서 문제가 발생한다. ‘준거법의 분열’이란 하나의 법률관계의 실체적 내용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적용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 제2항에서는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준거법의 분열을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 2016.6.23. 선고 2015다5194 판결에서는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 선택된 준거법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영역에 대하여는 국제사법의 규정에 따라 지정된 소위 객관적 준거법이 적용된다고 보고 있으므로, 비국가적 규범만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거나 비국가적 규범과 특정국가의 법을 모두 지정하는 경우 모두 준거법의 분열이 발생한다. 그러나 준거법의 분열이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법의 내용에 차이가 있고, 한 국가의 국내법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여러 국가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면 적용되는 법률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거나, 생소한 다른 국가의 제도를 국내의 제도에 맞춰야 하는 복잡한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지정된 복수의 준거법이 적용되는 부분이 다른 부분과 분리가능하여 상호 모순저촉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 내에서만 준거법의 분열이 허용된다. 그런데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한계를 완전히 무시하고서 준거법의 분열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부당하다. 대상판결에서 국제협약이 준거법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점에 비추어 보건대, 위와 같은 문제점에 대한 깊은 고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저촉법적 지정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참고로 우리의 국제사법의 바탕이 된 유럽공동체(EC)의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협약’(‘로마협약’) 에서는 당사자가 준거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법이 특정 국가의 법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위 로마협약을 개정한 ‘계약상 채무의 준거법에 관한 규칙’을 제정되는 과정에서 비국가적 규범을 준거법으로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준거법은 특정 국가의 법으로부터만 도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아니하였다. III. 준거법의 합의가 주요사실인지 여부 1. 쟁점 대상판결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주요사실에 대하여만 변론주의가 적용되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실이 주요사실이란 점을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상판결과 같이 준거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본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주장 및 증명해야 비로소 법원이 그러한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당사자의 주장이 없는 한 법원이 직권으로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2. 대상판결에 대한 비판 (1) 주요사실의 의미에 따른 비판 주요사실이라 함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의 구성요건 해당사실을 말한다(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 즉 권리와 의무의 발생, 변경, 소멸이라는 실체법적 효력을 가져오는 요건사실이 주요사실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지만 ‘절차법-실체법’과 ‘저촉법-실질법’이 대비되고 있는 바와 같이, 저촉법인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절차법과 실체법의 구분과 그 영역을 달리한다(석광현, ‘국제사법 해설’, 법문사, 2013, 4쪽). 그런데 국제사법을 소송법으로 보던지 저촉법으로 보던지 상관없이 국제사법이 실체법이 아니란 점은 명백하므로 국제사법 제25조에 따른 준거법의 지정의 합의를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2) 적용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 국제사법은 법선택을 위한 법으로서 국제적 분쟁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으로서는 당사자의 주장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이를 당연히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법에 따르면 계약에 적용되는 준거법은, 1차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지정한 국가의 법이 되고(제25조 제1항), 이러한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2차적으로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된다(제26조). 따라서 법원은 직권으로 계약의 1차적 준거법인 당사자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해야 한다. 게다가 대상판결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적용할 법률의 발견은 법원의 전권사항이고,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는 적용할 법률을 결정하는 합의이므로, 법원은 준거법의 합의의 존재를 조사하는데 있어서 당사자의 주장에 구속받지 아니한다. 덧붙여 대상판결은 당사자가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는 계약의 내용이 되고 계약의 내용은 주요사실이라는 이유로 준거법에 관한 당사자의 합의를 주요사실로서 자백의 대상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당사자의 합의라고 하더라도 모두 주요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법원 판례에서는 소송상 합의인 부제소의 합의를 채권계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대법원 2004. 12. 23. 선고 2002다73821 판결), 이러한 부제소의 합의가 소송법적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80449 판결). 따라서 당사자의 합의라는 이유만으로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까지 주요사실로 보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IV. 결론 이상으로 대상판결과 달리, 사견에 따르면 국제협약을 포함한 비국가적 규범은 준거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준거법을 지정하는 합의의 존재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으로서 자백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대상판결 중 문제된 판시내용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설시하지 아니한 채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른 아쉬움이 있다. 적지 않은 국제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좀 더 많은 국제사법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국제협약
준거법
국제사법
2017-02-20
인터넷 환경에서의 개인정보권리 행사와 글로벌 사업자의 의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10. 16. 선고 2014가합38116 판결 (구글에 대한 개인정보제공내역 요청 사건) - 1. 이 사건의 배경 인터넷의 역사는 스노든의 폭로 전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미국?IT기업들의 서버에 쌓인 전 세계 이용자의 이메일과 사생활 데이터가 미국 정부의 감시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고 '개방성'과 '중립성'을 근간으로 한 인터넷 체제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이에 각국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데이터 분권화, 정보주권주의 강화로 나아가고 있다. 예컨대 유럽의회 시민자유위원회가 추진하는 '데이터 보호 규약' 개정안을 통해 자국 데이터의 월경을 막는 데이터 블록화 움직임이 가시화됐고, 미국-EU 세이프하버협정 무효화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즉 국외이전된 개인정보의 이용ㆍ제공에 대한 의문과 불신, 정보영역에서의 '자국민 보호' 경향은 국제사회의 큰 흐름인바, 본 사건의 배경에는 이러한 흐름이 있다. 2. 사실관계 원고들은 피고 구글본사(이하 '구글본사')가 제공하는 지메일 등 구글서비스의 이용자들 또는 구글본사가 제공하는 기업메일 서비스의 이용자들이다. 원고들은 구글본사 및 한국법인인 피고 구글코리아(이하 '구글코리아')를 상대로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내역을 요청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원고들은 구글본사 및 구글코리아를 상대로, 개인정보 및 서비스이용내역의 제3자 제공현황을 공개하고, 거부를 이유로 한 재산적ㆍ정신적 손해배상 5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참고로 구글 서비스 약관에는, 구글 서비스와 관련한 모든 소송은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연방 또는 주법원이 전속적인 관할을 가진다는 전속적 국제재판관할 합의, 구글 서비스와 관련하여 발생되는 분쟁에 대하여 캘리포니아주 법률에 따르기로 하는 준거법 합의가 존재했다. 3. 이 사건의 쟁점 및 법원의 판시내용 이 사건의 쟁점은 아래와 같다. 1) 구글본사에 대한 한국법원에의 소제기가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 위반인지 여부 2) 원고들의 청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제30조 제2항, 제4항에 근거하는바, 준거법 합의에 반하는지 여부 3) 구글본사의 비공개로 인한 정신적ㆍ재산적 손해의 인정 여부 4) 구글코리아가 구글 서비스의 제공 주체로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인지 여부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아래와 같다. 1) 국내 소비자가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거래관계는 국제사법 제27조의 소비자계약에 해당하므로, 당사자간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권을 배제하는 합의는 같은 조 제6항에 위반하여 효력이 없다. 결국 국내 소비자는 같은 조 제4항에 따라 대한민국 법원에 소제기할 수 있다. (소비자계약이 아닌 기업메일 서비스의 이용자는 제외) 2) 정보통신망법 제30조의 권리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국제사법 제27조 제1항의 '준거법 선택에 의하더라도 박탈할 수 없는 소비자에게 부여되는 보호에 관한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따라서 준거법 합의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망법 제30조는 적용된다. 3) 구글본사는 18 U.S.C §2709(c)(1), 18 U.S Code §1861(d) 등 비공개 의무가 부과된 경우 외에는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구글본사의 미조치로 재산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고 정신적 고통은 해당정보의 공개로 회복할 수 있으므로 손해배상청구는 이유 없다. 4) 구글 서비스의 제공 주체는 구글본사이므로 구글코리아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5) 기업메일 사용자의 구글본사에 대한 소는 각하, 나머지 원고의 구글본사에 대한 공개청구 인용ㆍ손해배상청구 기각, 전체 원고의 구글코리아에 대한 청구는 기각 4. 판례해설 인터넷에서는 국경과 무관하게 이용자의 정보가 해외 서버에 저장되고 해외 사업자의 정보가 이용자에게 도달한다. 때문에 주권과 국경을 전제한 전통 법체제로 인터넷 체제를 규율하는 것은 쉽지 않고 이용자의 권리 행사도 어렵다. 특히 글로벌 사업자는 인터넷의 개방성을 이용해 전 세계에서 막대한 부를 유입ㆍ축적하지만, 이용자의 불만이나 요구, 이용자가 소속된 국가의 정부당국의 요구에 대해서는 국경의 커튼 뒤에 숨는 경향이 강하다. 국경 커튼의 또다른 악용사례는 바로 스노든이 폭로한 글로벌 IT 기업을 활용한 전세계인의 감시였다. 스노든의 폭로는 인터넷의 개방성과 자유가 더 이상 불변의 가치가 아니라는 교훈을 주었으며, 글로벌 사업자의 의무도 국경의 커튼에 숨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처럼 세계적 트렌드는 인터넷 영역에서의 자국민 보호이며, 다만 인터넷의 경제성이 침식되지 않는 보완으로 규범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증진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참고로 글로벌 사업자의 의무는 이용자의 해당 정부당국에 대한 의무도 있는데, 이는 정부당국이 글로벌 사업자에게 행정제재를 하는 경우로서 본 사안과 구별된다. 예컨대 방송통신위원회는 2014. 2. '스트리트 뷰' 사건에서 구글 본사에 행정제재를 한 바 있다. 본 사건은 글로벌 사업자의 우리나라 이용자에 대한 의무에 관한 사건인바, 구글본사는 국제재판관할권 위반 항변과 준거법합의를 전제로 한 정보통신망법 비적용 항변을 통해 전통적인 '국경과 주권' 개념으로써 의무를 부정하였으나, 법원은 국제사법 제27조를 근거로 각 항변을 배척하였다. 하지만 법원은 개인정보 열람권의 범위에 관하여는 제한적 해석을 하였다. 정보통신망법 제30조 제4항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제2항의 요구를 받으면 지체 없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어떤 경우이든지 예외 없이 개인정보 제3자 제공내역을 공개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여부 및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바, 미국의 공개금지규정이 미공개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즉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 범죄, 대테러, 방첩 수사 또는 외교관계의 방해, 개인의 생명 또는 신체적 안전에 대한 위협'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FBI가 증명하는 경우, 국가안보명령서를 수신한 자, 해외 정보 감시법(FISA) 관련 요청이 있는 경우는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다. 첫째, 정보통신망법 제30조 제2항에는 사업자가 정당한 사유를 내세워 열람을 거부할 수 있는 문언적 근거가 없다. 정보통신망법 제30조 제2항과 개인정보보호법 제35조는 동일한 개인정보열람권을 규정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 제35조는 제4항에 명시적인 열람 거부사유가 규정된 반면, 정보통신망법 제30조 제2항은 이러한 규정이 없다. 그럼에도 '필요한 조치'를 확장해석하여 거부사유를 인정함은 문언에 반할 소지가 있다. 둘째, 우리나라 법령이 아닌 다른 나라의 법령을 근거로 열람 거부사유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공개금지규정이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보았는데, 스노든 사태를 고려하면 미국의 공익과 우리 국민의 공익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공익을 단정한 점이 있다. 셋째, 국제적 사법 트렌드와도 맞지 않는다. 2015. 10. 유럽사법재판소는 EU 회원국 국민의 개인정보가 미국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신뢰할 수 없다며 미국-EU 세이프하버 협정을 무효화했고, 2014. 11. EU 작업반은 유럽사법재판소가 인정한 잊혀질 권리의 집행 범위는 구글 본사에도 미친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미국 법원도 2014. 7. MS의 이메일 서버가 있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압수수색 영장의 효력이 미친다고 판결했다. 즉 각국 법원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국경에 무관하게 사법권을 확장해 가는 추세인데 우리 법원은 사법권을 축소하는 판시를 한 것이다. 넷째, 국내사업자들은 규제의 '역차별'을 주장해 왔다. 법령이 국내사업자에게만 적용되는 바람에 특정 규제가 국내사업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고 글로벌 사업자에게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본 판결도 글로벌 사업자의 의무를 우리 사업자의 의무보다 축소시켜 역차별 소지가 있다. 결국 미국 법률의 공개금지규정이 개인정보 제3자 제공내역 공개 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는 판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5. 이 판결의 의의 및 향후 과제 그간 글로벌 사업자들은 인터넷의 개방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국경과 주권이라는 커튼 뒤에서 의무를 회피하였는바, 이 판결은 미국 법률로써 우리 법문언을 축소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국경이 만능 커튼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힌 데 의의가 있다. 한편 위와 같은 한계는 인터넷을 매개로 발생하는 섭외사건에 법원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과제이기도 하다. 세계적 트렌드를 반영하면서 '자국민 보호'와 '프라이버시권 보호' 같은 헌법적 가치나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사법정책도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자국민 보호가 여의치 않은 인터넷 환경에서 어떻게 사법권의 영역을 전개시켜 헌법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지, 법원의 근본적인 정책적 검토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5-11-26
선수금환급보증의 독립성과 권리남용의 관계
(대법원 2015.7.9.선고 2014다 6442 판결) I. 사실관계 갑은 을 조선소와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하였다(준거법은 한국법). 선박건조를 위한 선수금을 갑은 을에게 여러 차례 제공하고, 선박건조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그 선수금을 환급받아야 한다. 갑(수익자)은 2007년 9월 취소가 불가하고 무조건적이라는 문구가 기재된 선수금환급보증서를 은행 병으로부터 수령하였다(준거법은 한국법). 선수금지급의 조건으로, (i) 매수인(갑)이 건조자(을)에게 계약에 따른 환급청구를 하였다는 점 및 건조자가 환급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내용으로 하는 매수인의 단순한 서면진술서에 기하여 지급하고 (ii) 다만, 건조자와 매수인 사이의 계약의 해제 혹은 선수금 반환 청구의 분쟁이 중재절차에 회부된 경우는 예외로 하였다. 을은 갑이 약정된 선수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9년 10월 계약을 해제하였다. 갑(원고)은 2011년 8월 을의 채무불이행을 근거로 계약을 해제하고 선수금반환을 구하였으나 을이 반환을 거부하자, 병(피고)에게 2011년 11월 선수금반환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병은 갑이 선수금을 제때에 주지 않은 이유로 계약이 이미 해제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원고들이 병에 대하여 선수금반환을 요구할 권리가 없음이 명백함에도 이 사건 보증서에 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갑은 을이 건조할 의사나 능력도 없이 선수금을 유용할 목적으로 선수금청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선수금지급의무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이유로 한 을의 계약해제는 부적법하고, 자신들이 정당한 계약해제를 한 것이고 이는 보증서에 기재된 선수금반환 사유라고 주장하였다. II. 서울고등법원의 판단 1. 병이 갑을 위하여 발급한 본 보증서는 독립적 은행보증에 해당하고, 갑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병이 갑에게 보증금의 지급을 거절 할 수 있다. 2. 을이 건조선박에 관한 용골거치를 시행하였음에도, 갑은 3차 선수금을 지급하지 아니함에 따라 을이 건조계약을 적법하게 해제하고 기왕에 지급받은 1, 2차 선수금을 손해의 전보에 충당한 이상 갑은 을에 대하여 선수금 환급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 3. 을의 선수금지급청구의 요건, 갑이 어떠한 분쟁이나 불일치를 이유로도 선수금지급을 지체할 수 없음은 을과의 사이의 계약서에 명문으로 기재되어있는 점, (중략) 갑은 을이 먼저 해제통지를 한 사실을 알면서도 계약상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면서 그 해제통지의 효력을 부인하고 선박건조대금의 감액만을 요구해 온 점, (중략) 분쟁해결을 위해 중재를 신청하지도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갑이 을에 대하여 선수금환급을 청구할 아무런 권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갑은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 사건 보증서의 추상성 및 무인성을 악용하여 이 사건 청구를 한 것이므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 III. 대법원 1. 은행이 보증을 하면서 보증금 지급조건과 일치하는 청구서 및 요된 서류가 제시되는 경우에는 그 보증이 기초하고 있는 계약이나 이행제공의 조건과 상관없이 그에 의하여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즉시 수익자가 청구하는 보증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였다면, 이는 주 채무자인 보증의뢰인과 채권자인 수익자 사이의 원인관계와는 독립되어 원인관계에 기한 사유로는 수익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수익자의 청구가 있기만 하면 은행의 무조건적인 지급의무가 발생하게 되는 독립적 은행보증이다. 독립적 은행보증의 보증인으로서는 수익자의 청구가 있기만 하면 보증의뢰인이 수익자에 대한 관계에서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게 되는지를 불문하고 보증서에 기재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며, 이 점에서 독립적 은행보증에서는 수익자와 보증의뢰인 사이의 원인관계는 단절되는 추상성 및 무인성이 있다. 2. 다만 독립적 은행보증의 경우에도 신의성실 원칙이나 권리남용원칙의 적용까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수익자가 실제로는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은행보증의 추상성과 무인성을 악용하여 보증인에게 청구를 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할 때에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보증인으로서도 수익자의 청구에 따른 보증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으나, 원인관계와 단절된 추상성 및 무인성이라는 독립적 은행보증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하면, 수익자가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수익자의 형식적인 법적 지위의 남용이 별다른 의심 없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닌 한 권리남용을 쉽게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3. (중략) 독립적 은행보증인 이 사건 보증서에 기한 원고들의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원고들이 이 사건 소제기를 통하여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 을에 대하여 아무런 선수금환급 청구권이 없음에도 독립적 은행보증의 수익자라는 법적 지위를 남용하여 청구하는 것임이 독립적 은행보증인인 피고에게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인정되어야 하는데, (중략) 이 사건 보증금 청구당시의 사정, 즉 이 사건 소제기 전에 이루어진 원고와 을 사이의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에서도 을의 계약해제가 적법한지 여부가 1년에 걸친 심문절차에도 결론 없이 회생절차폐지로 종결된 점 등을 고려하면, 소제기 당시 원고들이 을에 대하여 선수금 환급청구권이 없음에도 보증금을 청구하는 것임이 피고에게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와 달리 을의 위 계약해제가 적법하여 갑의 선수금환급청구권이 존재하지 않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밝혀졌다는 심리 결과에 기초하여 갑의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한다. IV. 의견 선박건조대금은 거액이므로 몇 개의 공정단계를 정하고 그 사유가 발생하면 발주자가 건조자에게 선수금을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선박건조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발주자는 기 지급한 선수금을 반환받아야 한다. 이를 담보하기 위하여 건조자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선수금을 반환하겠다는 보증서를 발급받아 발주자에게 건네주게 된다. 대부분의 보증서는 '보증금 지급조건과 일치하는 청구서 및 보증서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서류가 제시되는 경우에는 무조건적으로 선수금을 반환함을 보증한다'는 문구를 가지고 있다. 대법원은 이런 문구가 있는 보증은 주 채무자인 보증의뢰인과 채권자인 수익자 사이의 원인관계와는 독립되어 원인관계에 기한 사유로는 수익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수익자의 청구가 있기만 하면 은행의 무조건적인 지급의무가 발생하게 되는 이른바 독립적 은행보증이라는 것이다. 선수금환급보증이 비록 독립적 은행보증이라고 하더라도, 수익자인 발주자의 청구자체가 권리남용에까지 이른다면 그 청구를 인정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 민법은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제2항). 권리남용에 해당하게 되면 그 법률효과를 주장하지 못한다. 갑은 을의 재정상태와 건조능력을 의심하게 되어 선수금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자 을은 건조계약을 해제하였다. 이어 갑도 건조계약을 해제하였고 갑은 을에게 그 환급을 구하였지만 거절당하자, 갑은 병 보증인에게 선수금환급을 요구하였다. 병은 갑의 이유로 을이 건조계약을 해제한 상태이므로 갑이 선수금반환지급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갑은 을이 선수금을 유용할 목적으로 형식적으로 건조가 진행 중인 흉내를 낸 것이므로 자신의 선수금지급의무는 발생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러한 의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을이 계약을 해제한 것은 부적법하므로 무효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원심은 본 보증을 독립적 은행보증으로 인정하면서도, 을의 계약해제시의 사유 등 제반 사항을 살펴본 다음 갑의 선수금보증금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원심은 건조계약에 따르면 발주자는 어떠한 분쟁에도 불구하고 지체 없이 선수금지급사유가 발생하여 청구가 되면 선수금을 지급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갑이 선수금을 지급하지 않아서 계약이 해제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본 보증은 독립적 은행보증이므로, 권리남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가 아니면 수익자의 청구가 권리남용이라는 판단을 쉽게 내려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였다. 을의 기업회생절차에서도 갑과의 계약해제의 정당성이 다투어지고 있었다면 권리남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대법원은 수익자가 소를 제기할 당시를 기준으로 수익자의 권리남용의 존재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다. 원심은 을이 계약을 해제할 때인 2009년 10월은 물론 그 후의 여러 사정을 살핀 결과 권리남용이 있었다고 판단하였지만, 대법원은 그 판단의 기준시점은 소를 제기할 당시인 2011년 11월이라고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본 판결은 선박건조계약에서 선수금환급보증의 법적 성질이 독립적 은행보증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권리남용의 적용을 제한적으로 해석한 첫 대법원판결로서 의미를 갖는다.
2015-09-17
영국법이 적용되는 채권에 대한 상계의 준거법
I. 사실관계 및 판결의 요지 1. 사실관계 채무자 선우상선 주식회사(이하 '채무자'라고 한다)의 채권자 주식회사 한진해운(이하 '채권자'라고 한다)은 2010. 3. 31. 채무자가 제3채무자 주식회사 삼선로직스(이하 '제3채무자'라고 한다)에 대하여 갖고 있는 금전채권(이하 '피압류채권'이라고 한다)을 가압류하였다. 한편, 제3채무자도 채무자에 대하여 금전채권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채권은 채권자가 위와 같이 가압류하기 전에 이미 변제기가 도래하였고, 이에 따라서 제3채무자는 2011. 12. 15. 채무자에게 이 채권을 가지고 위 피압류채권과 상계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였다. 그 후 채권자는 채무자에 대하여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후에 위 가압류를 본압류로 전이하고 추심명령을 받아서 제3채무자를 상대로 하여 추심금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제3채무자는 피압류채권이 상계에 의하여 소멸되었으므로 채권자인 원고의 청구가 배척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원고는 제3채무자의 위 주장이 한국법상 타당하지만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의 준거법인 영국법에 따르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2. 판결의 요지 가. 영국의 보통법상 상계는 소송상 항변권으로만 행사할 수 있어 절차법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영국 보통법상 상계 역시 상계권의 행사에 의하여 양 채권이 대등액에서 소멸한다는 점에서는 실체법적인 성격도 아울러 가진다고 할 것이므로 상계의 요건과 효과에 관하여 준거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 나. 상계의 요건과 효과에 관한 법률관계가 상계의 준거법에 따라 해석·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채권자가 대한민국의 민사집행법에 의하여 가압류명령 또는 채권압류명령 및 추심명령을 받아 채권집행을 한 경우에, 채권가압류명령 또는 채권압류명령을 받은 제3채무자가 채무자에 대한 반대채권을 가지고 상계로써 가압류채권자 또는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는 집행절차인 채권가압류나 채권압류의 효력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한민국의 민사집행법이 적용된다. II. 판결의 의미와 쟁점사항 필자는 위 사건의 피고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위 사실관계에서 피고의 상계가 효력이 있는지에 관하여 대법원에 전문가의견서를 제출하였고, 이 전문가의견서를 바탕으로 하여 '저스티스'(통권 제142호 2014년 6월호)에 '영국법상 상계제도와 영국법이 적용되는 채권의 상계와 관련한 국내법상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위 사건에서의 쟁점은 ①영국법상 상계와 ②수동채권이 가압류된 경우에 상계의 가능성의 문제가 절차법인지 실체법인지에 달려 있다. 위 두 쟁점들을 절차법으로 본다면 '절차법은 법정지법에 따른다'(forum regit processum)는 원칙에 의하여 법정지법인 한국법이 적용될 것이고, 대법원 2012.2.16. 선고 2011다45521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수동채권의 압류명령에 따라서 제3채무자가 채무자에 대한 지급금지명령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수동채권이 압류될 당시 자동채권의 변제기가 수동채권의 그것과 동시에 또는 그보다 먼저 도래하는 경우에는 제3채무자는 자동채권에 의한 상계로 압류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므로, 결국 위 사안에서 제3채무자인 피고의 상계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III. 영국법상 상계의 종류와 성격 1. 영국법상 상계의 종류 영국법에는 크게 보통법상 상계(Legal set-off)와 형평법상 상계(Equitable set-off)가 있다. 영국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이유로 하여 보통법상 상계를 절차법으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보통법상 상계는 원고가 제기한 금전지급청구소송에서 피고가 소송상 항변권으로만 행사할 수 있다. 둘째, 보통법상 상계는 상계적상이 발생한 때에 소급하여 상계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계의 항변이 이루어진 소송절차에서 판결이 선고된 때에 발생한다. 그러나 보통법상의 상계에 의하더라도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이 소멸하는 실체법적 효력이 있다는 점에서 보통법상 상계도 실체법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반면에 보통법상 상계와 달리 형평법상 상계는 소송절차와 관계없이 소송 외에서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국에서는 형평법상 상계를 실체법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위 두 가지 상계 중 어느 상계를 행사할 것인지는 당사자의 의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의 관계에 달려 있다. 형평법상의 상계는 자동채권이 수동채권을 발생시킨 거래와 동일한 거래로부터 발생하거나 그러한 거래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는데 반하여, 보통법상 상계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관련성이 요구되지 아니한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자동채권과 수동채권은 동리한 거래에서 발생된 것도 아니고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제3채무자의 상계가 보통법상의 상계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하여 다툼이 없었다. 2. 보통법상 상계의 법적 성격 앞서 본 바와 같이 보통법상 상계는 절차법적 성격과 실체법적 성격을 중첩적으로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절차법과 실체법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민사소송법 제99조의 소송비용에 관한 규정, 민사소송법 제215조의 가집행선고가 실효된 경우의 배상책임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절차법은 법정지법에 따른다'는 원칙상 준거법이 외국법인 사건에서 위와 같은 규정들의 성격이 절차법과 실체법 중 어느 쪽에 속하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민사소송'(제16권 2호)에 '법정지법의 적용에 있어서 절차와 실체의 구분'이란 제목으로 그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절차법과 실체법의 성격이 중첩된 경우에 이를 절차법으로 처리하게 되면 원래의 준거법인 외국법이 아닌 법정지법인 한국법이 적용되어 이미 발생된 실체적 권리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법정지가 달라지더라도 실체적 권리관계에 영향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인정되고 있는 '절차법은 법정지법에 따른다'는 원칙에 반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절차법과 실체법의 성격이 중첩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이를 실체법으로 처리하여 준거법인 외국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법원 2011.1.27. 선고 2009다10249 판결에서도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의 지연손해금이 절차법적 성격과 실체법적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고 보면서도 이를 실체법으로 분류하여 준거법인 일본법인 사건에서 그 적용을 거부한 바 있다. 결국 영국의 보통법상의 상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체법으로 분류되므로 사안에서 제3채무자의 상계에는 영국의 보통법상 상계의 요건과 효과가 적용된다. IV. 수동채권이 가압류된 경우에 상계가능성의 준거법 수동채권이 한국의 '민사집행법'에 따라서 이루어졌다면 수동채권의 압류의 효력은 민사집행법에 따라서 결정되고, 이 법은 절차법이므로 준거법이 외국법인 사건에서도 여전히 적용된다. 만일 제3채무자가 자신의 자동채권을 가지고 상계할 수 있는지에 관한 상계가능성의 문제도 압류의 효력의 문제로 본다면, 상계가능성은 준거법인 외국법이 아니라 한국법인 민사집행법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먼저 결론부터 언급한다면 상계가능성은 압류의 효력에 관한 문제로서 상계의 준거법인 외국법이 아니라 한국법인 민사집행법에 따라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결론에는 다음과 같은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채권압류는 강제집행의 개시에 해당하므로 강제집행의 대상인 피압류채권이 강제집행 이외의 방법으로 처분될 수 있는지는 압류의 효력에 관한 사항에 해당하고, 피압류채권의 상계는 강제집행 이외의 방법에 의한 채권의 처분에 해당한다. 결국 압류된 수동채권에 대한 상계가능성도 압류의 효력에 해당하므로 이 문제는 법정지법인 한국법에 따라야 한다. 둘째, 채권이 압류된 후에 제3채무자가 상계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영국법의 내용은 영국법에 따른 압류의 효력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민사집행법에 따라서 이루어진 채권압류의 경우에도 위 영국법을 적용하는 것은 법적용의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수동채권을 압류한 채권자인 원고는 그 수동채권의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수동채권의 준거법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제3자이다. 이러한 압류채권자가 한국의 민사집행법에 따라서 채권을 압류한 후에, 느닷없이 자신과 관련이 없는 영국법상의 압류의 효력을 주장하거나 그러한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 V. 결론 대상판결은 상계의 준거법과 수동채권이 가압류된 경우에 상계가능성의 준거법을 구분하여, 사건의 준거법이 영국법인 경우에 상계의 요건과 효과에 대하여는 준거법인 영국법을 적용하되 수동채권의 가압류에 따른 상계가능성은 한국법이자 절차법인 민사집행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판결이 '절차법은 법정지법에 따른다'는 원칙을 적용하여 위와 같이 준거법을 구분한 점에 대하여 환영하는 바이다.
2015-06-22
신용장개설의무와 CISG상 본질적인 계약위반의 의미
I. 대법원 2013.11.28. 선고 2011다103977 판결의 요지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에 의하면, 매수인은 계약과 협약에 따라 물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제53조),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에는 그 지급을 위하여 계약 또는 법령에서 정한 조치를 취하고 절차를 따르는 것이 포함된다(제54조). 그리고 당사자 일방의 계약위반이 그 계약에서 상대방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 이는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되며(제25조), 매도인은 계약 또는 협약상 매수인의 의무 불이행이 본질적인 계약위반으로 되는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제64조 제1항 제(가)호]. 따라서 협약이 준거법으로 적용되는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당사자가 대금의 지급을 신용장에 의하기로 한 경우 매수인은 계약에서 합의된 조건에 따라 신용장을 개설할 의무가 있고, 매수인이 단순히 신용장의 개설을 지체한 것이 아니라 계약에서 합의된 조건에 따른 신용장의 개설을 거절한 경우 이는 계약에서 매도인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서 협약 제25조가 규정한 본질적인 계약위반에 해당하므로, 매도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II. 판결의 의미와 쟁점사항 1. 판결의 의미 체약국의 숫자로부터 알 수 있듯이(2014년 4월 1일 현재 80개국) 국제상사에 관한 국제통일법으로서 가장 성공적인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이하 '국제물품매매협약'이라고 한다)이 우리나라에서 2005년 3월 1일 발효되었다. 이 협약의 적용대상이 되는 국제물품거래에 대하여는 특정 국가의 법이 아니라 위 협약이 우선 적용된다. 대상판결은 위 협약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 쟁점사항 국제물품매매협약에서는 계약위반에 따른 구제방법을 매도인이 계약위반한 경우의 구제방법(제45조 내지 제52조)과 매수인이 계약위반한 경우의 구제방법(제61조 내지 제65조)으로 나누고, 매도인과 매수인에게 모두 공통되는 구제방법(제5장)을 규정하고 있다. 구제방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손해배상청구, 이행청구, 대체물지급청구, 계약해제가 있다. 이 중 대상판결에서는 계약해제가 쟁점이었는데, 매수인이 합의된 조건에 따라서 신용장을 개설하지 아니한 것이 '본질적인 계약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아래에서는 대상판결의 이유 및 결론이 정당한지 검토해 보도록 한다. III. 본질적인 계약위반(fundamental breach)의 의미 1. 규정내용 국제물품매매협약 제64조에서는 매수인에게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있는 경우에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제25조에서는 본질적인 계약위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당사자 일방의 계약위반은, 그 계약에서 상대방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에 본질적인 것으로 한다. 다만, 위반 당사자가 그러한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였고, 동일한 부류의 합리적인 사람도 동일한 상황에서 그러한 결과를 예견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우리 민법에서는 계약해제사유로 이행지체와 이행불능을 규정하고, 판례(대법원 1994.4.12. 선고 93다45480,45497 판결 등)는 불완전이행을 계약해제사유로 인정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본질적인 계약위반이라는 요건은 생소하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해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 규정내용의 기초적 해석 (1)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계약해제의 엄격성 국제물품매매협약 제74조에서는 사소한 계약위반이더라도 손해배상청구를 허용하고 있지만, 제49조 및 제64조에서는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있는 경우에 비로소 계약해제를 허용한다. 국제물품매매거래에서 매수인과 매도인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결과, 일반적으로 매수인은 샘플만 보고서 구매를 결정하고 실제로 인도받을 물품에 대한 검사는 물품이 목적지에 도착하고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만일 물품에 사소한 하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물품의 반송을 위하여 불필요한 운송을 다시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매수인이나 매도인은 매매계약 후 가격이 변동하면 사소한 하자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자 하는 유혹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제물품매매협약에서는 손해배상을 통하여 손쉽게 구제될 수 있는 사소한 하자에 대하여는 계약해제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본질적인 계약위반'이라는 엄격한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계약해제를 허용하고 있다. (2) 본질적인 계약위반의 의미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계약해제의 엄격성을 고려하면 원칙적으로 계약의 해제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독일연방법원(clout 171)도 이러한 점을 확인하면서 매수인이 하자있는 물건을 사용할 수 있거나 재판매를 할 수 있다면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제25조의 규정으로부터 좀 더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도출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가) 당사자의 합의: 계약에서 해제사유로 규정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위반은 본질적인 계약위반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당사자의 합의는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고, 계약의 전반적 내용과 문구 및 당사자 사이의 의사표시 등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계약위반의 결과: 계약위반의 결과 상대방에게 발생하는 금전적 손해가 중대하거나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면 본질적인 계약위반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수적 의무의 위반이라도 당사자에게 중대하다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될 수 있다. (다) 이행불능: 이행불능이 객관적으로 확실하다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될 것이다. (라) 이행의사의 부재: 채무자가 이행을 명시적으로 거절하고 있거나 이행지체에 따라 이행통지를 하였지만 이행을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채무자에게 이행의사가 없다고 할 것이므로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된다. (마) 하자치유의 제공가능성: 협약 제48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하자의 치유가 가능하고, 이러한 하자치유가 합리적 기간 내에 가능하며, 상대방에게 불합리한 불편을 끼치지 아니한다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라고 보기 힘들다. IV. 신용장의 개설과 본질적인 계약위반 1. 매수인의 신용장 개설의 지연 환율이 극심하게 변동하는 경우와 같이 대금지급 시기가 예외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아니라면, 매수인이 대금지급을 지연하더라도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신용장 개설의 지연은 다른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신용장은 대금지급의 수단이기 때문에 매도인으로서는 신용장을 개설받기 전에 물건을 제작하거나 선적준비를 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매도인과 매수인이 신용장 개설시기에 관하여 합의한 것은 매도인에게 선적준비기간을 수여하기 위한 것이므로 신용장 개설이 지연된다는 것은 매도인에게 수여된 선적준비기간을 단축시키는 결과도 가져온다. 이러한 점에서 대금지급수단으로서의 신용장개설이 지연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본질적인 계약위반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대상판결에서 매수인이 신용장 개설을 지체하는 것은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시한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2. 합의된 조건에 따르지 아니한 신용장 개설 매도인과 매수인이 각 다른 국가에 존재하여 동시이행을 확보하기 힘든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신용장은 동시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매수인이 거래은행을 통하여 매도인에게 신용장을 개설하면 매도인은 선적 후 개설은행에 신용장에 기재된 선적서류 등을 제시하여 신용장대금을 지급받고, 매수인은 매도인이 제시한 선적서류 등을 통하여 물품을 수령 및 통관할 수 있으므로 국제물품거래에서의 동시이행이 확보된다. 신용장에 대금지급의 조건으로 기재된 서류들은 매수인과 매도인이 합의하여 결정하는데, 기본적으로 매수인이 물품을 수령하고 통관하는데 필요한 서류라는 점에서 매수인의 이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매수인이 합의된 조건을 변경한다면 매도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매수인이 임의로 신용장 조건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대상판결에서 피고는 당사자의 합의에 부합하는 신용장을 개설하지 아니하고 40피트 컨테이너 포장, 환적(transshipment) 불허, 피고에 의하여 지정된 자가 발행한 검사증명서, 비유전자변형생물체 증명서 등으로 조건을 변경하였다. 컨테이너가 커지면 운송료가 증가하고 포장방법에 변화가 발생하므로 매도인에게 불리하고, 직항선이 없거나 컨테이너와 같은 복합운송의 경우에 환적이 필요하므로 환적을 불허하는 것은 매도인에게 불리하다. 무엇보다 피고에 의하여 지정된 자가 발행한 검사증명서를 조건으로 하면 피고의 의사에 따라서 검사증명서가 발급되지 아니할 수 있으므로, 매도인은 신용장대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즉, 피고가 대금지급의무를 불이행할 가능성이 있다. 위와 같은 중대한 계약위반에 대하여 원고가 합리적인 부가기간을 정하여 그 수정을 요구하였음에도 피고가 이를 거절한 이상 피고에게 의무이행의 의사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피고에게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인정되고 대상판결의 결론에 찬성한다. V. 끝내기 원고의 계약해제를 인정한 대상판결의 결론에는 찬성하지만, '본질적인 계약위반'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아니한 점, 신용장 개설지연이 본질적인 계약위반이 아니란 취지의 판시를 한 점 및 신용장 조건인 서류가 당사자에게 어느 정도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설시하지 아니하고 본질적인 계약위반을 인정한 점에 대하여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4-06-16
신용장개설은행의 지정은행에 대한 지시의 효력
I. 사실관계 석유를 수입하여 판매하는 한국회사 갑은 해외 소재 을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기로 하였다. 자금차입의 방법은, 갑에게 자금이 필요한 사정이 발생하면 을에게 석유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을이 대금지급을 위하여 신용장을 개설하여 갑에게 보내면 이를 통하여 갑이 자금을 수령하며, 자금변제의 방법은, 갑이 프랑스에 본사를 둔 회사인 병으로부터 석유수입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지급을 위하여 피고은행으로 하여금 병에게 신용장을 개설하면 병은 자금을 받은 후 을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 과정에 실제로 석유가 수출되거나 수입된 사실은 없기 때문에 신용장대금의 지급조건으로 선하증권이 제시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신용장에는 신용장대금지급조건으로 선하증권대신에 수익자가 작성한 보상장(Letter of Indemnity; 자금이 부족한 수출자가 선적 전에 신용장대금을 수령하고자 향후 발생되는 모든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고 확약하는 서면)의 제시도 가능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런데 피고은행은 이미 병에게 개설하였던 신용장의 보상장지급조건을 변경하고자 이 신용장의 통지은행이자 기존에 발행된 신용장의 매입은행인 원고은행에게 '은행간 지시(bank to bank instruction)'란 제목으로 보상장지급조건을 삭제한다는 통지를 하였다. 이에 원고은행는 수익자인 병에게 이러한 통지를 전달하였으나 병은 조건의 변경을 거절하였고 원고은행은 이러한 사실을 피고은행에게 통지하였다. 그 후 원고은행는 기존의 신용장지급조건에 따라서 병으로부터 선하증권 대신에 보상장을 수령하고 환어음을 매입한 후 피고은행에 대하여 신용장대금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피고은행은 수익자에 대한 관계에서 신용장지급조건을 변경한 것이 아니라 원고은행에 대한 관계에서만 지시한 것이므로 보상장지급조건 삭제지시는 유효하고 따라서 신용장대금을 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이에 원고은행은 피고은행을 상대로 신용장대금지급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II. 대법원 2011.1.13. 선고 2008다88337 판결의 내용 국제상업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의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 제9조 d항은 '제48조에 의하여 별도로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취소불능신용장은 개설은행, 확인은행(있는 경우) 및 수익자의 합의 없이는 변경되거나 취소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취소불능신용장에서 규정된 수익자의 권리 또는 권리의 행사요건 등에 영향을 미치는 신용장 조건 등의 변경은 수익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효력이 없다. 취소불능신용장의 이러한 조건변경 제한규정은 개설은행이 매입은행 등 지정은행에 대한 지시의 형식을 취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지시 내용이 실질적으로 수익자의 권리 또는 권리의 행사요건 등을 변경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수익자의 동의가 없는 한 그와 같은 지시는 효력이 없다. 왜냐하면 개설은행의 그와 같은 지시가 수익자에 대한 관계에서만 무효이고 매입은행에 대한 관계에서는 그대로 유효하다고 한다면, 매입은행은 개설은행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수익자는 매입은행에게 변경 지시 전의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게 되는 반면, 개설은행은 수익자의 동의 없이 매입은행에 대한 지시를 통하여 취소불능신용장의 신용장 조건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개설은행은 수익자뿐만 아니라 매입은행에 대한 관계에서도 그 지시의 유효를 주장할 수 없다. III. 평석 1. 들어가기 이 사건의 쟁점은 신용장개설은행이 신용장을 매입할 수 있는 은행(신용장매입을 수권받은 은행을 '지정은행(nominated bank)'이라고 하므로 이하 '지정은행'이라 한다)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한 지시가 법률적으로 어떠한 효력을 갖는가에 있다. 신용장개설은행인 피고은행은 이러한 지시가 유효하므로 지정은행인 원고은행은 이러한 지시에 따를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 반면에, 대법원 판결은 신용장통일규칙에서 신용장개설은행이 신용장대금지급조건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신용장개설은행이 지정은행에게 일방적으로 한 지시는 수익자의 동의가 없는 이상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보았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 판결의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결론에 이르게 된 근거에 대하여는 다른 의견이다. 2. 준거법에 대한 고려의 부재 이 사건에서 원고은행은 신용장의 매입은행으로서(실제로 매입하는 것은 신용장에 기하여 발행된 환어음 등 서류이다) 외국에 소재하여 외국적 요소가 있는 사건이므로 대법원은 원고은행과 피고은행 간에 적용될 준거법을 우선적으로 결정한 후 그 준거법에 따라서 당사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판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위 대법원판결은 준거법에 관하여 아무런 고려 없이 바로 신용장통일규칙만을 근거로 결론에 이른 아쉬움이 있다. 이 사건에 신용장통일규칙이 적용된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의가 없지만 신용장통일규칙이 신용장에 관한 모든 법률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여전히 준거법의 결정은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건 판결이 선고되고 불과 2주 후에 내려진 대법원판결(대법원 2011.1.27. 선고 2009다10294 판결)에서는 "신용장에 기한 환어음 등을 매입하는 매입은행은 신용장 개설은행의 수권에 의하여 매입하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계산에 따라 독자적인 영업행위로서 매입하는 것이고 신용장 개설은행을 위한 위임사무의 이행으로서 신용장을 매입하는 것은 아니므로, 신용장 개설은행과 매입은행 사이의 신용장대금 상환의 법률관계에 관한 준거법의 결정에는 위임사무의 이행에 관한 준거법의 추정 규정인 국제사법 제26조 제2항 제3호를 적용할 수 없고, 환어음 등의 매입을 수권하고 신용장대금의 상환을 약정하여 신용장대금 상환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신용장 개설은행의 소재지법이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으로서 준거법이 된다."고 판시하여 신용장개설은행과 매입은행 사이의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신용장개설은행의 소재지법이 준거법이 된다고 판시하였다는 점이다(신용장에 적용되는 준거법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졸고, 화환신용장의 중간은행의 법률관계와 독립적 은행보증의 제2의 은행의 법률관계에 대한 준거법, 국제사법연구 제17호" 참조). 이 대법원판결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3. 신용장개설은행과 지정은행 사이의 법률관계 판단의 부재 이 사건 대법원판결은 원고은행과 피고은행 사이에 어떠한 법률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대법원이 준거법에 근거하여 당사자 사이에 어떠한 법률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 우선적으로 분석하고, 이러한 법률관계에 의하면 피고은행의 원고은행에 대한 일방적 지시가 어떠한 효력을 갖는지 판단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 소송이 진행될 당시에 원고은행은 신용장을 매입하여 지정은행에서 매입은행이 되었으므로 이 사건의 준거법은 대법원 2011.1.27. 선고 2009다10294 판결에서와 같이 개설은행인 피고은행의 소재지법인 한국법이 된다. 이 사건 신용장에서는 제5차 신용장통일규칙(UCP 500)이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있었고, 우리 법상 이러한 규정은 유효하므로 제5차 신용장통일규칙이 이 사건에 적용된다. 그런데 제5차 신용장통일규칙 제10조(b)에서는 신용장개설은행이 신용장을 매입할 수 있는 수권행위만으로는 원칙적으로 지정은행은 어떠한 의무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수권행위만으로는 신용장개설은행과 지정은행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준거법인 한국법에 따를 경우에는 혹시 어떠한 법률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법은 미국법과 달리 신용장에 관한 별도의 법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서 위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4. 신용장개설은행과 지정은행 사이의 법률관계 앞서 언급한 대법원 2011.1.27. 선고 2009다10294 판결에서는 신용장의 지정은행은 자기의 계산에 따라 독자적인 영업행위로서 신용장을 매입하는 것이고 신용장개설은행을 위한 위임사무의 이행으로서 신용장을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 판결에 따르면 지정은행이 신용장을 매입하기 전에는 지정은행과 신용장개설은행 간에는 적어도 신용장대금지급과 관련하여 아무런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정은행이 신용장을 매입하여야 비로소 지정은행은 매입은행의 지위를 얻고 이때부터 양당사자는 법률관계를 맺게 된다(신용장개설은행과 매입은행 간의 법률관계는 신용장수익자와 신용장개설은행 사이의 법률관계와 동일하다. 구체적인 논의는 "졸고, 앞의 논문"을 참조 바란다). 이러한 결론에 따르면 신용장개설은행인 피고은행이 지정은행인 원고은행에게 한 보상장지급조건 삭제지시는 원고은행에 대하여 아무런 효력이 없다. 결국 원고은행이 신용장을 매입한 후 피고은행과 맺게 되는 법률관계는 신용장에 기재에 따르게 되므로 원고은행이 피고은행의 삭제지시에도 불구하고 신용장 기재에 따라서 보상장을 수령하고 신용장대금을 지급한 것은 적법한 지급이 된다. 따라서 피고은행은 원고은행에게 신용장대금을 상환할 의무가 있다. 5. 결론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제5차 신용장통일규칙의 신용장대금지급조건 변경에 관한 규정이 아니라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의 분석을 통하여 결론에 이르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신용장통일규칙의 위 규정도 결론을 지지해 주는 근거가 될 수 있겠지만 주된 이유보다는 부수적 이유에 불과하다고 본다.
201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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