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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1-2)

    3부 채색(彩色) ⑪ 기획이란 용어의 숙명

    박솔잎 기자 desk@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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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어느 날의 청와대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 Ⅱ

    (1987. 6. 3. - 1989. 3. 28.)

     

     

    나의 기획관리실장 재임 중 법무·검찰의 수뇌급 인사이동 내용을 참고로 적어 둔다. 1988년 3월 5일 당시의 한영석 법무부 차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산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이던 서정신 씨가 그의 후임 법무부 차관으로 기용됐다. 그해에 검찰청법이 이미 개정돼 임기 2년의 검찰총장 임기제가 시행될 예정이었다.


    제5공화국 말기인 1988년 12월 5일자의 대폭적인 개각에 따라 정해창 장관의 후임으로 재야의 법조인이었던 고시 2회 출신의 허형구(許亨九) 전 검찰총장이 제38대 법무부 장관으로 기용되면서 김기춘(金淇春) 법무연수원장이 최초의 임기제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로부터 약 4개월 뒤인 1989년 3월 29일자로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이동에 따라 나는 대검찰청 형사 제2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그 인사이동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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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과천청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허형구 장관과의 인연은 이번 법무부 근무가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내가 검찰 제3과의 검사로 근무하던 중 허 장관이 서정각 검찰국장의 후임으로 부임한 일이고, 두 번째는 내가 서울지방검찰청의 평검사로 근무하던 중 그가 검사장으로 부임함으로써 나의 직속 상사가 되었고, 나의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재임 중 그가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으니 이것이 세 번째의 인연이었다.


    검사장급 인사이동이 단행된 것이 1989년 3월 29일이었으므로 아마 그 며칠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허 장관께서 부르시기에 장관실에 들어가니 나의 신상 변동에 관하여 장관께서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씀하셨다.

     

    내가 송 실장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이번 인사에서 송 실장을 적당한 일선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으로 내정하고, 검사장급 인사 예정 내용을 김기춘 검찰총장에게 통보하였더니,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는 장관이 구상한 내용대로 하시되, 송 실장만은 대검으로 보내 주시면 좋겠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럼 어느 자리에 보내야 하느냐고 문의하니, 현재 민생치안의 확립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처지이므로 그 일을 맡기려 하니 대검찰청의 형사 제2부장으로 발령해 달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그런 인사는 본인이 섭섭하지 않겠냐고 반문하니, 제가 잘 설득하여 데리고 있겠으니 청을 수락해 달라는 의견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검찰총장의 이런 뜻을 장관이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섭섭하더라도 대검에 가서 그의 뜻을 잘 받들어 정진하라는 취지였다. 이런 경위로 나는 법무부의 기획관리실장에서 대검찰청의 형사 제2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내가 대검으로 부임한 다음 날 김기춘 검찰총장이 나와의 단독 오찬을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검찰총장으로부터 들은 말은 허형구 장관이 내게 미리 알려 준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전국 검사장 회의 끝나면 청와대서 오찬
    테이블에는 대통령 문양 접시 위 담배가
    애연가로 참지 못하고 한 대 피웠더니
    모든 시선이 험악해져 결국 끌 수밖에
    대통령 앞 검찰 간부의 최초 흡연 사건

    기획관리실장은 국회 출입 단골손님
    국회의원들의 ‘쪽지’ 심심치 않게 받아
    모른 척하고 넘길 수 없어 처리에 고심
    일선 검찰청 검사장, 차장·부장 검사에
    “의원이 표 잃지 않도록 해 주라” 전달만

     

    기획관리실장 시절 겪은 두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 둔다.

     

    첫 번째는 현직 대통령과의 '맞담배질 사건'이다. 1987년 11월 12일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검사장으로 승진돼 기획관리실장으로 발령된 그해였다. 그날 오전 전국 검사장 회의가 있었다. 이런 검사장 회의가 끝나면 청와대에서 법무·검찰의 관계관들을 소집해 오찬 자리를 마련해 주던 관행이 있었던 때이다.


    그날 오전 검사장 회의를 끝낸 후 법무·검찰의 관계관 수십 명이 청와대에 들어가 이미 마련된 오찬장에 자리를 잡았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에 없으나 법무부의 장·차관과 실·국장, 대검찰청의 검찰총장, 차장검사를 비롯한 각 부장과 전국 검찰청의 검사장들이 모두 그 자리에 참석했으니 30여 명의 관계관이 상석인 대통령을 가운데로 좌우에 열석해 자리를 잡았다. 내 직책이 기획관리실장으로 법무부의 서열 3위였으므로 대통령의 우측으로 길게 놓인 세 번째 자리에 내가 앉아 있었을 것이다.

     

    자리에 앉아 보니 찻잔이 놓여 있고, 그 옆에 대통령 문양이 들어 있는 접시 위에 담배와 성냥 한 갑씩이 놓여 있었다. 그 담배는 5개비가 들어가도록 특별한 규격으로 만든 담배였는데, 역시 대통령의 문양이 그려져 제작된 것이었다. 당시의 대통령이 애연가였으므로 물론 그의 테이블 위에도 이 담배와 성냥이 놓여 있었다.

     

    장관의 인사 말씀과 검사장 회의의 결과 보고에 이어 대통령의 지시가 있은 다음 오찬이 시작되기 전 잠시의 환담이 오고 갔다. 나는 당시 애연가였으므로 그 담배에 자꾸 눈길이 끌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한번 피워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에 그 담뱃갑을 열어 1개비의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소리도 요란하게 성냥을 켜서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장내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시선도 내게 꽂힌 것은 당연하다. 눈치를 보니 이게 심상치 않은 일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금방 담배를 꺼 버릴 형편도 아니었으므로 몇 모금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니 나를 쳐다보는 모든 시선이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득이 담뱃불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 담배는 손님 대접이라는 형식상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일 뿐, 대통령 앞에서 감히 담배를 피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실제로 담배를 피운 사람도 없다는 것을 사후에 알게 됐다. 초임 검사장으로서 청와대에 처음 들어갔던 내가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 일은 검찰에서 한동안 회자되었던 담배 사건이다.


    흡연자를 범죄자처럼 여기고 있는 요즈음은 전혀 재연될 가능성이 없는 일이겠으나 손님 접대용 테이블에 주인이 놓아 둔 담배는 피우라고 준비했다는 것이 당시의 내 생각이었다. 이 오찬 행사가 끝난 후 행사장을 나오면서 '천하의 골초'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Y 검사장이 내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심지어 천하의 골초인 내가 담배를 피우지 못했던 곳에서 네가 담배를 피웠으니 내 별명을 이제는 네가 가지고 가라."


    선배 검사장들에게 확인한 결과, 제5공화국 시절 법무·검찰의 간부가 대통령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사건은 없었다니 이것이 최초의 흡연 사건인 것만은 분명했고, 이 사건 이후 청와대에서 담배를 준비하지 않았는지, 내가 용기가 없었던지, 다시 흡연 사건이 발생되지 않았으니 최후의 사건인 것 또한 분명하다.


    두 번째는 국회의원의 소위 '쪽지'에 얽힌 사연이다.

     

    중앙행정기관인 행정 각부의 기획관리실장은 국회의 단골손님이다. 정기국회는 물론 임시국회의 본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및 예산결산심의위원회에 반드시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집권당과의 당정 협의와 당정 정책조정회의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진행되는 국회의 행사에 장관을 수행해 반드시 참석하는 사람이 기획관리실장이다.

     

    이런 사정이므로 직무상 여러 국회의원을 보게 되는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 중에는 법조인이 많이 있으므로 이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쪽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직무상 이를 모른 척하고 넘길 수도 없어서 그 처리가 쉽지 않았다. 일선 검찰청의 검사장, 차장검사 또는 부장검사, 때로는 주임 검사에게 그 뜻을 전해야 했기에 궁리 끝에 내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국회의원들은 개인적 부탁도 있을 수 있으나 지역구 유권자들의 청탁에 따라 부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소위 '표'를 잃지 않도록 배려해 주면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쪽지는 무리하거나 안 될 일을 부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므로 그 청탁 내용을 들어줄 수 없더라도 국회의원에게 줄을 댄 사건관계자들에게 국회의원이 각별히 이 사건의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검찰에 청탁했다는 사실만을 그들에게 일러 주면 최소한 '표'는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 담당 검사가 번거롭기는 하나 이 뜻을 이해해 그 국회의원이 생색을 낼 수 있도록 해 주라는 것이 내가 일선 검찰청에 내려보낸 사건 청탁의 내용이었다.


    일을 이렇게 처리하다 보니 내게 건네주는 쪽지의 숫자도 심심치 않게 늘어갔다. 그러나 나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일선 검찰청에 위와 같은 취지를 전해 주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으니 말만 그럴듯하게 해서 국회의원이 표를 잃지 않도록 해 주라는 똑같은 내용의 부탁이 전달됐을 것이다.

     

    국회의원이 나로부터 돈을 받을 일은 혹시 있을지 모르나 내가 국회의원으로부터 돈 받을 일은 발생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 말만 가지고서야 무슨 죄가 될 리 있겠는가? 일선 검찰청의 수사 검사들을 번거롭게 만든 것만이 미안한 일로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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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의 재직기념패가 내게 있으나 '법무부 기획관리실 직원 일동'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으므로 그 명단을 여기에 적지 못한다. 직제개정 전에 기획예산담당관은 이기만(李起萬), 행정관리담당관은 성길용(成吉鏞) 등 두 분이었다.

     

     

    <정리=박솔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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