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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5-2)

    3부 채색 (彩色) ⑮ 짧고도 길었던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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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검을 떠났으나 대검에 못 간 검사장의 사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 Ⅱ

    (1993. 3. 17. ~ 1993. 9. 20.)


     

    사건 보고를 받는 것만이 검사장의 직무가 아니다. 청의 운영 전반에 걸친 지휘와 감독이 검사장 본연의 임무였으나 검사장은 거의 사건 보고의 청취에 매달려야만 할 형편이었다. 이 시점에서 내린 검사장의 직무 명령은 다음과 같다.

    송치된 구속 사건의 피의자를 구속 취소하여 석방하는 것은 소관 차장검사의 전권 사항으로 한다. 검사장에게는 보고할 필요가 없다. 검사가 직접 사건을 인지하여 수사하는 때의 수사 착수 사실과 검사가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작성하여 직접 구속하는 경우에만 검사장의 결재를 받는다. 그 경우에도 부장검사가 아닌 주임 검사가 검사장에게 와서 보고하여 결재받도록 한다.

    내가 부장검사 아닌 주임 검사로 하여금 직접 검사장의 결재를 받도록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검사가 스스로 사건을 인지하여 수사하는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다. 정실에 치우쳐 사건을 만들거나, 공명심에 사로잡혀 사건을 수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주임 검사로부터 사건 보고를 받아 보면, 검사가 그 사건을 수사하는 이유를 대강 알 수 있다. 검사가 들고 온 그 두툼한 사건 기록을 검사장이 살펴볼 도리는 없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으며 검사의 관상과 표정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거의 틀림없이 가려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검사장의 직을 수행하는 동안 옛날에 읽었던 여러 관상과 심상에 관한 책의 내용을 다시 상기하면서 검사의 보고 내용과 그의 태도를 세심하게 살펴보았을 것이다. 독심술과 병행하여 관상쟁이의 역할을 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상학을 현장 실습하며 지냈다.

    나의 검사장 재임 중 처리된 수많은 사건에 관하여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다. 그럴 생각도 전혀 없다.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은 대부분 검찰의 역사로 기록되었을 것이며, 그에 관한 자료도 제대로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다만, 몇 가지 내용은 여기에 써서 남긴다. 나의 검찰 후배들이 참고할 만한 교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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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하나는 세칭 ‘슬롯머신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강력부(부장-유창종, 주임검사-홍준표)가 주관부서였으나 수사가 확대되면서 특별수사 3개 부(부장- 조용국, 김대웅, 정홍원)까지 참여하여 3차장(신승남) 휘하의 전 부서가 함께 벌인 수사였다.

    전임 검사장 시절에 주임 검사가 수사에 착수하기 위해 검사장에게 보고하였으나 수사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이 내려져 검사실의 캐비닛 속에 잠자고 있었던 내사사건이었다. 이런 사정을 그가 내게 구체적으로 보고하지 않아서 자세히 알지 못한 때였다. 그의 보고를 받고 보니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었으나 나는 흔쾌히 그 사건의 수사 착수를 허락했다.

    명망 있는 인사들의 비위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국가정보기관과 사정기관의 거물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걸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불똥이 검찰조직의 상층부에까지 번지는 사태로 발전되어 실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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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서울검사장 임명장 수령사진(김두희 장관 전수) <사진=송종의 장관 제공>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말이 있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갈 데까지 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우리 검찰 내부의 고위직 인사 여러 명의 비위 사실이 점차 드러나면서 나는 결국 사표를 써서 대검찰청에 보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소신대로 밀어붙인 이 수사의 최종 책임자는 오로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인 송종의였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에게 구두로 사의를 표명한 다음 행정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나의 사표가 서울고등검찰청의 검사장에게 올라갔다. 행정적으로는 서울지방검찰청의 상급 기관인 서울고등검찰청의 검사장이 나의 사표를 대검찰청의 검찰총장에게 전달하여 법무부를 거쳐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가는 것이 사무 처리의 올바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표는 검찰총장에게도 올라가지 못했다. 아니, 어떤 사람이 이를 잡아 두고 대검에 올려 보내지 않았다. 서울고등검찰청의 김유후(金有厚) 검사장이 나의 사표를 받았으나 대검으로 보내지 않고, 그의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채 그 임기를 마칠 때까지 미동도 없이 지냈기 때문이다. 내가 사후에 그에게 자세한 이유를 물어본 바 없으므로 그가 따로 내게 대답해 준 바도 없다. 다만 그 사표는 그가 임기를 마칠 때 아무 말도 없이 웃으면서 나에게 다시 반환하였다는 사실만을 적어 둔다.

    캐비닛 속에서 잠자던 ‘슬롯머신 사건’
    파장 예상됐으나 흔쾌히 수사 착수 허락
    거물급 인사 걸려들면서 검찰까지 불똥
    결국 고검장급 선배 세 사람이 검찰 떠나
    검찰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결과 빚어


    이 슬롯머신 사건 수사의 불똥이 검찰에 옮겨붙어 발화됨으로써 고등검사장급 검찰 선배 세 사람이 법무부·검찰을 떠났다. 한 사람은 나의 전·전임 서울 검사장이었으며, 또 한 사람은 나의 중앙수사부장 전임인 고시 선배였다. 결국 구속된 사람도 있다. 나와의 대학, 사법시험 동기생인 나의 전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검찰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결과를 빚어낸 검찰의 비극이었다.

    이 사건의 주임 검사가 이런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이 사건의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내게 보고한 것 같지는 않다. 수사 착수 전에 구체적인 정보 입수에 따라 상당히 많은 자료를 축적한 다음이라야 비로소 범죄인지서를 작성하여 사건 수사가 개시되기 때문이다.

    나의 독심술이 형편없었던지, 나는 그 검사의 수사 착수 보고 당시에 이 점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가 공명심이 대단한 사람임을 짐작하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전임 검사장에게 이 사건의 수사를 개시하겠다고 보고하였으나 검사장이 혹시 자신의 비위가 드러날까 두려워 상사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일방적인 부당한 지시로 이를 가로막았다고 느끼는 잠재적 원한이 있었던 것인지의 여부는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다.

    옛말에 사람의 말을 들을 때에는 첫째 그 말을 살피고[察其言], 둘째 그 낯빛을 관찰하며[觀其色], 셋째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究其心] 했으나, 나의 관상학 실습과 독심술의 활용이 말 그대로 엉터리였음을 만천하에 여실히 드러낸 대형 범죄 사건의 수사였다.

    이렇게 불타는 화택(火宅) 속에서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은 관하 검찰 지청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의 전모를 소상히 파악하여 지휘해야 했다. 법무·검찰의 수뇌부가 그 사건관할 지청의 지청장에게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청의 지휘 책임이 있는 본청의 검사장에게 수시로 문의하거나 지시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진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지경
    사표를 써서 대검에 보내고 마음도 정리
    그러나 사표는 총장에게 올라가지 않고
    서울고검장이 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반려
    새 총장 부임 5일 뒤 대검 차장검사로 전보


    나의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시절, 이 공룡같이 거대한 서울지방검찰청이란 검찰기구는 반드시 분화하여 다섯 개의 검찰 지청을 지방검찰청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이미 그 계획을 마련해 두었었다. 법무·검찰 발전 5개년 계획의 실현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검사장으로서의 직무 수행이었다. 그 계획이 5개년 계획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으나, 내가 기획관리실장직을 떠난 지 5년이 다 된 1993년까지도 이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이었을 뿐, 실행되지 못하고 있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실에 철제금고 하나가 놓여 있었다. 청 운영에 관한 중요 문서와 범죄수사에 진력하는 검사들을 격려하기 위한 범죄수사정보비를 넣어 보관하는 용도였다. 나는 서소문의 대검찰청 청사로 떠나기 전에 이 금고에 다소간의 현금과 함께 편지 한 통을 써서 넣어 두었다. 그 제목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후임 검사장에게」라는 제목으로 된 나의 친필 편지였다.

    그 편지에는 후임 검사장이 기관장으로서 집행 가능한 사무국 보관의 수사정보비 총액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검사장으로서 서울지방검찰청 운영에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몇 가지 내용을 적어 두었다. 후임 검사장이 총무부, 공안부, 형사부, 특별수사부, 조사부, 강력부, 공판부, 송무부 및 사무국의 운영에 유의할 자세한 내용이다.

    특히, 특별수사부와 강력부의 운영에 있어서 내가 편성했던 소속 검사의 수를 더 늘려서는 안 된다는 각별한 당부와 함께 검사의 발탁 기준에 관한 참고할 만한 내용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내가 검사장으로 부임하였을 때 위 금고를 열어 보았으나 검찰청 운영에 도움이 될 어떤 자료도 없었다.

    나는 드디어 이 검찰청을 떠났다. 슬롯머신 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박종철(朴鍾喆) 검찰총장이 지휘 책임을 지고 임기 중 결국 사퇴하고, 1993년 9월 16일 대검 차장검사인 김도언(金道彦) 씨가 후임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날부터 5일 후인 9월 21일자 인사 발령으로 나는 고등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전보되었다.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 한번 해 보려고 탐내는 관직, 특히 요직이란 자리의 생리는 대강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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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검사장 재직 기념패 <사진=송종의 장관 제공>

     

    내가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전보된 뒤 서울지방검찰청에서 나와 함께 근무했던 간부들이 나에게 전해 준 1993년 9월 21일자 재직기념패에 새겨진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는 차장검사 3명, 부장검사 16명, 사무국장과 각 과장 15명, 모두 34명의 이름이었다.

    1) 차장검사-崔炳國, 姜信旭, 愼承男
    2) 부장검사-金源治, 趙俊雄, 李範觀, 辛光玉, 金東燮, 宋光洙, 金鶴在, 柳濟仁, 金永珍, 趙鏞國, 金大雄, 鄭烘原, 申熙求, 柳昌宗, 明魯昇, 朴廣信
    3) 사무국장 및 과장-朴成植, 林炳晙, 羅一洙, 李宗桓, 李正圭, 邊子淵, 梁大一, 金永吉, 金宰業, 韓武龍, 黃善揚, 徐光宙, 成百營, 申成燮, 尹甲圭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시, 산하 다섯 개 지청의 지청장은 다음과 같다.

     

    동부 신현무(申鉉武), 남부 안강민(安剛民), 서부 박순용(朴舜用), 북부 최경원(崔慶元), 의정부 김수장(金壽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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